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덥다. 이제 거진 다 왔는데, 이거야 원 더워서 못 걷겠네.”

외눈박은 괜스레 땀을 닦는 체하며 연못가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반나절만 더 걸으면 될 테지만, 날이 이렇다 보니 괜히 움직이기 싫은 모양새였다.

“별수 없지.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여기서 시간 좀 보내다 가야지.”

외눈박은 너스레를 떨며 연못가로 내려갔다.

마침 연못가 한켠엔 낚시하는 이들이 죽 늘어서 있어 말이나 붙여볼 심산이었다.

“안녕하시오. 이야기꾼 외눈박이라고 하오.

날도 덥고 해서 땀이나 식힐 겸 이리 왔는데, 어디 옆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도 되겠소이까?”

다들 외눈박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낚시에만 몰두했으나 한사람만은 넉살 좋게 대답했다.

“왜 안 되겠소. 내 자리뿐 아니라 낚싯대도 하나 내어 줄 터이니

땀도 식히고 황금어도 낚아 인생 한번 펴보시게.”

외눈박은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었다.

“황금어는 뭐고 인생이 핀다는 건 또 뭐요?”

남자는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이거 소문 듣고 찾아온 양반이 아니었구먼.

그럼 내 설명해 드리지. 내가 이 호수 주인 되는 조인이란 사람이오.

조인이라고 하여 낚시 조 에 사람 인 자를 쓰는고 하니. 그것은 아니고.

떠들 조 자를 써서 조인이라... 이말이 외다.

여기서 떠들어 대는 이라곤 나뿐이니 퍽 잘 어울리는 이름 아니겠소?”

하면서 껄껄 웃는 것이 이 낚시꾼의 입담 역시 보통은 넘지 싶었다.

“내 조상님께 이 호수를 물려받아 그간 낚시로 먹고살았는데 말이오.

몇 달 전에 이 호수에서 전설에나 나오던 황금어가 헤엄치는 걸 봤다 이 말이지.

비늘 하나하나가 금으로 된 팔뚝만 한 물고기 말이오.

내 욕심을 부리자면 아무도 모르게 그놈을 잡아 독식해도 되겠다만,

이 몸이 조동아리만큼 마음도 여려서 말이오.

이리 많은 이들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를 주고 싶어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딱 푼돈 조금만 받고 이리 자리와 낚싯대를 빌려주고 있소이다.

그러니 그쪽도 이리 와서 한번 도전해 보시오.

혹시 모르지 여태껏 그놈이 안 잡힌 이유가 오늘 당신한테 잡히려 그랬는지.”

외눈박은 껄껄 웃으며 조인에게 돈을 꺼내주고는 낚싯대를 받아들고 자리를 잡았다.

“황금어라니 재미있구먼. 뭐 좋소이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미끼를 끼우고 낚싯대를 드리운 외눈박은

조인의 헤실거리는 얼굴과 눈이 벌게지도록 낚시찌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자. 가만히 찌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좀 적적하니,

내 이야기꾼 답게 황금어를 끌어올 겸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리다.

마침 이 한적한 분위기에 딱 맞는 재미난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한번 제대로 풀어보도록 하겠소.

이 이야기는 저~ 산 넘고 들 질러 멀고 먼 호수에 살던 물속 요괴 올방개에 대한 이야기요.”



올방개는 꼭 물옷을 뒤집어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지.

피부는 매끈하고 반질한 것이 물살도 잘 가르고

팔다리에 길고 두꺼운 비늘이 깃털처럼 촘촘히 달려있어서

헤엄도 아주 잘 쳤고 말이오.

얼굴도 반반한 것이 얼핏 보면 꼭 귀한 집 도련님처럼 부티가 좔좔 났다 이거지.

그래서 이놈이 착하고 좋은 요괴냐 하면 그건 아니요.

수살귀라고들 다 아실는지 모르겠소만

이 올방개는 이래 봬도 수살귀 중에서도 으뜸으로 독한 놈이라 이거지.

그럼 이놈이 어째서 독한지를 얘기해야 하는데.

그전에 이 올방개란 놈이 어떻게 태어났느냐부터 알아야 될 거 아니오.

자 낚시를 하다 보면 용슬이라는 벌레를 본 적이 있으실 거외다.

왜 있지 않소? 등은 딱딱한 것이 뒷다리에 노가 붙은 거 마냥 납작하고.

물속에서 데굴데굴 헤엄치는 벌레 말이오.

이 용슬이 떼로 살던 호숫가가 하나 있었는데

보기완 달리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워서

용슬 잡겠다고 호수에 참방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은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지.

수십 수백 년간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빠져 죽었으니, 호수 바닥에 요기가 가득할 게 아니겠소.

그 요기와 죽은 아이들의 원혼이 용슬에 달라붙어 만들어진 게 바로 올방개란 말이지.

이 올방개란 놈은 죽을 때의 원통함과 외로움으로 똘똘 뭉친 녀석이다 보니

산 사람을 꼭 제 동무 삼고 싶어 했다 이거요.

그러니 호수 안에 발 디딘 사람들을 팍하고 채다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익사시키는 게지.

그렇게 죽은 사람은 자연히 올방개가 되었고 말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새끼를 치듯이 올방개들이 늘어나는 거라.

자 생각해 보시오.

저 시커~ 먼 물속에 어린아이만 한 요괴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헤엄치고 다니는 꼴을 한번 상상해 보란 말이오.

아주 세상 세상 그리 끔찍한 것도 없지. 암.

거기에 더해 진짜 무서운 건 수살귀의 목소리였소.

수살귀가 다 그렇듯이 올방개도 사람을 홀려내는 재주가 좋았거든.

‘아이야. 이리 오너라. 이리 와서 함께 물장구를 쳐보자꾸나.

