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소리 향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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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소리 (향도가) [2]

작성자

나뭇잎마을7대이장님

쪽지 | 작성자 글보기

번호 83064 추천 23 답글 2 조회 26,644 작성시간 2023-09-26 14: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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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소리 （향도가）

한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금요일 저녁.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지겨운 야간자습을 마치자마자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평소 나와 어울리던 절친 4 명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 바쁜 모양인가 보다.

"야, 너 어디 갈 거야. 갈 데 없으면 PC방이나 가자."

"너는 허구한 날 PC방이냐? 난 안 갈란다. 가 봤자 할 것도 없다. 요즘은 롤도 재미없고 배그도 재미없다."

"그래, PC방은 좀 아니다. 우리 코노나 갈까?

"응, 차라리 코노가 낫겠네."

"아, 맞다. 어제 아는형님 재방송 보다가 쌈자아재가 십 수 년전 유행했던 자기들 노래를 부르는데, 아 글쎄 울 막내삼촌이 왜 그렇게 부르재꼇는지 이제야 알겠더라."

"왜, 너만 몰라~. 왜, 널 지킬 *쌈자를 몰라~."

"크으..."

"오, 이거 노래 좋네. 이걸로 벨소리 좀 바꿔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 가요프로에서 이름좀 날렸던 락발라드 밴드의 히트곡을 주거니 받거니 흥얼거리며 코인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한참을 친구들과 좁은 방 안에서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요란한 벨소리를 뽐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이내 핸드폰을 가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장 친한 친구인 동석이 전화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여보세요. 마씨여?"

"야, 너 지금 어디냐?"

"코노에 있어. 노랫소리 들리지? 신나게 부르재끼고 있다야."

"니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임마. 어제 성규 녀석 학교 조퇴하고 일찍 간 거 알지?"

"어, 어제 보니까 성규 표정이 말이 아니던데 뭔 일이 생겼나?"

"어제 성규놈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어제 조퇴하고 나서 쭉 ㅇㅇ병원 빈소에 있는 거 같은데 우리도 가야지. 너도 지금 빨리 와"

"아, 정말. 나 거기 알아 거기로 가면 되지?"

"어, 잘됐네. 병원 앞에 있을테니까 빨리 와라."

"오야, 알겠다 임마."

성규에게 무슨 위로를 해 줘야 할까. 전화를 끊고 노래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말한 뒤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시끄러운 시내 한복판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거기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가 막혀 30분이 지나도록 도착을 못해,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병원 쪽으로 달리기로 했다. ㅇㅇ동은 할머니댁이 있는 동네라 명절 때마다 가기 때문에, 이 곳 지리를 대충이나마 알아 ㅇㅇ병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병원 입구에는 성규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 셋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미안 차가 좀 늦어서 말이지..."

"됐고, 빨리 들가자. 어휴, 건강하시던 분이 이게 뭔 날벼락인지..."

우리는 그렇게 성규 아버지 빈소로 들어갔다. 안에는 친척 분들과 조문객 분들이 계셨다. 우리는 성규에게 최대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정신도 못 차리고 슬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성규는 담담하게 우리를 맞으며 고맙다고 반겨주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빈소 곁에 차려진 탁자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성규 녀석의 표정이 너무 우울해보여, 우리는 일부러 농담도 던지고 장난도 많이 쳤다. 그러던 와중 문득 빈소 안 쪽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 호 빈소에는 어느 할아버님, 2 호 빈소에는 친구 아버님. 그리고 3 호 빈소에는 어느 젊은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무척 젊은 듯 보였고, 마치 아이돌 가수 마냥 상당히 고운 얼굴이라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와, 저 여자도 죽었나보네. 진짜 예쁘장 하고 나이도 우리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거 같은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와, 근데 진짜 미친듯이 존예네."

"생긴 걸로 보니 어디서 몹쓸짓이라도 당하고 충격 받아서 자기가 죽은 거 아니냐?"

