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대장암이셨다
몇개월 전에 복강을 열고 대장을 15cm가량 절제해내셨다.

지난 6개월간은 격주로 12번의 항암치료를 하셨고
오늘은 항암치료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마지막 검진이었으며,
드디어 케모포트를 제거하고 향후 5년간 추적검사 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아버지께서 항암치료 이전의 절제수술을 받으실 적에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를 이미 잃었는데...
아버지까지 잃을 수는 없다
아버지의 대장과 관련된 고통 중 생명에 지장이 없을정도의 고통은 나한테 넘어오고 아버지는 사셨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서 항암치료를 마치신 3월 중순부터
나는 갑자기 탈항증상이 나타났다
방금, 아버지께서 이제 추적검사만 남았다고 연락을 주셨던 오늘 새벽에는
탈항 느낌이 너무 강해서 앙와위가 안될 정도였다
（그나마 지금 처치를 잘해서 아직 버티고 있긴 하다만
느낌상 나도 올해 대장관련 수술을 하게될거 같은 예감이...）

그러다가 아버지의 거진 완치에 가까운 소식을 들으니...
기쁘면서도...

과거 어떤 일이 생각났다


내가 2000년대 후반에 시한부 비스무리한 선고를 받은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머니께 그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는 너무너무 슬퍼하셨다

나는 주변에도 내 상태를 알리고는
즉시 내게 스트레스가 되는 모든 것들을 끊어냈다
당시 대학졸업을 앞둔 상태였고, 내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공부가 아닌 사람이었다
진실을 알면 본인들이 나쁜사람이 되어버리니까, 진실을 거부하고 아예 내 입을 막아버린 사람들...

무시하고 살아가자...


난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를,
당시에 스트레스 주는 인간들을 끊어내서라고 생각했다



그 일로부터 5년 후인 2010년대 중반에
어머니는 말기암으로 병상에 누워계셨다

가장 예후가 좋다는 갑상선암, 그 중에서도 특히 예후가 좋다는 유두암이었는데
갑상선유두암을 조직검사하겠다고 건드린 직후부터 가장 예후가 나쁜암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여쭤봤다

"엄마... 혹시...
5년 전에 내가 죽을거라는 선고 받았을 때
엄마가 대신 죽고싶다는 생각하셨어요...?"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언제나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띄시면서 아무말 하지 않으셨다
어쩌면 미세하게 끄덕거리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

우리 아버지는 거진 3기말이셨다...
물론 대장암도 나름 예후가 좋은 암이긴 하지만...
물론 항암치료도 받으셨긴 하지만...

이미 림프도 어느정도 전이된 상태였던 것 치고는... 잘 쾌차하신 것이다...


이제 나는 무슨 생각이 들까


...이게...
이게... 대신 아프겠다는 마음이나... 대신 죽겠다는 마음이...
진짜로 될 수도 있는거였나...

정말로 나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소원이
어머니의 대신 생명을 앗아가고 나를 남겨둔 것일까...

내 인생에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또 내 인생을 연장해주었는데
내가 내 인생을 보람되게 살지 못하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