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하소연하는데 맞나?

뭐 그 기억을 못 한다던가?

안면 뭐라 하던데? 아무튼 그냥 이야기 들어준다고.

맞아? 그래. 그 비밀로 해준다는.

그래. 그럼 뭐 제대로 왔네.

그 돼지껍데기 볶은 거랑 소주 내줘.

그니까 뭐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그렇게 떳떳한 얘기는 아니긴 한데

도저히 말을 하지 않고는 버티질 못하겠어서 말이지.

그렇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고

딱히 반성 하려는 건 아니니까 또 고해성사 이 딴것도 영 아니고.

아무튼 들어주기만 하고 비밀은 확실하게 지켜준다니까 내가 믿고 얘기할게.

그러니까 나한테 약간 병? 그런 게 있어.

그게 뭣이냐 하면 이게 분해 강박인데.

왜 그런 거 있지?

어릴 때. 사내놈들이 많이들 그러잖아.

장난감이건 전자제품이건 일단 뜯어서 안을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잖아.

내가 그게 엄청나게 심했거든.

새로운 거만 보면 이거 분해해서 안에 어떻게 생겼는지 뭐가 들었는지

직접 보고 만져야 편안해진다 이거야.

그러니까 어째?

집에 있는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오디오. 티브이 할 거 없이 다 풀어헤치고 다닌 거지.

뭐 나이 먹으면서 이게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어쩌다 한 번씩 강렬한 뭔가가 올 때가 있어.

예를 들면 우연히 무선 청소기 광고를 봤다고 쳐.

그럼 이게 엄청 궁금한 거야 갑자기.

당장 이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으면 꼭 열흘을 안 씻은 거 마냥 온몸이 근질거리고 못 견디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어?

그 비싼 걸 사다가 받자마자 분해해 버리는 거지.

그러면서 이 부품이 뭔지 저 부품이 어디에 쓰는지.

이걸 부수면 안에 뭐가 있는지 만져봐야 이제 만족스럽게 푹 잠을 잔다고.

자.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근데 몇 년 전부터 이제 관심사가 조금 바뀌었어.

언제부터 그랬는지. 뭣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사람한테 관심이 간 거지.

그래. 사람 속이 궁금해진 거야.

그래서 뭐 인체 해부도며 외과 서적 싹 다 뒤져보고,

인체 박람회 이런 거도 다니면서 봤는데도 도저히 만족스럽지 않아.

여전히 몸에 개미 떼라도 들러붙은 거 마냥 간질간질하고 막 괴로워.

뭔가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그런 몸뚱이가 있었음 참 좋겠단 생각을 했단 말이야.

그래서 저 공동묘지도 기웃거리고 화장터도 기웃거리고 하다가

이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왜 그런 데가 있지?

사람들 자살 많이 한다는 그런 장소 있잖아.

죽겠다면서 목매달고 뛰어내리고 그런걸로 유명한 데.

그런 데를 찾아다니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거야.

어디 신선한 시체 안 생기나 하고.

처음엔 그다지 수확이 없었는데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니까 결국엔 찾더라고.

진짜 처음으로 목매달린 시체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만세! 하고 소리를 질렀다니까.

보아하니 죽은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된 거 같아서 얼른 집어왔지.

이제 지하실에 그 드라마 해부실 마냥 딱 세팅을 해놓고 아주 아주 진중하게 분해를 시작했지.

천천히 즐기면서.

와 그제야 뜨끈한 온천에 딱 들어가서 싹 씻은 것 마냥 개운해지더라고.

피부는 이렇게 잘리는구나. 갈비뼈에는 살이 이렇게 붙어있구나.

간은 여기 있고 쓸개는 이렇게 붙어있구나.

가만히 곱씹어 보고 나서 또 한 겹 깊게 들어가는 거지.

심장을 갈라보면 이렇게 되어있구나.

눈알은 찌르면 이렇게 쪼그라드는구나.

대장을 가르면 이런 모양이구나.

아 그래. 그 융털이라고 있잖아? 대장 안에.

난 그게 양털 같은 건 줄 알았지. 근데 전혀 다르더구먼.

대장 길게 뽑아서 무슨 꼼장어 배 가르듯이 싹 가르고 안에를 만져보니까

부들부들하게 뭔가 우툴두툴하긴 한데 융단 같지는 않더라고.

그래. 이런 맛인 거야.

백날 사진으로 보고 책으로 봐봐야 아무 소용없어.

직접 만져보고 분해해 보고 그래야 제대로 알지.

