“안녕하십니까. 신회장님. 광역수사대 소속 전만호 반장입니다.”

신회장은 부드럽게. 그러나 무거운 태도로 전반장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반장님.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차라도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제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지라 인사치레를 건네며 날씨 얘기를 할 여유는 없겠군요.

그러니 본론부터 여쭙겠습니다.

물론 제 아들 재혁이 일로 오셨겠지요?”

전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 아드님이신 신재혁 씨가 일으키는 사건들로 세간이 시끄럽습니다.

그간은 단순 폭행 사건으로 어떻게든 가볍게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좀 일이 커진지라….”

신회장은 이미 사건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제 아들을 범죄자로 만들겠다, 이 말씀이십니까?”

반장은 쉬이 대답하지 못하자 신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반장님. 잘 들으세요. 예전에 제가 별장 하나를 샀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먼 곳에 있어 관리가 쉽지 않았지요.

동네 사람들이 겁도 없이 마당으로 들어와서 물건도 훔치고,

또 별장 안으로 침입하려 하고.

그렇다고 별장에 사람을 상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CCTV와 각종 방범 장치들을 설치했지요.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개를 풀었지요. 그것도 아주 무서운 사냥개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충직하게 집을 지키는 녀석들 덕에 골치 아픈 일들이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방범 장치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든 것을 지키지 못해요.

이 사회에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사냥개가 필요합니다.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 오는 쥐새끼들을 등 뒤에서 물어뜯을 그런 사냥개.

제 아들은 그 역할을 스스로 자처했어요.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자기 한 몸 바친 겁니다.”

반장은 신중하게 생각하고는 최대한 조심스레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압니다. 아드님이 투철한 정의감을 가지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셨다는 사실을 저희도 잘 알죠.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합니다.

정당하게 법으로 심판해야 할 이들을 그렇게….”

“반장님.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엔 법만으로 심판할 수 없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경찰분들 역시 밤낮으로 노력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손길이 닿지 않는 곳도 있지요.

제 아들은 그걸 돕고 있는 겁니다.”

신회장은 더 이야기 하려는 반장의 말을 끊고는 봉투 하나를 쓱 내밀었다.

“그리고 저 역시 저만의 방식으로 경찰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돕고 싶습니다.”

반장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천천히 봉투에 손을 뻗었다.

“혹여라도 뇌물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전 그저 경찰분들이 범죄자들 잡는 데 한껏 힘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 방식의 도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건 제 아들 역시 마찬가지. 다만 정의감이 조금 강할 뿐이지요.

이 사회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반장님도, 저희도 힘을 합쳐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지요.”

반장의 손에서 머뭇거림이 사라졌다.

“정의 사회 실현에 도움을 주시는 회장님. 그리고 아드님께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그래도 노파심에 한가지 첨언을 하자면,

슬슬 아드님에 대한 여론이 갈리고 있습니다.”

신회장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결국은 모두 제 아들 편을 들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니까요.

물러터진 그런 영웅 말고. 아주 강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녀석이 말이죠.”





“어이!”

재혁의 부름에 투박한 외모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나 부른 거요?”

재혁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을 법한 그 사내에게 눈을 부릅뜨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너 이 새끼야.”

그렇게 쏘아댄 재혁은 사내가 더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날 듯이 뛰어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이 개새끼! 너 같은 사회악 새끼들은 다 잡아 쳐 죽여버려야 돼! 개 버러지 같은 새끼!

넌 씨발 법이 우습지? 경찰도 가만히 있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지?

지랄하지 마! 그따위로 설치고 다니면서 재미 좋았냐?

넌 오늘 내가 제대로 밟아 줄라니까 달게 받아라.”

“아니 무슨….”

이후로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재혁은 분노에 눈이 돌았는지 손에 집히는 모든 것을 집어 들고는 쓰러진 사내를 후려쳤다.

그러다 들고 있던 물건이 부서지면, 그대로 발로 밟고, 그러다 지치면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숨이 차서 더이상 주먹을 휘두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재혁은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꼴 좋다 개새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따위로 죄짓고 살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거야.

똑똑히 새겨들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재혁은 개운하다는 듯 몸을 풀고는 자리를 떠났다.

마음 같아서는 끌고 가서 제대로 벌을 주고 싶었지만,

오늘의 목표는 이 사내가 아니었다.

법 알기를 우습게 알고 제 잘난 듯이 범죄를 저지른 놈.

그놈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려야 했다.






“일어나 이 개새끼야.”

재혁은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는 남자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

“으아아아악!”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깨어난 남자는 한동안 버둥거리고 나서야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창고인지 지하실인지 모를 낡은 시멘트 방안.

분명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뒤통수에서 불빛이 번쩍하며 정신을 잃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법. 규율. 도덕. 이따위 것들 싹 다 무시하고 제 잘난 듯이

막사는 새끼들이거든?

대표적으로 너 같은 새끼들! 법도 좆 까고 제 맘대로 설치고 사는 범죄자!

‘안 잡힌다. 처벌 못 한다.’ 이따위 버러지 같은 마인드로 사는 쓰레기 새끼들.

