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졌다.
나와 성준이는 함께 폐교에 들어가야만 한다.
머리가 아파온다.
이 폐교에는 안 좋은 소문이 많았다.
들어갔다가 의문사했다던가, 살인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정신병에 걸려나왔다던가 등등.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기는 내기였고 나는 성준이와 폐교에 들어가야 한다.
친구 한 명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야! 빨랑빨랑 들어가~ 옥상에서 손 흔드는 것도 잊지 말고.”

심호흡을 하고 학교 정문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성준이가 인상을 쓰며 쫓아온다.
표정은 전쟁터에 나가는 일당백 장군감이었지만, 실은 많이 두려울 것이다.
성준이는 무서운 걸 질색하는 애니까.
아마 괜찮은 척하고 있는 것이겠지.
정문 앞에 도착하자, 여름인데도 오한이 느껴진다.
이곳을 정말 들어가야 한다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성준이에게 물었다.

“이제 들어갈까?”
“응..”

나는 지면에 뿌리처럼 박혀 안 떨어지려는 다리를 떼어냈다.
그리고 운동장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녹이 슬어 반쯤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 축구 골대.
전부 부서진 학교의 출입문들과 창문들.
바닥 곳곳에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잡초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밤중에 폐교를 향해서 걷고 있다는 게, 꿈처럼 느껴졌다.

두려운 마음이 들 것 같아서 머리를 휙휙 젓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 학교도 과거엔 학생들이 지내던 장소였다.
때로는 시험을 보느라 열심히 공부했을 테고, 때로는 신나게 축구를 하며 놀았을 테다.
지금은 삭막해진 운동장이었지만, 과거엔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고백하던 장소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운동장을 절반정도 걸었을 쯤, 뒤를 돌아보며 성준이에게 물었다.

“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성준이는 내 눈을 안 쳐다보고 고개를 돌려가면서 주변을 보고 있었다.
겁을 먹은 듯 보였지만, 어떻게 해줄 방법이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저 빨리 학교 옥상까지 올라간 뒤, 손을 흔들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현관 앞이었다.
얼핏 보이는 복도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긴장이 돼서 그런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성준이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성준이는 돌만큼 단단하게 굳은 표정이었는데, 기절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복도로 걸어가면서 계속 말을 꺼냈다.

“너무 무서우면 학생들이 평범하게 지내던 모습을 상상을 해봐. 별로 안 무서워. 그냥 이곳도 예전엔 사람이 살았던 곳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지는 전부 허물어져 있었고, 책상과 의자들은 부서진 채로 복도에 널려져 있었다.
곰팡이 냄새가 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머리가 약간씩 아파왔다.
성준이가 내 어깨를 잡았다.

“야. 너 말대로 학생들이 지내던 상상을 하니까 더 무섭잖아. 여기에 정말 학생 귀신이라도 있을 거 같다고.”
“그러냐. 미안해..”

정말이었다.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더 무서워졌다니.
괜히 머쓱해서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그래도 아까부터 굳어있던 성준이가 말을 하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이제 올라가자. 옥상이 5층에 있으니까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응. 근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가?”

성준이는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대답했다.

“주변이 너무 밝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지금 새벽에 학교를 들어왔는데, 여기 너무 밝아 보여.”
“그냥 눈이 어둠에 적응돼서 잘 보이는 거 아니야?”
“그런가..”

머리를 계속 갸우뚱갸우뚱하는 성준이에게 말했다.

“빨리 옥상이나 가자.”
“응..”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에는 책상이라든지 의자라든지 콘크리트 조각이라든지 방해물들이 많았는데, 우리는 말 없이 그것들을 피해서 지나갔다.
2층까지 올라왔지만,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 귀신은 없으니까.
그런 것들은 전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었다.
긴장이 풀리니 웃음이 나오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밑에 층 어딘가에서 괴상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뛰어 올라오는 지, 불이 빠르게 켜지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와 전등은 점차 가까워졌고,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며 집까지 뛰어 올라갔다.
그런 상황이 8번 정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귀신을 봤다면서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내가 발목을 다쳤을 때, 해결되었다.
다리가 아파서 올라오던 무언가에게 도망치지 못하고 4층에서 주저앉았다.
이제 귀신에게 끌려 저승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잠시 후 올라온 건 우리 형이었다.
나를 놀리려고 이때까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장난을 쳐온 것이다.
곧바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형은 팬티차림으로 아빠에게 죽도록 맞았다.
그 뒤로 계단에서 쫓아오는 무언가는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3층이다.
역시 별거 없네 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성준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간 거지?
한동안 기다려보아도, 성준이는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한 층을 내려가자, 어둠 속에 서 있는 성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야. 거기서 뭐 해?”

