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처음 떴을 때 난생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약품 냄새 덕분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니 내 몸 하나를 겨우 다 수용할 만한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깨질 듯한 두통과 눈알이 빠질듯한 통증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긴 어디지'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건 사냥을 위해 숲 속을 헤집고 다녔고 사냥감을 포착하고 공격 하려던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렸던 게 마지막 기억이다.


" 크하하 "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뿌연 유리 벽 너머로 처음 보는 남자 2명이 호탕하게 웃음 쳤다.


'살려주세요!'


간절한 외침이 들리지 않았던 걸까? 그들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이번엔 몸을 움직여 유리 벽을 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힘껏 힘을 줬지만 야속하게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약품 냄새로 다시 정신이 희미해졌다.



얼마나 잠들었던걸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똑같은 투명한 유리 벽 안이었다.



이제는 약품 냄새에 내성이 생겨 전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지막에 보았던 그들의 머리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와 눈 높이를 맞추더니 즐겁다는 듯 유리벽을 치며 아래 위로 흔들어댔다.



공간이 뒤틀렸고 머리를 땅에 처박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몸을 바닥에 처박고 난리가 따로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걸까?



몸이 찢어질 듯한 진동에 정신이 희미해져 갔고 정신을 잃기 직전 진동이 사라졌고 공간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그들의 말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이내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 걸까?



눈이 자연스레 떠짐과 동시에 죽음의 공포가 날 드리웠다.



다음엔 목숨이 붙어 있으라는 보장이 없었다.



눈알을 굴려 미친 듯이 주변을 탐색했다.



역시나 좁디 좁은 유리 벽이었다.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저것들에게 복수해야만 했다. 처참하고 잔인하게..



있는 힘껏 몸에 힘을 줬더니 처음과 달리 아주 조금이지만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나를 단단히 잡고 있던 어떤 물체가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자 천장에 보이는 촘촘한 문을 볼 수 있었다. 유리 벽을 나갈 수 있는 입구로 보였고 나무로 돼 보이는 문은 엄청 견고하게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입구까지 머리를 움직이려 힘껏 힘을 줬지만 무리였다. 천장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몸 하반신을 어떠한 물체가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탈출 경로를 생각해 봤으나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 중 한 명은 또 다시 새까맣고 탐욕에 가득 찬 눈을 하고선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곧바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입구의 문이 열렸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또 다시 그들의 말소리가 커졌다. 이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공간이 뒤틀리지 않았고 진동 또한 없었으며 나는 정신을 똑바로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고 지금이 아니면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있는 힘껏 입구로 튀어 올랐고 머리가 유리 벽 밖을 나와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왜지?




고통의 비명소리를 내며 울부짖어야 할 건 바로 나다.




자유 따위를 누릴 시간은 내게 없다.




그들에게 이제 내가 고통과 공포를 선사해야 할 것이고 나의 발악을 보여줄 차례가 온 것이다.



평소 내가 사냥하던 사냥감의 눈을 하고 있는 그들을 빤히 응시하며 새까맣고 탐욕에 찬 그들 중 한 명의 눈을 이빨로 강하게 물어뜯었다.




나의 발악은 성공적이었다.





붉은색 액체가 분수처럼 튀어 사방이 난잡해졌다.




힘 없이 그들 중 한 명이 쓰러짐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을 내며 나를 둘러싼 유리로부터 난 해방될 수 있었다.





할 일을 마치고 여유롭게 뒤돌아갔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들의 언어는 내가 쓰는 언어와는 달랐으니까.



다시 사냥을 하러 숲 속으로 향했고 유리 벽에 갇혀 있었던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 떠올랐다.




정확히 얼마나 갇혀 있었고 그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유리 벽 밖에서 나를 보며 항상 '독사' 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