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떻게 됐다고?”

다급히 사무실로 들이닥친 최사장의 말에 승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박실장님이 수금차 고객 한 분을 만나셨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사장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지만 다시금 물었다.

“진규 그 새끼 내가 근신하라고 했잖아? 근데 왜 수금을 나가?”

“그게…. 원래 저 애들 보낼 일이었는데 다짜고짜 사무실 오시더니 애들 저렇게 만들어 놓고

아픈 애들 대신 일 하겠다면서 나가셨습니다.”

승혁의 말에 최사장은 사무실 한켠에 앉은 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세게 팼는지 눈두덩이며 입술이 다 터져 나가 있었다.

“어이가 없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가 뭔데?”

“그 고객님이 이자가 너무 세서 못 갚겠으니 알아서 하라면서 으름장 놓은 모양입니다.

규정대로라면 어르고 달래든 법 들먹이든 적당히 겁을 주든 선을 지켜야 하는데

실장님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냥 머리를 돌로 찍어버렸습니다.”

“하. 그 새끼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부업이라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힘을 쓸래도 눈치껏 해야 하는데

박실장, 박진규는 아무런 계산도 계획도 없이 제멋대로 주먹을 휘둘러 대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채무자에게 발길질한 걸 수습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고,

불같이 화를 내며 근신하라 말한 게 고작 며칠 전이었다.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그 대가리 깨진 놈은?”

“아까 실장님 전화 받고 애들이 모시러 갔습니다.

아마 곧 도착 할 겁니다.”

“당장 병원부터 보내라고 해. 숨기려다가 일만 더 커져.

진규 그 새끼는 바로 데려와.

제 혼자 까불다가 그런 거니까. 그 새끼한테 책임지라고 해.

합의금을 물어도 제 돈으로 내게 하고.

감방 가겠으면 그냥 보내 버려.”

최사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진규의 능력이야 인정하지만 어째 날이 갈수록 사고만 치고 다니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치기에도 곤란한 것이

절대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것이 박진규였다.

차라리 안에 품으면서 딴생각 못 하게 하는 것이 나았다.

골치 아픈 독종 놈이라 생각하던 그때 최사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규의 전화.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어디야?”

[깜짝이야. 아저씨 목 상하것네.

지금 통화 음질 기깔나게 좋으니까 좀 나긋하게 말해요.]

“개소리 말고 어딘지나 말해!”

[가고 있어요. 금방 도착하겠네.]

“고객은?”

[옆자리에 있죠.]

“애들 보냈으니까 걔네한테 넘겨서 병원 보내고 넌 들어와서 나 좀 봐.”

[병원이요? 그럴 필요 없는데.]

“없기는 뭐가 없어? 괜히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그렇게 해.

최대한 빨리 치료 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 죽었어요. 병원 갈 필요 없어.]






“야 이 개새끼야! 너 뭐 하는 거야?”

“일했잖아요. 겁나 성실하게.”

최사장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고작 돈 몇백 받겠다고 사람을 죽여버리는 게 일이야 이 새끼야?”

건물이 통째 흔들릴 것 같은 호통에도 진규는 생글거리면서 대답했다.

“돈이 얼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새끼 마인드 자체가 잘못되었다니까요?

500만 원만 빌려주십쇼.

하면서 굽신굽신하면서 계약서 쓰던 놈이 돈 받으러 가니까 뭐 갑자기

계약 조건이 부당하다.

합법적인 사업체 맞냐.

이자가 280이나 되는 건 너무 과하다.

이거 부당한 거래 아니냐 하면서 시건방을 존나 떨잖아요.

그래서 제가 인생에 대한 혹독하고 매콤한 가르침을 준거죠.”

“이 새끼가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여!!

너 내가 성질 죽이고 생각 좀 하라고 말했어 안 했어?

며칠 전에 그렇게 지랄하고 근신하라 했는데 그새 이런 대형 사고를 쳐?

내가 사업 여기까지 키워놓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거 다 망쳐 놓으려고 그래?”

진규는 진심으로 억울하단 표정을 하며 말했다.

“아니 아저씨 그리 말하시면 내가 섭하지.

이 잘난 사업 아저씨가 혼자 키운 거 아니잖아.

