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은 장돌뱅이를 따라 주막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 장국 두사발 말아주고 술 좀 내오시게.”

기세 좋게 말하곤 자리에 턱 하니 앉은 장돌뱅이는 그제야 자기를 소개했다.

“인사가 늦었소. 내 보따리 장사로 먹고사는 김가요. 다들 사발귀라고 부르지.”

왜 사발귀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귀가 마치 사발 두 개를 얼굴 양면에 '척'하니 붙인 것처럼 크고 둥글둥글했으니,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별명이었다.

“난 외눈박이라 하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야기꾼이오.”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술상이 차려지자, 사발귀는 외눈박에게 술 한잔을 그득 따라주며 말했다.

“내 실은 형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싶어서 이리자리를 마련했소이다.”

외눈박은 시원하게 술을 받아 마시고는 사발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생긴 것답게 이 얘기 저 얘기 두루두루 귀담아들어서 천리이로 통하는 사람인데

이게 아무리 사방팔방 귀를 기울여도 도저히 찾지 못한 이야기가 하나 있었소이다.

그런데 오늘 형씨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찾던 걸 형씨가 들려줄 수 있겠구나 싶었지 뭐요.”

외눈박은 두 번째 잔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사람 참 잘 보셨네. 세상 기이한 이야기는 내 다~ 알고 있으니

그 둥글한 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뭐든 내 들려줄 수 있지 싶소.”

그제야 자기 잔에 술을 따른 사발귀는 외눈박에게 말했다.

“서리태.”

“지금 무어라 하셨소?”

“오늘 형씨가 들려준 이야기, 그 요괴사냥꾼이란 사람 말이오. 그 사람 이름이 혹시 서리태가 아니오?”

외눈박은 그답지 않게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사발귀라 하더만 과연 이름값 하는구만.

내 서리태를 아는 이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오.

맞소. 내가 이야기한 그 최고의 요괴 사냥꾼. 그이의 이름이 바로 서리태요.”

사발귀는 옳거니 하고 무릎을 탁 한번 쳐 보이고는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켰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딱 감이 오더라니.”

“세월 따라 잊혀진 자이건만, 그 이름을 어떻게 아시오?”

외눈박의 질문에 사발귀는 크게 숨을 뱉어내고는 말했다.

“우리 조모님께서 어릴 적 살던 마을에 요괴가 한 마리 찾아왔다고 합디다.

그 무시무시한 요괴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통에 아주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그때 서리태라 칭하는 요괴사냥꾼이 나타나 조모님을 구하고 그 요괴를 퇴치해준 거요.

조모님께서는 그분의 모습에 무척 감명을 받아 대대손손 그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소.

그리고 그분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하셨지. 그러니 형씨가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오.

그 서리태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오. 내 이야기 값은 섭섭지 않게 치르리다.”

외눈박은 고민하는 듯 장국을 몇 번 휘적대더니 크게 한술 입에 넣고는 오물거렸다.

세 번째 잔으로 밥알을 뱃속에 밀어 넘긴 외눈박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세월이 가서 잊혀진 이름. 굳이 꺼내서 뭣하랴 싶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뒀던 건데,

일이 이리되었으니 다시 입에 올려 또렷하게 닦아 놓는 게 맞는 것도 같고.

뭐 좋소이다. 내 이야기해 드리리다. 자, 이 이야기는 온갖 요괴가 날뛰던 그 시절.

단신으로 모든 요괴를 멸절시킨 최고의 요괴사냥꾼.

타오르는 한기 서리태에 관한 이야기요.”



서리태는 복수심에 가득 찬 이였소.

요괴에게 가족들이 전부 몰살당한 그는 자기 목숨을 전부 요괴를 잡아 죽이는데 쓰리라 다짐했지.

하지만 끽해야 단도하나 쥔 어린 서리태에게 요괴 사냥이 수월할리 없었소.

복수심에 물들어 서투른 칼질로 요괴들과 싸우다 초주검이 된 서리태를 기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게 한 노인이 구해 주었고.

오래전 요괴사냥꾼이었던 그 노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지.

이후 스승에게 두 개의 보구를 받아 하산한 서리태는 그야말로 몰아치는 한기처럼 모든 요괴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소.

그 두 개의 보구가 무엇인고 하니. 심의안과 윤회도요.

심의안은 밤에도 낮처럼 사물을 똑똑히 분간할 수 있고, 또 사람과 요괴의 마음을 읽어 거짓됨과 참됨을 구분하지.

윤회도는 기이한 기운을 담은 칼이요.

이 칼에 죽은 요괴는 저승의 심판을 받듯 업의 무게에 따라 마땅한 처벌을 받거나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게되지.

이로 인해 요괴들은 그 자신의 죄의 무게에 따라 받을 벌을 받고 성불하는 것이지.

요괴란 것이 본디 악하다고는 하나 모든 요괴가 지옥에 가 마땅한 것은 아니오.

영물이 인간의 미움을 받아 요괴로 화한것도 있고, 또 태생이 악한 요괴임에도 마음을 고쳐먹고 선해지는 경우도 있소.