대답이 없었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뭐하냐고.”

하지만 성준이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서 성준이의 팔을 흔들었다.

“왜 그래?”

성준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대답했다.

“아. 미안. 잠깐 딴생각했어.”
“괜찮은 거 맞아?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아니야. 올라가자. 올라가야지. 근데 무슨 소리 들리지 않냐?”

아까는 학교가 밝다고 하더니..

“소리라니? 뭐가 들려?”
“고양이 울음소리.”
“하나도 안 들리는데?”
“자세히 들어봐.”

뜬금없이 고양이 소리를 들으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웠지만, 한번 집중을 해보았다.
그러자 정말 어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음.. 들리긴 하네.”
“맞지? 이거 고양이 울음소리야.”

근데 폐교에 들어와서 뭐 하고 있는 거일까.

“빨리 올라가기나 하자. 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어.”
“응..”

나는 계단을 다시 올라가며 성준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왜인지 그러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배고프지 않아? 이따가 뭐 먹을래?”
“응. 돈까스 먹고 싶어. 엊그제부터 자꾸 생각났어.”
“그래? 무사히 폐교에서 나가면 내가 사줄게.”
“정말? 맛있겠다.”

우리가 3층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래에서 난 것 같은데.
성준이도 들었는지, 멈춰 서서 나에게 물었다.

“방금 들었어?”
“응. 쿵 소리가 어디서 들린 거지?”
“아니 그거 말고.. 여자 웃는 소리.”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언제 들렸어.”
“들려. 지금도 조그맣게 웃고 있어.”

나도 모르게 소리에 집중하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성준이에게 말했다.

“헛소리하지 마.”
“진짜야. 우리한테 다가오고 있어.”
“뭐.. 뭐라고?”

나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아래층을 내려다봤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여자가 금방 올라 올 거야.”

성준이는 놀라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리를 내밀어 다시 아래층을 바라보고 있는데, 성준이가 갑자기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어야 해.”
“뭐.. 뭐?”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어디를 가는 거야?!”

성준이는 5층에 도착하자, 망설임 없이 왼편으로 꺾어 한 교실에 들어갔다.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성준이가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너도 빨리 숨어. 시간이 없어.”

나는 일단 앞쪽에 있던 교탁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어디선가 쿵쿵하는 진동이 작게 느껴졌다.
그 진동이 5층까지 올라왔을 때는, 정말 성준이의 말대로 웃음소리도 들렸다.
온몸에서 닭살이 돋아났다.
그 말이 진짜였다니.

숨을 한참 죽이고 있자, 어느 순간 웃음소리와 쿵쿵하는 진동이 없어졌다.
계속 기다려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교탁의 작은 틈 사이로 눈을 집어 놓고 전면을 바라봤다.
흐릿하지만 앞이 보인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상을 맞추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성준이가 교실 한복판에서 네발로 엎드린 채, 문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지?
성준이의 입에서는 굵은 침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눈은 개나리처럼 노랬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성준이가 내 방향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헛숨을 들이킬 뻔한 걸 양손으로 막아 간신히 참아냈다.
성준이는 네발로 나에게 기어 왔다.

“여자가 돌아갔어. 이따가 또 올 거야.”

내 고개가 저절로 상하 반복 운동을 했다.
성준이의 노란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절대로 해가 뜰 때까지 교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왜.. 왜?”
“그렇게 되면 이 학교에 영영 갇히니까.”

