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야트막한 언덕.

외눈박은 언덕배기에 턱 하니 걸터앉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서당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이었기에 서당 역시 한 칸이 고작이었고

나이 지긋한 훈장이 대여섯 명을 앉혀 놓고 글을 가르칠 뿐이었다.

다만 외눈박이 눈여겨보고 있던 것은 서당 안이 아니라

서당 밖에서 열려있는 문을 빼꼼히 훔쳐보고 있는 너저분한 차림의 두 아이였다.

보아하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귀동냥으로 글을 배우려는 듯했다.

“거참 기특한 아이들일세.”

외눈박은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듯하여 살짝 끼어들려 한 것이다.

“안녕하시오. 이야기 찾아 전국 팔도 두루두루 헤집고 다니는 이야기꾼 외눈박이라 하오.

외눈박. 내가 박가니 그렇게 부르시오.

내 지나가는 길에 열심히 학문을 갈고닦는 기특한 아이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리 찾아왔소이다.

마침 잠시 머리 쉼을 하는 듯하니 내 재미난 이야기로 아이들 공부하는데

자그마한 일조를 할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소이까?”

훈장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야기란 말에 아이들 눈이 번뜩 뜨였기에 괜찮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시오. 안 그래도 목이나 좀 축이고 천천히 할 생각이었으니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면 어디 한번 들려주오.

내 삯은 못 치러도, 요기할 간식거리 정도는 대접할 수 있으니.”

훈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외눈박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자, 거기 너희 둘. 너희도 이리 오거라. 이야기는 많이 들을수록 재미난 법이니.”

밖에서 쭈뼛거리고 있던 아이들은 외눈박의 말에 반색하며 외눈박에게 달려왔다.

훈장은 다소 못마땅한 얼굴을 보였지만 크게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외눈박은 아이들이 내미는 다과를 받아먹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자. 이 외눈 아재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는 저 산 넘고 들 질러 멀고 먼 곳에 있던 숨겨진 마을.

귀태들이 모여 살던 귀태촌에 대한 이야기야.”





귀태촌은 산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지.

왜 그런고 하니, 귀태란 것들과 그 가족들이 살던 마을이었거든.

그럼 귀태란 무엇이냐?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 귀신의 자식이라고 해서.

사람과 요괴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요를 귀태라 한 다 이 말이야.

요괴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처녀가 귀태를 잉태하기도 하고,

또 진심으로 요괴에게 마음을 주고 귀태를 가지기도 하고.

뭐 귀태가 백이 있으면 백 가지 사연이 있을 테지만,

같은 걸 꼽자면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배척받았단 거지.

요괴의 자식이란 것도 그렇지만 귀태들은 딱 봐도 보통 사람들이랑 달랐거든.

손톱이 엄청나게 길거나, 이가 날카롭거나,

눈이 쭉 하고 찢어진 것도 있었고 머리에 뿔이 난 녀석도 있었지.

척 보기에 반쪽짜리 요괴처럼 생겼으니

귀태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구하게 살수밖에.

버림받고. 쫓겨나고. 도망치고.

그런 귀태들이 알음알음 모여든 곳이 바로 귀태마을이었어.

깊고 깊은 숲속에 숨어 몰래몰래 만들어진 귀태촌이었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산 아랫마을에서 나물 캐러 온 처자. 사냥 나온 땅꾼.

약초꾼이나 나무꾼까지. 한두 번씩 귀태촌을 보게 되었지.

본 사람들이 생기니 이야기가 전해지기 마련이고,

이야기야 금세 나쁜 소문이 되어서 저잣거리에 돈 거야.

‘저 산속 깊은 곳에 귀태촌이 있다더라.

가까이 가면 산채로 껍질이 벗겨져서 잡아먹힌다더라.

병을 옮기고 액을 끼얹는다더라.’

하는 나쁜 이야기들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렸지.

귀태란 존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 당시만 해도 요괴란 것은 호랑이보다 몇 곱절은 무서운 존재였으니 말이야.

그리고 겁을 먹은 사람들은 거칠게 변하기 마련이지.

그래서 그 산 아랫마을에서는 돈을 모아서 요괴사냥꾼을 불러들인 거야.

