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본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각색을 더해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본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명, 인물 사건은 모두 허구임을

미리 밝힙니다.


본 이야기에는 다소 불쾌하다고 느껴질 만큼 잔혹한 묘사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열람 시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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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제, 그러니까 한 십 몇 년 전 코찔찔이었을 때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 문제로 외조부 댁 근처 시골 집에

살게 되었다.

조그맣고, 이곳저곳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하고, 장판은 반쯤

들려 있는, 시멘트를 발라서 세운 집.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에

몸 뉘일 곳이라도 찾아서 다행이라 말씀하셨다.

집부터 사는 동네까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바뀐 나로선 그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낯선 말씨의 사람들. 포장 된 도로와

보도블럭 대신 밭두렁에 쌓아 올린 흙길. 이곳저곳 가득한

소똥 냄새와, 뽀얀 부분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임에도 아직 코에 콧물을 달고

다니는 또래들까지.



다행히도 나와 동생은 시골 생활에 나름 잘 적응했었던

모양이다.

나나 동생이나 원체 낯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교에 가서 공부만 하다 집에서 마저 학습지를 푸는

삶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눈에 드는 모든 새로워 보이는

것들을 더 아름답게 꾸며 주었으니까.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 나도 제법 피부가 까무잡잡해지고

무릎에 상처가 하나 둘 늘었으며, 마을에 있는 모든 내 또래

사내애들과 얼굴을 트게 되었다.



그렇게 마을에 녹아들어 지내다 마을에 온 지 일 년째 되던 해의

어느 날, 마을 주민 회의에 갔다 돌아오신 어머니의 표정이

유독 어두운 날이었다.

엄마가 내 나이를 물었다. 그 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었나

여덟 살이었나, 암튼. 대답을 들은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나와 동생을 데리고 안방으로 가 문을 걸어 잠그셨다.

창문을 닫고, 걸어 잠그고, 막대기에 홑이불을 걸어 만든 커텐도

치고, 우리 두 남매를 이불 속에 숨기고, 촛불을 하나 켠 뒤에야

비로소 어머니는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해 주시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살던 동네는 매년 초여름에서 늦가을 사이

일곱 살에서 열세 살 정도 되는 애들이 며칠에 한 번씩

단체로 넋이 나가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고 한다.

오베, 엄마는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의 혼을 빼가는 그 놈을

오베라고 부른다고 했다.

오베는 밤 아홉 시가 넘어서도 잠에 들지 않은 어린 애들,

그러니까 일곱 살에서 열세 살 정도 애들의 혼을 빼간다고 한다.

왜 열세 살 까지인지는 그 때 물어보지 못했다.

한 번 오베에게 혼을 뺏기면, 그 아이는 그 날을 기해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채로 산다고 한다. 어미가 숟갈을 들어 밥을 입

언저리에 들이대 주먼 받아 먹는 정도까지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고, 눈이 폴린 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어대는

정도로 정신을 빼 놓고 살기도 한단다. 그렇게 멀쩡한 줄 알고,

혹은 완전히 정신을 놓아 버린 줄 알고 잠깐 아이를 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갑자기 정신이 들거나 정신이 나가

혼자서 집 밖으로 나가거나, 가스 불을 켜다, 큰 책장이나

농을 건드리다 변을 당해서 죽거나 크게 다친 아이들이

작년에만 네 명이었다고 했다.



아무튼 엄마의 말에 따르면 오베란 놈은 키가 이 미터가

훌쩍 넘는 사람처럼 생긴 검정 덩어리라고 한다.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목을 길게 늘여 집 안을

들여다 보고 아이들이 자고 있나 확인한 뒤, 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열 개나 되는 눈깔을 얇고 긴 손가락에 붙혀

집 안을 들여다 본다고 한다. 눈깔을 들이대거나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 줬을 때 얼굴이 움찔거린다거나 대답을 한다거나

한다면 그 즉시 골에서 혼을 빼내 아가리에

처넣고 다른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렇게 혼을 빼앗겨 버리면 아까 말했듯 넋이 나가버리고,

머잖아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해 겨울이 오기 전에 죽어버린다,

라는 내용의,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그저 마을 엄마들끼리 입을 맞춰서

밤 늦은 시간까지 잠에 들지 않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일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 글피에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마을에서 내 또래 패거리들 중 삼 학년은 나와 영준이

둘뿐이었다. 한 학년 아래로는 종이와 수형이가, 두 학년

아래로는 민선이가, 한 학년 위로는 없었고 두 학년 위에

훈이 형과 도준이 형이 있었다.훈이 형은 우리 패거리들

중 가장 덩치가 컸다. 큰 덩치에 비해 몸도 날랬고, 특히나

수영을 참 잘 했다. 물가에서 놀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들어가, 제일 나중에 나왔다.