그 때 나는 장난이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우리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이미 시간은 밤 11시를 조금 넘은 뒤였다. 친구 놈들은 전부 버스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떠났다.

"자, 여기. 너 빨리 갚아라 나도 돈 쪼들린다 임마."

"고마우이. 내일 당장 부모님한테 말해놓는다. 다음주 안까지 갚을테니 걱정마라 내 생명의 은인이여. 내일 카톡으로 보자!"

"하하-. 짜식아 오바하지 마라. 간신배가 따로 없어요 그냥. 기사님 이놈 자식 안전하게 부탁드립니다!"

방금 택시를 잡은 흥민이에게 마지막 남은 만 원을 빌려준 탓에, 내게 남은 돈은 삼천원이 고작이었다. 집까지 돌아가기에는 한참 모자란 돈이었다. 성규에게 부탁해 돈을 빌려볼까도 생각했지만,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는 말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아, 맞다. 할머니 집!'

결국 근처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하루 자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친척 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구했다. 다행히도 누이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오야, 그래. 누나는 지금 밖이라 나중에 들어갈거야. 집에 할머니 계시니까 문 열어 달라고 말씀 드려. 아직 안 주무실거야."

친척누이의 허락을 받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께 사정을 말하였다.

"엄마, 나야. 어차피 내일 학교 안 가니까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갑니다. 문단속 잘 해요."

거의 독백하듯이 할 말만 쏙 하고 끊어버렸다. 그러고서는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었다.

"기사님. ㅇㅇ아파트요."

할머니 댁은 위치가 제법 특이해서, 주변에 식료품 냉동창고와 식품공장들만 즐비한 사이로 언덕을 올라가면 딱 한 동만 세워진 아파트였다. 그렇게 언덕 위에 있는 곳이다보니 주변은 죄다 수풀이 우거진 산이었다. 이윽고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를 바라보는데, 그 날따라 이상하게 굉장히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내 택시는 가버리고,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까지는 불과 30~40m 정도의 거리였다. 입구 쪽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 주머니속 핸드폰이 옛 히트곡의 구구절절한 가사를 토해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발신자 표시제한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수 없이 어긋난데도 기다릴께에~ 아무리 가슴아파도 웃어볼께에~."

'아. 누가 또 이런 장난을 쳐.'

"여보세요?"

"..."

전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해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 액정을 보았지만, 통화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

이상하다 싶어 그냥 그렇게 첫번째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런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수 없이 어긋난데도 기다릴께에~."

"여보세요?"

"..."

"야, 이런 장난 치지마라. 니 진짜 잡히면 뒤진다."

나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걸려온 전화에 다시 전화기를 꺼내야만 했다. 역시나 발신자 표시제한이다.

"하아, 너 누군데 자꾸 장난 칠래?"

그 때였다.

*"이제, 가면. 언제..."

아주 작고 가느다란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기에 숨을 죽이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이번에는 확실히 들렸다.

"뭐야, 너 누군데?"

하지만 여자는 내 물음에 대답도 않고 계속 곡소리 비슷한 것만을 중얼거렸다.

"이제 가면 언제오나, 오실때나 일러주오..."

결국에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리고,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한 발짝을 내딛을 찰나.

"길 떠난다, 길 떠난다. 길, 떠난다..."

순간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뭐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으, 으..."

겁에 질린 나는 전화를 끊고 아파트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분명히 들었다. 그것은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전화는 끊었지만, 아까 들었던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마치 바로 옆에서, 정확히는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하는 것처럼.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이 곳이 북망일세..."

"헉..."

숨 돌릴 틈도 없이 더 빠르게 달려 7층의 할머니 댁을 향해 계단을 뛰어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귓가에서는 계속, 계속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너허 너허 너화너 너이가지 넘자 너화 너..."

이윽고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 마자 미친듯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그리고 귓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무렵, 안에서 인기척과 함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할머니를 본 순간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며 할머니 품에 안기려 했다.

"하, 할머니..."

"탁!"