사악한 귀태들을 모조리 없애 달라고 말이지.

그때 찾아온 이가 최고의 요괴사냥꾼 서리태였지.

‘저 산속에 사는 귀태들 때문에 하루도 편하게 자지 못합니다.

언제 그놈들이 마을을 습격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을 어지럽힐지 모르니

부디 그 사악한 귀태들을 없애 우리 마을을 구해주십시오.’

서리태를 불러온 마을 대표라는 이는 그렇게 말했어.

서리태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묵묵하게 산으로 올라갔지.

귀태촌은 산속 깊고 깊은 곳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지만,

과연 최고의 요괴사냥꾼인지라 어렵지 않게 귀태촌을 찾아갈 수 있었어.

그렇게 찾아간 귀태촌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었어.

그냥 빈곤한 산골 마을. 딱 그 모습이었지.

귀태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열심히 흙을 다져 집을 지었고,

거친 땅을 일궈 밭을 만들어 놓았어.

약초를 캐고 산짐승을 잡아가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지.

그 모습을 본 서리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어.

이미 알고 있었던 게지. 귀태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인간보다 특출나게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고

특출나게 나쁘지도, 특출나게 착하지도 않은 자들.

그저 태생이 그런지라 다른 외모를 가진 채 배척받을 뿐.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우리네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악한 괴물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지.

그런데도 서리태가 귀태촌에 들어서자 다들 벌벌 떨었어.

칼을 차고 찾아온 인간이 자기들을 어찌 대하는지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십수 명은 될법한 이들은 전부 겁먹은 토끼마냥 웅크린 채 다짜고짜 싹싹 빌었지.

‘아이고 나으리, 저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눈에 띄지 않고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서리태는 그들을 쭉 둘러보았어.

귀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인간 부모, 조부모들도 있었지.

요괴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가 가득한 서리태였지만

서리태는 귀태와 그 가족들을 처단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들은 죄가 없었으니까.

요괴의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죽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죄가 될 터였지.

때문에 서리태는 칼을 뽑는 대신 그들을 안심시키고 말했어.

“내겐 진실이 보이는 눈이 있다.

그 덕에 여기 있는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죄가 없는 너희가 웅크리고 떨 이유는 없다.

스스로 떳떳하다면 당당히 일어나 마주 서라.

너희는 그럴 자격이 있다.”

그 말에 겁을 먹고 있던 귀태들의 떨림이 멈추었어.

당당히 일어나 마주 선다니.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지금까지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았으되 죄인이오

태어났음에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였어.

언제나 숨고 웅크리고 빌어야 했지만, 서리태는 그들에게 일어서라 말한 거지.

하나둘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 서리태를 마주했어.

귀태들의 모습을 잠시 둘러본 서리태는 모두가 들리게 얘기했지.

“숨고 도망쳐야 할 것들은 죄지은 자뿐이다.

요괴의 핏줄이건 인간의 핏줄이건 죄가 없는 이들이 숨어 살 이유는 없다.

그러니 지금처럼 당당히 일어서서 자신 있게 나서야 한다.

세상에 배척받아 마땅한 존재는 없으니 숨지 말고 일어나라.

지금 용기를 내지 않으면 평생을 죄인으로 살 것이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세상의 일부가 되어라.

절대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서리태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몸을 돌려 마을로 내려갔어.

처음부터 서리태는 귀태를 토벌하기 위해 온 게 아니었던 거지.

고작 몇 마디 말일지언정, 귀태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거야.

다행히 서리태의 말은 귀태들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졌어.

그리고 산 아랫마을로 내려간 서리태는 이번엔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귀태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악한 존재가 아니니 처단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도 죄 없는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한다.

배척하지 말고 구성원으로서 받아주어라.”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리태의 말을 귀태들처럼 감명 깊게 듣지 못했어.

오히려 요괴의 앞잡이니, 악의 수장이니 하면서 쇠스랑이며 낫이며 들고 처단하겠다고 달려들었지.

서리태가 그걸 예상 못할 리는 없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날래게 몸을 움직였지.

다들 서리태가 휘두른 주먹이며 발이며 칼집에 맞고 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는 서리태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들 역시 조금씩 변해보기로 했지.