군데군데 튀어나온 바윗돌에 큰 돌을 던져 기절한 작은

피래미들을 낚아 �醮�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 훈이

형이, 벌건 백주대낮에 페인트 트럭에 치여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수형이가 일러준 바에 따르면 훈이 형이 오베에게 혼이

잡혀간 건 불과 이틀 전이었다.

훈이 형네 집 윗집의 윗집에 살던 박씨아저씨네 집 대문을

아랫집 쌍둥이가 짐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놓쳐 한바탕 죽

긁어놓고 간 바람에 페인트가 죄다 벗겨졌다.

박씨아저씨는 그날 바로 한양 페인트집 페인트공을 불렀고,

출장 중인 페인트공 대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리바리한 초짜 하나가 대신 봉고 트럭을 몰고 찾아왔다.

초짜 페인트공의 일처리는 제법 깔끔했다. 붓자국이 결결이

남지도, 애먼 곳에 페인트가 튀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연필을 건네 주고 영수증에 사인을 받은 뒤,

꼴에 짬 좀 찬 기술자 행새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연필을 귀에 꽂아놓고 제 갈 길을 갔단다. 내리막을 내려가던

페인트공의 트럭에 쌍둥이의 리어카에서 떨어진 통조림 캔

하나가 밟혔고, 트럭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의 귀에 걸린

연필이 운전석 의자 옆 틈으로 떨어져버렸다. 페인트공의

눈길은 트럭 앞유리에서 의자 옆으로 향했고, 눈길이 다시

앞유리를 향하고 난 뒤, 트럭은 무언가 찢어지는 듯

하면서도 터지는 듯 하면서도 부러지는 듯한, 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번 더 덜컹거렸다.



마을 사람들이 훈이 형을 묻어 주고 난 뒤 나흘, 이번엔

생선 아줌마 집 꼬마 오베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생선 아줌마는 우리보다 두 달 전에 이 마을에 새로 이사를

왔는데, 첫 주민회의에 결석하는 바람에 오베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마을 장에서 민선이네 엄마가 먼저 집은 생선을 두고

한바탕 실갱이를 벌이다 실수로 날생선을 잡아 뜯어버려

내장이 쏟아지는 걸 보고 기절해 생선 아줌마란 별명이

붙은 뒤로 좀체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질

못하는 것 같더니, 그 사소한 업이 그렇게 돌아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결국 그 집 막내아들도 이 주 반 뒤에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듣기로는 아랫마을에서 강물에 사람 모양 비슷한 무언가가

떠내려왓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강을 따라 내려가며 어디에 한 번 오랫동안 걸려 있었는지,

몸에 반절 정도가 불어터진 채로 썩어 있었다고 한다.

차마 부모에게 보일 수 없어서 장정 몇 명이 그나마 성한

부위를 건져다가 뭍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그 장정 중

하나가 하도 토악질을 해대다 못해 식도염으로 읍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릴 듣고 영준이 형은 웃었다.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한 달도 안 되는 새 마을 아이들이 두 명이나 죽어나가자

마을의 모든 엄마들, 물론 우리 엄마도 자식을 오 분이라도

빨리 잠자리에 뉘이려 애를 써댔다.

덕분에 열 시 정도에 자던 난 여덟 시에는 안방에 깔아 둔

이불에 누워야 했다.

두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건 제법 애석한 일이었다만,

내 또래 애들이 두 명이나 죽어나간 판에 부모님 말씀에

대들 순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다음 엿새동안은 또 마을이 잠잠했다만,

이번에는 그 문제가 우리 집에서 터지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읍내 병원으로 출근을 하시는데, 그

병원에서 야간 당직 근무를 서던 도중 읍내에서

우리 마을로 오는 길목에 놓인 크고 낡은 다리를

과적한 오 톤 트럭이 건너려다 다리가 무너져

삼 일 정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셨다.

우리 어머니도 읍내서 중고차를 파시는데, 고객과 거래하기로

한 차를 다른 차고에 옮겨 두려다 과속을 하던 택시와 부딪혀

삼일 간 시내 병원에 입원해 계셔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또 삼 일. 낭패였다.

두 분이 모두 집을 비우시면 아무도 우릴 봐 줄 사람이,

정확히는 우리를 제 때 재워줄 사람이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다른 집은 두세 명씩 아이를 두고 있었고

- 물론 자기 아이들 돌보기 벅차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필히

적당하게 둘러댄 명분이었을 테다.

아주머니들이 회관 나무 옆에서 저 애들을 맡아 아이가

많아지면 오베가 아이들이 많아진 걸 알아채고 자기네 집으로

오면 어쩌냐고 얘기하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이는 고사하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늙고 병든 노인들뿐이어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다행히 맘씨 착한 영준이 엄마가 우리에게 세끼 밥은 나누어

주셨다. 아침 시간은 일곱 시, 점심 시간은 열두 시, 저녁

시간은 다시 일곱 시. 여덟 시에 우리가 누워 있는 것 까지

확인해달란 부탁은 거절하셨다.



