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여 사람이 파리만도 못하게 죽어갔다.

우리 마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제는 셋 어제는 여섯.

누가 언제 죽어 나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혼자라도 살아보겠다고 동무들마저 저버리고 호기롭게 마을을 뛰쳐나온 것까지는 좋은데

우습게도 몇 리 가보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기운이 다해 길옆에 쓰러져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역병으로 죽어가시는군요.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하실 겝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의 목숨을 구할 방도를 전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제 본디 장사치 인지라 거저 살려 드릴 수는 없는 노릇.

목숨을 대가로 제게 무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묘한 도롱이를 쓴 채 눈앞에 선 장사꾼의 말에 난 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진 거라곤 역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 힘없는 몸뚱이 하나가 전부인 비루한 청년.

그것이 나였다.

그런 내 꼴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장사꾼은 내게 다시 말했다.

“가진 것의 전부는 어떠하십니까? 육신과 정신을 전부 제게 주는 거지요.

남은 삶을 전부 바칠 각오만 하신다면 병을 고치고 살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면서 날 어딘가로 데려갔다.





피를 토하고 비틀대다가 쓰러지기를 수차례.

간신히 도착한 그곳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덩이 앞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요기굴이라 하지요. 탁한 요기를 가득 채운 곳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여길 들어가야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요기굴이라니.

아무리 어리석어도 요기가 얼마나 나쁜 기운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광인이 되거나 요괴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길 들어가야 한다니요?

절 죽이실 셈입니까?”

하지만 장사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는 것이지요.

병을 이겨내고 강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겝니다.

이제 그 약하디약한 몸은 지겨울 것이 아닙니까?

저 역시 비루한 몸뚱이보다는 더 쓸모있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니 들어가시지요.

100일만 견뎌내면.

악착같이 살아남기만 하면.

강하고 거대한 요괴가 되어 전혀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한번은 죽었어야 할 몸.

각오를 다지고 들어가서 버티십시오.”

병을 고쳐줄 수 있다 하더니 이런 것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어라 더 말하려 했지만, 갑작스레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다시금 피를 토했다.

“그것 보십시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얼마 안 가 고통스럽게 죽어버릴 겝니다.

그러니 들어가시지요.

들어가서 안에 있는 것들로 배를 채우면 역병 따윈 우스운 몸이 됩니다.”

가빠지는 호흡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장사꾼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인제 와서 죽는 것은 싫었다.

난 비틀거리며 기어가 구덩이 아래로 몸을 던졌다.





굴은 끝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져 지독하게 굴렀을 뿐 크게 상하는 곳 없이 들어설 수 있었다.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이곳은 요기굴이란 이름답게 피부로 느껴지는 끈적함과 불쾌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안에 있는 것들만 먹으며 100일을 버텨야 한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대략 예상이 되긴 했으나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 그것 하나만이 중요하니까.

어두운 바닥을 더듬으며 먹을거리를 찾아 기어갔다.

“아!”

공간을 가늠해보기 위해 소리를 쳐 울림을 들어보았다.

아무래도 구덩이 아래는 제법 넓은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슥스슥 스슥’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실을 자각시켜주듯 더듬거리던 내 손에 무언가 닿았다.

미끈한 것. 단단한 것. 뾰족한 것.

거미, 전갈, 지네 할 것 없이 손바닥만 한 벌레떼가 내게 기어들고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절할 노릇이었지만 장사치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안에 있는 것들로 배를 채워라.’

산해진미 따위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라니.

차마 손을 대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나 몸으로 기어오르는 벌레들을 떨쳐내었다.

쳐내고. 밟고. 털어내고.

끝이 없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이 미물들 역시 배가 몹시도 고픈 상태였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발목을 콱하고 깨문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이것들이 날 사냥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치밀어오는 죽음이란 녀석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에 가득 찬 요기란 녀석 때문인지

난 슬슬 분노를 넘어선 무언가에 잠식당해 갔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러 벌레를 밟아 죽였다.
되는대로 팔을 휘둘러

손에 잡히는 물컹한 것, 딱딱한 것들을 전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돌 따위가 집히면 그대로 바닥을 내리쳐 곤죽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역병마저 잊고 한참을 난리를 치다 보니 이제야 스슥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이쯤 되어서는 덤벼들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도 모른다.

틈이 생기자 뒷전으로 몰아두었던 통증이 다시금 위로 솟아올라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벌레들의 체액과 사체들로 뒤범벅된 바닥에 엎어져

토막 나 꿈틀거리는 벌레들과 살을 맞대고 있자니 비참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폐부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가시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바닥에 혀를 가져다 댔다.

비릿한 끈적함이 입안으로 훅 들이쳐 왔기에 치를 떨어야 했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체액을 핥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

이걸 먹어야 병이 낫고 살아남을 수 있다.

우습게도 목구멍에 역한 것이 넘어가자 곧바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폐부에 불이 가라앉고 식은 몸에 온기가 돌아왔다.

호흡이 돌아오고 눈동자에 생기가 돌자 미칠듯한 허기가 찾아왔다.

