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었다.

내방에 먹을걸 넣어주지 않은게 딱 이틀 전부터였으니, 아마 이틀전에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핸드폰 메시지를 보내도 답도 없고 조용하길래

반년만에 용기 내어 방 밖으로 나와봤더니 눈에 보인건 주방에 쓰러져있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심장마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죽었다는 사실 만은 변함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일단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어둡고 안락한 방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어 한동안 가만히 누워있다가

더이상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부엌에 나와 냉장고를 뒤적였다.

익히지도 않은 소시지를 세 개쯤 해치우고 나서야 슬슬 포만감이 찾아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일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아빠한테 연락하는건?

안그래도 자식 농사 망했네, 방 밖엔 나오지도 않는 쓰레기 새끼를 낳았네 하며 난리를 치는 인간이었다.

엄마가 죽을 동안 넌 뭘했냐며 노발대발 할게 뻔했으니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경찰이나 119에 연락하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하는 것도 싫고, 누가 이 집으로 오는것도 싫다.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방법도 없었기에 우선 엄마를 끌어다 엄마 방 침대에 눕혔다.

그리 무겁지도 않았지만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금방 기력이 빠져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방으로 돌아가 한숨 자고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음날 일어나 부엌을 뒤져본 뒤에야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식탁에 있던 엄마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내가 보낸 수십통의 메시지들 사이로 아빠가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생활비 입금했어. 이달엔 조금 더 넣었으니까 아껴 써.]

돈!

그걸 보자마자 곧장 엄마의 지갑을 찾아 카드를 꺼내었다.

돈이 들어있는 카드. 비밀번호는 언제나처럼 내 생일일게 뻔했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생기자 모든게 해결된 기분이었다.

우선은 배부터 채우기로 하고 내 휴대폰에 배달 어플을 깔았다.

어렵지 않게 카드를 등록한 뒤,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순살치킨과 피자. 토핑도 알차게 추가하고 콜라는 제일 큰걸로 주문했다.

현관 앞에 놔두고 가라는 요청사항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집어오기 위해 문을 여는데는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다행히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식탁 가득 배달음식을 펼쳐놓고 잠시 그 황홀한 모습을 감상했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 엄마가 삼시세끼 문 앞에 차려놓던 밥을 먹을 때는 꿈도 못꾸던 푸짐한 식탁.

그간 굶주린걸 보답이라도 받듯이 행복하게 배를 채워 갈 수 있었다.

좋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워 방안에 숨은 이후 이렇게 좋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일이 쉽게 풀렸다 생각하며,

남은 음식을 대충 한켠에 치워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만족스럽게 잠을 청했다.

내일은 뭘 먹으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3일이 지났다. 돈 걱정은 없었고, 잔소리할 사람, 눈치 볼 사람도 없지만 조금 걸리는게 있었다.

열심히 울려대는 엄마의 휴대폰.

발신자는 아빠였다.

어제부터 한 시간에 한번꼴로 전화가 오는 통에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동안 울리던 전화가 끊어지자, 이번엔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제부터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사람이 전화를 하면 제깍제깍 받아야지.

할 얘기 있으니까 이거 보는 대로 전화해.]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놓고 식탁에 내려놓았다.

시끄럽게 울려대질 않으니 이젠 좀 덜 신경 쓰이겠지.

짜증 나는걸 치워버렸으니 위안 삼아 오늘은 하고 싶었던 게임을 사기로 결정했다.

거기에 비싼 음식도 호화스럽게 시켜 먹을 생각이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엄마 방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큰마음 먹고 뭔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불이란 이불은 전부 꺼내서 엄마를 완전히 덮었다.

그것도 모자라 창고에 있던 커다란 비닐천까지 끌고 와서 꼼꼼히 덮자 그나마 괜찮아진 것 같았다.

고급진 향초 같은걸 식탁에 켜놓으면 좋을테니

하는김에 온라인으로 이것저것 구매하기로 했다.

