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남긴 메모다.）


거두절미하고 말할게.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여기를 벗어났을거다.


다음 당직자인 너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 같아 미안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최악의 상황에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결국 그놈들이 우리 학교까지 넘어왔고 지금도 주변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까.


더 이상 학교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진작에 학교를 벗어났을 테고


나도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너도 자포자기하고 나처럼 학교를 떠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나 학교에 남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네가 학교의 구세주로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





1. 음대 / 미대를 찾아가라


아무리 학교 상황에 무관심한 너라도 최소한의 소문을 들어봤을 거다.


지금은 불에 타서 쓰지 않는 건물이 있다고.


조만간 건물을 밀고 새 건물을 지어 올릴 예정이라고는 하는데.


믿지 마라. 그 건물 20년째 방치 중이다.


당직 시간 아니면 돌아다니는 거 금지되어 있으니 지금 장소 비우고 오른쪽 샛길로 빠져라.


향나무길 지나서 채플관 아래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사람 잘 안 다니는 정원 나오는데


거기서 반대쪽 출구 따라서 산 쪽으로 걸어보면 철조망이 있을 거다.


딱 보면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가 음대 / 미대 향하는 곳이고 표지판 바로 있을 거다.


가다 보면 쓸데없이 공포심 주는 경고문들 많을 건데.


다 무시해라. 음대 / 미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괜히 진빼지 말고.





2. 그들한테 사용 허락을 받아라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싶을 거다.


들어봐. 밖에서 미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굳이 왜 학교를 지키려고 할까?


군이랑 합의 봐서 많은 재학생들 강제로 총알 받이로 만들면서까지 굳이 학생들을 여기 남기려는 이유가 뭘까?


이 학교 저주받았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종류의 저주인데 반대로 이 저주가 특정 장소를 지켜주기도 한다.


하나가 다들 모여있는 중앙 도서관이고 나머지 하나가 여기 음대 / 미대다.


문제는 음대 / 미대가 변수들이 있다 보니 높으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앙 도서관에 집착하고 있다.


구세주 이야기했지? 구세주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변수를 잡고, 음대 / 미대를 제2의 은신처로 만들기.


여기라면 분명 안전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좀 고생을 해야 한다.


음대 / 미대 건물은 두개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 구름다리로 이어진 구조다.


상대적으로 쉬운 음대 먼저 가보는 게 좋다.


음대 문을 열면 찰랑 거리는 벨 소리가 들릴 거다.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냅다 무릎 꿇고 절 3번 올려라.


손은 하늘로 향하는 게 포인트다.


살짝만 소리 나도 거기 사는 존재들이 누가 들어왔다는 거 금방 인식하니까 무해하다는 인식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 복도에 액자들 걸려 있는데 눈알들 움직인다고 너무 놀라진 말고.


복도 걷다 보면 간혹 말 걸어오는 액자들도 있을 거다.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비위 맞춰주면 워낙 무료해하는 존재들이라 만족해할 거다.


분위기 좋아질 때쯤 여기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봐라.


진짜. 이상한 이야기만 안 하면 별 탈 없이 허락해 줄 거니까 제발 평범하게 행동해.


표정 뒤틀리거나 피 토하면 무조건 다른 층으로 달아나.


이거는 처세술 영역이라서 내가 뭐라 말해주기 어렵다. 가보면 알 거임.


거울은 웬만하면 보지 말고. 트라우마 생긴다.





3. 챙겨서 뛰어라


기악과 찾아가라. 1층에 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과에 들어가면 낡은 악기들이 여러 대 놓여 있을 건데 무시하고


구석에 가면 초상화 하나 올려진 피아노 한 대 보일 거다.


뚜껑 열고 건반 몇 개 누르다가 기분 나쁘다고 말하고 건반 위에 잠깐 누어봐라.


뭔가가 머리 쓰다듬는 느낌이 날 거다.


