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과 동티.


역마살（驛馬煞）

살의 일종으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 운명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살이 덩치를 키울수록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 강하니, 진득하게 앉아 있기 힘들며 직장생활에 있어서는 이직이 자주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생님. 저 아는 분이 너무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단골손님의 말에 따르면 아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수험생인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계속 밖으로 나돌아다닌다고만 했다.

자식 앞날 걱정에 어르고 달래봐도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건 그때뿐인지라 너무 답답한 탓에 자주 가는 절의 주지 스님을 찾았다.

“아드님은 원체 타고난 역마살이 강합니다. 더군다나 그 살이 올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뿐이니 보살님은 걱정하지 마시지요. 가만 놔두면 잠잠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공부를 너무 안 해서 문제라니까요. 이러다가 재수하게 생겼어요.”

“붙잡아 두려 하면 할수록 더 역효과가 날 겁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앉아 있게 되니 조급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주지 스님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아들 좀 어떻게 해달라며 하다 못 해 부적이라도 써달라고 생떼를 썼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아들에게는 어지간한 부적은 잘 듣지도 않고 자칫하면 화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들 대학 욕심에 차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앉아만 있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정말 강한 부적입니다.”

이어지는 주지 스님의 경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홀린 듯 부적을 들고 온 아주머니는 아들의 교복 바지에 부적을 넣어두는 것도 모자라 꿰매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더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정확히는 돌아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불구가 됐으니 평생 휠체어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니 돌아다니고 싶어도 돌아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스님이라는 사람이 악의가 있어 그런 부적을 쓴 건지, 지니는 것도 모자라 한술 더 떠 바지에 꿰매서 역마살을 누르는 힘이 강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저에게 하시는지요?”

“그게……. 제가 얼마 전에 혼자 여행 갔을 때 들었어요. 하필이면 그때 밤 산책 중이어서 더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얼른 숙소에 가려고 하는데 멀리 보이는 건물 사이에서 뭔가가 절 빤히 보고 있었어요. 좀 전까진 아무도 없었는데.”

그것을 본 이후 그녀는 매일같이 꿈에 귀신이나 좀비에게 쫓기다가 깨어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하소연을 해댔다.

그녀가 여행지에서 산책했던 곳을 찾아보니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짙게 깔린 것이 결코 산 사람에게 이롭지 못한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서 밤에 살 맞은 지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으니 그녀에게 동티가 나 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꿈속에서 쫓기는 선에서 끝난다는 것이었다. 만약 잡혀서 괴롭힘을 당하는 지경까지 갔더라면 그것들이 그녀의 집에 확실히 들어온 것을 뜻하니,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정말 일이 힘들게 되었을 것이다.

영상 통화로 그녀의 집안을 보고 버릴 물건들과 배치를 바꿔야 할 가구들을 알려주고 몇 가지 물건을 구해 정해진 곳에 두라고 했다.

“선생님. 감사해요. 그 뒤로 무서운 꿈을 꾸지 않고 푹 자요.”

그렇게 그녀는 감사를 전해왔고, 나는 그것들을 집에 못 들어오게 막아준 조상신에게 더 감사하라고만 했다. 정말 감사하면 복채 좀 달라고 하니 바쁜 일이 생겼다며 부리나케 전화를 끊는 손님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