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생지 00부대까지 꽤나 먼 거리. 보통 타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관할 지역에 있는 기무부대가 관리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불리는걸 보면 여간 사건이 아님은 분명하다. 새벽녘에 걸려온 과장님의 전화도 그렇고.. 직접 현장으로 나오신다는 것도 그렇고.. 이상하게도 찜찜하다. 

“후우..”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며 운전대를 강하게 잡는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머리를 두어 차례 저으며 정면을 응시한다. 부대까지 앞으로 20분가량.

악셀을 밟으며 정신을 집중하려는데 과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충성.”

“어. 그래 얼마나 남았냐.”

“20분 남았습니다.”

“그래.”

평소 현장에 나갈 때에도 전화를 잘 하지 않던 과장이다.

“과장님 많이 큽니까?”

“..일단 와라.”

그 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걸려도 단단히 걸린 것 같았다. 피해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렇게 큰 일이 생길 경우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해결해야할 실타래들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한다.

사이클이 있다. 큰게 해결되면 다음으로 큰게 온다. 벌써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이 사이클은 정말이지 변하지 않는다.

**

서둘러 00부대에 도착하니 입구에 늘어선 수 많은 군부대 차량과 경찰차들로 빼곡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줄이 길고도 길어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여유가 보이지 않아 적당히 뒤에 주차를 하고 걸어나갔다.

“충성.”

행정병으로 보이는 병사가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A4용지를 들고 있었는데 방문록을 작성중인 것으로 보였다.

“소속 부탁드립니다.”

“00기무부대 윤상 대위다.”

“감사합니다.”

“오늘 얼마나 왔냐?”

“..그게. 꽤 많이 오셨습니다. 대략 100분정도 됩니다.”

그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넌 여기 소속 아니지?”

“그렇습니다. 지원 나왔습니다.”

“그래.”

“충성.”

병사는 뒤이어 들어오는 차량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줄줄이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지나 하늘을 보니 눈부신 태양과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사고가 일어나기엔 턱 없이 좋은 날이다. 날이 좋으면 항상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징크스가 있다.

애초에 그런걸 믿지 않는 주의지만 오늘만큼은 그 징크스가 성립되는 것 같다. 서둘러 부대 입구에 다다르니 과장이 마중 나와 있었다.

“충성. 나와 계셨습니까.”

“어, 그래.”

이과장은 이제 갓 소령을 달은 직속 선배다. 10년 넘게 일을 같이 해왔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좋진 않다. 동기들 중에서도 항상 뒤에서 험담을 듣는 불쌍한 처지에 진급도 매번 누락이 되기 일쑤였다. 솔직히 이번에 소령을 단 것도 거의 기적과 다름 없었다.

10년 넘게 그와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난 이과장의 속내를 알수가 없다.

“한 대 해라.”

우린 말 없이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머금으며 힐끗 연병장을 보니 수 많은 시신들이 들것에 들려져 나오는 것이 언뜻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대강 설명은 해줄게. 어차피 위에 올라가면 브리핑을 하겠지만 말야.”

“예.”

“어제 새벽 03시 경 00 부대 내 전원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지만 급격한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가 제일 유력하다는 말이 있다.”

“..200~300명 되는 부대원들 전원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겁니까?”

“그래.”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거 아니야.”

이과장은 담배를 대충 끄고서는‘가자’라는 말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부대 정문 쪽에서 우루루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수 많은 기자들이 우리를 보며 서있었다. 지원 나온 병사들은 급시 위병소의 문을 닫으며 기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파리들은..”

이과장과 함께 부대내 강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군인들과 경찰들이 대강 자리에 서있는게 보였다. 단상 위에는 대령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다른 한손으로는 종이를 대강 넘기고 있었다.

“다 들어오셨으면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멀리 떨어져 있어 어디 소속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령의 말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에.. 어느정도 모이신거 같으니 간단한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대령은 손에 들린 종이를 넘기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새벽 03시 30분 경에 00 대대에 있는 대원들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35명정도이며 생존자는 3명. 아직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 생존자 1명이 있습니다. 그 외엔 전부 사망 판단을 받은 상태입니다. 생존자는 현재 극히 불안한 심리 상태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남은 1명은 현재 파악 중인데 아무래도 유일하게 살아 남아 대대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전문의 소견으로는 출혈성 심장 마비이며 사망자 모두가 같은 증상입니다. 현재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으며 현재 전공하고 계신 업무에 적절히 배치가 이루어질 겁니다. 우선 양 옆으로 파라솔이 있습니다. 파라솔 앞에 전공 자리가 있으니 거기서 해당 자료를 참고 하시면 됩니다.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대령은 단상에서 내려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파라솔 앞으로 이동하며 본인에 해당하는 전공 자리를 찾아 나섰다. 나와 이과장은 사건/사고에 해당했기 때문에 기무부대 동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동기들 2명이 있었다. 동기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이과장에게 경례를 했다.

