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슨 일이야? 경찰들 찾아오고 뉴스도 나고 난리가 났는데.

진짜 형이 한 거야? 형 그런 사람 아니잖아?”

진혁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운전하고 있는 상혁을 바라보았다.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상혁은 진혁에게만 은밀히 연락을 취해 불러내서는

이렇게 다짜고짜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상황이었다.

거칠게 차를 모는 상혁은 평소 반듯했던 모습이 아닌

마치 며칠은 노숙을 한 사람처럼 볼품없는 꼴이었다.

게다가 눈빛부터가 불안감이 가득 차 있어 누가 봐도 도망자의 모습이었다.

“아니. 내가 한 거 맞아. 원래는 안 그러고 싶었어.

근데. 죽일 수밖에 없었어.

내가 다 설명할게.”

진혁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평소 신실하고 건실한 형이 2건의 납치, 실종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었단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 싶었는데

상혁은 지금 범행을 인정함은 물론 명백하게 ‘죽였다’라고 자신을 살인자라고 밝힌 것이다.

“일단 지금은 시간이 없어. 빨리 가야 해. 우리 고향마을에 갈 거야.”

진혁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며 고향에는 왜 가는 것일까?

진혁의 궁금증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상혁은 고심 끝에 힘겹게 서두를 뗐다.

“우리 어릴 때 자주 놀던 뒷산 기억하지?

거기에 동굴이 하나 있어.

어릴 때. 한참 더운 여름날에.

우연히 거길 찾아서 들어가 봤는데 그 안에서 이상한 걸 봤어.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무슨 끈적하고 새카만 주먹만 한 뭔가.

그게 나한테 말을 걸었어.

‘제물을 바쳐라. 내게 제물을 바쳐라.’

이상하긴 한데 난 재미 삼아 밖에서 벌레 한 마리를 잡아 왔지.

그놈은 벌레를 죽이라고 했어.

내가 벌레를 밟아 죽이니까 그놈이 죽은 걸 우적우적 씹어먹었고.

그 뒤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동굴 안으로 사라지길래

시시하다 싶어서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지냈는데,

일 년이 지나서 다시 여름이 돌아오니까 머릿속에서 그 괴물 목소리가 들리더라?

제물을 바치라고. 살아있는 싱싱한 제물을 죽여다 바치라고.

날이 더워지면. 그러니까 매년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그랬어.

그 어두운데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서 머릿속으로 말을 거는 거야.

다시 잠재우려면…. 뭔가를 바쳐야 해.

처음에는 벌레 같은 것만 해도 충분했는데.

금방 부족해졌어.

다음엔 개구리. 다음엔 쥐. 다음엔 토끼. 다음엔 고양이.

그렇게 매년 점점 더 큰 걸 죽여야 했어.

그것들을 다 잡아먹은 괴물은 조금씩 커지더니 금방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진 거야.”

진혁은 형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괴물이니 제물이니 하는 말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매년 여름 즈음만 되면 상혁이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던 기억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상혁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개도 죽이고 돼지까지 잡아 죽였는데, 부족했어.

그 괴물은 계속 그러더라.

이제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사람을 죽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기어 나와서 다 죽여 버릴 거라고 협박했어.

눈에 보이는 건 전부다.

그래서…. 잡아다 바칠 수밖에 없었어.

이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커져 버렸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가게끔 설명해봐!”

진혁이 다그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상혁은 공포에 질린 듯 소리쳤다.

“사람을 바쳐야 한다고! 괴물한테 제물을 바쳐야 해.

깊은 곳에 숨은 괴물을 달래려면.

그게 기어 나오면 진짜 전부 다 죽을 거야.

그걸 막아야 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진혁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괴물이란 것은 상혁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지나칠 정도로 모범적이고 올바른 상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무언가가 숨어있던 것일까?

주기적으로 한 번씩 표출하지 않으면 터져버리는 분노 같은 것.

진혁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대로 상혁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자수하게끔 해야 한다.




진혁이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고향마을 인근으로 들어섰다.

차를 세운 상혁은 진혁에게 말했다.

“뒷산으로 가자. 거기에 괴물이 있어.

이제 걸어갈 거야. 길 험하니까 잘 따라와.”

