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자님은 영원불멸한 존재십니다.

저희는 주시자님의 선택을 받아 이 천국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이곳에선 힘들게 일을 할 필요도, 고통받을 필요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이 모든 것을 주신 주시자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뿐입니다!”

중년의 남자가 광기어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내용적인 것 뿐만 아니라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조차.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처음 보는 집에 앉아있다는걸 알게되었다.

깔끔하고 넓은 집.

무슨일인가 싶어 밖으로 뛰어나와 주변을 둘러봐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광장에 연설하고 있는 이상한 남자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잔뜩 있었지만

모두 처음 보는 복장이었다.

꼭 고대 그리스식 하얀 천옷을 현대 스타일로 어레인지한 느낌이랄까?

난 바보처럼 주변을 훑어보며 상황 파악을 해보려 했다.

먼저 이 장소.

내가 나온것과 비슷한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죽늘어서 있었는데

기묘할 정도로 끝이 없었다.

게다가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 붉은 빛깔을 띄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 멍청하게 있자니 몇몇의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오셨나요?”

짧은 머리에 파란색 천으로 만들어진 원피스 형태의 옷을 입은 여자가 내게 물어 왔다.

“예? 아... 예 그런 것 같긴 한데... 지금 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어서요.”

여자는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해요. 저도 자고 있다가 갑자기 여기 온거라 처음엔 많이 놀랐거든요.”

여자는 내게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광장에서 이상한 말을 외치던 남자가 끼어들어 대신 말해주었다.

“여긴 주시자님의 천국입니다. 당신 역시 주시자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지요.

이곳에 데려와 주신 주시자님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곳의 모든 것을 즐기는데 대한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다행히 이번엔 여자가 그나마 알아 들을 수 있을 만한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어요.

분명한건 여기가 우리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곳이란 것 정도?

이 아저씨는 주시자님 이라면서 우리가 선택받은 자라고 이야기 하지만

누가 왜 이런곳을 만들었는지 왜 우릴 데려왔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어서 천국이란 말도 완전히 틀린건 아니겠네요.”

“솔직히 어떤건지 감이 안오네요. 좀 자세히 말해 주시겠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건 아닌 듯 했다.

“자세히랄 것도 없어요. 말씀드린게 우리가 아는 전부거든요.”

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뭐가 어떻건 간에 여기가 정말 좋은곳이란건 변하지 않으니까.

일할 필요도 없고 음식은 맛있고, 전부 완벽해요!

놀거리도 넘쳐나고, 또 주거지도 편안하구요.

아마 금방 좋아하게 될거에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천국이라 불리는 이곳에서의 내 일상이 시작되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기분 좋은 빛을 받으며 이곳에서의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알람도 필요 없고 억지로 눈을 뜰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면 그만이다.

숨을 한껏 들이쉬며 몸을 풀고는 주방으로 건너가 커피를 한잔 따라 마셨다.

잠을 깨기 위한 커피가 아닌 좋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커피.

원리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소모품도, 음식물도 전부 저절로 채워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고용인들이 쉴새없이 청소하고 관리하는 집에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

쓰레기는 고개만 돌리면 비워졌으며 바닥엔 먼지하나 앉을 일이 없다.

느긋하게 커피 한잔을 비워내고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는다.

이곳은 물온도를 조절하려 애쓸 필요 없다.

정확하게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온도를 알아서 맞춰주는 시스템이다.

다음은 아침식사. 식사는 냉장고 모양의 식량 저장소에서 완성된 음식을 꺼내 먹거나

원한다면 식재료들을 꺼내 직접 요리를 해도 된다.

이 역시 내가 원하는걸 알아서 제공해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전형적인 호텔식 조식이 준비되어있었다.

역시나 내가 딱 원하는 메뉴이다.

스크램블에그, 적당히 말랑하게 구워진 베이컨,

버터바른 빵과, 매쉬포테토. 음료는 사과쥬스.

방금 조리된것처럼 따뜻한 그것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식사 후에는 뭐든 원하는걸 할 수 있다.

서재에는 내가 좋아할 법한 책이나 만화들로 가득 차있고,

티비에서는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 흘러나온다.

게임따위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

혼자가 외롭다면 이웃을 초대하거나 광장에서 모임을 가지면 된다.

이곳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친절하고 모두가 서로에게 호의적이다.

