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리의 사람들이 제법 잘 닦여져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 길 끝에 있는 마을은 항구가 있는 바닷마을로,
배를 통해 귀한 물건들이 잔뜩 들어오기에 보따리장수들이나 마차 상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입을 열어 약조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렇게 걸음을 맞추고는 무리지어 움직이곤 했다.
그 무리의 선두에 있던 장사꾼 박씨는 시간을 가늠해 보고는 뒤따라 오던 이들에게 외쳤다.
“곧 해가 질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십시다.”
그 말 한마디에 다들 일사분란하게 길 옆 공터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박씨가 이 무리에서 암묵적인 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박씨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외눈박이라는 사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내가 평생을 보따리 장수로 살면서 이 다리 하나는 쓸만하다고 자부했는데 말이요.
그쪽도 걷는 폼새가 범상치 않으시구만. 나 보따리 매고 여기저기 발품팔아 먹고사는 장사꾼 박씨요.”
박씨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언제나 무리 맨 선두에서 걸으며 길잡이 역할을 해왔는데,
이번엔 웬 애꾸눈 방랑객 하나가 자신과 나란히 걷는 것이었다.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손쉽게 자신과 속도를 맞추는 외눈박이 신통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이야기꾼 외눈박이요. 외눈박이 말고. 외눈박. 내가 박가이니 그렇게 부르시오.
나 역시 이야기 찾아 전국 팔도 두루두루 헤집고 다녀 걷는데는 이골이 난 인물이니
이정도야 식후 산보나 마찬가지 외다.”
껄껄 하고 웃어보이는 외눈박을 보며 박씨 역시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간만에 걸음을 같이할 친우를 만났구만.
좋소. 내 오늘은 좋은 사람 만난 인연으로다가 술한잔 대접 하리다.
내가 밥굶고는 살아도 술없이는 못사는 사람이라
항상 술은 넉넉히 들고 다니니 걱정말고 한잔 받으시오.”
외눈박 역시 술이란 말에 썩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 술이라면 마다할 사람이 아니니 잘되었구만.
좋소이다. 그럼 내 술값으로다가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리다.”
박씨는 매고 있던 보따리에서 술병과 잔 두 개를 꺼내며 대답했다.
“그것도 좋지. 자자 그럼 우선 한잔 적시고 한번 풀어보시오.”
그렇게 시작된 술잔이 오가는 동안 어느새 외눈박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이 장사꾼들이나 짐꾼들이었는데
보아하니 이야기꾼이라는 외눈박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박씨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치들이 우리 외눈선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어떻소?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 하나 들려주는 것이?”
외눈박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공술을 마실수는 없지. 안그래도 오늘 걷고 걷다가 드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으니
아주 신명나게 풀어보도록 하겠소이다.
자, 이 이야기는 저~ 산 넘고 들 질러 멀고먼 곳에 살았던 요괴를 파는 장사꾼.
귀장꾼 자리공에 대한 이야기요.”
귀장꾼 자리공.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그를 그렇게 불렀소.
귀신이나 요괴따위를 파는 장사치니 귀장꾼이요.
뼛속까지 자기 이익만 따지는자니 자리공이라.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비상해서 학업에 몰두했으면 장원을 했을터인데,
천성이 돈에 눈먼 인간 인지라 글은 전부 던져 버리고
거적떼기 같은 도롱이 하나만 걸친채로 장사를 하겠다 나섰지.
뭐 그래도 멀쩡한 물건이나 가져다 팔았으면 좋았을 것을
빠르고 쉽게 돈을 벌자고 이제 손대면 안되는 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한거지.
그렇소. 이것들이 귀신이랑 요괴를 가지고 수작을 부린거요.
그 좋은 머리가지고 요괴 만드는법. 귀신 부리는법. 이런거를 연구해지고
아주 목숨값으로 돈을 벌어 챙겼다 이거요.
그래서 이 자리공이란 놈이 어떻게 장사를 했냐.
쉽소. 이 마을에 가서 병 퍼트리는 귀신 한 마리를 쓱 푼다음에
귀신 막는 부적을 비싼값에 팔아 제끼고.
저 마을로 가서 사람 잡아먹는 요괴를 싹 풀어버린 다음에
그 요괴를 봉인할 항아리를 아주 비싸게 팔아버리는 거지.
그뿐만이 아니오.
돈만 주면 어디 양반댁에다 요괴를 싹 풀어서 대를 끊기도 하고.
신기 떨어진 무당들한테 새타니를 만들어 주는 그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도 벌였지.
