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물건을 자꾸 착각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냄비 받침으로 쓰려한다던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려 한다거나.

뿐만 아니라 세수를 한다는 걸 무슨 일인지 머리 위에 우유를 쏟아붓기도 했다.

난 어처구니없어하며 피식 웃었을 뿐이지만

룸메이트는 그런 내 꼴을 보고 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괜찮을 것 같지만 룸메이트의 말대로

한동안 집에서 편히 요양할 생각이다.

눈앞에 베개가 보인다.

.... 저게 어디 쓰는 물건이지?




잠에서 깬 나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체 왜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고 피곤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침대에서 곯아떨어졌을까?

확실히 요새 머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부엌으로 가서 포크에 후추를 묻혀 이를 닦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자꾸 기침이 나왔기에 감기인가 싶어 바둑알 하나를 삼켰고

언제나 그래 왔듯이 변기에 발을 담갔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고 나서야 내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는 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며

이를 닦으려면 칫솔과 치약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감기가 의심되면 바둑돌이 아닌 감기약을 삼켜야 한다.

또 보통이라면 변기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뭐지? 내가 정신이 나갔나? 아냐.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좀 쉬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좀 쉬어야겠단 생각으로 식탁에 올라가 섰다.

그게 이상한 행동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역시나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소파에 편안히 누워 쉬려 한 것이지만

어이없게도 식탁 위로 올라가 똑바로 서 있었다.

문득 소름이 끼쳤지만, 진정하고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다.





이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정확히는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분명 무언가를 통해 밖으로 나갔었던 것 같은데

나가는 위치도, 그 방법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든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전혀 없다.

내가 잊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가족이 없었는지 모를 정도다.

결국 누군가 날 찾아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했다.




베개를 바라보았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난 조심스레 베개를 만져보았다.

말랑하고 푹신했다.

이번만은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던 나는 주저 없이 베게 한 귀퉁이를 입에 가져갔다.

역시나 좋은 향이 났다.

한동안 애를 써야 했지만, 적당히 배를 채웠기에

베개를 한쪽으로 치우고 입가에 묻은 솜뭉치를 떼어냈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포만감에 세탁기에서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먼저 숟가락을 꺼내 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숟가락이 빨개질 때까지 달군 뒤 기분 좋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입 안이 얼얼하다.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얼얼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침에 먹은 베개가 너무 매워서였을까?

뭔가 입안을 식힐게 필요하다.

다행히 시원한 섬유유연제를 찾아내어 한 컵 가득 따라 마셨다.




배탈이 났는지 한참 동안 소파에다가 속에 있는 걸 다 게워냈다.

속을 달래기 위해 꽃 두 송이와 선인장 한 개를 먹어 치웠다.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싶어 식용유도 조금 마시기로 했다.




속이 계속 좋지 않아 벌써 몇 번째 침대를 들락거리며 밑으로 쏟아내고 있다.

골고루 먹어서 영양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마침 방으로 염소 한 마리가 들어왔기에 멋지게 사냥해냈다.

이걸로 영양가 있는 식사가 가능하겠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썩는 냄새가 진동해서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도 냄새의 근원을 찾을 수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볼펜으로 양쪽 귀를 찔러버렸다.

이걸로 더이상 냄새는 나지 않겠지.

그런데…. 원래 냄새를 귀로 맡던가?

난 왜 세탁기에 있는 거고….

그리고 염소라니 뭐지?

잠깐만…. 좀 이상한데?





세상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