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내 외침소리가 녀석을 자극한 모양이다. ‘캬오오.’괴성을 지르며 철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듯한 녀석.

쿠웅. 쿵.

아무리 철문이라고는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이기기에 어려워 보였다. 군데군데 녹슬어 있는 부분이 머지 않아 곧 뚫릴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들어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때 내가 저 괴물을 이겨보일만한 수단이나 방도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돌아가서 지원을 요청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개죽음은 면피해야한다. 과장님에겐 안된 일이지만 나는 할 수 있는 힘을 내서 부대 쪽으로 돌아서 뛰기로 했다.

‘캬오오!’ 사냥감이 멀어지는 것이 분한 모양인지 녀석은 커다란 울음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외곽 초소와 부대와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었던가. 이를 악물고 부대 내로 도착한 대로 강당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도와주십시오. 외곽 초소 쪽에 괴물이 있습니다!”

내 외침에 일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곧 사람들이 다가왔는데 그 중에서는 처음 브리핑을 한 대령이 가장 선두에 섰다.

“사실인가?”

“..지금 이과장이 잡혀 있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나의 말투와 표정에서 거짓을 느끼지 않았는지 곧 대령은 여러 인원을 착출하여 외곽초소로 보내도록 했다. 그 중에서는 나도 끼어 있었는데 모두가 말렸지만 과장을 초소 내에 두고 왔다는 죄책감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10명으로 구성된 인원들. 저마다 피스톨을 소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을 대비하여 보호구를 단단히 두른 뒤 문제의 외곽 초소 내로 진입을 시작했다.

“....”

산속에 지어진 초소답게 아주 고요했다.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마저 완전히 없어진 초소길.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적막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괴물이 어떻게 살고 있다는 거지?

천천히 걸음을 떼며 초소의 중간 쯤으로 이동을 하니 과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게 보였다.

“과장님!”

내 외침에 선두에 있던 다른 장교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조용.”

그리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피스톨을 앞으로 들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온 몸을 지배해 저릿저릿했다. 이를 악물고 눈 앞에 보이는 이과장을 구출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르르르.

아주 작은 맹수의 하울링 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어두운 공간에서 노랑색의 안광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격!”

그 말과 함께 모든 인원들은 안광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시작했다.

타당. 탕. 탕. 탕탕.

익숙한 화약 냄새와 함께 모두의 숨소리가 거칠어져갔다. 곧 탄창 하나가 소진된 우리들은 자연스레 사격을 멈추고 여비 탄창을 갈아끼운 뒤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앞에!”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쳤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앞으로 가져가니 쓰러져 있던 이과장이 우리들 앞에 서있는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노랑색의 안광이 번뜩이는 이과장. 그것은 그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과장은 생포해야한다. 이건 연대장님의 명이다.”

그말에 모두가 포승줄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필요하면 팔다리 정도는 쏴도 돼.”

그들은 잘 짜여진 팀답게 행동 하나하나가 절도가 있었고 일사불란했다. 다시 묘한 대치 상황. 먼저 움직인 것은 이과장이었다. 그는 야수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높은 점프를 해 우리들 사이로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이 그의 주된 무기인 상태였지만 단단한 보호구를 완벽히 뚫는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모두가 이과장에게 달려들어 포승줄로 팔다리 하나하나를 결박하기 시작하니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마무리되진 못했다. 그 중에서는 목 덜미 부분이 물어 뜯겨 급하게 이송을 요하는 인원도 있었다.

“어서 이동해!”

한시라도 이 기분 나쁜 곳을 뜨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따라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처음 총격을 가한 놈의 안위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이들을 따라서 외곽 초소를 나오는데 성공했다.

초소 밖으로 나오니 혼절해버린 이과장은 몸을 축 늘어트린 상태였다. 옷 여기저기가 심하게 뜯겨진 상태였고 손과 발에은 진한 핏물을 떨어지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조금 가까이서 보니 손톱과 발톱 모두가 뜯겨져 나간 상태였다.

동물의 사체처럼 축 늘어진 이과장의 몸을 들어 강당 외에 따로 마련된 작은 시설로 이동하니 거기엔 연대장과 군의관 또 외부에서 온 의사 한 명이 서있었다.

“눕혀.”

그 말에 이과장을 침대에 눕히자 기다렸다는 듯 의사들이 그의 몸을 진찰하기 시작했다.

“외상이 조금 있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는 이상 소견이 없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럼 아까전의 그 괴물 같았던 이과장의 모습은 뭐란 말인가.

“흐음..”

연대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누구하나 숨소리 하나 내지를 않았다. 곧 이과장이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는데 놀랍게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몸이 결박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뭐야?”

“정신차려 이과장.”

“..연대장님.”

연대장의 말에 조금 안정을 찾은 이과장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제가 어떻게 된겁니까?”

“나야 말로 묻고 싶어.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야? 저 안에서.”

“....”

이과장은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 병사를 마주친 것 외엔.. 그거 말고는 기억에 없습니다.”

“병사라면.. 그 오인한을 얘기하는건가?”

“..그럴겁니다.”

그 말에 연대장은 다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 놈을 잡아야겠네.”

“연대장님 사실..”