코딱지만 한 사무실에서 서너 명이 건달 질로 애새끼들 코 묻은 돈 뽑아먹던 거

이렇게 크게 키워 놓은 건 내 덕 아니에요?

그땐 나보고 듬직하담서요. 응?

사람 하나 제대로 봤다고.

아주 존나게 돈 벌게 해줄 테니 아저씨만 믿고 끝까지 같이 가자면서요.

그때 껄껄거리면서 약속한 것들은 뭐 다 잊어버리셨나 봐.”

최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진규가 한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당시 입에 풀칠하기 바쁘던 작은 규모의 사업이

지금 이렇게 커다란 대부업체로 자리매김한 것은 진규의 덕이 컸다.

당시만 해도 때리고 부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던 시절이었고

독종이라 불리던 진규가 앞장서서 골치 아픈 일을 도맡아 해준 덕에 사업이 잘 풀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진규의 그 앞뒤 없고 물불 안 가리는 성미가 이곳저곳에서 불씨를 일으키더니만

결국 이런 사태까지 터져버린 것이다.

최사장은 화를 내는 대신 조금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기로 했다.

“왜 죽였어? 보나 마나 제대로 떠들기도 전에 줘 팼을건데,

그놈이 사람 새끼면 너한테 처맞으면서 깝죽대지는 못했을 거 아니야?”

진규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내가 누군데.

싸다구 짝! 하니까 어어…. 하면서 경찰 어쩌구 하대요?

그래서 그냥 짱돌 들어서 대가리 찍어 버렸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바로 살려주세요. 선생님 소리 튀나오는거야.

대화의 준비가 된 거지.

만족스러우니까 이제 또 젠틀하게 돈 달라 했지.

그랬더니 지금은 없대.

다음 달엔 어떻게든 마련해서 주겠대.

진심 모든 걸 다 걸고 약속하겠다는 거에요.

근데 내가 또 거짓말 하는 건 바로 알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눈을 봤단 말이죠.

딱 보니까.

이 새끼 거짓말이야.

이거 지금 보내면 이 새끼 무조건 신고 아니면 야반도주야.”

“그래서 돈 포기 하고 잡아 죽였다?”

“아니죠. 봐요.

이제 눈은 거짓말하는 눈인데,

그래도 팔면 값어치는 좀 나갈 거 아니야.

뭐 까봐야겠지만 속에 든 것도 뭐 쓸만하겠지.

이놈 그냥 보내서 돈도 못 받고 귀찮아질 바에

가져다 파는 게 맞겠다 싶어가지고 그냥 뒤통수 찍어 버린 거지.”

최사장은 뭐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걸 진짜 제대로 일 처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되는 대로 지껄이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아니 그래 뭐 다 좋다 이거야.

나름대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벌인 일이라 쳐.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사람 하나 죽여다 파는 게 이자 받아먹는 것 마냥 쉬운 일이야?”
“그 아저씨 친구 중에 선장 형님 있잖아요.

밀수 쪽으로 꽉 잡고 있고, 약 사업도 하는 거로 아는데,

그쪽으로 파면 판로야 떨어질 것이고.

뒷수습은 뭐 사장님이랑 승혁이 머리 좋으니까 금방 좋은 아이디어 튀나오겠다 싶어서

한눈도 안 팔고 바로 이리 온 거 아니에요.

얼마나 계획적이고 체계적이야?

내가 무식해서 주먹 쓰는 게 아니에요.

그냥 쓰는 게 좋아서 쓰는 거지.”

최사장은 조금은 차분해져서는 승혁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승혁은 안 그래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중이었다.

“확인해 보니 고객 만난 장소도 밖이고 CCTV 쪽 문제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고객님도 원래 신용 상태 안 좋고 도박중독 이력도 있으니까

금전 문제로 인한 도피로 몰아가면 어떻게든 됩니다.

실종 신고 같은 것도

경찰 쪽에 접대 쌓아 놓은 게 있으니 가볍게 언질만 주면 크게 조명되진 않을거구요.”

“우리 쪽 엮이지 않게 껄끄러운 것들 전부 정리해.

황선장 연락 넣어서 미팅 잡고.

경찰 쪽이나 주변 분위기 예의주시하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계속 확인해.”

진규는 그것 보라는 듯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요. 아저씨 막 열불낸거 뻘쭘해질 정도로 일 처리 깔끔하게 됐잖아.