아무튼 그러다 보니까 이제 맛이 들여서 다른 건 눈에도 안 차.

무조건 싱싱한 몸뚱이를 분해해 봐야겠는 거야.

그래서 또 그 자살명소 찾아다니는 짓거리를 했지.

발견하면 가져와서 또 분해하고. 감탄하고.

그러는데 시간이며 돈을 다 때려 박은 거지.

아 그렇다고 지금 내가 뭐 눈물의 범죄 고백 이런 거 하려는 건 아니고.

인제 와서 막 후회하고 벌벌 떨고 이런 것도 아니야.

죄책감이니 법적 책임이니 윤리니 이런 거 가져다 대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왔기도 했고.

그럼 왜 내가 굳이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이게 일이 좀 이상하게 되어버렸거든.

봐. 내가 분해 강박 있다고 했지?

근데 강박이 분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조립하는 거에도 있어.

청소기도 티브이도 한번 싹 분해해서 충분히 만족하면

이제 그다음엔 적어도 겉으론 온전하게 만들어 놓는 거지.

그렇게만 해놓으면 뭐 어떤 건 또 그럭저럭 작동하기도 하고

어떤 건 완전 먹통이고, 어떤 건 되다 안되다 제멋대로 이런단 말이지?

아무튼 뭐든 적어도 원래 모습으로는 돌려놔야 한단 말이야.

사람도 이제 조립해놓고 싶어서 내가 무슨 짓을 했냐면.

조각 조각난 내장이랑 뼈랑 살점들 전부 잘 모아다가 시체 뱃속에 쓸어 담고

이제 정성껏 바느질 해서 사람 모습 비슷하게는 만들어 놨단 말이야.

뭐 찢어져서 볼품없어진 눈이라도 눈꺼풀 안에 넣어 놓고.

이빨도 나름대로 크기순서 대로 잇몸 안에 박아넣고.

손가락도 어찌어찌 짜 맞춰 열 개 만들어서 제대로 된 사람 구색은 갖춰놨어요.

그렇게 5명 전부 다 어설플지언정 제대로 만들어 놨단 말이야.

그냥 조립이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데….

몰라. 내가 이제 완전히 미친 건지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이것들이. 간신히 사람처럼 빚어놓은 이것들이….

자꾸…. 자꾸 움직여. 그 사람 같지도 않은 넝마들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꼭 재조립해놓은 티브이가 가끔 이상한 화면 틀어주는 거.

또 청소기가 시끄러운 소리 내면서 덜덜 떨리는 것처럼.

이 시체들이 어떨 땐 막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덤벼들기도 하고.

어떤 놈은 신들린 것 마냥 제자리에서 통통 튀고.

또 어떤 건 꼭 불에 던져진 거 마냥 소리를 있는 대로 질러.

그게 대체 뭔데?

시체 조각이 왜 고쳐지다 만 사람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는 건데?

왜 내가 매일 밤 그놈들이 지하실 문을 부수고 기어 나올까 봐 걱정해야 하는데?

왜 이놈들이 질러대는 소리 때문에 이웃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불안해 해야 하는데?

하…. 이쯤 되니까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싶어서 지하실을 꽁꽁 잠가놓고 안 내려갔지.

근데 그러니까 이제 이것들이 문을 두들겨.

내보내 달라는 것처럼.

기세가 보통이 아니야.

모르겠어. 지금까지 막 무시는 하고 있는데

이것들 언제 지하실에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어.

이제 나도 지치기도 했고 이것들이랑 끝장을 보려고.

집에 돌아가는 대로 도끼 한 자루 들고 그 망할 지하실로 내려가서 그것들 전부다 부숴버릴 거야.

뭐 그놈들이 단체로 달려들지도 모르지만, 이 악물고 박살 내야지.

그놈들이 내 몸을 찢어버리건 내가 그놈들을 부숴버리건 둘 중 하나야.

그래서 각오를 다질 겸, 그리고 혹여나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누구한테건 비밀을 털어놓을 겸 여기 온 거지.

내가 살아남으면 여기 올 일 없을 것이고.

죽으면 당연히 못 올 테니 당신은 날 보는 게 마지막일 거야.

내 말을 믿건 안 믿건 그건 상관없는데 내가 한 말 잊어버리지는 말아.

적어도 한 사람은 기억해 줘야지. 안 그래?

좋아. 할 얘기는 다 끝났으니 슬슬 가봐야지.

그 만들어지다 만 조립 인간들이랑 끝장을 보러 말이야.

적어도 내가 지하실 바닥에 조각나서 굴러다니지 않길 기도나 해줘.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