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오셨나요? 보통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 유형이야 뻔하죠. 어떤 추억이 미치게 그리워서 못 견디겠든지, 아니면 어떤 일에 사무치게 미련이 남았든지.


그, 예. 저희가 고객들의 과거를 취급하는 가게는 맞는데요, 이걸 `보여드린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정확히는 그 기억으로 `들어가게` 해 드려요.


놀려요? 제가? 과거를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하신 분이 그 부분이 미심쩍어요? 여기까지 오셔놓고 이상한 부분에서 현실적인 걸 따지시네.


CCTV 아시죠? 요즘은 하늘을 쳐다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감시카메라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방범용 기기로 많이 쓰이는데, 최초의 CCTV는 나치가 무슨 로켓 발사하는 거 모니터링 하는 데 쓰려고 만들어 졌다고 해요. 그런 물건이 이렇게 불과 몇 십년 만에 대중화됐다니 어떻게 보면 참 섬뜩하면서도 허무하죠.


예? .......아 아니요. 나치 얘긴 잊어버리세요.
아니, 잊어버리시라고. 별 의미 있는 말 아니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아무튼, 그렇게 설치된 CCTV들이 남겨놓은 데이터들 있잖아요? 그게 지워지더라도 잔류 데이터는 전부 다 저희 쪽으로 넘어와요. 여기 지은 양반이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서 그런 시스템을 발명해 냈더라구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굳이 CCTV가 아니더라도 기록으로써 저장이 되는 영상촬영 매체에 선생님이 한 번이라도 비쳤다면 그 데이터는 저희한테 있는 거에요. 셀카를 찍으려고 카메라로 선생님을 담으셨든, 어디 백화점에 진열해놓은 카메라 제품들 렌즈에 비치셨든. 신기하죠?


뭐 개인정보 침해 그런 건 못 해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일절 사용을 못 하니까. 당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저희도 데이터를 그냥 갖고만 있는 거죠. 용량이요? 재밌는 질문이네요. 모든 데이터가 넘어온다는데 용량제한이 있겠어요?


이렇게 당사자가 나타나면 그 데이터를 토대로 만든 시뮬레이션에 선생님을 잠시 집어넣어 드리는 겁니다. 간단하죠? 거기서 뭘 하든 현실에 전혀 영향은 주지 않아요. 몇 가지 조건만 준수한다면요.


첫 방문이긴 하지만 오늘 이용해 보실거죠? 일단 설명 듣기 전에 오른손에 이 팔찌부터 차 주시고.


...하... 오른쪽이라고 했잖아요. 선생님이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내 알 바 아니고 무조건 오른쪽이어야 해요. 전부터 계속 두 번 말하게 하시는데..


...미안해요. 계속 조건 안 지켜서 첫 방문에 일 내는 분들이 많아서 좀 예민합니다. 조건만 잘 지키면 한없이 즐겁고 안전한데 꼭 말을 안 처 들어서.
이제 자리를 옮기시죠. 저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꼭 노래방 방 같죠? 그럴 만 해요. 예전에 노래방이었던 건물을 개조해서 지은 거니까. 그래도 저렇게 큰 화면은 처음 보셨을 겁니다. 저게 이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과거체험의 입구니까.


설명드릴게요. 이 팔찌를 차셨으니 저기 휴대폰 거치대에 휴대전화를 올려놔 주세요. 아, 폰 안의 데이터를 빼는 건 아니에요. 그냥 본인인증 같은 거죠. 무선충전도 되는 거니까 일석이조고.


자, 이제 됐습니다.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시면 새하얀 공간 안에 비눗방울같은 디스플레이들이 잔뜩 떠있을 거에요. 특정 시간대를 몇년 몇월 며칠이라고 소리내서 말씀하시면 그 시간대의 방울들이 선생님 앞으로 몰려올 겁니다. 그 중 하나에 손을 대면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저희가 들여보내 드리는 데이터 공간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시뮬레이션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럴듯한 가상현실인 거죠. 그 안쪽 존재들은 고객님을 그곳의 존재로 인식하고, 그 당시 상황 그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거기에 맞게 세상이 움직일 겁니다. 그 뿐이에요. 맞게 움직이는 거.


명심하세요. 그 안에 존재하는 동물, 식물, 무생물, 인간으로 보이는 것들. 그것들은 현실세계의 것이 아닙니다. 그냥 "뭔가 하나는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디폴트로 가져가 주세요. 티내지 말고. 본인 감정을 숨기질 못하는 분들은 기어코 차이점에 위화감 느끼는 티를 풀풀 내고 다니시다가 일 내고 잡... 쫓겨났어요.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비눗방울 색깔은 모두 파란색입니다. 빨간색은 건드리는 거 아니에요. 누가 이미 체험중인 시뮬레이션이라서 표시해놓은 거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시뮬레이션 안에서 현실세계의 두 사람이 마주쳐선 안 됩니다.


예전에 이런 시스템 해놓기 전에 정말 우연의 일치로 동일한 시간대의 데이터를 같은 시간에 체험하시는 고객님들이 계셨는데, 시뮬레이션 속에서 고객님 두 분 서로 마주쳤다가 대형사고 났거든요. 두 분 돌아가시게 만드느라 직원들 전부 애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뮬은 그 당시의 선생님의 존재에 빙의시키는 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선생님이 계셨어야 할 과거의 자리에 선생님을 대신 놓는 느낌인데, 정말정말정말 극한의 확률로 시스템에 오류 생겨서 그 당시의 선생님까지 구현되는 경우가 있어요.


멀리서 봤는데 뭔가 선생님 본인 모습인 것 같다? 그럼 그 순간부터 그 공간은 저희 관할 밖입니다. 저희가 책임을 지고 싶어도 관여할 수 없어요. 그곳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이 위험해집니다. 신속하게 두 눈을 질끈 감고 팔찌를 주먹으로 내려치세요. 바로 화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안전을 위한 설명은 여기까지인데... 혹시 질문 있으세요? ...이런 걸 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뭐... 방법이야 당연히 전례가 있어서 알죠. 제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데.


아이고, 시간 너무 뺏었네요. 지금이 몇 시야? ...어휴 벌써 저녁 다 돼 가네. 8시 지나면 통금이잖아요? 재밌게 즐기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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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때 쓰다 만 소설 소재 재활용 해봤어요. 원래 공포 장르로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첫 나폴리탄입니당 피드백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