좋은 관계를 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꿈꿔왔을 법한 천국의 그것과 다를게 없었다.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경배하십시오.

주시자님께서는 언제나 당신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시자님의 기대에 부응 할 수 있도록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찬양을 해야 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광신도 아저씨, 일명 교주의 목소리도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느긋한 기분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자니

광장 한켠에 사람들이 모여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수근대고 있었다.

“무슨일이에요?”

내가 묻자 중년의 여성 하나가 내게 말해주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식량 창고에 음식이 비어있었어.

옆집에는 다시 채워져있다길래 나눠먹었는데

나같은 집이 한두군데가 아닌가봐.

그래서 다들 걱정하고 있거든.”

완벽한 이곳에 나타난 사소한 이변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러분. 주시자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고 계신것입니다.

그간 감사하지 않았던 이들, 기도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시험을 내리신 겁니다.

주시자님께서는 지금 기도하고 찬양하지 않는자 먹을 자격도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모두 손을 잡고 주시자님을 경배하십시다.

그러면 다시 우리에게 끝없는 양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평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엔 다들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뭐 그냥 우연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죠.”

누군가의 말에 다들 적당히 해산 했지만 그들에게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여러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모두 그간의 나태함을 뉘우치고 주시자님께 용서를 비십시오.

태양보다 따뜻했던 주시자님의 마음이 완전히 식기 전에

다시 주시자님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무릎을 꿇으세요.

회개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안타깝게도 식량 공급은 원활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는 집이 늘어만 갔고

그에 비례하여 교주를 따르는 광신도들이 늘어났다.

식량 수급에 문제가 생긴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사람들은 예민해졌고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교주의 말을 더 이상 흘려들을 수 없게된 사람들이 그럴 따르며

같이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집은 아직 음식이 끊기지 않았기에 그곳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다같이 기도 하는것은 상당히 얌전한 반응에 속한다는 것이다.

굶주림이란 사람을 야수로 만드는 법이니까.

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음식을 꺼내어 쌓아두고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기로 했다.

어쩌면 이곳이 지옥으로 변할지 모른다.





3일이 더 지났다.

가장 얌전한 사람도 흉폭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여유있던 얼굴에는 독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난 집안에 숨어서 밖의 상황을 살피며 근근히 버텨내고 있었다.

식량창고에 공급이 끝나는 순간까지 되는대로 식량을 꺼내 확보했지만

아껴 먹어봐야 일주일 안에 동날게 뻔했다.

사실 지금이라면 아사하는 것 보다 광기 어린 사람들의 습격으로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그때 밖에서 광신도 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광신도 무리들은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으로 주변을 돌며 연설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주시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굶주리는 이유는 모두 그런 불경한 자들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매한 자들에게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전. 저는 제 두눈으로 주시자님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위대한 모습을 마주한 그 순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택 받았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오직 주시자님을 섬기는 것 뿐이라고.

우리의 의무는 그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것만 지켰다면 우린 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신들. 지금도 주시자님을 부정하고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당신들 때문에!

주시자님께서는 천벌을 내리신 겁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주시자님은 너무도 관대하십니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고 기도를 올리십시오.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숨겨둔 양식들을 모두와 나누십시오.

모두가 주시자님을 찬양하는 그 순간,

이 지옥이 끝나고 다시 천국이 시작될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와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이 지옥은 끝나지 않을것입니다.”

주시자란 터무니 없는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지만

점점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 공간 자체가 상식밖이었다.

이곳이 진짜 주시자의 천국이고 이 지옥이 시작된 이유가 정말 주시자를 믿지 않아서라면?

그저 기도하는 것만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천국이 시작된다면 어떨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고집을 부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다들 서로를 죽이고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이 상황에서

교주의 말은 그나마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느껴졌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하나 둘 문이 열리더니 식량을 넘기고 무릎을 꿇었다.

교주는 기꺼이 그들을 받아주었다.

이대로는 가망없다는 생각에 나 역시 양손 가득 음식을 싸들고 밖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을 뉘우치고 주시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나조차 확신 할 수 없었지만 간절함 만은 진짜였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다시 천국으로 돌려달라고.

다행히 교주와 신도들은 내 모습이 흡족했는지 웃으며 반겨주었다.

하지만 그때, 신도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신도 한명이 내가 가져온 식량에 손을 댄 것이다.

“잠깐! 식량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겁니다. 지금 손대는건 용서 못합니다!”