인간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요괴가 되기도 하니,

윤회도가 이를 엄격하게 심판하여 선한 마음이 조금이나 있었던 존재에게 최소한의 자비와 기회를 베푸는 것이오.

분노로 가득 차 자칫 수라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당시의 서리태에게는 다행스런 보구였지.

물론 두 보구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었지만, 다행히 서리태는 이를 최소한의 피해로 잘 다루었소.

그 덕에 몇백년 묵은 요괴도 가볍게 잡아내고.

인간들 속에 숨어 간악한 계략을 꾸미던 사악한 요괴들도 쉬이 잡아 낼 수 있었지.

몇 해 가지 않아 서리태의 소문은 사람들은 물론 요괴들에게도 쫙 퍼졌고, 어줍잖은 요괴들은 서리태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기에 이르렀지.

냉철하고 차가운 행동 이면에 불처럼 일렁이는 분노와 복수심이 비추어지니 사람들은 그를 타오르는 한기 서리태라 불렀소.

그가 해결한 요괴 사건만 해도 기백은 족히 넘을 거요.

조선 땅에 있는 요괴 8할은 서리태 손에 쓰러졌단 말이 있을 정도니 오죽하겠소.

아닌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요괴 없는 세상에 살수 있게된 것.

코흘리개 애들이 요괴 이야기를 시시한 농담 취급할 수 있게된건.

모두 서리태 덕이라 할 수 있소이다.

뭐 그 때문에 영물과 신수들도 자취를 감췄다고 이야기 하는 자도 있긴 하오만.

본디 영물과 요괴, 신수와 악신은 근간이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오.

아무튼 서리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사악한 요괴가 나타났다 하면 바람처럼 달려나가 해결을 했단 말이오.

형씨네 조모님께서도 그 덕에 도움을 받으신게지.

다만 서리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복수였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걸 원치 않았소.

복수귀에 불과한 자신은 영웅이 될 수 없다 여긴 것이지.

오래전 일이라고는 하나 서리태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오.

스스로의 이야기는 그저 옛 이야기처럼, 흘러간 옛일처럼 자연스레 잊혀지길 원했소.

그 덕에 요괴가 줄어갈수록.

하늘을 찌르던 서리태의 영웅담은 시들해져갔고.

사람들이 요괴보다 호랑이를 더 무서워 할 때 쯤 돼서는 거의 잊혀지다 시피 했소.

그리고 마지막 요괴를 성불시킨 서리태는 기나긴 복수의 업을 끝냈다 생각하고는

서리태라는 이름을 버린 뒤, 두 개의 보구를 어딘가에 봉하고 자취를 감추었소.

그로 인해 한때는 모르는 이 없던 그 서리태가 그 이름을 잃고 시간에 파묻힌 게지.



외눈박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 쯤에는 사발귀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잔을 채워 넣고 있었다.
“가족을 잃고 복수귀가 된 서리태의 이야기를 비극이라 해야할지.

아니면 숙원대로 끝내 복수를 마쳤으니 희극이라 해야할지 잘 모르겠소이다.

서리태 본인도 잘 모를거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요괴 사냥꾼으로서의 서리태는 누가 뭐래도 최고였다는 거요.

그가 원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기억하는 이가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 아니겠소?

내가... 아니 아니지. 하. 이거 오늘 술이 좀 과했나. 나답지 않게 지루한 이야기를 했구만.

더 헛소리 늘어놓기 전에 끝내야겠소. 서리태 이야기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소이다.”

사발귀는 허허 하고 탄식인지 탄복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오. 아주 재미난 이야기였소. 조모님 생전에 이 이야기를 들려드렸다면 참 좋았을걸 아쉽구만.

내 조만간 조모님 묘 앞에서 술한잔 뿌려드리며 들려드려야겠소. 자, 이건 이야기 값이요.”

사발귀는 제법 묵직한 돈 꾸러미를 건네었지만 외눈박은 고개를 저으며 받지 않았다.

“장국 한사발에 술까지 잔뜩 얻어먹었지 않소. 게다가 이번엔 나도 신명나게 이야기를 했으니 값은 치른셈이요.

내 취기가 오니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소이다. 아 가기전에 하나만 물읍시다.

조모님 함자가 혹시 어찌 되시오?”

“순흥 안씨에 혜자 옥자 쓰시오.”

외눈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리태도 조모님을 기억하고 있을게요. 또 자기 이름을 기억해준 조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겠지.

내 대신 감사드릴테니 조모님께 잘 전해주시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외눈박의 뒤에 대고 사발귀가 물었다.

“그 서리태의 묘에 술이라도 한잔 올리고 싶은데 혹 어딘지 아시오?”

외눈박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건 없소. 가만히 누워서 쉬기에는 하고픈 일이 아주 많이 남은 양반이니 말이오.”

사발귀는 한동안 고민하고 나서야 그냥 모른단 말이겠거니 하며 껄껄 웃어보였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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