네가 지금껏 저지른 온갖 추잡한 짓거리들.

지금부터 벌 줄 테니까 아가리 잘 벌리고 처먹어라. 알았냐?”

남자는 당황하며 다급히 외쳤다.

“잠깐! 잠시만요. 뭔가 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전 그냥 회사원입니다. 범죄 같은 거 저지른 적도 없고, 나쁜 짓 한 것도 없어요.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정말이에요. 전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막 몽둥이를 들어 올리려던 재혁은 그 말에 다시금 화가 나는지 슬슬 얼굴을 붉혔다.

“아 근데 이 씹새끼들은 어디서 단체로 말이라도 맞추나,

뭔 놈의 거 지껄이는 것도 다 하나 같이 좆같지?

개새끼야. 아무 짓도 안 해? 네가 뭔 씨발 같은 짓거리 했는지 네 귓구멍에 처박아줘?”

“진짭니다. 전 범죄 같은 거 안 저질렀어요!”

“하 이 새끼 안 되겠네. 좋아. 말해 줄 테니까 진짜 절대 아닌지 어떤지 한번 보자.

귓구멍 열고 똑똑히 들어.”

남자는 긴장한 채 재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 이틀 전에, 시내 운전할 때, 차 안에서 담배 피우고 꽁초 어떻게 했어?”

“예?”

“밖에다 쳐 버렸지? 그리고 깜빡이도 안 켜고 칼치기 했어 안 했어?”

사내는 당황스럽다는 듯 재혁의 얼굴을 살폈다.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는 모양이었다.

“대답 안 해?”

남자는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네…. 저…. 그 한 것 같습니다.”

“야 이 씹새끼야. 그건 범죄 아니고 봉사활동이냐?

하여간 꽁초는 이 씹새끼들이 한 새끼도 제대로 버리는 놈이 없어.

아까도 오는데 어떤 덩어리 새끼가 편의점에서부터 담배 비닐 쳐버리면서 길빵하고 꽁초 밖에다 버리드만.

아무튼 너 그 지랄 떠는 거 보고 내가 씨발 성질 같았으면 바로 들이받을 뻔 봤는데,

혹시라도 누가 같이 타 있을까 봐 참았어! 개새끼야.

그러고 찾아보니까 씨발 불법주차도 했더만.

넌 길거리가 주차장처럼 보이냐 찢어 죽일 새끼야?”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발끈하며 외쳤다.

“아니 고작 그따위 걸로 사람을 이렇게 패서 끌고오….”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혁이 휘두른 몽둥이가 남자의 턱을 가격했다.

“이거 봐. 이 뻔뻔한 새끼. 자긴 잘못한 거 없다더니만 얘기해 주니까 본성 튀어나오네.

뭐 그따위? 넌 씨발 사람 죽이고 담그는 것만 나쁜 짓이냐?

마약 안 하고 사람도 안 패고 사기도 안 쳤으니까 착한 놈이면 세상에 법은 왜 있고 감옥은 왜 있냐?

야. 그따위 건 죄도 아니니까 어겨도 그만이다. 벌금 내면 그만이다. 하는 그 엿 같은 마인드 내가 뿌리째 박살 내 줄게

너 같은 새끼들 인생이야 뻔하거든. 어릴 때부터 무단횡단 밥 먹듯이 하고, 학교 땡땡이 까고.

커서는 술 처먹고 상사 뒷담화 때리고, 길에다 침 뱉고 쓰레기 쳐버리는 버러지 같은 놈들.

네가 하찮게 여기는 범죄들. 오늘 이자까지 쳐서 전부다 치를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다시금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내가 보통 ‘잘못했다’ 부 터 박는 새끼들은 그래도 정상참작을 해줘요.

적어도 지가 죄지은 거는 아는 새끼들이니까 그냥 존나게 패고 다시 풀어준단 말이야.

근데 너같이 난 억울하다 잘못 안거다라고 하는 새끼들은 그냥 못 보내 줘.

어? 눈깔 파고 발목 썰고 귓구멍을 뚫어 놔야 간신히 속이 풀리거든.

그렇게 해야 이 사회가 바로 서고 정화가 되는 거야.”

재혁은 방 한켠에 있던 송곳을 집어 들고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반장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최형사의 질문에 반장은 담배를 꺼내 물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정의 구현이라신다.

아니 무슨 경범죄로 벌금이나 조금 때릴만한 놈들 잡아서 불구 만드는걸. 사냥개니 어쩌니 하고 있냐.

그냥 성질머리가 고약한 거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최형사의 우려에 한숨 쉬듯 대답했다.

“어쩌긴 어째. 윗선에서도 대충 수습하라 하고,

여론에서도 그 음지의 영웅을 떠받들어 모시니까.

대충 잡는 척이나 하면서 묻히게 둬야지.

우리가 뭘 하겠냐? 그냥 잡생각 집어치우고 회식이나 하자.

간만에 소고기로.”

그대로 담뱃불을 털어내고 던져 버리려던 반장은 화들짝 놀라며

괜스레 주변 눈치를 보고는 꽁초를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