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기. 끈적하고 답답한 공기.
여름의 중간을 막 가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운 날씨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정신을 차린 나를 맞아주는 상식 이상의 더위에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이 배어나올 듯 습하디 습한 공기를 힘겹게 폐에 밀어 넣고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것까지는 기억 나는데 그 이후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뒤통수에 느껴지는 불쾌한 통증 덕에 지금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 만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우선 상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난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만한 크기에 철제 캐비닛 안에 선채로 손발이 묶여 갇혀있는 듯 했다.
때문에 사방은 어두웠고, 빛이라고는 내 가슴 언저리께에 손가락 만하게 뚫려있는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것 뿐이었다.
몸을 숙여 구멍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워낙 좁은 탓에 쥐가 날 정도로 몸을 비틀어도 기껏해야 입술 언저리에 닿는 정도였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자면 난 한여름 땡볕 아래 우뚝 선 캐비닛에 손발이 묶인채 갇혀있단 얘기가 된다.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몸을 열심히 벽에 부딪히며 소리쳐 봐도 캐비닛은 시끄러운 쇳덩이 소리만 낼뿐 꿈쩍하지 않았고,
간절한 외침에 대답해주는 이 역시 없었다.
내가 대체 왜 이곳에 갇혀있을까?
근본적인 질문이었지만 전혀 짚이는 게 없다.
내가 돈이 많아서 몸값을 요구해 올리는 없을테고
누구한테 원한을 산적도, 적을 만든적도 없다.
내 상식선에선 난 여기에 이렇게 있을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쨋건 지금의 난 여기에 있고 미칠듯한 더위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조금 몸을 꿈틀거린 것 만으로 어느새 몸은 물이라도 끼얹은 양 젖어오고 있었다.
반대로 목은 점점 말라왔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와 입속을 거칠게 오고 갈수록
타는듯한 통증은 커져갔다.
눈 역시 땀이 자꾸 베어들어 제대로 뜨고 있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웠다.
이제 슬슬 해가 절정의 위치로 달리고 있는지, 캐비닛 안은 한계를 모르고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려지자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쩍 달라붙은 입 안으로 뭔가 수분기를 밀어넣지 않으면 정말 그리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 빛이 들어오는 하나뿐인 구멍이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
난 손을 더듬어 구멍 안으로 밀고 들어온 무언가를 만져보았다.
호스.
고무호스다.
곧 호스에서 물이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 이곳에 가둔 녀석은 미치광이임이 분명하지만 다행히 날 말려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난 다급히 몸을 구겨서는 호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산뜻하고 시원한 물이 들어올거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내 입속으로는 뜨거운 물이 미친 듯이 밀려들어왔다.
갈증을 잊을 정도의 고통에 난 비명을 지르며 호스를 뱉어내고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몸을 꿈틀댔다.
내 생각이 틀렸다.
날 가둔 놈은 상상 이상의 미친놈이다.
난 분노에 차서는 미친 듯이 욕설을 뱉어냈다.
한참동안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뜨거운물을 흘려보내던 호스가 사라졌을 뿐.
입안에 입은 화상 덕에 지금의 이 더위속에서 숨을 쉬는것이 더욱더 고통스러워졌다.
밖에있는 놈은 날 말려죽일 생각일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호스가 빠져나가고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고는 그저 점점 높아지는 온도에 온몸을 불태우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숨을 헐떡이는 것 뿐.
조금이나마 밖의 공기가 들어오는 구멍에 입을 가져다 대고 가쁜 숨을 몰아 쉬는것도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랏다고 생각할 때 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스럽나?”
차가운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목소리.
“사... 살려주세요....”
기력이 쇠한 나는 축 늘어진 목소리로 간신히 웅얼거렸다.
“그래. 그럴테지. 뜨겁고 목타고 숨막히고... 고통스럽겠지.
그럼 왜 네가 이런 꼴을 당하는 줄 아나? 똑똑히 들어둬.
넌 지금 벌을 받는거야. 네가 저지른 짓거리에 대가를 치르는거지.”