뭐 부작용이 심해서 절대 쓰면 안되는 단약이나 부적을 사방에 팔아제끼는건 물론.
요괴까지 만들어 풀어버리니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워지겠소?
어디선가 갑자기 요괴가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럼 그중에 반절은 자리공 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소.
그 때문에 나라에서 사람도 파견해보고, 또 병사도 보내보고 했지만,
원체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데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지라
몇 년이 가도 잡히지를 않았지.
하지만 그런 자리공에게도 신경쓰이는게 있었소.
조선 최고의 요괴 사냥꾼 서리태.
언젠가부터 자기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하는 일 마다 훼방을 놓는 그가 거슬리기 시작한거요.
어떻게 알았는지 산속 깊은 곳에서 애지중지 만들고 있던 고독을 찾아내어 없애버린다던가.
쓸만한 요괴들을 전부 성불시켜 버린다던가 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깔아놓은 판을 그냥 힘으로 엎어버리니 이게 영 성가시기 그지 없었던 거지.
마음 같아서는 찾아내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서리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소.
자리공이 가진 재주와 요괴 귀신들을 전부 풀어도 이길 수 있다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자리공은 꾀를 내었소.
그전엔 돈만 받으면야 누가 어찌되건 상관을 안했지만
앞으로는 누구랑 거래를 하든. 어디로 가든. 무조건 그곳에 큰 피해를 입혀야겠다 싶었던 거요.
일이 커지면 서리태가 바빠질테고.
그럼 자기를 쫓거나 방해하기 힘들어질테니 말이요.
그때부터 안그래도 악독한 자리공의 장사가 더더욱 악독해지기 시작했소.
그가 지나는 마을마다 요괴와 귀신이 들끓었지.
정말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소.
첫 번째 마을.
열병을 앓던 아이가 자리공의 단약을 먹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소.
하지만 며칠안가 아이는 요괴가 되어 제 부모를 잡아먹고 마을을 공포에 몰아넣었지.
두 번째 마을.
흉년이 들어 고생하는 마을에 판 물동이는 피를 바쳐야만 작물이 자라게 해주었소.
굶어죽지 않으려 눈이 돌아간 사람들은 이웃들을 제물로 바쳤지.
세 번째 마을.
가축을 잡아가는 승냥이떼를 쫒기 위해 받아든 상자 안에서는 팔뚝만한 지네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소.
승냥이는 물론 가축들에 사람들까지 지네에게 뜯어먹히고 말았지.
정말이지 온갖 요괴들이 들끓던 시대.
누구하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대였소.
그러던 어느날.
자리공은 깊고 깊은 동굴을 거대한 고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소.
수십 수백 마리의 짐승들과 사람들을 그 요기를 잔뜩 풀어놓은 굴안에 가둬두면.
그 요기에 당한 이들이 눈을 뒤집고 서로 죽이겠다 쌈박질을 해대거든.
그렇게 서로 죽이고 죽여서 마지막에 살아남는 하나가 고독요괴가 되는게요.
그 요괴를 다른 나라에 아주 비싸게 팔 생각이었지.
하지만 동굴에 요기를 풀어 놓고 이제 짐승들을 몰아넣으려던 그때 눈앞에 서리태가 나타났소.
서리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을 크게 벌였건만,
그 일들이 오히려 서리태의 분노를 사서 이리 바짝 쫓아오게 만든거요.
자기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 없는 글러먹은 정신을 가졌으니
분노한 서리태가 무슨짓을 해서든 자신을 잡으러 올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게지.
지극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그였기에 나온 실수였소.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자리공은 우선 침착하게 서리태에게 물었지.
서리태는 분노로 이를 갈면서 대답했소.
“널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잠도 안자고. 물한모금 안마시고. 오로지 네 그림자만 쫓아왔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서리태 상태는 심각해 보였소.
눈을 시뻘겋게 충혈되고 입술을 바싹 마른 것이.
조금만 틈을 주면 도망갈테니 숨도 안쉬고 흔적을 뒤쫓아 온 것 같았소.
천하의 서리태라도 이 상태라면 해볼만 하다.
자리공은 그리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싸움을 걸지 않았어.
대신 한가지 제안을 했지.
“그 집념하나는 높이 사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군요.
그 몰골로는 제 목숨을 어쩌지 못합니다.
오히려 제가 부리는 요괴들을 전부 풀어버리면 당신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저 역시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거래를 제안해 보려 합니다.
얌전히 돌아가 주시는 대가로 원하시는 건 뭐든 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꿈도 못 꿀 엄청난 걸 말이지요.
