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괴담대회] 아침을 여는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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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괴담대회] 아침을 여는 발소리. [2]

작성자

위험감지사이렌

쪽지 | 작성자 글보기

번호 82982 추천 9 답글 2 조회 906 작성시간 2023-08-28 0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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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고 있다.
나뭇가지 위 쌓인 눈이 흘러 내리듯, 계절은 봄으로 흘러가,
콧 속에 스며든 새벽 공기가 조금 따뜻해진 걸 보니,
봄이 오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둑해진 골목이 환히 열리기 전,
골목을 가득 채우는 ‘터벅’ , ‘터벅’ 거리는 소리의 주인은
필시, 입에 문 새빨간 담뱃불 하나 벗 삶아 출근길에 나선
일용직 최목수, 그가 이 골목 끝에 자리잡은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안전화라는걸
이 골목에 보금자리를 튼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 이다.

약 1년전, 어떤 사건에서 다리를 크게 다친뒤로 그 소리가 더욱이 거슬렸던 때도 있었지만 평소와 같이 이른 새벽을 여는 그의 발소리는 곧 지루하리만큼 단조로운 골목의 풍경 안으로 녺아들어 그 누구도 그 소리에 불편을 표한적이 없었다.
매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소리, 노르스름한 외등하나 없는, 사방이 도시숲에 막혀 해가 제일 늦게 들어으는 낡은 판자촌 골목길의 아침을 어김없이 최목수는 홀로 열고 있었다.

그런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정오 무렵.
슬그머니 다가온 봄내음을 느낄새도 없이 다가온 더위에 골목이 아지랑이피며 달궈졌을때, 폐지와 공병을 주워가며 홀로 어린 손녀를 키우던 김씨할머니의 짐승같은 비명이 골목을 흔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울린 최목수의 발소리를 자명종 삼아 아침을 맞이한 늙은 그녀는 몇 해 전, 갑작스런 사고로 삶이란 커다란 바다에 홀로 떠나니게 된 손녀를 너무 낡아 부서져가는, 보잘것없는 늙은 본인의 뗏목으로 거둬들여 키우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맞이한 늙은 김씨는, 부랴부랴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온 손녀의 머리를 빗 질 해주고, 작고 불쌍한 손을 부여잡고 함께 등교 한 뒤 에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라고 해봐야 그녀의 머리처럼 허연 골마지가 잔뜩 낀 쉰 김치와 파리가 빤 것처럼 누렇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밥 한덩어리 였지만, 직업도 기술도 시간도 없는 그녀의 삶에 아쉬운 양식일 뿐이 었다.
식사 후, 그녀처럼 외롭고 지친,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모여사는 좁은 골목 주민들이 현실을 잊고자 들이켰을 술병을 줍기 위해 바들거리는 무릎을 손으로 되짚어 가며 대문을 열고 나섰다.
대문 밖을 나서자마자 눈에 띈 그것이 무엇인지 유추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놓여진 검은 비닐봉지가 혹시나 전 날, 제사를 지낸 황씨 할멈이 놓고간 제사 음식일까 싶어, 오늘 저녁은 불쌍하고 불쌍한 내 강아지 기름 냄새라도 맡게 해줄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나뭇가지처럼 삐쩍 마른 손가락으로 힘겹게 매듭을 풀어 맞이한 으깨진 고깃덩어리는 김씨 할머니의 오랜 세월로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라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그 시간은 그녀 스스로가 스스로에 본인의 살아온 시간의 곱절만큼 이였을 것이다.

김씨 할머니의 짐승같은 비명소리가 골목을 채우고 난 뒤,
조용하고 어둡던 동네가 빨갛고 파란 불 빛으로 물들고
그 불 빛을 몰고온 경찰들과 그들을 보고 몰려든 불나방같은 주민들은 얼핏 들리는 그들의 대화를 때려 맞춰가며,내정보를 부풀려가며 놀고 있었다.

봉투안의 고기가 고기가 아니라 고양이라더라...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 고기라더라…
그걸 본 김씨 할망구가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혀 죽어간다더라…

그러다 그 상황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소문을 눈덩이처럼 불려가던 사람들중,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에 모두 주목하기 시작했다.

-손등에 쪼매난 별 모양 문신 있다던디.
-별 모냥이믄 저짝 위짝에 사는 공씨 아녀?
-아 그 얼마전에 출소했다던 그.....