외눈박이 주변을 둘러보자 아이들 뿐 아니라 훈장마저 이야기에 빠져든 채 외눈박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어.

귀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점차 사라져갔고

귀태들이 이따금 마을로 찾아오기도 했지.

처음엔 겁을 먹었던 마을 사람들조차 조금씩 마음을 열었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손을 돕기도 하고 친절을 베풀기도 하면서.

아주 조금씩 말이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귀태들은 결국 마을과 동화되었지.

귀태촌은 사라지고 아랫마을에서 귀태, 인간 할 것 없이 더불어 살게 된 거야.

어떤 이들은 마을의 중책을 맡아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

대부분은 천수를 누리고는 마을의 일원으로서 눈을 감았어.

귀태들이 새로운 인간 짝을 만나 자손을 남겼고.

그 자손은 다시 자손을 남겼지.

그중 몇몇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위인으로 성장하기도 했어.”

외눈박은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고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배척받아 마땅한 사람은 세상에 없어.

죄를 짓지 않은 이상 숨어 살 이유도 쫓겨날 이유도 없지.

스스로 떳떳하다면 당당히 일어나야 하고,

또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죄 없는 이를 배척 해서는 안 되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읽는 똑똑한 너희들은

이 외눈 아재가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알겠지?

이래저래 편 가르지 말고 고루고루 친하게 지내란 얘기야.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도 받으면서. 잘 알겠지?

그래. 그럼 오늘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아이들의 와아~ 하는 손뼉 소리를 한동안 듣던 외눈박은 슬쩍 몸을 일으켜 훈장에게 다가갔다.

“저 두 아이 말이오. 방안에 들여서 글을 가르치려면 얼마가 필요하겠소?

내 보니 제법 똘똘한 아이들인 것 같아 그냥 썩혀두기 아까워서 말이지.

나한테 돈이야 겉치레 같은 것이니 얼마가 필요할지 말씀해 보시오.

내 마련해 보겠소이다.”

훈장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두 푼 드는 건 아니네만 방금 이야기로 그 삯은 치른 셈 치겠소이다.

이미 날 충분히 부끄럽게 만드셨으니 더 부끄러운 꼴을 보일 순 없지.

내가 책임지고 모두에게 평등한 가르침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외눈박은 껄껄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역시 훌륭한 교육자시오.

정 그러하시면 내 얻어먹은 간식 값이라도 치르고 가리다.”

외눈박은 작은 주머니 하나를 훈장에게 쥐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눈박이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자 훈장은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동전 몇 푼쯤 들었으려나 생각했지만, 안에서는 꽤 씨알 굵은 금붙이 몇 개가 굴러 나왔다.

“허. 참…. 거 보통은 아니구먼.”

훈장은 기가 찬다는 듯 외눈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By. neptunuse







척안재담（隻眼才談） - 깜북이 https://humoruniv.com/fear82125
척안재담（隻眼才談） - 두꺼비 총각 https://humoruniv.com/fear82238
척안재담（隻眼才談） - 초롱각시 https://humoruniv.com/fear82271
척안재담（隻眼才談） - 소쩌귀와 소리쟁이 https://humoruniv.com/fear82277
척안재담（隻眼才談） - 환락거미 https://humoruniv.com/fear82294
척안재담（隻眼才談） - 서리태 https://humoruniv.com/fear82300
척안재담（隻眼才談） - 투다니의 서반벌 https://humoruniv.com/fear82306
척안재담（隻眼才談） - 반잡객 https://humoruniv.com/fear82320
척안재담（隻眼才談） - 귀장꾼 자리공 https://humoruniv.com/fear82338
척안재담（隻眼才談） - 외눈박 https://humoruniv.com/fear82356
척안재담（隻眼才談） - 귀태촌 https://humoruniv.com/fear82412
척안재담（隻眼才談） - 귀면각 https://humoruniv.com/fear82450
척안재담（隻眼才談） - 꼭두서니 https://humoruniv.com/fear82481
척안재담（隻眼才談） - 올방개 https://humoruniv.com/fear82493
척안재담（隻眼才談） - 백의태자 https://humoruniv.com/fear82511

척안재담（隻眼才談） 외전 – 솔째기바리 https://humoruniv.com/fear82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