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저 멀리 보이는 고급 아파트들과 비교하면 내가 서있는 골목은 볼품없어 보였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던가 부러운 감정 따위를 안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엔 그럭저럭 내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 좀 늦었네?”

종종걸음으로 고소한 튀김 냄새가 진동하는 옛날 치킨집과

몇 달째 문이 열리지 않는 참치집을 지나 한칸은 될까 싶은 좁디좁은 술집에 도착했다.

나무판자로 솜씨좋게 만든 입간판에는 멋들어진 글씨로 ‘하소연’이란 글씨가 적혀있었다.

엉성한 테이블 하나에 간단한 안주거리를 만드는 주방.

그리고 영업용 냉장고 하나만 달랑 있는 공간이지만

내가 가진 전부였고 너무도 소중한 곳이었다.

“안녕하신가.”

가게문을 열기가 무섭게 손님이 찾아왔다.

남자인 것 같았고. 나이는 아마 30대에서 50대 사이일 듯 했다.

“오뎅탕 하나 해주고. 오징어숙회 좀 썰어줘.”

익숙하게 주문을 하고 냉장고에서 술과 잔을 꺼내는걸 보니 단골인 모양이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안주는 금방 완성되었다.

뜨끈한 오뎅탕과 데친 오징어를 초장과 함께 내가자,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술잔을 내밀었다.

“요새는 말이야. 내가 아주 갈데가 없어.

집에가면 딸내미 눈치에 마누라 눈치에.

지들끼리 깔깔대면서 놀다가도 내가 집에 딱 들어가면

둘 다 입 싹 다물고 딸내미는 지방에 휙 들어가고.

마누라는 거실에서 드라마나 틀어놓고 있고.

뭘 말해도 제대로 대꾸도 안해줘.

내가 아주 숨이 턱턱 막힌다구.

그렇다고 또 회사에 죽치고 있자니 그러면 또 젊은것들이 내 눈치를 봐.

그치. 늙은이는 얼른 집에 가줘야 자기네들도 퇴근해서 애인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러 갈테지.

그렇게 집에서 못가고 회사에도 못있으면 난 어디로 가야 되나?”

술 한잔 받기도 전에 시작된 하소연은 아주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니 어느정도 쌓인 이야기가 풀렸는지 이번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하소연 하는 것 만큼 오지랖도 넓은 사람인 듯 했다.

“그래서. 자네는 요새 어떤가? 어머님은 잘 계시고? 애인은 아직 없나? 이제 결혼 해야지.”

쉴새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진땀을 빼며 대답을 해야 했다.

“어머님은 잘 계시죠. 애인은... 글쎄요. 아직 없네요.”

적당히 넘어가려 했지만 명절에 찾아뵌 큰아버지처럼 쉬이 넘기지는 않았다.

“왜 없어. 친구도 있다며? 그 친구한테 여자 소개해달라고 하던가.”

아무래도 내가 예전에 이 남자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잔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속 시원히 떠든것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술값 외에도 팁이라면서 오만원짜리 한 장을 챙겨주기까지 했다.

“오늘도 잘 마시고 가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만큼 편한데가 없어.

자주 보세나. 뭐 당연히 다음에 봐도 자네는 날 알아보지 못할테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가게 입구에 꼼꼼히 적어놓은 ‘하소연’ 이용 안내 팻말을 바라보았다.


[하소연]

본 술집은 한번에 한명의 손님만을 받는 1인 술집입니다.
주인장이 직접 술친구가 되어 손님의 하소연을 들어드립니다.
안주는 직접 주문해 주셔도 좋고 다른 곳에서 포장해 오시거나, 배달도 가능합니다.
주인장은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손님이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함은 물론,
이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절대 발설하지 않으니 마음 놓고 속내를 털어놓으셔도 좋습니다.


“알아보지 못한다....”

맞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단골처럼 보이는 그 남자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알아보지 못한다.

팻말에 적힌대로 심각한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기에 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는 커녕

사람의 나이와 성별을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목소리, 말투, 복장, 버릇 등등 인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마저 꼼꼼히 기억하지 못하는 덕에

내 가게에 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아무런 부담없이 어떤 하소연이고 할 수 있다.

물론 술친구 개념이니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듣는 것이 일이었다.

방금전 남자와 같이 흔한 중년의 하소연부터 시작해서

남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은밀한 비밀들과

윤리적으로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숨겨진 욕망의 말들까지.

직장 상사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얌전한 편이었다.

친척에게 욕정을 품었다는 사람.

지금 애인은 너무 질려서 바람을 피운다는 사람.

지금 뱃속 아이가 남편 애가 아닌 것 같다고 걱정하는 사람.

그런걸 듣고 있는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이 힘든 내 상황에서 이 술집은 내겐 삶의 이유 그 자체였다.

방금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손님이 만족하고 돌아갈 때면 나름의 보람 같은걸 느끼기도 했다.



취기가 살짝 올라오는 걸 느끼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자니 다시금 문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오세...”

“나야.”

짧게 말한 남자는 오른손을 들어 독특한 손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검지와 중지로 브이를 만든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을 편 모습.

그 손을 본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상욱이냐? 이 시간에 웬일이야?”

이상욱. 고등학교 때부터 내 유일한 친구이자

3년 전 내가 이 ‘하소연’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 위해 저 손동작을 고안한 것도 상욱이였다.

‘얼굴이나 옷으로 구분 안되도 이런건 알아볼거 아냐?