평소 쉰소리하기 좋아하는 걸로 유명한 알콜중독자의 말에순경 하나가 와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순경과 같은 복장을 한 이들 몇몇이 공씨의 집 방향으로 냅다 달리가기 시작했다.
그 무리들 중, 제일 먼저 녹이 잔뜩 낀 파란 대문을 부수듯이 열고 들어간 박형사가 좁은 마당을 대충 쉬이 둘러본뒤, 공씨의 현관문을 두들기고 있을 때, 뒤 따라 들어온 인원들은 흩어져 집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가장 마지막에 따라 들어온 순경 하나가 마당 한 켠에 놓인 개 집 안에서 얼기설기 엮인듯한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박형사는 본인도 모르게 땅으로 꺼지듯이 주져 앉아 버렸다.

그는, 한 때는 잘 나갈뻔 했었던, 지금은 언제든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그의 과거의 활약을 아는 이는 대부분 떠나버렸고 박형사 그도 곧 그들처럼 그렇게 떠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사건이 접수 되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현장에서 맞이한 그림은, 어느 또라이의 동물시체유기나 오물테러 일것이라 단정지은 그의 생각을 아득히 벚어난 것이 였기에 날이 바짝 들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었다. 마을주민들의 대화를 들은 누군가의 보고로 봉투안에 담겨진 으깨어진 손과 귀 두짝의 주인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급히 튀어나가 그 것들의 주인을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있을 무렵, 한 순경의 어버버거리는 소리에 바라 본 개 집안의 그것은 그를 땅바닥으로 주저 앉혀 버렸다. 개 집안에 자리한 공씨의 토막난 몸뚱아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기에 토악질을 애써 삼키며 그렇게 한 동안 바라만 보았다.

그로부터 몇 일, 몇 주동안 태풍이 몰아치듯 동네 전체가 시끄러웠었다. 박형사는 공씨와 원한관계에 있을 법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작고 별 볼일 없는 골목에 오랜 시간 둥지를 튼 사람들이 증언한, 몇 해전 공씨의 뺑소니로 사고를 기초로 수사해 나가기 시작했다. 캐비넷에 묵혀둔 사건기록지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그 당시 사건을 담은 짧은 기사 한 건을 찾아 읽어 보며 혹시라도 남아 있을 연관성 짜 맞춰 보며 그렇게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건 기록지와 그 당시, 기사를 쓴 언론인, 마을 주민들과의 탐문 수사중, 유일한 사망자로 알려졌던 이씨 할아버지의 아내, 황씨 할머니를 철저히 조사하였지만 공씨가 고깃덩이로 발견되기 전 날, 남편의 제사를 지냈던 그녀는 알리바이와 주변인들의 증언이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집으로 보낼수밖에 없었다.

경찰서를 뒤로 하고 늙은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눈은 지난 몇 일, 몇 달간의 사건들로 인하여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례 후, 죽기까지 한 번도 일 한적 없는 남편 덕분에 거칠어진 손 가죽과 굵어진 손가락, 술에 빠져살았던 그 양반에게 귀한 보물같은 다섯살베기를 맡기고 일하러 갔다 돌아왔을때 사라진 금쪽같은 내 아기, 영감의 폭력에 모든걸 끝내고 싶었지만 40년이 지나도 혹시라도 내 아기가 어미를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끊을수도 없었던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티며 살아온 그녀를 해방 시켜 준 건, 공씨 덕이였다. 영감처럼 술 좋아하던 그 놈이 저지른 사고로 그 지겹고 힘든 굴레에서 벚어 날 수 있었기에 황씨 할멈은 푼 돈에 합의 해 주었고, 최대한 공씨의 편의에 맞추어 모든걸 해줄수있었다. 그녀가 받은 오랜 고통에서 벚어나 맞이한 자유의 대가라고 생각 했었기에...
그녀는 경찰서를 떠나기전 박형사에게 한가지 말해주었다.그 날따라 최목수의 발소리가 평소보다 늦게 울렸었다고, 가난한 골목 주민들중 가장 가난했지만 노인들 챙기기 바빳던 최목수는 항상 평판이 좋았다. 새벽을 여는 건, 그의 발소리 였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의 발소리였다.
일찍 출근하는 그를 위해 황씨 할멈은 그의 어린 남매를 보듬어주는 날이 많았고 그에 보답하듯 최목수는 이따금 쉴적에 그녀의 집 이곳 저곳을 손 보곤 했었다.
그의 자녀들로 인해 그녀는 마음 한 구석, 텅 빈 곳을 채울수 있었고 그와 그의 자녀들 또한 비어져있는 부모의 한 쪽을 채울수 있었다.
황씨 할머니의 오랜 기억중에는 약 1년전, 하루도 빠짐없이 울리던 최목수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때가 있었다. 홀로 키우던 어린 남매 중,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막내 딸아이가 바다가 보고싶다며 투정부리는 탓에 그날 하루는 일터에 나갈수가 없을 것 같다며 최목수는 황씨 할멈에게 함께 바다를 보러가자고 권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녀는 거절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으로는 그 날부터 였다.
그의 아이들을 영영 볼수없게된건…