그렇게 엄마아빠 없이 처음으로 동생과 단둘이 자게 된 첫날 밤.

우리 남매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이불 안에서 모로

누워 숨을 죽였다.

창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풀벌레 우는 소리,

아직도 잠에 들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엄마들의 목소리,

저기 한참 멀리서 들릴 듯 말 듯 개 짖는 소리,

시계 초침 짤깍거리는 소리,

두 살 밑에 동생이 살작씩 뒤척이는 소리,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대문 옆 낡은 편지함 소리,

이젠 조용해진 거리의 소리,

아까보단 조금 느리게 시계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

산 너머에서 작게 들리는 개 짖는 소리,

두 살 밑에 동생이 꼴딱 침을 삼키는 소리,

영준이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는 영준이 엄마 목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틀 소리,

아까보단 조금 빠르게 시계 초침 딸깍거리는 소리,

아랫집 복순이 짖어대는 소리,

두 살 밑에 동생이 색색 고른 숨을 내쉬는 소리,

시계 바늘 끽끽거리며 거꾸로 돌아가는 소리,

삐걱, 끼익 하고 대문 천천히 흔들리는 소리,

내 숨 이불에 닿으며 싸락거리는 소리,

땀방울이 한 방울 흘러 내려, 투둑 하고, 이불 위로,

그리고 아침.



바람에 팔락거리는 커튼에 아침 햇살이 이리저리 굽어지며

시작하는 아침.

동생과 나는 대문을 나서 영준이네 집으로 향했다.

영준이는 멀쩡했다. 나도, 내 동생도, 종이도, 수형이도,

그리고 도준이 형도.

어제가 금요일이었던 터라 오늘은 수업이 없는 토요일. 훈이

형 대신 동생이 새로 낀 우리 패거리는 예전에 놀던 계곡에서

다시 놀기로 했다.

여벌의 옷가지들은 필요 없고, 잠자리채, 바가지, 줄을 묶어

낚싯대로 쓸 대가리 빠진 빗자루 손잡이, 육각형과 오각형 모양

실밥만 남은 민둥무늬 공.

준비물을 챙긴 우리는 신나게 계곡으로 뛰어가선 물장구를

치고, 서로에게 물을 끼얹고, 낚시 놀일 하고, 날파리 하나

잡아보겠다고 잠자리채를 휘두르고,

공을 주고받으며 해가 슬슬 기울 기미가 보일 때까지

진탕 놀았다.

영준 엄마네 집에 도착하자 일곱 시 삼 분.

하루 종일 수영을 하였던 나와 동생은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은 채 안방에

그대로 엎어져 잠에 들었다.



그 다음 날, 일요일.

눈을 떠 보니 시계의 바늘이 십일과 십이,

그 사이에 걸려 있었다.

난 졸린 눈을 비비고 다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짧은 바늘이 십일과 십이, 그 사이에 걸려 있었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고, 세수를 하고 다시 시계를

보았다. 긴 바늘이 아니라 짧은 바늘이었다.

긴 바늘은 오에서 육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만 먹었다.

이럴 게 아니라 얼른 계곡이라도 찾아가서 힘을 빼 놓아야

저녁에 잠에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계곡에 같이 갈

패거리들을 모았다.

영준이는 어제 엄마가 불러도 대답하질 않아

외출을 금지당했다.

종이와 수형이는 어제 계곡에 갔으니 다음번에 가려면

일 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도준이 형은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질러

집에서 못 나간다고 했다.

나와 동생 단둘이는 흥이 나 힘을 진탕 쏟아낼 만한 놀이를

할 수 없었다.

무작정 계곡으로 찾아가 발장구를 치고, 물을 퍼대고,

잠자리채를 휘두르고,

낚싯대도 휘두르고, 공은 저 멀리 뻥 차버렸다.

이제야 힘이 좀 빠진 것 같아, 영훈이 형이 놀던 바위 위에 누워

잠깐 쉬었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뿐인데, 해가 저만치

기울어 있었다.

난 동생과 집까지 달려갔다.




일곱 시 삼십오 분. 저녁은 먹지 않는다.

어제와는 달리 양치를 한다. 세수도 한다. 머리도 감는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야 했다. 머리 감을 땐 숨을 참고 감는다.

일곱 시 사십구 분. 평소보도 십일 분 일찍 눕는다.

눕다 말고 일어나 대문으로 간다. 물론 숨 참고 뛰어서 간다.

대문을 잠근다. 현관을 잠근다. 안방 문을 잠근다. 창문도

잠근다. 커텐도 잊지 않고 내린다.

