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도 끝나고 원하는 대학도 갔으니 이제는 마음 편하게 놀 수 있겠다.‘
입시가 끝난 오인우, 스마트폰도 없이 긴 세월동안의 무언수행 끝에 마침내 새로운 최신 폰을 장만했다. 구질구질한 수험시절의 악연과 끊기 위해 전화번호까지 바꿨다. 가족과 친한 사람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줬으니 이것으로 끝이다. 물론 재수학원에 나쁜 악연이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새 마음 새 출발이라 생각하며 대학 자취방에 누웠다. “축하한다.” “언제 한번 만나자” 등 여러 문자가 왔었다. 그런 문자들을 확인하다 보니, 이상한 문자가 하나 왔다.
[강병장님 면회 한번 가능합니까?]
‘강병장? 잘못된 번호로 문자를 보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강병장이 아니라고 하려다가 굳이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폰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내일 일정을 확인해 보니 약속이 있어서 일찍 자는게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 선배와 동기를 만나서 이것저것 하고 자취방에 늦게 방으로 돌아왔다. 밖에 있느라 메세지 내역을 제대로 확인을 못했기에 이제까지 온 메세지들을 확인해 보았다.
[（XX 게임즈） 강*수 고객님께서 XX카드를 통해 118만원을 결재하셨습니다.]
뭐야 이 사람 그 게임에 그만큼 돈을 질렀네? 돈이 많은 사람인가 생각이 든다.
[진수씨 필요한 서류는 언제주는 거예요?]
서류라고 하면, 회사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 본명이 ‘강진수’였네. 퍼즐을 푸는 느낌이라 성취감이 있었다. 당연히 관음은 나쁜거지만 난 이걸 악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굳이 내 스스로가 ‘강진수’ 라는 사람이 아닌 것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찐수야 할무이 돌아가셨다. 본가 한번 들러라]
가족인가? 안타깝긴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개강일도 가까워졌다. 물론 그 중간에 모르는 회사에서 강진수씨가 어디 있는지 전화가 왔었지만, 나는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뒤에 전화가 다신 오지 않았다. 과톡방에 개강파티 할 예정이라고 참석할 사람들은 개인톡으로 보내달고 문자가 왔다. 그러던 와중에 온점 하나가 메세지로 날라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메세지를 눌렀지만 모르는 번호였다. 이어서 곧바로
[너 누구야?]
가 메세지로 왔다. 창문에서 찬 바람이 내 등골을 훑었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름이 끼쳤다. 나는 그대로 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이어서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확인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 손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다행히도 언제 밥 한 끼 하자는 선배의 문자였다. 나는 순간 정신이 들어 그 섬뜩한 낯선 번호를 차단을 했다. 내가 타인을 관음해서 그에 대한 죄로 천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강진수’ 관련된 문자가 오면 본인이 아니라고 해명을 해야겠다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착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약간 열린 창가의 달빛을 받으며 가슴에 손을 모은채로 누웠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불쾌한 메세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너 누구야?]가 나올 수 있었을까 곱씹어본다. 일단 이 번호의 전 주인 ‘강진수‘씨가 무슨 일이 생겨 이 번호를 유기했다. 또 ‘강진수’라는 사람은 전역을 했고, 후에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모종의 이유로 회사는 커녕 가족한테까지도 알리지 않은 채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리고는 ‘너 누구야?’라는 문자가 나한테 왔다. 강진수 본인이 굳이 바꾼 번호로 이전 번호에 문자를 하는 것은 어색했다. ‘강진수’의 번호를 아는 사람 중에 너 누구냐고 묻는 것은 더 이상하다. 어떤 상황에 있어야지 저런 문자가 자연스러울까?
차디찬 바람에 몸서리를 떨다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는다. 나머지 메세지는 내가 메세지 내역을 확인하지 않아 읽지 않음으로 상대방이 알겠지만, 이 온점 메세지를 내가 잘못 눌러버리는 바람에 상대는 이 번호가 누군가에 의해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읽지 않음에서 읽음으로 변하는 순간에 메세지를 즉각적으로 보낸 사실로 추정컨데 온점 메세지를 의도적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왜 온점으로 낚시를 하였는가? 이다. 밤은 점점 깊어지며 내 정신은 역설적으로 뚜렷해진다. 왤까 계속 생각하다 보니 결론이 한 가지 나왔다. ‘강진수’씨는 지금 어떤 사람의 통제 아래에 있지만 ‘강진수’씨의 핸드폰은 통제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강진수’씨가 왜 행방이 묘연해 졌는지 알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사람이다. 나는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추위를 느끼며 일어나서 창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창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세운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날은 밝아졌지만, 내 마음은 한 없이 어둡다. 다 나의 망상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보면 내 추리의 근거는 메세지일 뿐이다. 메세지로 ‘나는 오늘도 사람 한명을 죽였습니다.’ 라고 직접적으로 살인 고백을 해도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정신병자의 일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 내가 두려워 할 것은 없지’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곧바로 한 통의 낯선 전화가 내 바람을 작살내 버린다. 그 전화의 끝번호가 소름돋는 메세지를 송신한 번호와 유사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나는 받지 않았다. 곧이어 끊기더니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도 나는 받지 않았다. 저 정도로 찾는 것을 본니 예삿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전화가 수십통이 걸려오길 내심 기도했다. 그 정도로 많이 온다면 경찰에 신고해 버리면 될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번호를 다시 바꿔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다.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길에 나섰다. 길을 걷다보니 문득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내 지인들에게 일주일 만에 번호를 바꾼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고, 무엇보다 학기 초라서 해서 번호를 바꾸는 순간 나는 고립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니까 경찰서에 가는게 맞다고 판단이 들었다. 이윽고 경찰서 근처로 가니 약간은 망설여졌다. 그래도 전화 내역이 30건이 넘어가는 것을 보자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신고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바로 쓰러져 버렸다.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5시였다. 경찰에 신고를 하니 더 이상의 그쪽 전화나 문자가 오진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증을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었다. 밖에 나가기는 싫은 날이었지만 학생증을 받기 위해 학교로 갔어야만 되었다. 학교와 자취방을 왕복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날은 어둑어둑해졌으며 달빛이 비추는 밤이었다. ‘역시 내가 예민해진거겠지’ 혼자 중얼거리던 와중에 저 멀리 자취방 건물 1층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고 있는게 보인다. 약간의 경계를 하며 천천히 다가간다. 이윽고, 실루엣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형체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인우야 연락이 안되서 직접 찾아와 봤다”
내 동기 영주였다.
