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올렸던 공포 단편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이어집니다.（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number=82011）

#1
눈을 뜬다.

숨이 탁 막히는 어둠이 나를 반긴다.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저녁 여덟 시. 원래라면 퇴근 후 식사를 한 뒤, 약간의 자유 시간을 만끽하거나, 친구들과 가벼운 모임을 가지거나, 연인이라면 서로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이제는 회사에 다니지도 않기에 내 모든 시간이 무의미한 낭비이자 자유 시간이었으며,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고, 연인은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않았다.

속에 남아있는 어지러운 숙취와 두통에 피곤함이 엄습한다.

굳이 이 침대를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눈을 감고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의 무언가가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뻗어 쥐어본다. 작고, 말라비틀어진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에 손에 잡힌 걸 헐레벌떡 방구석으로 던졌다.

식은땀이 흐르는 등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전에 느꼈던 피곤함과 졸음은 모두 달아난 지 오래였다.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다. 물이 얼굴에 닿자 조금은 숙취와 어지럼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거울을 바라본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남자의 얼굴이 마주보고 있었다.

감지 않아 떡진 머리, 망가진 수면 패턴으로 얼굴에 피부에 돋아난 트러블, 눈 밑에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고 뺨과 몸은 급작스럽게 움푹 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조소를 짓는다.

어째선지 한 평생 이러고 살아왔던 것만 같았다.

분명 찬란히 빛났고, 앞으로 행복함만이 가득할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전등을 킨 뒤, 방 한쪽 구석으로 날아갔던 물건을 찾아 조심스레 휴지로 감싸 들어올린다.

빛에 비춰본 그것은 어제의 기억보다도 흉측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뼈다귀처럼 앙상해 보이는 거무죽죽한 색깔의 작은 손.

오랜 유학생활에서 돌아온, 그의 친구가 건네 준 선물이었다. 이걸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냐?”

소주 한 잔을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은 친구가 내게 건넨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보여?”

나의 반문에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땅콩을 한 입 털어 넣은 친구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어휴, 유학 끝난 기념으로 너한테 한 잔 얻어먹으려 했는데, 네 상황 듣고 나니까 내가 한 잔 사줘야 할 판이네.”

쯔쯧, 하고 혀를 찬 그의 말에 난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이라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계속 미련이 남았다.

나는 왜 그날 쓰러진 사람을 보고 재수 없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걸까.

평소에 그런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 날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득한 불쾌함이 나를 사로잡는 걸 느꼈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은, 무언가에 홀린 기분.

그 덕에 곧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와 파혼을 했고, 그 후 내 삶은 내리막길로 구르기 시작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직장에서 잘리고, 주변에서 연락이 끊기고,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는 폐인 같은 삶.

조금 나중에, 그 당시 같이 있었던 친구에게 전화로 전해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색이 된 난 그녀에게 어떻게든 사과하려 했으나 그녀는 내 연락을 피했고, 찾아가려 해보았으나 접근 금지 명령 처분을 받기 전까지의 상황이 되어서야 그만 두었다.

이 사실들을 모두 털어놓자, 친구가 딱하다며 행운을 불러올 거라며 건네준 기념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물건이 세관을 통과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에게 물어보자 다 방법이 있다며 눈을 찡긋거릴 뿐이었다.

자세한 방법은 알고 싶지 않아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취기에 평소라면 건들지도 않을 물건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야, 근데 이게 뭐로 만든 물건이냐.”

“아? 이거? 원숭이 손으로 만든 거야.”

그 말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자, 친구가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야야, 쫄지 마 쫄지 마. 설마 진짜겠냐? 그냥 모형이겠지.”

그의 말에 나 역시 수긍했다. 하긴, 거기도 뭐 동물보호법이든 뭐든 있을 텐데, 설마 진짜일 리가.

대충 감사를 표하고 가방에 그 부적을 넣어놓자, 친구는 식탁에 조금 더 몸을 당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그 부적에 관해 엄청 유명한 얘기가 있는 거 알아?”

“이야기? 무슨?”

술잔을 다시 입가로 가져가며 친구를 바라본다. 워낙 무섭고 스산한 걸 좋아하는 친구라, 또 이상한 기념품을 가지고 돌아왔구나 싶은 생각으로 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 되게 유명한 고전 공포소설이 있어. 원숭이의 손은 세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소원을 일부러 비틀리게 들어주는 거야.”

