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난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발견한 남자의 시체.

그 남자를 죽인 범인이 틀림없었다.

경찰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가 먼저 날 찾아낸 것이다.

“너무 겁먹지 마. 해코지하러 온 건 아니니.

그냥 얘기나 좀 하러 왔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내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일단 조용한 데로 가자고. 이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술집이 있어.”

그는 내가 따라오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먼저 걸어 나갔다.

난 덜덜 떨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이대로 도망쳤다간 평생을 괴롭힘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선은 얌전히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장덕수. 내 이름이야. 나이는 대충 마흔 조금 넘겼으니 그렇게만 알고.

넌 소개할 필요 없어. 관심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입을 연 남자는 의외의 말을 쏟아냈다.

“내가 누군지는 대충 알겠지?

그래 네가 운 없이 본 그 시체를 만든 장본인이야.

그렇다고 내가 공갈·협박하려고 부른 건 아니고

그냥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야.

봐. 넌 사람이 죽은 걸 봤어. 그렇지?

그냥 잔인한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 생각 할 테지.

날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미치광이 정도로 생각할 거야.

그렇지 않아?”

차마 대답 하지 못하고 웅얼거리기만 했지만 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시체를 발견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연쇄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을 거라 말했다.

범행 대상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으며

장소 역시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미치광이 살인마가 묻지마 살인을 벌이고 있는 거라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말이야. 난 미친 게 아니야.

무작정 아무 사람이나 죽이는 것도 아니고.

얼핏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래.

난 말이지. 죄지은 자를 처단하고 있을 뿐이야.”

이상했다. 내가 알기로 피해자들은 전부 다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선행으로 잘 알려진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물었다.

“죄지은 자라면…. 그 사람들이 다 범죄자란 말씀이세요?”

내 말에 그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맞긴 하는데 이게 조금 틀려.

그걸 설명하려면 좀 길어지는데….

자 봐.

그 사람들은 큰 죄를 지었어.

아주 죽어 마땅할 정도로 중죄를 지은 놈들이지.

근데 그게 지금은 아니고 아주 아주 옛날.

그러니까 전생에 대역죄인이었다 이 말이야.”

당혹스러웠다.

전생에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한 것이라니.

내가 멍한 표정을 지어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난 말이야. 딱 하고 보면 알 수가 있어.

이놈이 전생에 무슨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벌였는지

느낌이 딱 온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거지.

전생에 그런 끔찍한 짓거리를 해놓고

현생에서 그렇게 헤실거리면서 사는 게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단 거야.

그러니 어째야겠어? 싹 찾아내서 대가리를 바스러뜨려 놔야지.

처음 죽인 놈은 아주 악독한 놈이었어.

재미 삼아 사람 가지고 놀다 죽이고 가둬두고.

또 어떤 놈은 사람고기 즐겨 먹는 놈이었어.

애들만 골라 죽인 놈.

힘없는 노인들만 잡아서 괴롭히던 놈.

아주 그냥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었다고.”

터무니없는 궤변에 난 겁먹었던 것도 잊고는 그에게 따지고 들었다.

“전생이라니 그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겁니까?”

언성을 높였다는 사실에 잠시 움찔하는 사이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게 아니라니까. 잘 들어봐. 그놈들 공통점이 뭔지 알아?

착한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거야.

그게 좀 이상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이 참 멍청한 게 말이야.

착한 짓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봐. 전생에 죄를 지었지.

그럼 어떻게든 용서를 받아야 될 거 아니야?

용서 못 받으면 벌을 받을 테니까.

지옥에 떨어지든 뭐 거지같이 살든.

그러니까 쉴 새 없이 착한 일 하는 걸 보여줘서 죄를 가볍게 해야지.

그 범죄자들 사회봉사하고 반성문 쓰고 그러는 거 알지?

그런 거랑 같은 거지.

근데 난 그게 용서가 안 된다고.

어디 잘못해놓고 대충 봉사활동으로 비빌라고 그래?

그런 놈들은 아주 그냥 아작을 내버려야 되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을 해야 할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엉망인 논리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난 전생에 나쁜 짓 한 놈들을 대번에 딱 알 수가 있어.

응? 하는 짓거리를 딱 보면 머릿속에서부터 열불이 쫙 뻗치는 게

이 새끼들 당장 잡아 죽이지 않고는 못 버티는 그런 느낌이란 게 있다고.

처음엔 이게 또 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딱 안거지.

아. 이건 심판을 하라는 계시 구나.

전생에 죄를 지어놓고 깨작깨작 살겠다고 발악하는 놈들 다 깨부수라는 계시 구나.

알아듣겠어? 난 살인마도 아니고 또라이도 아니야.

선지자고 영웅인 거지.”

입을 열고 싶었지만 새삼 확신에 찬 그의 얼굴을 보곤

감히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고 다시금 가만히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래서 결론은 그거야.

‘난 지금 정의를 집행하고 있다.’

내가 딱 보니까 말이야. 넌 전생에 그냥저냥 똑똑하게 잘 살았단 말이지.

지금도 대충 어중이떠중이로 살고있는 거 보니까 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쓰잘떼기 없이 나서서 명 재촉하진 않겠네.

아무튼 잘 가르쳐 줬으니 똑똑히 기억해 둬.

난 이만 가볼테니.”

남자는 정말로 협박이나 으름장 따위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떴다.

안도감보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나를 그냥 풀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겁을 먹고 신고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

아니면 그저 뒤틀린 그의 신념처럼 터무니없는 자신감 때문에?

어쩌면 별다른 말 없이도 충분히 협박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괜히 나는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휴대폰을 들었다가 사방을 살피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던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다만 전화를 건 곳은 경찰이 아닌 어머니에게였다.

“예 엄마. 집에 별일 없죠?

아니 다른 게 아니라. 그 주말에 아버지랑 봉사 나가시는 거 있잖아.

그거 당분간 안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이유는 묻지 말고. 한두 달은 그냥 집에 계세요.

그리고 그 매달 결식아동 후원하는 거 그거도 일단 끊고.

좀 사정이 있으니까 더 물어보지 말고 내 말대로 해요.

예 나중에 다 설명할 테니까.”

나 자신이 추악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일 것 같았다.

자조 섞인 한숨을 크게 쉬고는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술집을 벗어났다.

여전히 경찰에는 전화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