“우리들이 모이면 안좋은 징조인데..”

동기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남은 동기가 테이블 위에 놓여진 문서를 들며 말했다.

“과장님도 계시니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저희에게 내려진 임무는 부대내 전반적인 수색과 혹시 모를 생존자의 신원 확보입니다. 감식이나 정밀검사는 국과수 쪽에서 연락이 되어 진행중인듯합니다.”

“그래.”

이과장의 말에 모두가 술렁였다.

“그나저나 이상하지 않냐? 아니 그 많은 병사들이 어떻게 심장마비에 걸려?”

“야. 병사들 사체 못봤어? 온 몸이 너덜너덜하더라.”

“무슨 말이야?”

“아니, 글쎄. 무슨 호랑이한테 잡혀먹기라도 했나 아주 온 몸에 큰 발톱 자국 같은게 있더라니까.”

“미친놈아. 호랑이가 어딨어. 쌍팔년도도 아니고.”

동기들은 그렇게 말하며 단독군장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2인 1조로 움직이라는 명입니다. 그리고 이건 부대 내부의 지도입니다.”

그렇게 동기들은 1조가 되어 가버렸고 자동적으로 나와 이과장이 1조가 되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어디부터 가실겁니까?”

“부대 외곽으로 가보지.”

나와 이과장은 부대 외곽. 그러니까 진돗개 둘이 발령 났을 때 은엄폐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작은 초소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에도 이런적 있으십니까?”

“아니, 처음이지. 사단장님도 주목하고 있다. 그냥 넘길 일은 아니야.”

“흐음..”

“이번엔 많이 힘들거 같다. 미스테리한 일은 우리가 할게 없어.”

이과장은 묘한 눈빛으로 부대 전체를 스캔하듯 훑어 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인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심장 마비로 죽는다는게 영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대대장은 뭐라고 합니까?”

“아, 대대장은 반쯤 정신 나가서 말야. 횡설수설해서 뭔말인지도 모르겠더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말에 이과장은 쓰게 웃었다.

“무리도 아니지. 자기가 관리하는 대대원들의 몰살 당했으니까. 정신을 아예 놔버렸어.”

“그럼 외부나 boq에 머물고 있는 간부들은 전부 무사하다는 겁니까?”

“그래. 당시 당직을 서고 있던 간부들도 다 죽어나갔다. 아무래도 부대 내에 있는 인원들만 변을 당한 모양이야.”

“..정말 저주라도 내린 겁니까?”

“모르지.”

초소 입구에 다다른 우리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쇠문을 열었다. 오래 사용되지 않은지 쇠문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아가리를 벌렸다.

“....”

푸르른 숲 속 차례대로 보이는 초소 번호판들 부대내 일어난 사건과는 별개로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다시 한걸음씩 발을 내딛으며 초소 이리저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진지공사가 막 끝난 모양인지 초소들은 하나하나 상태가 양호했다. 참호의 시설도 수리/수입을 모두 말끔히 끝난 상태였다.

이야옹.

얼마나 갔을까.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스윽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니 고양이라고는 하기에 너무나 큰 덩치와 커다란 안광이 보였다.

“응?”

너무 가까이서 본건가? 고양이가 지나치게 큰건가?

“과장님 저거 고양이 맞습니까?”

내 물음에 이과장은 내 어깨를 단단히 잡으며 뒤로 살며시 물러났다.

“넌 저게 고양이의 형상으로 보이냐? 천천히..”

앉아 있는 폼이 영 이상해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니 살쾡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엄청난 크기의 고양이가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고양이 특유의 무늬가 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건 착각일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조용.”

천천히 거리를 벌리려는 이과장. 일단은 거기에 맞춰 천천히 뒤로 물러나려는데 툭. 하고 뒤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고개를 돌려보니.

“!!”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의 팔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서 안되는 것이 보였기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허나 그 움직임이 맹수에게는 크게 다가왔을까.

키야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맹수. 네 발로 뛰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맹수의 모습은 사람이었다.

“과장님! 과장님 병사입니다. 아침 브리핑에서 들었던 그 병사입니다!”

내 말에 이과장은 길게 망설이지 않고 ‘잡자.’라고 말하고서는 튀어나가듯 앞으로 달려나갔다. 거기에 맞게 호응을 해야했기에 이과장의 뒤를 따라 발을 떼는 순간.

