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자니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불쾌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한때는 열정이란 것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살아만 있다.’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의욕도 의지도 없는 상태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사실 이유랄 것도 없다.

뭐랄까?

그저 모든 일에 지친 것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출퇴근에 지쳤고

사람에 치이는 데 지쳤고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도 지쳤다.

이제 와선 일에 보람을 느낀다거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관심 없는 말을 흥미롭다는 듯 듣고 있거나

뻔하디뻔한 입에 발린 말로 서로를 치켜세워주는 것도 질력머리가 난다.

돌아서면 자괴감마저 느껴지는 가식적인 짓거리를 지겨우리만치 오래 해왔다.

친구들 역시 날이 갈수록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

결국 주변 사람들이 점점 더 사라져만 가는 것이다.

사는 재미는 없어지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가면서

그저 시냇물에 떨어진 낙엽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열정적으로 살던 예전의 내가 우습게 느껴질 만큼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졌다.

예전엔 요리하는 게 취미였기에 늘 요리책과 요리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맛있는 걸 만들었었다.

플레이팅까지 예쁘게 해서 대접하곤 했는데

요샌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대충 떼우고 있다.

그 전엔 맛있게 먹고 맛있는 걸 대접하는 걸 즐거움으로 삼았다면

지금은 그저 죽지 않으려 대충 만든 음식을 입안에 밀어 넣는다.

이제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슬프지는 않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고

슬프지는 않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그냥 멍청하게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

차라리 이 집에 불이 나서 전부 다 불타버리면 어떨까?

차라리 이대로 잠이 들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떨까?

아니, 그걸로는 이 가슴속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밖에 나가서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면서 보이는 모든 걸 다 때려 부술까?

아니면 차를 타고 광기 넘치는 질주를 할 수도 있다.

누구든 죽이고 때리고 밟아 버리는 건?

그렇게라도 하면 이 공허함과 무력감을 다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난 튕겨 나오듯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서 전부 다 아작내 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이 감정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끝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다시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다.

열정이 사라지니 내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력마저 없어진 듯했다.

과격한 생각이 한차례 퍼붓고 나자 다시금 제어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지독한 무력감은 사랑이란 감정조차 무디게 만든다.

문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철창 너머로 보이는 그녀는 언제나처럼 멍한 얼굴로 침대에 기대앉아 있을 뿐이었다.

보기만 해도 설레던 그녀지만 지금 내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끄집어내듯 말을 뱉어냈다.

“아무래도. 이제 내가 널 사랑하질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기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예전엔 네 생각만 해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안 그래.

너 좋은 옷 입혀주고 싶어서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레시피 연구해서 너한테 맛있는 거 만들어 먹이는 게 재미있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전부 다 귀찮아.

매일 네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도 이제 즐겁지 않고

안아주는 것도 별로 행복하지 않아.

이제 너는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저 초점 없는 눈을 한 채 무어라 중얼중얼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인제 와서 풀어 줄 수도 없고 열과 성을 다해 돌보고 싶지도 않다.

강아지라면 차라리 파양이라도 시킬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넘치는 사랑이 이리 금세 식어버릴 줄 알았으면,

그리도 고생해 가며 잡아 오지 않았을 거다.

후회가 된다고 해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적당히 타협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그냥 너 오늘부터 가축 하자.

이제는 내가 너 사랑하고 예뻐할 기운이 없다.

내일 돼지 사료 같은 거라도 한 포대 사다 넣어 줄 테니까 알아서 먹어.”

여전히 반응은 없다.

머릿속은 이미 진작에 가축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