고개 들지 말고 누가 대신 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그대로 뒤돌아라.


그러면 뒤에서 꽤 근사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거다.


이니셜같이 끊어서 하나하나 건반 눌려져야 연주 끝나니까 성급하게 돌아보지 말고.


끝났다 싶으면 갑자기 비명소리 들리면서 뚜껑 떨어지는 소리 들릴 거니 또 놀라지 말고.


정리되었다 싶어 돌아보면 건반들이 피로 젖어있고 손가락들 몇 개 잘려서 바닥에 떨어져 있을 거다.


논리적으로 상황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대단한 통찰 같은 건 여기서는 별 의미 없으니까.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면 된다.


손가락들 챙겨서 3층 구름다리로 향해라. 10개 전부.


이 시점부터 머리 귀신들 날아다닐 건데 이 악물고 모른척하길 바란다.


땅바닥 기는 썩은 놈, 벽 통과하는 노이즈 잔뜩 낀 놈, 깜빡이는 놈 다 무시해.


다시 한번 말한다. 싹 다 무시해.





4. 파란 쥐와 분홍 코끼리


파란 쥐는 앞발이 엄청 길어 몸 전체를 지탱하고 있고, 눈알이 더듬이처럼 위에 달려있다.


분홍 코끼리는 직립 보행하고 뒤에 눈알로 덮인 날개가 달려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쫄지 말라는 의도다.


너 보면 눈알들 시퍼렇게 움직이면서 관심 보일 건데


둘하고 흥정 잘해야 표식 준다.


표식은 쉽게 말하면 마스터키.


이거 필요하냐고 물으면 필요하다고 즉각 즉각 반응해 줘라.


안 하면 다음 사람은 파란 쥐, 분홍 코끼리, 빨간 인간 조합 보게 된다.


놀이 참여 조건으로 신체 걸라고 하면 손가락 하나씩 주면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걔들이 제안하는 놀이 10번 안에 이겨야 한다.


수틀리면 그냥 어딘가 액자로 뛰어들어라. 걔들한테 당하는 거보다 백배 낫다.


이기면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표식 뺐어서 구름다리 넘어가면 된다.





5. 신성물 세 가지 기억하자


기도하는 교황.


모직포를 뒤집어쓴 성모 마리아 상.


손을 바닥에 두고 엎드린 순교자.


이거 제외하고는 전부 만지면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


나머지 예술품들 자세히 보면 뭔가 익숙할 거다.


그래. 음대에서 봤던 걔네들이다.


이거 말해주는 이유는 알지? 관심 가지지 말라고.


위에 적힌 세 가지가 우리 학교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저주들이다.


근데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잊혀 있어서 효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을거다.


헝겊이나 알코올용 물티슈 찾아보면 있을 거니 그거 사용해서 정성껏 닦아줘라.


2번에서 했던 것처럼 무릎 꿇고 절 3번 올려라.


손은 하늘로 향하는 게 포인트다.


절하면서 도와주세요.라고 외치자. 너는 요령 같은 거 모를 거니 그냥 도와주세요 반복하는 게 좋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


신성물들에서 광채가 비치면 성공한 거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것들이 너 못 나가게 문 잠그고 난리 부릴 테니 이후로는 표식 이용해서 잘 탈출하면 된다.


그다음 날부터는 정상적인 공간이 되어 있을 거고 너는 학교의 구세주로 기억될 거다.







쉽지 않지? 나도 적고 나서 보니 머리 아파지는데 보고 있을 너는 어떨까 싶다.


비록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 학교를 떠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남겨진 이들이 걱정된다.


부디 내가 한 방법들 새겨듣고 실행에 옮겨 주길.


진심으로.


부탁한 번 해볼게.


추신 ㅡ 의식을 행한 당일에는 절대로 해당 장소를 찾아가서는 안된다.











（찾아간 석조건물 아래 파괴된 신성물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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