그렇게 말하고 성준이는 교실 구석으로 가서 몸을 웅크렸다.
나는 몸에 힘이 풀려서 제 자리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한밤 중에 폐교에 들어와 웃는 여자를 피해 숨어있다.
친구는 짐승처럼 변하더니, 해가 뜨기 전에는 교실에서 나가지 말라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영화에서나 벌어질 상황이 일어나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

가장 이상한 건 역시…… 성준이었다.
사람 눈이 어떻게 동물처럼 노래질 수가 있는 거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치 성준이가 귀신에게 쓰인 것 같았다.
손이 떨리며 의문 하나가 생겼다.
성준이의 말대로 교실에 있는 게 안전한 걸까.
혹시 나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들자,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준이는 휴식을 취하는 듯,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복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문 앞까지 온 순간이었다.
성준이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멈춰!”

나는 지체없이 교실을 뛰어나가서 계단으로 향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성준이의 비명에 소름이 돋았다.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 쫓아오지는 않는다.
이제 학교를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계단을 거침없이 내려가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5개 층을 넘게 내려왔는데도, 1층이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가 싶어서 계속 밑으로 향했지만, 출입문은 여전히 없었다.
마치 같은 곳을 맴도는 느낌이다.

힘없이 주저앉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깜깜한 암흑, 바닥에 어지럽혀져 있는 테이블들, 깨진 액자,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든 게 현실감이 없었다.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데, 문득 어떤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끼히히히히히히……”

여성의 웃음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얼마 안 가,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계단을 달려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 여성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30분쯤 밑으로 향했을 때.
여성의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계단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이런 식으로 도망을 가면, 잡히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게 소리가 들리면 계단을 내려가고, 소리가 멈추면 쉬는 걸 반복했다.

4시간 정도 그러고 있었을까.
어딘가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냄새가 심해서 콧구멍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졌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위로 올라가 귀신과 마주칠 수는 없었다.

하염없이 아래로 향하고 있을 때, 내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어떤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벽 앞에 서 있던 것이다.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옷은 군데군데가 뜯어져 있었다.
썩은 냄새의 근원은 저 사람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저 사람을 지나쳐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가까이 가면 나를 공격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끼히히히히히히……”

어떻게 해야 하지?
위에서는 귀신 같은 여성이 웃으면서 내려오고 있고, 밑에서는 이상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찰나의 순간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던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올바른 선택이기를 기도하면서.

얼마 안 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발을 조심히 움직여 사뿐사뿐 계단을 걸어갔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다르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린다.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숨을 죽이고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그가 몸을 홱 돌리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
힘이 어찌나 센지, 움직일 수가 없다.
그는 나이가 까마득하게 든 노인이었는데, 이목구비가 모두 뭉그러져 있었다.
정신 줄을 놓칠 뻔한 걸 잡아내고 말했다.

“저..저기요?”
“벗어날 수가 없어. 이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어.”

혹시 이 사람도 나처럼 이곳에 갇힌 걸까.
용기를 내고 물었다.

“여.. 여기에서 얼마나 있으셨어요?”
“40년째 있었어. 이제는 전부 포기했어..”

노인은 그렇게 말을 하더니, 내 팔을 놓아주고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주워 들어서 살펴보자, 네모난 종이였다.

“위에서 쫓아오는 여자는 누구인가요?”
“도륙하는 귀신. 잡히면 안 돼.. 부모님이 보고 싶어..…”

노인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다.
넋 놓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망가요.”
“안 돼. 내려가봤자, 소용이 없어..”

노인은 고개를 저을 뿐, 요지부동이었다.

“그만 끝내고 싶어. 어머니 죄송해요.. 흑흑.”

어느새 여성이 코앞까지 왔다.
나는 노인을 내버려 둔 채 계단을 내려갔다.
쉼 없이 10층 정도를 내려오고 나서야, 자리에 누웠다.
문득 노인이 버렸던 종이가 내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펼쳐보니, 세월 때문에 노랗게 물든 사진이었다.
흐릿해서 피사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왜 인지 낯이 익었다.
그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마도 그 노인일 것이다.
한동안 손에 들린 사진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가족사진을 꺼냈다.
두 사진의 크기와 윤곽이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