교주가 소리쳤지만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한사람이 식량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다른 이들이 합세하여 음식에 달려들었다.

그게 신호라도 된 양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이성을 잃어갔다.

이후 그야말로 광기 어린 폭주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고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교주 역시 어떻게 대응하지 못했다.

난 안전한 곳으로 빠져 나가려 했지만,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결국 난 살아 남기위해 내게 달려드는 모든 이들과 싸워야 했다.

달려드는 이를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고 뒤에서 날 붙잡는 손을 전력으로 깨물었다.

손에 집히는대로 단단한 것들을 휘두르고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의 머리를 가차없이 밟아댔다.

한번 흥분하기 시작하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모든 것을 부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은 공격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후 광장이 잠잠해 질 때 쯤이었다.

상황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너무도 참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친 상태였고

그 난리 통에 식량이라 할 수 있는것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대로면 하루도 더 버티지 못한다.

교주는 매우 당혹스러워 보였으나 이내 마음을 정리하듯 눈을 감더니 다시 차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합시다.

마음속 혼란을 잠재우고 주시자님께 감사하는 마음만 남기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주시자님께 경배드린다면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을겁니다.

뿐만아니라 이 끔찍한 지옥을 끝내고 다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겁니다.

그러니 죄악과 욕망은 모두 잊고 기도합시다.

기도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교주의 말에 모두는 쭈뼛거리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시체들 사이에서 기도를 올린다는 건 전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공포를 이기기 위해, 죄책감을 덜기 위해 교주의 말에 따랐다.

나 역시 손에 뭍은 피를 다급히 닦아내고는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한동안 광장은 침묵에 물들었다.






“주시자님!!!!”

침묵을 깬 것은 교주의 감격어린 외침이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주시자님이 마침내 우리 앞에 강림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다시금 천국으로 이끌어주실 주시자님이

마침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친히 모습을 보여주신 겁니다!!”

설마하는 기분으로 눈을 뜬 난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습에 경악 할 수 밖에 없었다.

붉은 하늘을 가득채운 거대한 모습.

마치 우주에서 이곳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일 거라 짐작 되지만 극히 일부분만 보여지기에 확신 할 수 없었다.

붉은 피부를 가진 주시자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얼굴이라 여겨지는 부분에

눈동자임이 분명한 동그라미 수십개가 가지런히 박혀있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은 공포심을 넘어 경외감 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주시자님! 당신의 종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다시 한번 마르지 않는 양식을 내려주십시오!

이전처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다시는 주시자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주시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었다.

마침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두의 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러분 느껴지십니까?

주시자님이 마침내 우리를 진정한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모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이 지옥을 끝내고 새로운 천국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교주의 황홀한 감탄사와 함께 눈앞에 빛이 훅하고 다가왔다.






빛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 후, 눈을 떴을때는 주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보고있던 풍경마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익숙한 건물들과 익숙한 파란 하늘.

분명 우리가 예전에 살던 곳.

주시자의 천국이라 불리던 그곳에 가기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물론 교주 역시 이 상황이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곁에는 피를 흘리는 이들과 엉망이 된 시체까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 시체와 함께 나타난 우리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혼란한 와중에 교주는 다시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아직 주시자님의 시련이 끝나지 않은 것 뿐입니다.

절대 동요하지 말고 주시자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시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기도하고 믿는 것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할 일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천국이 열릴 것입니다.”

교주와 사람들은 다시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바보같게도 나역시 그들과 함께 손을 모았다.

마음속의 불안감과 현실로 다가온 공포와 싸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선 보다 이성적인 불안감이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시자는 신이 아니고 천국 역시 존재 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저 주시자란 거대한 존재의 잠시간의 여흥이었을 뿐이었다면?

어릴 때 다들 한번쯤 해보듯이 개미들을 잡아 열정적으로 키우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관리를 소흘히 하고,

개미들 대부분이 굶어죽은 후에야 마당에다 도로 내다 버리는 그런 가벼운 여흥.

이성은 그것이 맞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난 다른 이들처럼 그 생각을 마음속 깊은곳에 숨기고 미친 듯이 기도를 시작했다.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짐에도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이곳이 진짜 현실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절대 눈을 뜰 수 없었다.

대신 필사적으로 기도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주시자님.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희를 천국으로 인도하소서.

다시 한번 저희를 주시자님의 천국으로 인도해 주소서.”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