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 보자…. 그래. 아주 이쁘장하게 잘 되었네. 자 여기 있다.”

외눈박은 놀랍도록 섬세한 손길로 나무토막으로 강아지 인형을 깎아 내어놓았다.

작은 칼로 조각을 시작할 때부터 외눈박 주변을 둘러 싸놓고 구경하던 아이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강아지 목각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어때? 아주 기가 막히지? 이 외눈 아재가 이야기에만 재주가 있는 게 아니거든.

자자. 다들 하나씩 만들어줄 테니. 어디 가지고 싶은 게 뭔지 말해 보아라.”

저마다 토끼며 고양이며 소리쳐 대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진정시킨 외눈박은

다시금 굴러다니는 나무토막들을 주워들고는 조각을 시작했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 돌멩이며 나뭇가지 따위로 인형 놀이를 하던 아이들을 보니

그럴싸한 놀잇거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어 조각을 시작한 터였다.

“손은 이리 열심히 일하는데 입이 놀고 있으니 근질거려서 영 답답하구먼.

하나씩 만들어주려면 시간도 좀 걸릴 터이니 이 외눈 아재가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그러니 눈으로는 멋들어진 솜씨를 구경하고 또 귀로는 세상 듣지도 못한 귀한 이야기를 들어보거라.

큼큼. 자 오늘의 이야기는 저 산 넘고, 들 질러 멀고 먼 마을에 살던 나무 인형 요괴.

꼭두서니에 대한 이야기야.”





꼭두서니는 사람과 똑 닮은 나무 인형이었지.

그런데 왜 이것이 요괴가 되었냐 하면 이게 또 슬픈 사연이 있다 이 말이야.

옛날 아주 귀신같은 솜씨를 가진 조각가가 있었지.

그 조각가는 일찍이 아내를 떠나보내고, 가족이라곤 딸 하나가 전부였지.

가난한 살림이지만 이 딸내미만큼은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키웠어.

그 덕에 딸은 조선 땅에서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의 미녀로 자라났고 말이야.

이제 슬슬 혼기도 차가니 모두 좋은 곳에 시집을 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만 마을에 역병이 도는 바람에 그 고운 딸마저 목숨을 잃어버리고 만 거야.

조각가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

더는 살고 싶지 않았던 조각가는 죽은 가족들을 따라가기 위해 높은 절벽으로 올라갔어.

그렇게 절벽에 서서 뛰어내릴 결심을 하고 있는데,

조각가 눈에 근처에 쓰러져있던 죽은 나무가 보였어.

남들이 보기엔 그저 통나무였지만, 조각가인 그이의 눈에는 아주 특별해 보인게지.

마치 나무 속에 딸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거야.

가까이 가서 보니 속도 단단하고 질도 좋은 것이 조각하기에 더없이 좋기도 했지.

그 때문에 조각가는 죽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나무를 집으로 끌고 들어왔고

잠도 거르고 끼니까지 거르며 조각에 몰두했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딸이 살아서 돌아오는 듯한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지.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지나니 그저 쓰러진 통나무였던 것은 깜짝 놀랄 만큼 딸과 닮은 목각인형이 되어있었어.

키도 똑같았고 새하얀 피부와 미소 띤 얼굴까지 똑 닮아서,

가까이서 잠시 쳐다봐야. 아 사람이 아니구나! 할 정도였지.

조각가는 그 나무 인형에게 꼭두서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진짜 딸처럼 소중하게 대했어.

언제나 말을 걸어주고 걱정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비록 죽은 딸이 살아난 것은 아니나 적어도 살아갈 희망이 되어준 거지.

그렇게 조각가는 오랜 시간 동안 꼭두서니에게 정을 쏟으며 함께 했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행복이지만 안타깝게도 영원할 수는 없었어.

조각가도 인간인 이상 나이를 먹고 점차 죽음에 다가갔을 테니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는 조각칼조차 들지 못하더니 결국엔 집안에 앓아눕게 되었지.

조각가가 마른기침하며 죽어가고 있을 때,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래. 꼭두서니의 굳은 몸이 움직이고 초점 없는 눈동자에 생기가 들렸지.

여전히 나무 인형이지만 살아나 버린 거야.

“주인님의 은혜가 깊어 한낮 나무 인형인 제가 이리 몸을 일으켰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돌봐 드릴 터이니 아무 걱정마시고 쉬시지요.”

조각가는 무척이나 놀랐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기뻤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저마다 조각가의 정성이 기적을 일으켜 꼭두서니를 살려준 거로 생각했지.

