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3년 국제 미술품 전시회]

보란 듯이 걸려있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전시회라고는 하지만, 내 목적지는 전시회가 아닌 전시장 한켠에 위치한 미술품 경매장이었다

미술품은커녕 좋은 옷 한 벌 사기 힘든 주제에 팔자에도 없는 경매장이라니.

당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여유 있게 경매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처절한 대학원생 신분답게 교수님 수발을 들기 위해 끌려왔을 뿐이다.

“훌륭하군. 똑바로 보도록 해.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될 테니.”

학계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불리지만, 그에 걸맞은 괴팍한 성격을 가진 최일국 교수.

내 담당 교수이자 오늘 내가 모셔야 할 분이었다.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 뒤 교수님을 따라 경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경매장엔 딱 봐도 돈깨나 있는 듯한 사람들이 잔뜩 보였다.

모르긴 해도 내 일 년 치 생활비 정도는 한 끼에 쓸 정도로 거물급 인사들이 틀림없었다.

“자, 타오르는 붉은 보석. 에이자의 적석은 신회장님을 새 주인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감히 금액을 상상하기 힘든 주먹만 한 보석이 막 낙찰되어 주인에게 가고 있는 순간이었다.

교수님은 자리를 잡고 앉으며 이야기했다.

“타이밍이 아주 좋구만. 이제 곧 나올 거니 잘 보고 있어.

무엇보다 주변을 잘 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난 너무 촌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경매장을 둘러보았다.

경매의 주체가 될 부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기자인 듯한 인물들도 간간이 보였고 기업의 명찰을 단 사람들.

그리고 학술적인 목적으로 온 듯한 사람들도 보였다.

확실히 보통 경매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스피커에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다음은 오늘 많은 분이 기다리시던 그 작품입니다.

제17번 출품작.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

‘제시 크리스탈’입니다.”

곧 커다란 상자가 천에 씐 채 무대 위에 등장했다.

그에 따라 경매장의 분위기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눈을 굴리는 부자들과 열심히 손을 움직이는 기자들.

그리고 옆 사람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윽고 천이 걷어지자,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조차 감탄사를 뱉어낼 정도로 아름다운 제시 크리스탈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스스로 아름다운 붉은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름답지? 내 작품이지만 정말 훌륭해.”

옆에서는 최교수가 자화자찬의 말을 뱉어냈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실력 하나만큼은 업계 탑이라 불릴 만했다.

누구도 반할 만한 그 아름다운 모습에 경매장 안은 더욱더 부산해졌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우주 최고의 보석이 우주 최고의 장인을 만나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존재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순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시 크리스탈. 이 작품의 소유자를 찾기 위한 경매를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가는 50억입니다.”

그리 낮지 않은 시작가였지만 50억이라는 금액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매가는 순식간에 치솟고 있었다.

“55억. 한순간에 55억을 부르셨습니다. 56억. 56억 부르셨습니다.

58억. 네. 58억입니다. 네 59억. 곧바로 60억....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억단위로 빠르게 올라가는 금액에 현실감이 없어질 정도였다.

혀를 내두르며 회장을 둘러보자니 부자들과 기업들이 이를 악물고 경매가를 불러대고 있었다.

“똑똑히 잘 봐둬. 보나 마나 이번 경매는 저 둘의 싸움이 될 거니까.”

교수님의 턱짓한 곳을 보니 티브이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대기업의 장회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갈색 정장의 중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리 부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어느 정도 부티는 났지만, 대기업 회장과 비교하긴 한없이 부족한 그저 평범한 부자.

그런데도 표정만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내가 그들을 살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금액은 끝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320억 나왔습니다. 320억. 321억 있으십니까?

325억 나왔습니다. 경쟁률이 높은 관계로 금액을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330억 있으십니까? 네. 330억 나왔습니다.”

금액이 높아짐에 따라 열심히 금액을 올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500억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자 교수님의 말대로 단 두 명의 사람만이 치열한 경쟁을 이어나갔다.

“505억. 505억까지 나왔습니다. 510억 있으십니까?

갈색 정장의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숨을 고르고 손을 들었다.

“510억. 네. 510억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520!”

“520. 520억. 나왔습니다.”

이제 갈색 정장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금만 따지면 국가와 비견되는 거대한 기업의 회장이 상대니 당연했다.

회사 단위로 경매에 참여하던 사람들도 장회장의 적극적인 공세에 포기를 던지는 마당에

특별한 것 없는 저 사람이 감당할 리 만무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뒤, 다시 입을 연 것은 갈색 정장이 아닌 장회장이였다.