향초. 탈취제. 편히 입을 츄리닝도 몇 개 주문하고 간식이랑 헤드폰도 사면 좋을 것 같았다.

장바구니를 채워갈 때마다 말 못할 쾌감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양껏 채워 넣고 결제 버튼을 누르자마자,

잔액 부족으로 결제가 취소되었다.

짜증을 내며 그나마 필요 없어 보이는 걸 몇 개 빼자 어찌어찌 결제는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대로는 곤란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엄마 핸드폰을 집어들자,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와 함께 장문의 메시지가 수두룩하게 와있었다.

[지금 남편 알기를 뭘로 아는거야?

난 그냥 돈벌어다 주는 기계야?

전화 한번 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당신이 날 이따위로 무시하니까 자식새끼까지 그 모양이지.]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 몇 개를 대충 훑어보고는 답장을 했다.

[돈 좀 더 보내줘.]

이후 칼같이 전화가 왔기에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냥 돈이나 부쳐주면 좋을텐데 전화라니.

짜증이 나서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떼어 던져버렸다.

먹다 버린 배달음식과 쓰레기들 사이에 처박혀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꼴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풀렸다.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만원 단위로 주문을 해봐도 여전히 잔액 부족이다.

며칠 정도는 과자랑 간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으니 괜찮지만,

문제는 어제부터 족발이 미친 듯이 땡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더 힘을 내보기로 하고는 엄마 휴대폰을 들었다.

부재중은 고작 3개 뿐이었지만, 메시지는 수십개가 와있었다.

[지금 사람 말려죽이려고 그래?

내가 많은거 바랬어?

타지에서 고생하는 남편 전화받는게 그렇게 싫을 일이야?

전화도 안받고 답장도 안하다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따위 돈타령이야?]

여기까지만 읽고 다시금 답장을 보냈다.

[돈이 없어서 굶고 있어. 돈 좀 보내줘.]

잠시 후, 몇 번의 실패 끝에 결제에 성공했다.

돈이 들어왔다!

난 포효하듯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다시금 쇼핑을 시작했다.

얼마간 돈이 없어 고생했으니 나에게 주는 상으로

아주 거창하고 만족스럽게 돈을 쓸 생각이었다.




이후 몇 주 동안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엔 돈을 제법 많이 보내준 모양이었다.

그덕에 내가 할 일이라고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하루 종일 게임하다가 먹고 싶은게 있으면 시켜먹는 것이 전부였다.

씻어라, 밖으로 나와라, 청소 좀 해라. 나와서 얘기 좀 하자...

이따위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 살맛이 났다.

안 좋은 냄새가 거실까지 퍼지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도 된 상태였다.

진작 베터리가 나갔을 엄마 휴대폰은 돈이 떨어지지 않는 한 다시 집어들 일조차 없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쓰레기들을 피해서 주방으로 나왔다.

어제 먹던 치킨이 반 이상 남아있었지만 식은걸 먹고 싶지는 않기에

전부 쓰레기가 그득 차 있는 거실로 던져버리고는 새로 피자를 시켰다.

유튜브라도 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려던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게 전화를 걸 사람은 없으니 이상한 스팸 전화 일게 분명했다.

받지 않고 넘겨버린 뒤 다시금 영상에 집중했지만,

날 귀찮게 하려 작정했는지 이번엔 메시지가 화면을 가렸다.

[.....에서 연락드립니다.

해외 거주 중이신 가족분이 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 뒤늦게 확인되었으나,

가족 분들게 연락이 닿지 않아....]

역시나 스팸이었기에 곧바로 차단을 해버리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크게 숨을 들이켜며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다.

따뜻한 집에 싫은 소리 하는 사람 하나 없고

먹고싶은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싫은건 안하고 원하는건 다 한다.

꿈만 같은 공간.

나도 모르는 사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확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지금 천국에 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