이제부턴 내가 너 볼때마다 이렇게 할게.

그럼 넌, 아 저거 상욱이구나 하면 돼.’

상욱이가 주기적으로 날 끄집어내 주지 않았다면

난 이 세상을 등지고 영원히 방구석에서 갇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겐 소중한 친구였다.

“이따 모임 있는데 시간 좀 비길래 들렀어. 간단히 술이나 한잔 할겸.”

가볍게 이야기하며 자리에 앉는 상욱이였지만 사실은 다른 속셈이 있을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육볶음을 내놓고 술을 따라주자마자 상욱이는 본론을 꺼냈다.

“야. 친구야. 미안한데 나 돈좀 빌려주면 안되냐?”

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친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도 십만원 빌려 갔잖아. 그거 갚기도 전에 뭘 또 돈을 빌려 달래.”

“알지. 아는데. 나 요새 벌이가 영 안좋아서.

모임 가는데 빈털터리로 갈 수는 없잖아.

내 사정 좀 봐줘라. 내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을게.

친구 좋다는게 뭐야?”

상욱이의 말에 난 투덜 거리며 지갑에서 오만원짜리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네 덕분에 가게 차린거는 맞는데, 이리 다 가져가면 난 뭘 먹고 사냐?”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 내가 진짜 금방 갚을게.”

상욱이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돈을 챙겼다.

잘 모르지만 아마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나 먹고 가. 양념 잘 배서 맛있더라.”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제육볶음 접시를 녀석에게 밀어주었다.

너무하다는 듯 투덜거리며 말하긴 했지만 사실 돈 빌려주는 것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난 상욱이에게 구원받았고 상욱이 덕에 삶의 이유를 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어떤걸로도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상욱이를 타박하는 이유는 그저 내 표현 방법이 서툴러서일 뿐이었다.

난 제육볶음을 맛있게 먹는 상욱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오늘도 잘 먹고 간다. 돈 고맙고, 다음에 또 보자.”

친구를 배웅해 주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테이블을 정리했다.

최근들어 상욱이가 자주 찾아와 주는 덕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띠링]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에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상욱이 아버님이 보내신 메시지였다.

번호를 저장한지 몇 년 되었지만 메시지가 온건 처음이었다.

“뭐야. 부고? 상욱이네 아저씨가 왜 부고 메시지를 보내셨지?”

난 의아해하며 메시지를 열고 내용을 찬찬히 읽어봤다.


[부고]
故이상욱님 께서
0000년 00월 00일 별세하셨기에
삼가 소식을 전합니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먼 곳으로 떠나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00 장례식장.
발인: 00월 00일


세 번정도 정독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故이상욱님. 별세. 오랜 투병 생활.

상욱이가 오늘 죽었다면 내가 본 상욱이는?

난 다급히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상욱이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난 심호흡을 하며 상욱이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재혁이냐? 소식 듣고 전화줬나 보네. 그래. 고맙구나.”

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된거에요?”

인사도 없이 튀어나온 질문이었지만 아저씨는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오늘 새벽에 떠났어. 걱정마. 잠들 듯이 편히 갔으니.

한 2년 넘게 고생했는데 이젠 좋은 곳에서 안 아프고 편히 쉬겠지.

뭐 좋은 꼴 보여주겠냐고 주변에 연락도 않고 혼자 처절하게 병마랑 싸우더니만....

그래도 우리 아들 세상을 헛살지는 않았나 보네.

이렇게 연락 주는 친구가 있는걸 보니.”

눈물이 배어 나올 듯 슬픈 그 말에 난 절망감과 함께 말도 못 할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간신히 꼭 찾아뵙겠단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분명 2년 전쯤 연락이 끊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몇 달 뒤, 상욱이는 가게로 찾아와 그간 아파서 연락을 못했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이후 새 번호를 주었고, 자주 가게로 찾아왔다.

언제나 내게 그 손동작을 해 보이며.

옛 기억이라던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묘한 이질감 같은게 느껴진 기억도 있지만

나에겐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손동작만 안다면 누구든 내 앞에서 상욱이가 될 수 있었다.

난 휴대폰을 들어 저장되어 있는 상욱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나 바쁜데?’

등줄기로 소름이 타고 올라왔다.

한참 동안 숨을 가다듬은 뒤에야 간신히 입을 열수 있었다.

“....너 누구야?”

전화기 너머에선 잠시 말이 없다가 탄식 섞인 말이 들려왔다.

‘아이씨... 걸렸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곧바로 다시 걸어봤지만 차단했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다시금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호흡이 힘들어짐을 느끼며 가게에서 뛰쳐나왔다.

차가운 밤공기를 한참 들이마시고 나서야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힘겹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역시나 내겐 다 똑같아 보였다.

가짜 상욱이도 지금 이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까?

구역질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와서 그 가짜가 누구인지.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알았고 또 왜 그런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 하나 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난 천천히 가게로 돌아왔다.

[하소연]

언제나 뿌듯하게 바라보던 입간판이지만 지금은 헛웃음만 나왔다.

“하소연은 무슨.... 들어 줄 깜냥도 안되는 주제에.”

입간판을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버너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켰다.

바싹 마른 나무 간판이 좋은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죽으면 상욱이 만날 수 있나? 알게 뭐야. 알아보지도 못할 새끼가.”

점차 커져가는 불이 가게로 옮겨 붙는걸 멍하니 바라보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