난 있는 힘을 다 쥐어짜내 남자에게 소리쳤다.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너 누구야! 나.... 나한테 왜 그러는데?”
난 이런일을 당해야 할정도로 나쁜짓을 한 적이 없다.
내가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런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사악한 사람 역시 아니다.
하지만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확실해. 넌 죄를 지었고 이건 네가 한짓에 대한 벌이야.”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난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급함을 담아 눈물을 뱉어내듯 애원했다.
“아니 아니, 저기..... 선생님. 사람을 잘못보신 것 같습니다.
전.... 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제발. 제발 좀 열어주세요.
얼굴. 그래 얼굴을 보고 확인 한번만 해주세요.
아무래도 이건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전 선생님이 누군지도 몰라요. 제발...”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둔탁한 소음과 함께 눈앞으로 빛이 훅하고 비쳐 들어왔다.
동시에 작은 공간에 갇혀있던 열기가 빠져나가며 마치 차가운 물에 뛰어든 듯 한 착각이 들정도로
시원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왔다.
난 캐비닛 앞에 엎어져서는 속에 담아두었던 뜨거운 열기를 모조리 뱉어내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한동안 헐떡거린 후에야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체크무늬 남방에 짧은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
분명 본 기억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주 전쯤 이 사람에게 안쓰던 조립식 창고를 팔았었다.
잠금장치까지 달린 제법 훌륭한 물건이지만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통에 인터넷으로 구매자를 찾았고,
이 남자가 좋은 값으로 물건을 사주었다.
내 기억으론 시골에 혼자 사시는 노쇠한 어머님 집 뒤뜰에 설치할 거라 했었다.
서로가 만족스럽게 거래를 했고,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당신... 대체 나한테 왜?”
확실히 무언가 착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나한테 원한을 품을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네가 죽인거야. 우리 어머니 네가 죽인거라고.”
이해 할 수 없었다.
그 조립식 창고가 문제일까?
그럴리 없었다. 분명 튼튼하고 좋은 제품인데다가 거의 새것이었다.
단지...
거기에 생각이 미친 난 설마하는 기분으로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미리 얘기해줬어야지.
잠금장치가 가끔 말썽을 부린다고 한마디라도 해줬어야지.
그걸 핑계로 내가 값을 깎을까봐 무서웠나?”
간이창고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가끔 자물쇠 이상으로 문이 잘 안열릴 뿐.
그저 힘껏 밀어낸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열수 있는 정도였기에
괜히 긁어부스럼일까 싶어 굳이 언급하지 않았던 사소한 고장이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완전히 고장나 사용자를 안에 가두어 버렸다면 어떨까?
“어머니는 4일이나 거기 갇혀계셨어.
연락을 안받으시길래 혹시나 싶어 급하게 시골집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창고안에 쓰러져 계셨지.
열리지 않는 문을 손톱이 다 빠지도록 긁으셨고,
뜨거운 날씨에 그 공간에 갇혀서 호흡곤란에 열사병에....
갈증을 풀자고 당신이 흘린 먼지 섞인 땀을 필사적으로 핥으시면서 4일!
4일을 끔찍한 고통을 겪으셨다고.
곧장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려 했지만, 너무 늦었지.
결국 시원한 물한모금 드리지 못하고 내품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어.
어때? 이제 좀 이해돼?”
난 충격을 받은채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문득 방금전 겪었던 지옥같은 고통이 떠올라 몸을 떨어야 했다.
4일. 너무도 끔찍한 시간이다.
나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고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걸까?
“이제 알아들었으면 똑똑히 새겨.
네 안일함 때문에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
너한테 백배 천배로 갚아 줄테니까.”
남자는 쓰러진 나를 거칠게 일으켜서는 그대로 캐비닛 안에 쑤셔 넣었다.
“아니. 안돼.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발악적으로 소리쳐 봤지만 곧 다시 어둡고 좁은 공간안에 가두어졋다.
그리고 다시금 뜨거운 공기가 내 몸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여름의 지옥같은 더위는 내 죄책감과 후회를 모조리 녹여 없애려는 듯이 뜨겁게 휘몰아 치며 주변 공간을 채워넣고 있었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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