예를 들면... 죽은이를 살린다던가....”
그 말에 서리태는 눈에 띌정도로 동요했어.
혹시나 싶어 던진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생각한 자리공은 이때다 싶어 몰아세웠지.
“사실 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전 언제나 정당한 거래를 제안하지요.
사람들이 화를 입은건 다 스스로의 욕심이 지나쳐서입니다.
하지만 서리태님은 그런 멍청이들과 다르겠지요.
아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서 죽은이를 살리시는 겁니다.
그 대가는 별거 없습니다. 그저 절 모른척 해주시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냉철한 서리태지만 자리공의 말을 그냥 넘겨 버릴 수 없었소.
서리태에게는 심의안이라는 보구가 있어 그의 눈에는 진실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거든.
놀랍게도 자리공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소.
필요하다면 죽은 이를 살릴 수 있고,
또 서리태가 눈만 감아 준다면 기꺼이 사람을 살려줄 준비가 되어있었지.
그 사실은 분노한 서리태마저 망설이게 만들었소.
왜 안그렇겠소?
서리태에게도 살리고픈 사람이 있었을게요.
애시당초 서리태를 요괴사냥꾼으로 만든 건 요괴에게 가족들이 전부 몰살 당해서 였으니.
그 때문에 모든걸 버리고 생사를 오가는 요괴들과의 싸움에 뛰어든거요.
오래전 죽은 가족.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만나고픈 사람들까지.
그들이 다시 살아난다면. 서리태는 잃어버린 인생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게요.
서리태는 고민했소.
그리고 한참이 지난뒤에 천천히 대답했지.
“가족들이 전부 죽은 그날. 난 두가지 맹세를 했다.
첫 번째. 내 남은 삶을 전부 바쳐서라도 요괴들을 전부 없애 복수하기로.
그리고 두 번째. 복수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절대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다.
웃는것도 쉬는것도 좋은 음식을 먹는것도 전부 허용하지 않기로 했지.
네가 제안한 거래는 내 맹세 두 개를 다 거스르는 짓이다.”
“협상결렬이란 말씀이시군요.”
자리공은 한숨을 쉬면서 휘파람을 불었소.
그러자 사방에서 온갖 요괴들이 나타났지.
그것들 모두 자리공이 부리는 요괴들로 하나하나가 마을 한둘쯤은 가볍게 집어삼킬 정도로 무서운 놈들이었지.
서리태는 그걸 보고도 동요하지 않고 칼을 빼어들며 말했소.
“그리고 한가지 더. 네놈을 그냥 보내주면 나같은 불행을 겪는 이들이 끝없이 생겨나겠지.
그건 내가 용납 못해. 불행은 나 하나로 족한다.”
서리태는 태산도 무너트릴 기세로 달려드는 요괴들에게 칼을 휘둘렀소.
땅이 들썩이고 하늘이 요동치는 싸움은 오래도록 계속 되었소.
그리고 마침내 잠잠해졌을 때,
사람들은 싸움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서는 깔끔하게 목이 달아난 자리공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소.
세상을 요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귀장꾼 자리공.
그가 마침내 숨을 거둔거요.
외눈박은 극적인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요괴들이지만 그때에는 호랑이나 산적 따위와는 댈바 없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들이었소.
만약 자리공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살았다면,
나나 여기 모인 여러분 같은 장사꾼들이 마음놓고 길을 걸을 수도 없었겠지.
그러니 과거 목숨바쳐 요괴와 싸우고 또 희생한 자들에게 감사해야 할게요.
더불어 비록 이문을 위한 장사일지라도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한다 말하고 싶소.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자리공이 나타나지 않을거란 보장은 없을 거요.
여기 있는 이들중 누군가가 그리 될지도 모르지.”
다들 장사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외눈박의 말이 가볍게 들려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 본 외눈박은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러니 무엇을 사든. 무엇을 팔든. 절대로 그릇된 장사를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바이외다.
자, 그럼 이 외눈아재의 이야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소이다.”
사람들은 이야기 값으로 먹을것과 술따위를 건네주고는 흩어지자 박씨가 물어왔다.
“그 서리태란 양반은 어찌 되었소? 그날로 힘을 다해 쓰러진 거요?”
외눈박은 씁쓸한 얼굴로 술을 들이키며 대답했다.
“지고 있는 짐이 많은 인간이니 그렇게 끝내지는 않았을거요.”
더 물어보려던 박씨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들을 수 있으려니 하며 조용히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술맛 참 좋구만.”
외눈박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둘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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