우리 동무가 되면 글공부도 밭일도 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니 이리 들어오너라. 우리와 함께 가자.’

올방개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홀린 듯이 호수 속에 몸을 던지는 게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이를 잃어버린 어미는 밤만 되면 호숫가에서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지.

‘아이고 어머니. 저 좀 살려주십시오. 너무 춥고 무섭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그럼 애 잃은 어미도 눈이 뒤집혀서 호숫가로 뛰쳐들어가는 게요.

거기서 끝이겠소?

다음날이면 이제 자식과 아내를 잃은 남편에게 또 목소리가 들려오겠지.

‘아이고 여보. 나랑 동이 좀 살려주소. 여기서 좀 끌어내 주소.’

거짓일 게 뻔한 그 목소리에 속아 다들 바보처럼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지.

그 깊고 깊은 호수가 올방개 놈들로 가득 찰 때까지 절대 끝나지 않을 기세로 말이요.

무서운 일이었지.

물에 시체가 쌓여 호수가 썩고 풀이 말라 죽고 산짐승이 떠났지만,

올방개들만은 그 썩은 물속에서 헤엄쳐 다니며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였지.

조선 땅에서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 수살귀가 이 올방개일 거요.

그러던 어느 날.

올방개 호수로 누군가 찾아왔소.

허연 옷을 입고 또 만큼 허연 얼굴을 한 백발의 남자.

인기척이 들리니 자연히 올방개가 목소리를 내었지.

‘이리 와서 함께 가자. 우리랑 함께 가자. 물에서 같이 놀자. 재주 넘으며 놀아보자.’

고고하고 우아한 걸음으로 호숫가로 다가온 남자는 올방개의 목소리 따위는 우습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호숫가에 딱 멈춰 서서 물속을 바라보았지.

호수 안엔 수백은 될법한 올방개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소.

누구라도 팔에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날 광경이었지만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지.

그 뿐 아니라 청량한 목소리로 올방개들에게 말했소.

“가엽구나. 그리도 아름다운 모습, 그리도 큰 기운을 가지고 고작 썩은 물에서 놀다니.

지금이야 이리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마저 오래지 않아 스러져갈 터이니.

물도 풀도 썩어 문드러져 너희 모두 다시금 힘을 잃고 호수 바닥에 뒹굴겠지.

기억하지 않느냐? 차가운 물 속에 가라앉아 외롭게 죽어가던 쓸쓸함을.”

올방개들은 남자의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지.

뭐랄까? 바싹 마른 천이 물기를 머금듯이 그렇게 쭉 하고 빨려드는 느낌 말이오.

“난 그 고통을 이해한다. 너희의 외로움. 그리고 슬픔. 그 원통함을 나만은 이해한다.

그러니 너희가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희를 품어주마. 다시는 외롭지 않게.

다시는 차가운 곳에서 떨지 않게 해주마.

그러니 나와 함께 하자. 너희들은 모두 나의 일부가 되어 만년의 영광을 함께 할 것이니.

내가 너희를 안고 천신이 되어 천하를 품게 될 것이야.”

언제나 거짓된 목소리로 사람들을 꾀어내던 올방개들은 반대로 그 백의 청년의 말에 홀려버리고 말았어.

능변이기도 했지만, 그 백의 청년의 말에 섞인 어마어마한 요기가 거역 못 할 힘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

수십, 수백의 올방개들은 꼭 꿈이라도 꾸는 양 멍하니 물 밖으로 줄지어 걸어 나왔소.

백의 청년은 맨 앞에선 올방개에게 말했지.

“이제 너는 나와 다르지 않다. 내 일부가 되어. 영광스러운 비상의 양분이 될 터이니,

나의 고결함을 직접 느끼고 천신이 되는 한걸음에 기여하게 된 것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라.”

그리곤 멍하니 홀려있는 올방개를 집어 들더니 통째로 삼켜버렸지.

어린애만 한 올방개를 한순간에 삼켜버릴 정도로 입을 크게 쩍 하고 벌려버린 거요.

그 꼴을 본 다른 놈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갈 법도 하건만

도망가기는커녕 부처님이라도 본 것처럼 넙죽넙죽 절까지 해가면서 백의 청년 주둥이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지.

그 많은 올방개가 사라지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소.

백의 청년은 처음 올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만족한 채 자리를 떠났지.

수백 년간 거짓된 목소리로 사람을 꾀어 호수를 시체로 채우던 올방개가

똑같이 말 몇 마디에 모두 사라져 버린 거요.



외눈박은 어느새 찌에서 눈을 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낚시꾼들을 보며 이야기를 마쳤다.

“죽은 사람 목소리 인 걸 뻔히 알면서도 올방개 호수에 몸을 던진 사람들.

우습게도 그렇게 제 편을 늘린 올방개조차 백의 청년의 말 몇 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지.

한번 빠져들면 제 죽는 것도 모르고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

말이란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오. 요기가 없어도 마찬가지.

그러니 세 치 혀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말이오.

자. 이야기꾼 외눈박의 이야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소이다.”

낚시꾼들은 한동안 손뼉을 치더니 슬금슬금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잇 이까짓 헛짓거리.’

‘아이고. 내가 미쳤지. 이 바보천치 같으니.’

‘우라질. 금쪽같은 시간을 이리 다 날려버렸네.’

따위의 말을 내뱉기도 했다.

하나같이 귀신에게 홀렸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 같은 꼴이었다.

호숫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허망하게 보던 조인에게 외눈박이 말했다.

“형씨 아구심도 보통은 넘는 듯하오만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이 외눈박에겐 안되는 모양이오.

보아하니 그 황금어라는건 형씨가 잡으셔야겠소이다.

물론 있기나 한다면 말이지만.”

외눈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금 길을 떠났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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