“형, 잠깐만. 어디 가는데?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내가 도와주든 뭘 하든 할 거 아니야.”

상혁은 분노한 듯 소리쳤다.

“다 설명 했어! 그러니까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시간 없다니까!!”

상혁의 태도에 진혁은 우선 상혁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지금 상혁은 너무 흥분한 상태니

일단은 진정될 때 까지 비위를 맞춰주다가 차분하게 설득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길 없는 산속을 뒤지고 나서야 둘은 산속 음침한 곳에 있는 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처음 봤을 때 밟아 죽였어야 했어.

아니면 아직 약할 때 굶겨 죽이던가.

내가 먹이를 줘서 힘을 키워준 바람에….

지금은 너무 늦었어.

이미 두 명을 바쳤고 앞으로도 계속 바쳐야 할 거야.”

상혁의 말에 진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형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괴물이라든가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건

살인마들 사이에선 흔히 나타나는 망상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진혁은 상혁을 설득하여 자수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상혁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여름엔 아직 제물을 못 바쳤어.”

상혁은 품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 진혁에게 겨누었다.

진혁은 날카롭게 바뀌는 상혁의 얼굴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 짐을 느꼈다.

“형…. 뭐야 왜 그래?”

상혁의 칼은 여전히 진혁을 향해있었다.

“이제 시간이 없어. 제물을 바쳐야 해. 그러니까 안으로 들어가.”

진혁은 양손을 들고는 천천히 뒷걸음질 쳐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아 보였지만 입구를 제외한 곳은 새까만 어둠에 잠겨있었다.

“형. 좀 진정해. 진정하고. 칼 내리자.

자. 나야 나. 형 동생 진혁이.

내가 도와줄게. 내가 도와주면 나을 수 있어.

형이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

괜찮아. 다 괜찮으니까. 나 믿고 칼 내려. 제발.”

상혁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늦었어. 그것도 너무 많이. 이제 더는 시간이 없어.”

“아냐. 괜찮아. 되돌릴 수 있어.

다시 돌릴 수 있으니까 진정하고 칼 내려.

내가 다 도와줄 수 있다니까?”

“아니. 경찰이 달라붙은 이상 나한테 희망은 없어.

감옥에 갈 거야. 못해도 몇 년은 살 거고.”

적어도 대화는 되는 것 같았기에, 진혁은 다시금 차분히 말했다.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다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 칼 내려놓고 집에 가자.

이런데 말고 집에 가서 다시 천천히 얘기하자.”

어두운 동굴 덕에 상혁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진혁이 다시금 말을 하려 할 때, 상혁이 포기한 듯 말했다.

“안돼. 여기 들어온 이상 너무 늦었어.

이제 할 수밖에 없어.”

진혁이 다시 말하기도 전에 상혁은 들고 있던 칼을 거꾸로 돌려 쥐었다.

“그러니까. 잘 들어. 앞으로는 네가 해야 해.

다시 여름이 돌아오면, 목소리가 들릴 거야.

그땐,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그 수밖에 없어.

시체는 안돼. 꼭 이 동굴 안에서 죽여야 해.

잘 알아들었지?

.......미안해. 뒷일은 맡길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주저 없이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진혁은 감히 형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간 바람 빠진 것 같은 신음을 뱉어내던 상혁은 얼마 가지 않아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형!!!”

어두운 동굴에 침묵이 더해지자 진혁은 정신을 차리고는 소리치며 형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동굴 안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몸을 일으켰다.

사람 같기도. 늑대 같기도. 지네 같기도 한 그 형체는

연기처럼 흐물흐물 움직이며 기어 나와 상혁의 시체를 감쌌다.

어두운 동굴 속이었기에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으득거리는 끔찍한 소리와 무언가 질척한 것이 쏟아지는 소리.

한동안 이어지던 소리가 그치자 형체는 만족스러운 듯 몸을 뒤틀며 다시 동굴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 갔다.

“괴물….”

진혁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상혁도 괴물도 사라진 동굴은 조용했다.

혼자남은 진혁의 귀엔 이제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다시 여름이 돌아오면 목소리가 들려올 터였다.

상혁이 들었던 것과 같은 괴물의 목소리가.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