이야옹.

바로 옆에서 울리는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엄청나게 커다란 송곳니가 내 목을 물어 뜯으려 하고 있었다.

**

“헉!”

헛바람을 들이키며 몸을 일으키니 이과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과장님..?”

“괜찮냐.”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 말에 이과장은 털썩 주저 앉으며 땀을 닦았다.

“그 초소 문을 만지자 마자 네가 기절을 해버려서 여기까지 데려왔다. 갑자기 왜 그래? 뭔 일이라도 있어?”

“..예?”

“괜찮냐고. 임마.”

“아니 분명히 그 고양이가..”

내 말에 이과장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일단 쉬고 움직이자. 이거나 마시고 있어. 화장실 다녀올테니까.”

이과장이 건넨 물을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뭐지? 뭐라도 홀린건가? 대체 그 커다란 고양이는 뭐란 말인가?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해도 답을 얻을 수 없었기에 자리에 앉아 이과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강당 내부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 가운데에 놓여진 아주 커다란 보드판에는 현 상황의 대한 정보들이 공유가 되고 있었다. 봐서 나쁠것이 없었기에 보드판으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보드판에는 병사들의 구체적인 사인과 사진들이 있었고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병사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다만 실종된 병사 1명에 대한 정보는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건질게 없었다.

“오인한..”

“어제 말번이랑 초번 연달아 근무한 병사야.”

어느새 나타났는지 동기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야, 다 들었어. 갑자기 왜 기절을 하고 그래. 이과장이 그렇게 싫으냐?”

쿡쿡대며 웃는 동기는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평소 행실이 바르고 이렇다할 문제가 있는 병사는 아니었어.”

“얘만 도망간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어떻게 도망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생존 병사들은 아직도 안좋아?”

내 물음에 동기를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정신적 충격 때문에 당분간 말을 하긴 힘들거라고 하더라. 그나저나 참 세상도 요지경이야.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런 말세가 일어나는건지 원..”

“어쩌면 이 오인한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뭐.. 살기 위해 도망간 병사가 우리들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동기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낼 때 강당의 문이 열리며 여자들과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한 눈에 보아도 일반인인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온거지?

“쯧쯧..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혀를 차며 강당 내부와 우리들을 훑어 보던 중년의 여성이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대장이 여자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들이 어제 굿판을 벌인 무당들이오?”

“그래요. 내 마지막에 그 높으신 양반에게 그렇게 일러뒀건만..”

“우선 조사를 받으셔야합니다. 세 분 이쪽으로 오시죠.”

연대장은 무당들을 한 곳으로 데려가버렸다. 그 외에도 평소 부대 출입이 잦았던 민간인들이 찾아와 조사를 받았는데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가 되는 보드판에는 이렇다할 것이 갱신되지 않았다.

“몸은 괜찮나? 가자.”

볼일을 마친 이과장에게 내게 다가왔다. 아까 기절을 해서 다가가지 못한 초소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우리들은 무거운 침묵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도착한 초소의 문. 이과장은 내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넌 여기 있어. 나혼자 다녀올테니까.”

“하지만 과장님.”

“또 힘쓰기 싫다. 빨리 다녀올테니까 저기 반대편 쪽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 말하며 이과장은 초소의 문을 열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이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그가 시킨대로 초소의 출구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대 외곽을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지라 아무리 빨라도 30~40분은 족히 걸릴 것이기에 적당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동기에게 건네 받은 서류를 한 장씩 훑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미스테리하단 말이지.. 이런건 우리 전공이 아닌데.”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 일이 언론으로 나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이 부대는 물론이고 상급 부대도 발칵 뒤집어질게 뻔하다. 아마 세계가 주목하는 사건이 되겠지.

“푸우..”

뿌연 담배를 내뱉으며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 늘어가는 꽁초와 지나가는 시간을 본다. 예상보다 이과장이 늦는다.

“초소안으로 들어가볼까.”

이과장의 함구령이 있었지만 조금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천천히 움직여 초소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는데 아주 멀리 초소 저편에서 노랑색의 진한 안광이 번뜩이는게 보인다.

“뭐야.”

그게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멍하니 그 안광을 보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캬아악!

그건 맹수가 내는 울음소리와 같았다. 녀석이 노리는 것은 필시 나일터. 우선은 초소에 걸쇠를 걸어두고 허둥대며 뒤로 물러나니 ‘콰앙’하는 소리와 함께 초소의 문이 들썩였다.

순간 초소에서 차례대로 순찰을 돌고 있을 이과장이 생각났다.

“과장님!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