친구는 그 소설의 줄거리를 짧게 줄여서 들려주었다. 한 일가족이 돈을 받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고, 그 집안의 아들이 공장에서 사고로 명을 달리하고 보상금을 받았다는 것.

그 후 슬픔을 견디지 못한 부인이 아들을 돌려달라고 빌었고, 그날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인이 기뻐하며 문을 열려하자, 남편은 문득 문 밖에 있는 그것이 이전의 아들이 아닌 무언가일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결국 남편은 문 밖의 존재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빌고.

그렇게 문을 연 부인을 맞이한 것은 텅 빈 어둠뿐이었고, 소설은 그렇게 끝났다고 한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던 나는 조금 의아한 점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세 번째 소원은 비틀린 과정이 없었는데?”

내 질문을 듣자 친구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내가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는 점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내 말이!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인데, 사실 비틀린 과정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건 원숭이 손의 본질이 아닐지 몰라.”

친구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삐뚜름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어쩌면, 원숭이의 손은 소원의 대가를 고통으로 따지는 것 아닐까?”

“고통?”

“응. 잘 들어봐. 처음 소원이었던 돈의 대가로 아들의 죽음을 받았으니 부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

그의 말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모를 잃은 아이를 뜻하는 말은 있어도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말을 이르는 말은 없다지 않는가.

“두 번째 소원은 아들을 돌려 달라는 거였지? 만약 남편의 추측대로 아들이 이세상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걸 부부가 보았다면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소원을 들어준 거야. 마지막은 또 어떻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기뻐서 문을 연 부인의 눈앞에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 상실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허탈함.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절망. 너무 완벽한 해답 아니야?”

그가 침까지 튀겨가며 하는 이야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신이 나서 그 소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결말이라고. 비참함과 우울함과 기괴함까지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라고.

그런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린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눈 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

그의 말을 떠올리자 기묘한 호기심에 그 흉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리는 것 같다가도 계속 살펴보니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원래의 색인지 아니면 세월인 만들어낸 흔적인지는 몰라도, 때가 잔뜩 묻은 듯 진한 갈색의 털들이 앙상한 팔을 주위로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손가락과 손목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고, 금이 쩍쩍 그어진 손바닥은 얇고 징그러운 손가락 끝까지 넓게 펼쳐진 상태였다. 마치 무언가를 잡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행운을 불러준다고는 하나 들고 다니기에는 좋지 않은 주목을 받을 것 같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난 그걸 대충 서랍 안 구석에 던져 넣은 뒤, 어떻게든 잊으려 했다.

여자친구와 관계가 모두 틀어졌던 날, 같이 있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 지내?

너무 잘 지내서 미칠 지경인데.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연락을 줘서 고맙다고,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할 얘기가 있는데, 혹시 언제가 시간이 괜찮아?

그의 말에, 나 역시 그때 겪었던 이상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또 어떻게든 전 여자 친구에게 사과를 전해주고 싶어 친구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어, 왔어?”

문을 연 친구는 내 몰골을 보고는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하긴, 무리도 아니지.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깔끔해 보이는 방에 살짝 놀라웠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디퓨저도 책상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맨날 우리가-, 내가 치우라고 했을 때는 그렇게 안 치우더니, 드디어 치우고 사는 거야?”

괜찮은 척 농담을 던지려다 말실수를 깨닫고는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웃지 않았다.

그냥 닥치고 있을 걸.

곧 친구는 작은 술상을 챙겨왔고, 우리는 조금씩 술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형식적인 안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띄우려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우리의 추억에는 같은 대학 동기였던 전 여자 친구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계속 불편한 분위기의 술자리가 계속되는 동안, 친구는 계속 무언가 말할게 있지만 쉽사리 꺼내기 힘든 듯, 우물쭈물 하는 태도에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니 뭐 나한테 할 말 있는 거냐?”

그렇게 친구의 얼굴을 바라봤다.

두 짙은 갈색이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노란 홍채와 가로로 찢어진 동공이 보였다.

…내가 요새 많이 피곤한가.

눈을 한 번 비비자 다시 평소의 친구 눈이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다시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나, 요즘 유정이랑 만나고 있다.”

그의 대답에, 난 기울이던 소주병을 그대로 멈췄다.

울컥, 하고 소주잔을 넘어 흐른 소주가 바닥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