혀끝만 적시던 것이 어느새 입안을 채우고,

경련하듯 꾸물거리는 벌레 조각들마저 양손으로 집어삼켜 배 속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이제는 온기가 도는 것을 넘어 뜨거운 물에 들어온 것마냥 온몸에 열기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해진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때부터 사냥은 나의 몫이었다.




“고독. 잔학한 술법....”

털이 잔뜩 나 있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구덩이. 요괴굴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난 지금 그 장사치에 의해 길러지고 있다.

요기로 가득한 이곳에서 독충을 죽이고 또 그 살점을 씹어 먹음으로써

요괴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벌레들을 씹어 삼킬수록 몸은 더 강대해졌지만

그만큼 묘하게 뒤틀리고 어긋나 갔다.

피부도 단단해지고 손발도 길어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이 구덩이 속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 마냥 하루가 다르게 몸이 변하고 있다.

내가 요괴가 되고 있다.

적어도 죽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지만,

이렇게 100일이 지나 완전한 요괴가 되면.

내 기억은 온전할까?

사람이던 때의 그것과 마음이 그대로일까?

어쩌면 광인처럼 모든 걸 잊고 그저 피를 갈구하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을 포기할지언정 인간성마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난 사람이다. 인간이다. 난 본래 사람이다....”

세뇌하듯 중얼거렸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난 옆에 떨어져 있던 큼지막한 돌을 집어 들고 머릿속에 박아넣듯 외치며 이마를 후려쳤다.

“난! 사람이다!”

퍽

“난 요괴가 아니다!”

퍽

“난 본래 사람이다!”

퍽

이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나와도 멈추지 않았다.

벌레를 먹고 비루하게 살아도.

머리가 생각을 멈추어도.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도

내가 인간이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은 잊지 않기 위해 이마를 돌로 찧으며 쉬지 않고 되뇌었다.









퍽.

“나..는 사람...”

퍽

“본래 나는.... 사람... 이...다..”

퍽

“요..괴...가 .... 아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때가 되면 어디선가 쉼 없이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집어삼키고

시간이 나면 돌로 이마 속에 내 정체성을 때려 넣으며 버틴 시간이었다.

놓칠 것 같던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고 늘 그렇듯 진실을 머릿속에 때려 넣고 있을 때.

굴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100일이 지났습니다. 자 이제 밖으로 나오시지요.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아마 이 정도는 쉬이 기어 올라오실 겝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집어 던지고 다급하게 벽을 기어올랐다.

어느새 꼬챙이처럼 굵고 단단해진 내 손은 돌벽에 가뿐히 손가락을 박아넣으며

무리 없이 구덩이를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100일 만에 햇빛 아래 서니 마침내 해냈다는 기쁨.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이상할 정도로 작아 보이는 그 장사치를 보며 어눌하게 말을 건넸다.

“거... 거울... 거울을.....”

장사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거울을 꺼내 보였다.

“많이들 찾으시지요.

그전에 가졌던 허약한 껍데기를 버리고 강인한 육체를 가지셨으니 궁금하실 만도 합니다.”

작은 거울이었지만 얼굴을 비춰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진한 회색의 거친 피부. 얼굴의 반을 덮는 눈.

길어진 주둥이와 촘촘히 박힌 가시 이빨.

예전의 내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쉬지 않고 돌을 휘둘러댄 덕에 이마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었다.

이 흉터가 내 인간성의 증명이자

내가 인간이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몹시도 만족스러웠다.

“무사히 요괴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 고독술이라는게 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지라.

아무튼 다행입니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셨으니 과거는 잊으셔야지요.

보자... 흉터.

이제 당신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흉터.

이마에 난 흉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모양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무얼 하면 될까?

지금이라면 어느 나라 하나 정도는 뒤집어엎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사치는 웃으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곧 어딘가에서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들리며 거대한 외뿔 요괴 하나가 달려왔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고독 요괴. 귀면각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이 귀면각이 당신을 으깰 겁니다.”

흉악한 귀면각의 기세에 기가 꺾인 탓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으..깬 ..다니...”

장사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물론 잘 으깨서 한약재와 영물을 함께 넣고 푹 고아 환약으로 만들어야지요.

잊으셨습니까? 전부를 제게 주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역병이 들었던 인간이 고독 요괴가 되면 흉터 치료제에 둘도 없이 좋은 재료가 되지요.

어찌나 약효가 좋은지, 50년 전 다친 상처도 아물고,

잘려 나간 팔다리도 도로 자라납니다.”

약제라니. 고작 그따위 재료로 쓰이기 위해 그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딘 것인가?

차오르는 분노에 괴성을 지르며 장사치에게 달려들었지만

귀면각이란 놈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바닥에 처박힌 내게 장사치가 말했다.

“너무 슬퍼 마십시오. 당신의 육신은 녹아 없어질지언정

당신의 영혼은 온 세상의 부자들에게 나뉘어 부귀영화를 누릴 겝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많이 있어요.”

귀면각이 손에든 거대한 몽둥이를 한껏 치켜들었다.

“이 ‘흉터’ 는 잘 다져서 첫 번째 솥에 넣으세요.

두 번째 솥은 ‘노화’입니다.”

귀면각의 그르릉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거센소리를 내며 내려쳐 졌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