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학생이 마약을 직접 구입하고 투약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를 신고한 이는 학생의 부모인데요. 최근 들어 미성년자 마약사범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마약 사건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마약 청정국 이라는 타이틀도 이제는 옛말이라며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미성년자라니... 에휴”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회사 동료 형신이 말했다. 그는 가끔 내가 보는 뉴스를 힐끗 보며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처음에는 왜 훔쳐보나 생각이 들어 다소 떨떠름했었으나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러게요...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 까지 왔을까 싶어요.”

별 생각 없이 한마디 툭 내던지며 담배 갑을 손에 쥐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형신이 내게 말했다.

“옥상 가세요? 저도 같이 가요.”

아무렇지 않은 듯, 정말 그냥 같이 담배나 피우러 가자는 듯 한 그의 말투.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같이 담배나 피우러 가자며 자판기에서 커피까지 뽑아와 친근하게 다가오며 씨익 거리는 저 얼굴.... 그리고 막상 올라가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의 단골멘트.

‘아이고... 담배를 깜빡하고 안 가져왔네요. 하나만 빌려주실래요?’

머쓱한 듯 웃어 보이지만 연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깟 담배 얼마나 한다고 저렇게 아끼는지 원... 나는 그의 행동을 이미 예상하고 있음에도 매번 속아준다. 그깟 담배.... 그깟거 하나 아까워 동료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는 건 절대 싫으니까.

‘아 그래요... 뭐..’

역시 나도 결국은 매번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두 개를 꺼내들어 하나를 건네준다. 아깝진 않지만 주긴 싫고... 그렇다고 안주자니 쪼잔 하다 생각 할테니 그 상황 자체가 싫은 것이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속아준다.

“아 참, 아까 보니까 마약 뉴스 보시던데 설마...?”

“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입에 담배를 물고, 눈을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서겠지.

“아, 농담이에요~ 정색을 하시네 하하”

‘혹시 너 마약 하는 거 아니지?’ 라는 시답잖은 농담. 보통 사람들이라면 ‘네???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라며 손사래 치겠지만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사람인지라... 그저 시큰둥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 지훈 씨랑은 진짜 술자리도 못 가져 본거 같아요. 그쵸?”

이제는 술집에 가서 실수로 회사에 지갑을 놓고 왔다고 술 사달란 말을 하려나...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어... 그렇...죠?”

“왜요, 제가 한잔 사달라고 조를까봐 그러세요?”

순간 움찔했다. 사실이니까... 넌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 생각하거든 나는...

“아... 아휴 그럴 리가요! 말씀을 하셔도 참. 어 언제 한번 같이 마시죠!”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 한잔 어떠세요?”

“오늘요??”

차마 놀란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형신은 그런 나를 보며 어딘가 음흉한 얼굴을 하고선 내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만 남긴 채 먼저 내려가 버렸다.

“제가 진짜 좋은 곳 하나 알고 있어요. 퇴근하고 보시죠?”

갑자기 왜 저럴까. 나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걸까? 회사에서도 업무 외에는 크게 대화도 없던 관계였는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대뜸 내게 술을 마시자는 말을 꺼내 온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도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서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목에 건 사원증 을 쭉 잡아당겨 사무실 입구에 터치한다. 난 어려서부터 이상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원증. 어떤 집단에 소속된다는 그 사실이 나를 흥분케 했을까, 아니면 나를 증명하는 또 다른 명찰이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였을까.

이게 뭐라고 그런 로망을 가졌을까 생각하며 사무실로 들어섰고, 나는 별 볼일 없는 사원증을 쭉 쭉 잡아당기며 멍 하니 내 자리로 향했다.

이어 코너를 돌자 형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과민반응 하는 것 일수도 있다. 회사 동료와 친해지는 게 뭐 별거겠는가... 이런 식으로 친해지는 거겠지. 그러다 보면 친구처럼 가까워 질수도 있는 거야. 혼자 생각하며 의자에 앉아 업무를 마무리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후 여섯시 정각. 꼰대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사무실의 퇴근 대란이 일었다. 건물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는 좌, 우로 네 대. 건물은 20층이 넘고, 사무실만 해도 수십 곳이 된다. 하지만 이 네 대로 건물의 모든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분명 퇴근은 여섯시에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까지 내려가기까지가 무려 30분 이상이 걸리는 신박한 현상도 목격했었다. 형신도 이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는지 어차피 일찍 나가봐야 기다려야 한다며 여유롭게 일을 마무리 짓고 있었고, 날 더러 앉으라는 식으로 바로 옆자리 의자를 쓱 꺼내 손으로 가볍게 툭 쳤다.

이에 나도 그냥 털썩 앉아버렸다. 그리곤 형신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말씀하신 끝내주는 곳이요...”

그러나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형신은 마치 네가 무슨 질문을 할지 이미 알고 있어 라는 듯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아, 퇴폐 절대 아니에요. 이상한 곳 아니니까 한번 가보세요. 진짜 최고에요.”

어떻게 알았을까... 독심술이라도 하는 걸까 나를 이상한데 데려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혹시 거기 막 이상한데 아니죠?’ 라고 물으려고 했는데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 했다.

“아... 그럼 네.. 뭐... 근데 어디에 있는 거에요?”

“사무실 근처에요~ 어차피 지훈씨도 근처 산다면서요?”

“네. 걸어서 한 10분이면 가요.”

그러자 형신이 의자에 드러눕듯이 등을 기대며 말했다.

“와~ 나는 한 시간인데 부럽네요. 어쨌든 가보면 알거에요. 한번 가면 다른데 절대 못가요.”

이 동네에 그렇게나 칭찬일색일 정도의 술집이 있던가... 의아해 하며 그에게 물었다.

“가게 이름이 뭔데요? 이 동네 이사 온지 거의 3년 되가는데 그렇게 맛이 좋아요? 아님 분위기?”

그러자 형신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주방이요.”

“안주방? 가게 이름이에요?”

형신은 역시나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안주 파는 방 이라고 해서 안주방 인데. 일단 갑시다. 일어나요 사람들 다 빠졌네요.”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고개만 빼꼼 들어 바깥 상황을 살피자 그의 말대로 엘리베이터 앞에 즐비해 있던 사람들이 어느 샌가 모두 빠져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어느덧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