최목수는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매일 이렇게 열심히 살면 나중에 큰놈 고등학교 올라갈적에는 지금보다도 형편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에 버텨내던 중, 딸아이의 귀여운 투정은 오랜 시간 고된 노동과 책임감으로 혹사된 그의 몸과 메마른 마음에 단비처럼 스며들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딸아이의 애교에 '하루정도야...'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는 자신의 아이들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바다로 떠났다. 최목수와 그의 자식들도 그날, 하루만큼은 처음으로 남들과 비슷한 추억을 쌓을수도 있겠다는 큰 기대를 하였건만 하늘은 그것마져 사치라고 생각했는지, 소나기인줄 알았던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아, 버스 정류장에서 비 내리는 바다만 바라보며 그렇게 아이들을 달래고만 있었다.

-빵! 빠앙!

난데 없는 크락션 소리에 놀라 바라본 그 곳엔, 공씨의 검은 승용차가 서있었다. 이윽고 보조석쪽 창문이 내려가고 평소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공씨가 인사를 건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이들이 비에 젖어 많이 추워보이니 본인이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뒷자리에 짐이 많아서 안타깝지만 애들만이라도 데려다 준다던 그의 선의를 최목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태운 공씨의 검정 승용차가 떠나고나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난 뒤, 버스에 오른 최목수는 밤이 내리고 난 뒤에서야 컴컴한 골목길 입구에 들어설수 있었다. 발을 떼기 무섭게 맞은 편에서 마주친 술냄새 풀풀 풍기는 노인의 어눌한 인사에 이 사람이 누군지 고민하는것도 잠시, 황씨 할머니의 남편이라는 노인의 말에 최목수와 노인은 허물어져 가는 골목길 돌담처럼 마주 서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루하고 진부한 노인의 푸념이 끝나갈 조짐이 보일 무렵,

-콰아아아앙!!!!

갑작스레 날아온 불빛에 눈을 감았다 뜨니,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노인이 서있었던 자리에 노인은 사라지고 검정 승용차 한 대가 박살 난 채로 서있었다.
한쪽 다리에서 뜨뜻한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최목수는 무너진 돌담처럼 무너져 내렸다.

박형사는 황씨 할머니를 보내고 난 뒤, 다시 한번 기록들을 뒤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망자때문에 뒤로 밀어뒀던 다른 피해자를 찾아 보려 했지만 공씨의 음주운전 사고 이후로 그와 마주친 사람은 없없고, 주민들이나 김씨,황씨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라 그날 평소와는 다른 생활패턴을 보였다는 최목수, 그를 찾아야만 했다. 동료들의 방문에도 그의 반응은 없었고, 주민들 중 누구도 그의 직장, 건설현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기에, 박형사는 어쩌면 그의 마지막 사건 일지도 모를 용의자를 잡아내기위해 오늘 밤, 그의 집으로 찾아가보기로 결심하며 타다만 담배를 바닥에 튕겨내듯이 던졌다.

노르스름한 외등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 끝, 악취를 풍기는 고물상을 지나 다다른 초란한 단칸방 문을 따고 들어간 박형사는 지독하게 풍기는 썩은 냄새에 손전등을 켰다.
바닥에 찐득하게 말라버린 검은 액체의 근원지로 보이는 그 것은 오래전엔 사람이었던듯 말라버린 나무토막 같아 보였다. 그 옆에 놓인 단전을 알리는 빛바랜 노란 고지서에 휘갈겨쓴 짧은 글을 읽어본뒤, 박형사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론은 연일 죽은 최목수와 공씨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누군가는 경찰이 무능하다 욕하고 또 누군가는 알수없는 루머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궈놓는다. 경찰관계자들은 연일 보도되는 언론에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는 말만 남긴채,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매일 최목수의 발소리를 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무색하게 그는 오래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공씨를 저렇게 만든 원흉은 실마리 조차 보이지 않는다. 최목수의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수없고 향간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폐차된 공씨의 차 안에서 여자아이의 속옷과 남학생의 운동화를 보았다는 이도 있고 김씨 할머니 손녀가 입었었던 옷이 최목수의 딸과 비슷했다던 이도 있었으나 그날의 진실을 아는 이들이 모두 사라졌기에 확인할 방법도 없다.

사건에 관심을 가지던 언론의 호소도 사그라들고 겨울이 지고 봄이 다가올 무렵, 김씨 할머니는 잠들지 못했다. 몇 일동안 매일, 같은 시간 어두운 골목길에 울려퍼지는

최목수의 안전화 소리때문에.

* 컨텐츠 출처 : 작성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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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마당 (2)

iglu625

김씨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