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나 물어볼거 있는데.

전화 주면 안돼?

왜? 전화는 못해.

아니 그냥.

요새 너무 바빠 보여서.

보고 싶은데

집에 와도 별말 없이 그냥

잠만 자고 나가고 그래서.

요새 정신 없어.

그래도 조금만 시간 내서

같이 있어 줬으면 좋겠어.

바쁘다니까?

알긴 하는데....

요즘 내가 좀 쓸쓸해.

많이 쓸쓸해.

그럼 내가 다 때려치고 집에 붙어서 너랑 놀기만 할까?

내가 어지간한건 다 해줬잖아.

먹고싶다는거 사다주고. 필요하다는거 사다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그거 내가 다 했잖아.

조금만 자유를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것도 해줬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아이 생각도 없었는데 니가 가지고 싶다며.

그래서 그것도 니말대로 해준거잖아.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할까?

우선 미안해.

내 말은 그런뜻이 아니라.

고맙지... 나도.

많이 챙겨주고. 신경써주고.

사랑해주니까.

나도 고마워.

그럼 뭐가 문젠데?

그냥 요새 조금 변한거 같아서.

바쁘단건 알지만 내 얼굴도 잘 안보고

말도 잘 안하니까.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서.

애기 생기고 나서

조금 우울하고 외롭고 그런 느낌이야.

내가 뭐라고 그랬어?

애같은거 안가지는게 좋을거라 그랬지?

괜히 힘들어지기만 하고 후회할거라고.

근데 니가 자꾸 고집 부려서 가진거잖아 아니야?

내가 그렇게 반대 했는데 끝까지 우겨서 내가 들어준거잖아 맞지?

나도 알아.

애기 가진게 후회된다는게 아니야.

난 백번 잘했다고 생각해.

애기 가지고 나서 마음도 훨씬 좋아졌고 행복해졌어.

근데 당신이 예전 같지가 않은 것 같아서.

하.. 봐.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너 먹고픈거 사고픈거 챙겨주겠다고

지금도 뼈 빠지게 일하고 있어.

근데 넌?

나한테 이러고 싶다 저러고 싶다 얘기만 했지 돈한푼 못벌어오잖아.

너 먹여살리는 돈은 말만하면 어디서 튀어나오는 줄 알아?

나도 일하고 싶은데 당신이 반대한 거잖아.

그건 절대 양보 못한다며?

그래서.

이게 다 내 탓이다?

죽을 고생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게 그게 다 나 때문에 그렇다?

아니야 그런 얘기가 아니라

혼자 편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네가 울면서 붙잡는 바람에 이렇게 된거 알아 몰라?

알지....

죽어버리겠다고 난리쳐서 너 받아준것도 맞잖아. 아니야?

맞아. 나도 아는데.

하. 내가 뭘 어쩔까?

뭘 어쨌으면 좋겠어?

어디 안나가고 너랑 집에서 알콩달콩 살까?

나도 그러고야 싶지....

그래 좋아.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그럼 돈은 누가 벌어와?

뭘 먹고 살까? 그 집은 뭐 전기며 물이 그냥 나오는거 같아?

너야 어리고 사회 경험이 없으니까 모르겠지.

세상사 숨만 쉬어도 그냥 돈이 나가.

지금 우리가 인형놀이 하는게 아니라고.

우리 아빠가 보내준 돈 아직 안남았어?

이게 또 정신 못차리고 딴소리 하네.

그거 몇푼이나 된다고.

너 먹이고 입히는 것만 해도 벅찬데.

그러니까 이렇게 밖에서 고생하는거 아니야 내가.

그럼 좀 더 달라고 해볼까?

당신 힘드니까 내가 전화해서 한번 얘기해볼게.

아 진짜!

너 한번만 또 그런 소리 하면 가만히 안둔다.

말해도 내가 말해.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도 답답하니까 그러지.

나도 놀러가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고.

당신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예전엔 엄청 잘해주더니 갑자기 차가워지고.

안아주지도 않고.

자꾸 귀찮다고 그러고.

같이 밥먹으려고 배고파도 참고 기다렸는데.

정작 들어오면 밖에서 먹고 왔다고 하고.

맨날 야근한다고 하고

출장간다고 하고.

난 당신 오는거 하나만 기다리면서 하루종일 혼자 있는데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해주잖아.

그럼 나는?

평생 네 뒤치닥꺼리나 하면서 네가 필요한건 다 해주는게 내 일이야?

정신 차려. 너 공주님 아니야.

나도 네 시종 아니고.

부잣집 귀한 딸래미라 잘 모르나 본데

그 집이 네가 사는 궁전인거 같아?

돈 주고 산 집이고.

돈 빨아먹는 괴물이야.

그리고 또 먹고 자는데만 돈 들어?

사방이 돈 들어갈 곳 천지야.

그 돈들 다 어떻게 하는데?

내가 벌어야 될거 아니야?

나도 하고싶은거 못하고 친구들 다 떠나보내고 쉬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하는데 그건 안보여?

나도 일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어.

근데 너 때문에 못 그만두고 일하는 거잖아.

이게 내 잘못이야?

당신 잘못 아닌거 알아.

근데 나 솔직히 모르겠어.

요즘 들어서 자꾸 의심돼.

혹시라도 바람피는건 아닌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니는건 아닌지.

자꾸 의심이 되잖아.

바람?

와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하는 사람한테 바람?

상사한테 개새끼 소새끼 소리 들을때마다 다 때려치고 싶다가도

너 먹여살려야지. 네 뱃속에 있는

애 생각해서라도 참아야지 그랬어.