하지만 할머니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보시더니, 손으로 있는 힘껏 밀쳐내셨다.

"아, 아가. 너 거기 그대로 있거라. 꼼짝 말고!"

그리고는 집 안으로 무엇에라도 홀린듯 빠르게 뛰어가시더니 *소금을 한 웅큼 집어오셔서 그걸 내게 뿌리시는 것이었다.

"하, 할머니. 왜 그러세요. 무서워요..."

"아가, 너 가만 있어라. 이 썩을것이 왜 여기 붙어서 안 가는 것이냐. 썩 꺼지거라 썩 꺼져 여기는 이승이니라!"

나는 아직도 그 때 할머니께서 공포심 섞인 무서운 얼굴을 하시며 당신 혼자 중얼거린 말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집 안에서 소금을 바가지채 가지고 오셔서 몸 구석구석 몽땅 뿌리셨다. 그 후에야 내 손목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겁에 잔뜩 질린 채 부들부들 떨었고, 할머니는 그런 사시나무 떨린듯한 손을 잡으며 물으셨다.

"아가, 너 오늘 어디 다녀왔니 혹시 상 당한 곳이나 당집에 갔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너 거기서 죽은 사람 흉을 봤었냐?"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숨 죽이며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아이고, 이 자식아 왜 그랬냐. 그러길래 왜 죽은 사람 흉을 보냐. 나가 너거들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보다. 참말로 큰일 치를 뻔 봤어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 등을 제법 매섭게 치셨다. 적잖게 고통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던 와중 할머니는 재차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너,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아니다, 아예 상 당한 데나 당집에 절대로 가지마라."

그리고 그 후 할머니에게 들은 말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할머니께서 문을 열었을 때, 잔뜩 겁에 질린 내 등에는 검은 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가 업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창백한 표정을 한 채, 얼굴을 내 귀에 바싹 들이대고 할머니를 째려보고 있었다고 한다. 당신께서는 직감적으로 '아. 이 세상것이 아니구나.' 하며 생각이 드셨다 말씀해주셨다. 대화가 마무리 되는 동시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여자의 인상착의가 내 친구놈 아버님 빈소 옆, 즉 3 호실 빈소에 있던 영정사진 속 여자와 똑같았던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어 잽싸게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봤지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걸려왔던 세 통의 전화는 통화내역에 없었다. 아직도 가끔 그 날의 소름끼치는 곡소리가 떠오르곤 한다.

"길 떠난다. 길, 떠 난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때나 일러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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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3집 Perfect의 타이틀곡으로 2006년 히트곡이었다. 여담으로 2집 타이틀곡 가시와 함께 여전히 노래방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장수곡이다. 민경훈에게 쌈자라는 별명이 붙게 한 원흉이기도 하다.
2019년 민경훈이 남자를 몰라 가사의 일부를 개사하여 맥올데이 광고를 찍었다.
2006년 싸이월드 뮤직 연간음원차트 11위에 랭크되었다.

2: 말그대로 발신자가 건 전화번호가 수신자에게 안 보이게 해주는 부가 서비스 전화번호 앞에 입력하고 전화를 걸면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번호이다. 안드폰 *23# 아이폰 #31# 유선전화기로는 '169'를 먼저 입력하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뚫는 법은 있다.

3: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향도꾼 혹은 상두꾼으로 불리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소리. 일명 만가（輓歌） · 향도가 · 향두가（香頭歌） · 행상소리 · 회심곡（回心曲） · 옥설개 · 설소리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사회적으로 천시를 받던 사람들이 작은 집단을 형성하여 상두도가를 중심으로 직업화된 사람들에 의해서 불렸지만, 지금은 보통 불리지 않고 있다.

4: 동양권 무속신앙에서 볼 수있는 행위이다. 서양권도 장례식 장에 다녀오면 자기집 현관에 들어설때 신발을 턴다거나 성호를 긋는다거나 찬송구절을 읊거나 한다.

* 컨텐츠 출처 : 작성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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