그랬기에 조각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꼭두서니를 돕기로 했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지.

나무 인형이 마을 일을 돕고 먹을 걸 얻어서는 병간호를 한다니 말이야.

하지만 누구 하나 이상하거나 무섭게 생각하지 않았어.

꼭두서니는 정말 죽은 딸의 현신인 듯 착하고 성실했거든.

그 덕에 조각가는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몸을 추슬러 갔지.

자, 분위기가 좋긴 한데 우리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고.

기적도 좋고 다 좋지만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나무 인형이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 얘기는 또 조금 불편하고 찜찜한 사연이 있지.

그 당시에 조선 땅엔 요상한 물건들이 많이 나돌았었는데

그중 하나가 요기항아리란 물건이야.

요기를 끌어와서 모아두는 항아리인데,

이걸로 요괴를 만들기도 하고, 저주에 쓰기도 하는 아주 몹쓸 물건이지.

하필 못된 장사치 하나가 어디 나쁜데 써먹으려고 그 마을 뒷산에 요기항아리를 묻어놓고

기운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거지.

요기가 흐르는 그곳에 사람 정이 가득 담긴 꼭두서니가 있었으니

본의 아니게 그 요기가 서려서는 그만 요괴가 되어버리고 만 거야.

까딱 잘못했으면 나쁜 기운으로 아주 못된 요괴가 되었을 테지만,

조각가의 진심 어린 마음이 잔뜩 배어들어 선하디선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지.

요괴가 되었으니 비극은 비극이되, 선한 이가 태어났으니 비극만은 아니지.

그런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 꼭두서니 역시 요괴는 요괴.

요괴가 있는 곳에 요괴사냥꾼이 안 나타날 리는 없었지.

열심히 조각가를 보살피던 꼭두서니 앞에 나타난 것은 조선 최고의 요괴 사냥꾼 서리태였어.

그 당시의 서리태는 아직 마음의 수양이 깊지 않아 요괴에 대한 증오가 그득 했었지.

그래서 꼭두서니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윤회도를 뽑아 들고는 그대로 일도양단하려 했어.

그때 꼭두서니가 바닥에 엎드려 싹싹 빈거야.

“나으리. 제발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의 주인님의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제가 여기서 죽어 없어진다면 주인님을 돌볼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제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니 제발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나중에 가면 기꺼이 제 목을 내놓겠나이다.”

그 당시의 서리태는 그런 말을 들을 이가 아니었어.

그래서 망설임 없이 베어내려는 찰나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지.

마을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꼭두서니를 에워싸고 같이 빌기 시작한 거야.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비록 사람이 아니나 선하디선한 아이입니다.

저희 모두의 목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병상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 아이가 없다면 노쇠한 조각가 영감은 금세 죽어버릴 겁니다.

지금 영감을 붙잡아두고 있는 건 이 아이란 말입니다.”

서리태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

요괴는 사악하고 없애야 할 존재인데 사람들이 요괴를 감싸고 도는 거야.

혹여나 요괴의 거짓에 현혹된 것인가 하고 가만히 봐도

그들 얼굴엔 일말의 거짓도 없었지.

고민하던 서리태는 결국 결정을 내렸어.

“요괴는 하나도 빠짐없이 없애버린다.

이것이 내 철칙이다. 네놈도 예외는 없다.

허나, 널 없애기 위해 이 사람들을 해할 수는 없을 터.

영감이 천명을 다하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다.

혹여나 그사이에 말썽을 부린다면 입을 열기도 전에 베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단호하게 말한 서리태는 그대로 마을을 떠났지.

요괴 사냥을 시작한 이유로 요괴를 살려둔 채 돌아선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하지만 마지막은 아니었지.

재미있게도 두 번째 역시 꼭두서니였어.

5년이 지나 다시 찾은 마을은 침울한 분위기에서 조각가 영감의 상을 치르고 있었지.

상복을 입은 꼭두서니가 사람과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영감을 보내주고 있었어.

서리태가 나타나자 꼭두서니가 스스로 걸어 나왔지.

“시간을 주신 덕에 주인님을 잘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 할 일을 다 했으니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채 꼭두서니를 보호하려 들었지만, 서리태는 칼을 뽑지 않았지.

“아직 네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네가 정말 주인을 아버님처럼 생각했다면,

자식 된 도리로 삼년상을 치러야 할 터이니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 서리태는 왜 돌아섰을까?

진짜 삼년상을 치를 시간을 주고 싶어졌을까?

아니면 죄를 짓지 않은 요괴였기 때문에?