마음 같아선 그냥 다 엎어버리고 싶어도 네 생각하면서 꾹 참았다고.

미안해. 내가 좀 우울해서 맘에도 없는 소리 했어.

네가 처음 나 좋다고 했을 때 넌 진짜 순수하고 이쁜 애였거든?

근데 지금은 어떤데?

피부는 푸석하고 머리는 쩍쩍 갈라지고

애 가져서 몸도 망가진데다

점점 바라는것만 많아져.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티비 보면서 내 속 긁어 놓는 것 뿐이잖아.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끝까지 들어!

그때 그 사랑에 빠진 소녀는 어디 갔는데?

지금 네 꼴을 봐.

네 꼬라지가 어떤지를 한번 보라고.

변해?

변한게 누군지 제대로 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나도 다 포기했는데.

당신 위해서 나도 전부다 포기했어.

가족도 포기하고 친구도 포기하고. 남자친구도 포기하고 학교도 포기하고.

내 인생 전부를 다 포기 했어.

그거야말로 네 선택이었지.

네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거잖아.

내가 시킨게 아니었어.

당신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처음엔 무서웠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된걸 어떻게 해.

당신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고,

다시 집에 돌아가면

도저히 예전처럼 못살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당신한테도 책임 있어.

하....

대답해!

대답하라고!

자꾸 이럴 거야?

이젠 나도 지겹다.

마누라라도 된거마냥 잔소리하는거 받아주기도 힘들고.

거짓말 하는것도 귀찮고.

이제 딱히 예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데 뭐하러 내가 고생하냐.

좋아. 그래. 이왕 이리 된거 툭 까놓고 말할게.

내가 잘못 생각했다.

그냥 몸값 받고 보내 줬어야 됐어.

아니면 그냥 죽여버리던가.

어리고 이쁘장한데다 겁먹고 와들와들 떠는게 귀여워서 몇 번 안아줬더니만,

정신이 나가서는 납치범한테 사랑해요 아저씨 이지랄 떨 때 알아봤어야 돼.

역시 넌 미친년이야.

나한테 반한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뭐가 잘못되먹은 거라고.

그게 무슨소리야.

진짜 진심으로 사랑한다니까?

당신도 나 사랑한다면서?

그래서 아이도 가졌잖아.

날 위해서라며?

날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일한거 아니었어?

일은 무슨. 받은 몸값이 얼만데.

매일 매일 돈 쓰느라 바쁘지.

난 너 사랑 안해.

그냥 이쁜 장난감이었지.

그러니까 난 바람피우는게 아니야.

난 네 소유가 아니거든.

아, 니가 내 소유는 맞고.

나중에 돈 떨어질 때쯤 되면 또 몸값 달라고 해야지.

놀랍게도 당신 딸은 살아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돌려받고 싶으면 돈을 내놓으세요.

이러면서.

거짓말이지?

나 사랑한다면서.

사랑한다고 했잖아?

아니야?

사랑해서 안아주는 거라고 했잖아.

사랑해서 아이도 가지게 해 준거라며?

사랑하니까 지하실에서 내보내 준거랬잖아?

그래서 자유를 준거잖아?

그냥 어리고 반반하니까 안은거고.

애 생긴건 내 알바 아니었고.

지하실에서 내 보내준건 그래봐야 집 밖으론 못 나가니까 그런거고.

단말기야 내가 손봐서 나한테 밖에 메시지 못 보내니까.

혹여나 경찰이든 어디든 다른데 연락못하게끔 사전 작업 다 해놨으니까 안심하고 준거고.

뭣보다 사랑한적 없다니까.

난 진짜 사랑했는데.

평생 당신만 보고 살 생각으로

내 인생 다 버리고 매달린건데.

그래서 네가 미친년이란거야.

납치범이 굳이 살려주겠다는데 안가겠다고 매달리는 애가 어딨냐?

얌전히 돌아갔음 그냥 불쌍한 부잣집 공주님 돼서 사람들 수근거림이나 좀 받았을걸.

지금은 애완돼지가 되어버렸으니 너도 참 그렇다.

자기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다시 나 사랑해줘.

다시 지하실에서 잘게.

개사료만 줘도 괜찮아.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그때처럼.

그러니까 나 사랑해줘.

나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나 사랑해줘.

연락 하지마.

잠깐만. 내가 미안해.

제발 나 사랑해줘.

나 진짜 당신 사랑한단말이야.

제발!!!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이상한 소리 안할게.

다 괜찮으니까 용서해줘.

짜증나게 안할거야?

응! 다시는 아무소리도 안할게.

그러니까 용서해줘.

앞으로 내가 진짜 잘할게.

나 안그래도 엄청 피곤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괜히 신경 쓰이게 하지마.

너만 얌전히 있으면 내가 이뻐해 줄테니까.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진짜 내가 미안해.

그리고 진짜 고마워.

좋아. 그렇게 나오면 내가 특별히 용서해줄게.

대신 나도 좀더 신경 써줄테니까 앞으로는 토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겠어?

응! 알겠어. 얌전히 있을게.

시끄럽게도 안하고 조용히 있을테니까.

그래. 앞에 한 얘기는 그냥 화나서 한 소리니까 다 잊어버려.

그냥 홧김에 거짓말 한거야.

지금 일하느라 엄청 바쁘니까 집가서 얘기하자.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갈게.

알겠어.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내가 당신 너무 많이 사랑해.

나도.

응! 기다리고 있을게! 이따가 봐!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