아니 나도 다짜고짜 죽이고 그러진 않지.

다 감당할 만한 각이 보이니까 한 거지.

엄청 오래 봤으면서 날 그렇게 모르나.

나 똑똑하다니까? 그렇게 무식한 놈이 아니에요.

얼마나 비상한 놈인데 내가.”

최사장은 슬슬 마음이 풀렸는지 피식하고 웃음 지었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허세 떨지 마.

잘못되면 다 네가 책임져야 될 거니까.

그리고 이거 잘 돼도 딱히 잘한 거 아니니까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아 잘못되면야 나도 책임지지. 대신 잘되면 인센이나 제대로 챙겨줘요.

나 이번에 기대한다.

호강시켜준다는 아저씨 약속.

나 그거 가슴에 딱 새기고 사는 사람이거든요?

진짜 서운하게 하지 마요.”

진규는 너스레를 떨어 보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너 또 어디가?”

“술 약속.

거하게 달릴 거니까 내일 출근 못 합니다.”

최사장은 굳이 잡지 않고 그냥 가게 두었다.

굉장히 위험하고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녀석이긴 하지만,

그만큼 쓸만한 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루기 힘든 양날의 검이지만 최사장은 자신이 진규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오로지 자신만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끔 돌발적으로 지랄하는 것만 잡으면 그래도 써먹을 데야 많으니까.

좀 더 카리스마 있게 압도해야지 안 되겠어.

결국 내 손바닥 안이라는 걸 알아야지.’

최사장은 좀 더 철저하게 통제하리라 마음먹고는 승혁과 머리를 맞대었다.






진규는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아저씨는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가 없어.”

트렁크에서 커다란 스포츠백을 꺼내 매고 느긋하게 현관에 들어선 진규가 중얼거렸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엔 현금 뭉치가 잔뜩 들어있었다.

“야. 우리 도박꾼 고객님. 호구인 줄 알았더만, 웬일로 이리 돈을 많이 따셨어?”

하우스 도박장에 심어놓은 끄나풀 하나가 괜찮은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고객 중 하나가 크게 한탕 해서 돌아갔다고.

진규가 사무실에서 빼앗듯이 수금 일을 받아 고객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막 커다란 가방을 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다.

진규는 적당히 한적한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타이밍 좋게 막아섰다.

어어 거리는 고객의 멱살을 잡고 차에서 끌어 내린 진규가 말했다.

‘아이고 고객님. 어딜 그리 바삐 가셔?

보아하니 오늘 왠지 느낌이 좋아.

우리 고객님한테서 돈 냄새가 살살 나거든.

큰돈 만지니까 돈 갚기는 또 죽어도 싫지?

보자, 우리한테 갚을 돈은…. 별거 없네. 이자까지 780.

근데 우리한테만 빌린 게 아니다 그치?

친척에, 친구에…. 대부업체만 세 군데야.

그거 다 내주고 나면 우리 고객님한테 얼마 남나?

소주 한 병 사서 속 달래고 끝?’

발광하며 버둥거리는 그의 머리를 돌로 내려찍은 진규는 쓰러진 그에게 말했다.

‘그러긴 너무 아쉽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자 여기 우리한테 빌린 돈은 갚아야 되니까 780 떼고 남은 거.

그거 나랑 반갈이 합시다.

그럼 내가 깔끔하게 보내줄게.

다른 놈들 돈 갚는 건 내 알 바 없으니까.

아저씨는 남은 돈 잘 챙겨서 가던 길 가면 돼.

어차피 배 타고 해외 갈라 했잖아.

장거리 여행 주머니 무거우면 안 되니까 그리하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대화를 할 상태가 아니었다.

머리에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돈에 대한 광기 때문인지

그는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진규를 밀쳐내고 도망치려 할 뿐이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걸 알자 진규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다시금 돌을 집어 들었다.






“그래. 이게 훨 낫네. 반이 뭐여 옹졸하게. 먹을 거면 다 먹어야지.

그나저나 우리 아저씨 요새 너무 괄괄거려.

진짜 언제 한번 선 훌쩍 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기만 해봐. 아주 그냥 다 박살 낼라니까.”

진규는 낄낄 거리며 돈을 세기 시작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