그건 알 수 없지. 아마 서리태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를 거야.

하지만 어찌 되었건 서리태는 두 번째로 걸음을 돌렸고,

그건 세 번째. 네 번째도 그럴 거란 얘기였지.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어.

3년, 5년 만에 한 번씩 찾아간 서리태는 칼을 뽑는 대신 꼭두서니에게 일을 맡기기 시작했지.

“요괴로 부모를 잃은 아이다. 네가 맡아서 잘 키워라.

어른이 될 때까지 잘 돌봐준다면, 그때까지는 살려주마.”

“곡물과 돈을 싣고 왔다. 올해는 흉년이 들어 겨울을 넘기기 힘들 터이니

이걸로 잘 버텨라.”

“네가 돌봐야 할 아이를 더 데려왔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돌봐라.”

서리태는 꼭두서니를 만날 때마다 요괴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데려왔고

꼭두서니는 정말 자기 아이라도 된 것처럼 극진히 그 아이들을 돌봤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을 담은 보살핌이었어.

그렇게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어른들은 노인이 될 때까지 서리태와 꼭두서니의 인연은 이어져갔어.

그리고 찾아올 것 같지 않던 죽음의 그림자가 꼭두서니에게도 드리워지기 시작했지.

서리태 때문이 아니라. 응당 찾아와야 할 그런 죽음 말이야.

몸에서 요기가 빠져나가 그 수명이 다하고 있었던 게지.

백옥같이 빛나던 고운 나뭇결이 그 힘을 잃고 부드럽게 움직이던 이음새가 삐걱대며

꼭두서니는 천천히 죽어갔어.

그걸 본 서리태는 돌아서는 대신 자리를 잡고 꼭두서니를 돌보기 시작했지.

그래. 나무 인형일 뿐이라고. 요괴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것이지.

왜 안 그렇겠어?

“아직 하셔야 할 일이 많지 않으십니까? 전 그냥 내버려 두시고 대의를 위해 움직이셔야지요.

그게 아니라면 옛 약속대로 저를 베고 떠나십시오.

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자라 가족을 꾸렸고 남은 건 저의 이 낡은 나무몸뚱이뿐입니다.”

서리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지.

“아직 때가 아니다.

그러니 다시는 죽여달란 소리를 입에 담지 마라.

이제 조선 팔도에 남은 요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똑똑하고 강한 녀석들이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지.

때문에 들쑤시고 다니는 대신 적합한 때를 기다리며

당장 눈앞에 있는 요괴에 붙어있는 것뿐이니 괜한 소리 말거라.”

꼭두서니는 무뚝뚝한 그 말에서도 애정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러니 영감이 죽었던 그날처럼 눈물을 흘릴 수밖에.

다만 이건 슬픔의 눈물이 아닌 행복의 눈물이었지.

그렇게 서리태의 보살핌을 받던 꼭두서니는 어느 맑은 날.

서리태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구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지.

이미 꼭두서니에게 키워진 아이들이 저마다 마을에서 큰일을 하고 있었기에

장례는 누구보다 성대하고 장엄하게 열렸어.

그래. 모든 요괴를 통틀어 가장 인간답고 가장 경이로운 장례였지.

서리태는 꼭두서니가 죽자 그제야 남은 요괴를 처리하기 위해 마을을 떠났어.




마지막 나무 인형인 독수리를 완성하여 입을 헤벌리고 듣고 있는 아이에게 건넨 외눈박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꼭두서니. 누군가는 고작 나무 인형, 저급한 요괴 나부랭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냉혈한이던 서리태도 진심을 담아 애정을 줄 수 있었어.

요괴를 증오하던 그 서리태가 말이야.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것이지.

사랑받아 마땅한 것들엔 절로 마음이 가고 정이 붙기 마련이야.

사람이건 짐승이건, 물건이건 요괴건 마찬가지지.

어떤 것이든 애정을 담고 마음을 주면서 절대 업신여기지 말아야 해.

자. 다들 나눠준 거 들어서 보여줘 봐.

어때? 예쁘지? 정성을 들여 만들었으니 꼭두서니처럼 아주 잘 돌봐줘야 한다?

사소해 보여도 이게 너희들의 즐거움이요 또 기운을 주는 부적이 될 테니.

알겠지? 좋아. 그럼 이 외눈 아재 이야기는 이걸로 끝!”

아이들은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나무 인형을 양손으로 소중히 들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그렇지. 기운을 주고말고. 그럼 나도 어디 오랜만에 한번 들러 보실까?”

외눈박은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걸음을 옮겼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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