“530억.”

상위입찰자가 없음에도 금액을 올려버린 것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교수님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더 까불지 말고 떨어져 나가란 소리지.

게다가 낙찰가가 높아지면 미술품 가치는 그만큼 올라갈 테니 손해 볼 것도 없고 말이야.

무서운 양반이구만.”

“그럼 역시 장회장이 낙찰받겠네요.”

내 말에 교수님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만 김사장도 그냥 나가떨어지진 않을걸?”

갈색 옷의 남자가 김사장인 모양이었다.

교수님은 저 사람을 아는 듯했기에 조금 더 물어보려던 그때, 김사장이 힘겹게 소리쳤다.

“535억!”

아마도 최후의 발악이지 싶었다. 사장 소리를 듣는다면 역시나 돈은 좀 있겠지만

이미 경매 금액은 ‘비싸다’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장회장은 짜증 내듯 경매가를 불렀다.

“550억.”

순식간에 올라간 금액에 진행자마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5... 550억. 장회장님 550억 부르셨습니다.

상위입찰하실 분 더 있으십니까?”

경매장 내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김사장에게 향했다.

김사장은 오래전에 축축이 젖어 든 손수건으로 땀을 훑어내며 입술을 움찔거릴 뿐이었다.

“더 없으십니까? 3회 호명하겠습니다. 550억. 550억. 5....”

“잠깐!!!”

진행자의 말은 공간을 터트릴 듯 울려 퍼진 김사장의 외침에 가로막혔다.

김사장은 벌떡 일어나 한동안 장회장을 노려보더니 이내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절망적인 표정으로 장회장을 향해 엎드렸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입찰을 포기해 주십시오. 죽으라면 죽고. 개가 되라면 개가 되겠습니다.

무슨 짓이든 할테니 제발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

일반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장면에 나를 포함한 모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저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걸까?

장회장은 간절한 김사장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진행자를 불렀다.

“여기.”

난 긴장한 채 장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10억 더 얹어서 560억.”

그리곤 김사장에게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명백한 농락에 김사장은 이성을 놓친 듯 벌떡 일어나 장회장에게 달려들었다.

“이 망할 새끼가!!”

가까운 거리였지만 바로 옆에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김사장은 장회장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제압되고 말았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요?”

내 질문에 교수님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내게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김사장한테는 그냥 미술품이 아닐 테니 간절하지.”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있자니 교수님의 말이 이어졌다.

“장회장한테는 미술품 내지는 노리개 거리지만 김사장한테는 사랑해 마지않는 딸의 시신이니까.”

의외의 사실에 난 쓰러진 김사장과 제시 크리스탈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커다란 상자 안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 박제되어있는 제시 크리스탈의 모습은 김사장과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시의 본명은 김하나. 성이 같았다.

배경을 알고 나니 김사장의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지만, 김사장은 케케묵은 옛날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야.

그러니 지금은 신경도 쓰지 않는 장례라든가 시신 수습이라든가 이런 걸 목숨처럼 아끼지.

소속사 소유인 작품. 아니 시신을 가져가 장례를 치르려면 돈으로 사는 수밖에.”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돌 가수 제시 크리스탈.

그녀의 죽음 이후 계약대로 그녀의 시신은 소속사 소유가 되었고,

대부분의 유명인이 그렇듯이 박제되어 예술품으로 만들어졌다.

특히나 제시 크리스탈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죽은 만큼.

박제 업계 최고라 불리는 최일국 교수.

지금 내 옆에 있는 내 담당 교수님이 맡게 되면서 이슈가 되었다.

오로지 교수님 혼자만의 정교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제시 예술품은 내가 봐도 훌륭했다.

제시의 시그니쳐 복장인 붉은 미니드레스를 입은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유리 상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춤을 추고 노래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아. 장회장이 제시를 놓칠 리 없으니.

애석하지만 이번엔 포기를 해야겠지.”

장회장은 탐욕스러운 얼굴로 유리 상자 안의 제시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김사장이 불쌍해졌다.

방부제와 보존 기술발달로 죽은 시신 역시 살아있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유지될 테니

딸애의 시신이 저 변태 회장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장회장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몸을 움츠렸지만,

교수님은 무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장회장을 비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인간 같으니. 중고품 하나 가지고 그렇게 좋아하기는.”

“네? 중고요?”

내 물음에 교수님은 내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내가 이미 몇 번 썼거든. 박제 끝내고 나서.”

순식간에 역겨움이 몰려왔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애쓰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박제학은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