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4살 터울의 누나가 있음. 그때 난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고, 여느 때처럼 누나랑 집에서 TV보면서 엄빠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음. 맞벌이 하셨거든.

일단 그때 우리 집은 안방, 내 방, 누나방, 잡동사니 넣어놓는 창고로 쓰는 남는 구석탱이 방 해서 총 4개의 방이 있는 빌라의 2층이었음. 오늘 내가 풀 썰에서 중요한 방은 저 맨 구석탱이에 있는 창고방임.

한 저녁 5시 반이었나? 그때 합체용사 플러스터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있었는데, 슈퍼겔즈 보겠다는 누나랑 가위바위보해서 이겨서 같이 플러스터 보고 있었음.

TV소리 크게 틀면 안 좋다는 엄빠의 말에 순종적이었던 나랑 누나는 100 볼륨 맥시멈에 15정도로 해서 보고 있었음. 다른 방에 문닫고 있으면 안 들리는 수준의 볼륨임.

그때 갑자기 창고로 쓰는 방 안에서 "텁적"하는 발소리가 들림. 참고로 나는 귀가 상당히 좋음. 지금은 이어폰 끼고 노래 크게 들어서 이때보단 좀 떨어졌는데, 이때는 숨바꼭질 할 때 숨소리 듣고 찾을 정도로 엄청 좋았음. 이 때 들린 이 소리 때문에 며칠을 밤새 시달려갖고 무슨 소리인가 실체를 알아내보니, 나뭇잎 묻은 장화같은거 신고 바닥 밟으면 그런 소리가 나는거더라.

그렇게 만화에 집중하다가도 그 소리 듣고 누군가 들어왔음을 바로 알아챘다. 그 방에 조금 긴 사다리같은거 놓으면 닿는 곳에 큰 창문이 있었거든. 성인 남성도 거뜬히 들어올 만큼.

누나는 싫은 티 팍팍 내다가도 비트마랑 토마 합체하는 장면 멋있다고 넋 놓고 보고 있었음. 난 겁먹어서 합체고 나발이고 오줌싸기 직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기가 막히는 행동이었는데, 떨리는 손으로 누나 옷깃 붙잡고 일부러 소리내서
"누나, 나 와（아이스크림） 먹고싶어. 사러 나가자."
이럼. 누나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한시간 전에 와일드바디 먹었잖아."
이러는거임. 이 때도 내 청각은 창고방을 향해 있었음.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걸 알았는지, 서성이던 발소리가 멈췄음.

"아아~ 나가자~"
하고 진짜 내가 생각해도 공포에 질린 표정과 전혀 맞지 않는 앙탈을 부림. 그제서야 누나도 조금은 눈치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아아, 알았어. 나가자."
하고 눈치를 살피면서 나가자고 일어남. 지금은 무지개다리 건넌 지 2년이 지난 초롱이라는 시츄도 키웠는데, 초롱이도 목줄해서 나왔음. 지금 생각해보면 얘는 자고 있었던건지 그 소리를 왜 못 들은건지...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조차도 창고방에서 칼을 든 아저씨가 튀어나와 덮칠까봐 무서워서 진짜 눈물 그렁그렁한 채로 밖으로 나옴.

문 닫히자마자 초롱이 들어안고 누나 손 잡고 숨 참고 진짜 소닉마냥 계단 개빨리 뛰어내려가서 놀이터로 도망갔음. 뒤에서 누나가 왜 그러냐면서 울먹이는 표정으로 소리쳤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면서 뛰어봄.

진짜 대성통곡하면서 놀이터에 도착해서 숨 돌리는데 누나도 무서워서 울기 시작함. 한 5분쯤 실컷 울고 조금 진정되고 나서 덜덜 떨면서 집안에 누가 들어왔었다고, 창고방에서 발소리 났다고, 도둑이었을거라고 설명하니까 누나 잠깐 멍때리다가 무서워서 으아아 하면서 또 움. 나도 덩달아 간신히 멈춘 울음 도로 시동걸고 세상떠나가라 움. 아마 옆에서 그네타던 형아는 우릴 병신 보듯 쳐다봤을거임.

나랑 달리 핸드폰이 있었던 누나는 얼른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음. 퇴근중이던 엄마는 집에 도둑 든것 같아서 놀이터로 도망쳐나왔다는 누나 설명 듣고 한 10분만에 차 타고 나타나셔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누나랑 나 껴안고 다친 데 없냐며 한참을 훑음.

차타고 집앞 도착하니, 오시는 길에 엄마가 아빠한테도 전화하셨는지 곧이어 아빠 차도 도착. 아빠는 차에서 나무빠따 들고 앞장서서 계단 올라가셨고, 나랑 엄마랑 누나도 뒤따라 올라감.

아빠가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음. 모든 서랍이 다 열려서 파헤쳐져 있었고, 내 컴퓨터 키보드도 사라져 있었음. 아빠는 그 광경 보고 빠따 내려놓으면서 주저앉으셨고,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울면서 소리를 지르셨고, 나랑 누나는 초롱이 껴안고 벌벌벌 떨었음.

한 30분쯤 지나서 경찰관 두분이 집으로 오셨는데, 나랑 누나는 방안에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덜덜덜 떠느라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음. 다만 명탐정 코난에 나왔던 것처럼 현 장조사 이런걸 바로 안 해서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남. 나중에 다시 오셔서 조사했던가 그랬는데...이건 잘 기억이 안 난다

경찰 두분 가시고 엄마아빠 한참 한숨 쉬시다가, 나랑 누나 불러서 무서웠을 텐데, 오늘은 나가서 맛있는거라도 먹자고 하고 다같이 나감. 그때는 집은 왜 안 치우는거지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 보존이었네.

아직도 벌벌 떨고 있던 나랑 누나는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는 아빠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는데, 빌라 앞을 벗어나는 순간 집 뒤쪽에서 "터벅" 하는 큰 발소리와 함께 막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음. 이번엔 나 말고도 누나, 엄마, 아빠 모두 다 들었고, 뒤를 돌아 보니 어두웠지만 집 뒤쪽 골목으로 누군가가 뛰어가는 그림자가 보였고, 아빠가 야!! 하고 소리치니 그 그림자는 더욱 황급히 뛰어 시야에서 사라졌음.

집 뒤로 돌아가 보니 그 창고방의 창문이 열려있었고, 초롱이가 짖는 소리가 그리로 새어나고오 있었음. 집으로 다시 올라가 창고방을 확인해보니, 아까까진 닫혀있던, 사람 하나가 들어갈만한 크고 낡은 장롱이 열려있었음. 우리 가족은 다 얼어버림.

상황설명을 하자면, 경찰은 현장 사진만 찍고 아무것도 안 건드렸음. 우리도 아무것도 안 건드렸고. 우리가 집을 들어간 순간부터 경찰이 오는 순간까지, 그때 닫혀있던 장롱 안에는 아직 도망가지 못한 그 도둑이 숨어있었던거임. 우리가 나가니까 도망간거고.

만약 경찰이 늦게 왔다면? 그리고 그 도둑이 강도였다면? 별의 별 상황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면서 다리가 풀렸고,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던것 같음. 저녁은 집앞 고깃집에서 돼지갈비에 냉면 먹음.

이게 내가 기억하는 가장 무서운 "사람" 관련된 얘기임. 귀신도 많이 봤지만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




3년 전에 쓴 글인데 뭔가 한 번 더 공유하고 싶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