“무슨 일 있어? 왜 통화가 안 돼?”
일련의 사건들을 말하려면 길어지기도 하고,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최근에 시작한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루종일 무음으로 해놓고 게임하느라 전화를 잘 못 봤다고 얼버무렸다.
“많이 피곤해보이기도 하고 다크서클보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잔거 같은데, 걱정거리가 있어?”
“아,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 늦게까지했다.” 약간의 침묵이 있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레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담배 재를 길바닥에 털면서 영주가 말을 이어간다. 그런 영주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앞으로 이제 곧 개강이다 보니까 뭐.. 하하” 어색한 억지 웃음을 지어낸 나는 수면패턴이 깨져 횡설수설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주가 “별일 없지? 그럼 다음에 보자” 라고 하며 우리는 엇갈려서 갔다. 그렇게 건물 안에 들어가려는 차에 영주가 한 마디 더 붙였다.
“참, 인우야 강진수라는 사람 아나?”
나는 내 굳은 표정을 영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누구야?” 하지만, 내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우리 선배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어 그럼 잘 가라“
영주는 황급히 뒤돌아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며 나에게서부터 멀어져 갔다.
나는 영주의 거짓말을 알 수 있었다. 또 영주도 나의 거짓말을 알 수 있으리란 직감이 온다. 아마 ‘잘 가라’라는 말은 잘 지내라는 의미보다는 ‘너는 죽었다’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았다.
자취방의 현관에서 나는 긴장이 풀리며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내일이 개강이라서 그런지 건물 안은 더욱 더 공허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중 안전장치를 걸었다. 집 안쪽은 달이 구름에 가려 어두웠다. 신발장의 신발이 어지럽게 배치된 것을 보니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밖이 안전할까 안이 안전할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죽어있는 것 같다. 죽더라도 증거라도 남기자는 심정으로 녹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선 천천히 벽에 붙어서 부엌으로 이동을 했다. 난데없이 부엌에서 손이 튀어나온다. 숨어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대응을 하질 못했다. 곧바로 그 손은 나를 포박했다.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오며 어둠에서 차차 벗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상대의 모습을 보았다.
“너에게는 중요한 것이 있다.”
“무.. 무슨”
내 주머니를 뒤지더니 발견한다.
‘왜.. 왜 기종이 또 바뀐거지’ 상대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폰으로 전화를 거니 내 것에 전화가 걸렸다.
“아.. 설마 또 그렇게 된 건가” 상대는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기 직전에 강진수라는 사람은 번호를 바꿨고, 무슨 일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핸드폰은 상대에게 있어 중요한 자료였지만, 현장에서 분실해 그것의 행방을 찾던 와중 내가 소지하고 있다고 착각해버린 듯했다.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지만 나는 그 범인의 얼굴을 봐버렸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흉기가 달빛에 빛나며 아름답게 눈에 비췄다.
“왜 강진수씨를 죽인거죠?” 초강의 수를 둔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지“ 범인은 회상하듯 말한다.
“범행의 증거물이 폰에 있었나 보죠?”
“머리가 잘 돌아가는 X끼네, 정확하다. 그런데 네가 뭘 할 수 있지? 경찰에 신고를 한 번 더 하지 그래?”
범인은 갑자기 웃는다. 폭소를 한다. 그러면서 흉기를 꺼내 나한테 다가온다.
“이 X끼 녹음하고 있었네 언제부터 녹음을 하고 있었지?” 잠시 말을 끊는다. “그런데 이젠 뭐 상관 없어, 사람은 어차피 언젠가 죽잖아 그런데 그게 오늘 일 수도 있지 않겠어?”
그대로 흉기로 급소를 타격했다. 피가 분수처럼 펴져 나간다. 이렇게 또 피를 묻히는 구만 생각을 한다. 7번짼가 8번짼가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영주에게 전화를 걸어 사례금을 줄 테니까 어디서 만나자고 한다. 당연히 기물이 필요가 없어지면 정리를 해야 한다. 증거 회수를 위해 나는 인우의 폰을 찾는다. 두리번거려도 어디에도 없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울렸던 폰은 온데간데없었다.
“시X 또 시작이네” 중얼거리며, 온점을 하나 찍고 그 전화번호로 메세지를 다시 전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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