이과장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연대장은 조금 표정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은 생존 확인 여부다. 전병력 외곽초소로 투입하도록 하고. 최대한 그 오인한 병사를 찾아내는데 집중한다.”

“만약 죽은 상태라면 어떡합니까?”

“일단 데려와.”

연대장은 밖으로 나가버렸고 남아 있는 군의원이나 의사들은 이과장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이면 이과장에게 안부를 물어도 되겠다 싶어 그에게 다가가니.

“용케 도망쳤구만.”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 이과장에게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됐어. 너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도 내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건..”

“....”

“오인한 그 병사에겐 뭔가가 있다.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서둘러 밖으로 나와 외곽초소로 향하는 인원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맞춰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무당들이 인원들에게 소리쳤다.

“들어가지 마세요. 들어가면 큰일납니다!”

“지금 악귀가 미쳐서 모든 사람들을 홀릴 겁니다!”

“들어가지 마세요!”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외곽 초소 쪽으로 걸어가는 일행들 앞을 막아서는 세 명의 무당들. 그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모두에게 외쳤다.

“절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모두가 환상이에요!”

입구에서 발악하는 무당들에게 짜증이 난 장교들이 그들을 강제적으로 떼어냈고 그 과정에서 작은 몸싸움을 벌인 이들은 거의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 중에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그 여성을 부축했는데,

“당신! 이거.. 이거 가져가!”

중년 여성의 손에 쥐어진 부적 다발들. 간절한 눈빛에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었던 나는 부적 다발을 들고서 걸음을 옮겼다.

**

“2명의 병사가 방금 깨어났습니다.”

그 전화를 받은 연대장은 서둘러 차를 타고 이동했다. 급한대로 옮긴 부대 근처에 있는 작은 병원. 서둘러 병원으로 도착한 연대장은 면회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을 차렸다는 담당의에 말에 병실로 들어섰다.

“....”

그 안에는 공허한 눈을 하고 있는 두 명의 병사들이 멍하니 천장을 보며 누워 있는게 보였다. 연대장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나?”

그 말에 병사들은 대답 대신 무거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연대장은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한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설명해주지 않겠나?”

“....”

병사들은 침묵으로 답했다.

“방금 전 모든 병력들이 그 초소로 이동했네. 그러니 알려주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연대장은 애가타는 심정으로 병사들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시.”

한 병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

“혹시..”

“그래. 어서 말하게.”

“그 무당들..”

“그래 그래.”

“아직 있습니까?”

“참고 조사 차원에서 다시 불렀네만..”

그 말을 들은 두 병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물을 흘렸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든 연대장은 서둘러 병실을 뛰쳐나가듯이 이동하며 전화를 했다.

“통신보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작전 장교의 목소리에 연대장이 급히 말했다.

“그 무당들. 아직 부대내에 있나?”

“외곽 초소로 이동하는 병력들과 해프닝이 있었지만 금방 나갔다고 합니다.”

“당장 그 무당들 다시 불러내고. 외곽 초소로 이동한 병력들도 다시 돌아오라고 해.”

“..예?”

“다시 불러내고 병력 다 빼라고!”

**

외곽 초소의 한가운데 우리는 가만히 서있는 문제의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건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 어릴적 티비에서나 보던 늑대인간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모두.. 모두 속고 있어.”

놀랍게도 그 병사는 아직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봐. 진정해. 진정하고 이쪽으로 나와.”

조금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선두의 장교가 그렇게 나섰다.

“그 부적.. 그것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는데.”

그 말에 번뜩이고 떠올랐다. 마지막 초소로 들어가기전 중년 여성이 내게 건넨 부적 다발말이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담긴 부적을 만지작거리자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병사는 곧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격! 사격해!”

상황이 어쩔 수 없음을 판단한 장교는 그렇게 말하며 병사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다.

탕탕. 탕탕탕. 탕탕.

곧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의 몸이 우리들 앞에 보였다. 그건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괴물의 모습이 아닌 명백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묵묵히 병사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던 장교가 그가 곧 죽었음을 깨닫자 고개를 젓고는 준비해온 들것에 병사를 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하늘에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에 모두가 발걸음을 멈췄다.

“크르르르.”

짙은 어둠 속에서 하나둘 번쩍이는 안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

빽빽이 자리 잡기 시작한 안광들. 난 직감적으로 00부대 내에서 죽어버린 병사들의 원혼이란걸 알게 되었다.

순간 무당에게 건네 받은 부적이 생각났다. 서둘러 주머니에서 부적 뭉치를 꺼내는 순간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부적들이 하늘로 높이 떠오르다가 곧 장교들 몸 여기저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그와 동시에 모두가 헛기침을 하며 검은 색의 뭔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짐승의 날카로운 소리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점점 커다랗게 몸을 잠식하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두 다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빠져나가게 했고 외곽 초소 밖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당들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 아! 드디어..”

“다, 당신들!”

내 말에 무당들은 뭐가 그리도 기쁜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

“이걸로 우리들도 인도 받을거야.”

“무슨 개소리야!”

그들의 멱살을 잡아 격하게 흔드려는 순간 식도를 타고 커다란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우웩!”

검은 색의 작은 덩어리가 땅바닥에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내 몸에 이런 게 있었던가?

“너도 그들을 받아들인 준비가 되었구나. 기뻐하거라.”

그 말과 동시에 내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