동생과 나란히 눕는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발이

튀어나오진 않았나 확인한다.

저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 소리가 들린다.

시침이 잘각거린다.

바람 부는 소리가 창문을 살살 긁는다. 개는 짖지 않는다.

시침은 계속 잘각거린다. 다시 개가 짖는다.

어딘진 모르겠다. 초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심장 소리가 들린다.

거리는 조용한 것 같다. 집도 조용한 것 같다.

초침 소리는 들리는 것 같다.

숨이 이불에 닿으며 사각거린다. 동생 심장 소리도 들린다.

시침은 짤깍거린다. 윗집 황구가 짖는다. 세게 짖는다.

창문은 조용하다. 동생의 숨이 가쁘다.

윗집 황구가 짖지 않는다. 분침이 째깍거린다.

심장 소리가 조용해진다.

아랫집 복순이가 짖는다. 세게 짖는다. 세게 짖는다.

동생의 숨이 조용하다.

아랫집 복순이가 세게 짖는다. 분침이 딸깍거린다.

숨이 이불에 부딪혀 서걱거린다.

아랫집 복순이가 짖지 않는다. 바람에 현관문이 삐걱거린다.

집안도 조용하다.

숨이 삭이불에삭삭긁혀삭 사각거린삭다.삭삭삭

삭삭삭달각 가만, 삭삭사각삭삭삭삭사각삭삭 가만있자 사각사각삭사각사각사각사박

사각사각 저건,사각 사각박박사각박박 숨이사각박박 이불에 닿는
소리박박박가 아니다박사각박박사각박
문 긁는 소리잖아저건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문을긁는다. 시침이 딸깍거린다. 빠르게 딸깍거린다.

눈동자가 돌아간다. 난 숨을 쉬지 않는다.

숨을 쉬지 않을까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곤 살살

조금씩만 쉬기로 한다. 아직도 문을 긁는다. 개는 짖지 않는다.

창문은 긁지 않는다. 계속 문을 긁는다. 심장이 빨리 뛴다.

몸에서 땀이 흐른다. 땀이 이불 위로 떨어진다.

투둑거린다. 이불 위로 내 땀이 쏟아진다. 내 땀일 거다.

창문 밖엔 무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하다. 내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불 속이라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눈은 뜨지 않는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땀이 흐르지만 이불 위로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조용하다. 내 숨소리는 조금씩 들린다. 아주 조금만

눈을 떠 보기로 했다.

눈을 아주 조금 뜬다. 앞은 새카맣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조금만 더 뜬다. 앞은 아직도 새카맣다.

눈을 약간 뜬다. 앞이 왜 아직도 새카맣지?

눈을 뜬다. 앞은 새카맣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앞이 새카맣다. 새카만 것 속에서 무언가 보인다.

새카만 것 속에서 새카만 눈동자가 보인다.

새카만 눈동자가 날 쳐다본다. 새카만 눈이 날 쳐다본다.

새카만 눈들이 날 쳐다본다. 그리고 노려본다.

그리고 웃는다.

또 웃는다.

그리고 난 다시 눈을 뜬다.



눈을 뜨자 아침이다.

창문으로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불어온다.

눈을 다시 감았다 뜨자 집 밖이다.

평소와 같은 아침의 집앞 풍경. 사람들이 안 보인다.

눈을 다시 감았다 뜨자 읍내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는 가지 않는다.

눈을 조금 꽉 감았다 뜨자 다시 읍내로 가는 길이다.

저 멀리 부서진 다리가 보인다.

눈을 다시 감았다 뜨자 도로가 보인다. 횡단보도가 보인다.

신호등이 빨갛다. 저 멀리 트럭이 달려온다.

눈을 다시 감았다 뜨자 트ㄹ







다시 감았다 뜨자 난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눈 앞엔 엄마와 아빠가 있다.

내가 트럭에 치여 이 주하고도 삼 일동안이나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동생이 보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는 보고 있으니 됐다.

눈을 뜨고 있어도 새카맣지 않았다. 배가 살짝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에 몇 주 정도 있었다.

그리곤 다시 집으로 왔다.

그리고도 몇 주가 지났다. 이젠 눈을 감아도

새카맣지 않다.

눈을 떴다. 세상이 새카맣다. 밤이 되었다?

어디서 긁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았다. 새상이 밝다. 긁는 소리가 들린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야 세상이 어둡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눈을 감았다. 새카맣다. 그래도 긁는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새카만 눈동자가 날 본다. 눈동자들이 본다.

눈동자들이 노려본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웃는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입을 벌린다.

삭삭, 박박, 달각달각. 삭삭, 박박, 달각달각.

삭삭, 박박, 달각달각, 냠냠, 쩝쩝, 우걱우걱.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