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토이 드래곤즈 천하제일 금손대회 세계관 분야로 제출했던 글입니다. 

예선은 통과했는데 저보다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는지 표를 많이 받지 못해서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쓸 것 같습니다.

본선에서는 탈락했지만, 쓰면서 꽤나 마음에 들었던 글이기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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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바라는 소원의 종착점.

 하지만 소원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소원을 위해 발생한 기적은 무엇이라 부른단 말인가?

4962년, 당신은 이상한 규칙에 따라 살고 있었다. 쓸 데 없이 내기 걸지 말기, 과자가 있는 지역은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기, 천사의 구역에는 혼자만 다니기, 자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소원 같은 거 빌지 말고 스스로 이루기..... 보호자에게 왜 그런 것들을 지켜야 하냐고 물었지만, 당신의 보호자는 그저 당신이 크면 알게 될 뿐이라고 답했다.

 당신은 왜 이상한 법칙을 지켜가며 살아야 하는지 이해도 하지 못했고, 공동체에 묶여 사는 것도 지루하게 느꼈다. 하루 빨리 17살이 되어 독립해서 자유를 얻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18살 생일을 하루 앞둔 당신의 9번째 보호자는 곧 17살이 될 당신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주며 낡고 너덜너덜한 종이더미를 넘겨주고 공동체를 떠났다.

 인간이 멸망한 것은 5개의 기적 때문이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어른이 사라지는 기적.

모든 악을 심판하는 정의의 천사가 나타난 기적.

 영원한 승리의 기적.

 달콤한 것으로 세상이 가득 찬 기적.

 소원이 영원히 이뤄지는 기적.

 이 글은, 기적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17살이 된 당신의 선택을 돕기 위해 우리 중 가장 현명했던 친구, 김이 끔찍한 고통을 대가로 소원을 빌어 만들어졌다.

 첫 번째 기적의 결과, 모든 성인들은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옷가지만 내버려두고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성인이 아니었던 청소년 역시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에 도달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8살이 되어 성인이 되기 1년 전인 17살에 당신을 독립 시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첫 번째 소원을 빈 아이의 이름은 재스퍼 원더. 보육원에서 자라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자라던 보육원은 가난했고, 버려진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재스퍼는 언제나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재스퍼는 자신의 엄마를 찾아가기로 했다. 몰래 원장실에 숨어들어 서류를 훔쳐보았다. 서류에 써진 이름이 있는 곳으로 걸어 찾아갔다. 엄마를 마침내 보았을 때에는, 발에는 물집이 가득 잡혔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상태였다.

 “엄마….”

 재스퍼의 엄마는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미소가 싱그러웠다. 재스퍼가 늘 상상하던 대로였다. 재스퍼는 홀린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엄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엄마….”

 “누구니?”

 자신을 반겨줄 줄 알았던 엄마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재스퍼는 오래되어서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하고 엄마에게 설명했다.

 “저에요, 저. 재스퍼.”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재스퍼가 상상하던 대로가 아니었다. 

 “미안. 난 지금 다른 가족이 있어.”

 재스퍼에게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지만, 재스퍼의 엄마에게 재스퍼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니었다. 재스퍼는 사랑스러운 아기를 안고 자신에게 보여주길 바랬던 미소를 지어주는 엄마를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길고 기나긴 길을, 물집이 다 터지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을 정도가 되도록.

 재스퍼는 보육원으로 돌아와 몇 날 몇 일을 앓아 누웠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원장에게 통보 받았다.

 “얘.”

 원장은 대충 미안하다는 표정을 얼굴에 띄우고 입을 열었다.

 “넌 이제 애가 아니라서 더 이상 이 보육원에 있을 수 없어. 아프길래 봐줬지만 월요일엔 나가줬으면 한다.”

 재스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추측해보기로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던 모든 어른이 밉지 않았을까 한다.

 기적이 일어난 밤에, 재스퍼는 소원을 빌었다.

 

“영원히 아이로 있고 싶어요. 다른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소원은 이루어졌다. 재스퍼의 바람대로 모든 아이들은 영원히 아이로 남게 되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에 죽음으로서.

 두 번째 기적의 결과, 모든 사람은 정의의 천사에게 잔혹하게 심판 당하게 되었다.

 심판을 하는 천사는 녹색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결코 심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씩 그 천사에게서는 “쭈겨줘어…” 나 “미아훼….” 같은 말이 들려온다고 하지만, 악인은 끊임 없이 나타나 천사에게 심판 당한다. 

 두 번째 소원을 빈 아니타 엔젤은 정의로운 소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경찰이었고, 지역에서 사랑받는 경찰이었다. 아니타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해서 경찰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소원을 빈 것이다.

 “모든 악이 없어질 때까지 싸우게 해주세요.”

 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예를 들면, 살인과 도둑질이 있다면 살인이 더 큰 악이다. 도둑질과 사소한 거짓말이 있다면 도둑질이 더 큰 악이다. 착한 사람과 더 착한 사람이 있다면 평범하게 착한 사람이 악이 된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엔 아니타는 너무나도 어렸다.

 모든 살인자가 사라지자, 그 이후엔 모든 도둑이 사라졌다.

 모든 도둑이 사라지자, 그 이후엔 모든 거짓말쟁이가 사라졌다.

 모든 거짓말쟁이가 사라지자, 그 이후엔………

 아니타가 끝없이 녹색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은 사실은 부패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심판을 내린 이후라고 전해진다.

 세 번째 기적의 결과 인류는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되었다.

 승부를 한다면 영원히 이길 수 있다.

 진 자의 존재와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승자만 남았어도 영원한 승리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

 세 번째 소원을 빈 제레미 위너는 도박사의 아들이었다. 제레미의 아버지는 늘 내기 게임을 했고, 그가 이기는 날에 제레미는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그가 지는 날에는 주린 배를 붙잡았다. 

 제레미에게는 옐레나라는 소꿉친구가 있었다. 옐레나는 제레미가 굶던 날이면 굶는 날마다 용케알아차리고 작은 몸집으로 서로의 집이 통하는 개구멍으로 기어와 자신 몫의 빵을 떼어주었다. 옐레나 역시 풍족하게 먹지는 못했다. 불행하게도, 옐레나의 아버지 역시 도박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옐레나는 제레미에게 빵을 나눠주었다. 옐레나는 제레미에게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더 큰 불행은 제레미와 옐레나의 아버지가 서로를 상대로 내기 게임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두 도박사들은 재미있는 종목을 발견했다. 자신들의 아들과 딸이 비디오 게임을 해서 이기는 쪽의 아버지가 이기는 것. 제레미는 굶고 싶지 않기에 열심히 해서 이겼다. 게임에 소질이 있기도 했다.

 다음 날, 옐레나의 얼굴이 피멍으로 물들지만 않았다면 계속 이겼을 것이다. 제레미는 옐레나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고의로 지고는 했다. 그러면 그 다음 날은, 제레미가 배가 고프더라도 옐레나는 아프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레미의 아버지가 제레미가 고의로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날 밤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 끔찍한 밤에, 제레미는 눈물을 흘리며 공포심에 소원을 빌었다.

 “모든 사람이 영원히 이겼으면 좋겠어요.”

 다음 날, 제레미는 소원을 이뤘다. 제레미는 이겼다. 옐레나도 지지 않았다. 대신 옐레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제레미의 소원은 진 자의 존재가 부정 당하면서 이뤄졌다. 제레미는 아직도 계속 게임을 한다. 지는 법은 결코 없다. 그는 소원을 빈 순간부터 ‘질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레미는 지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 언젠가 게임에서 지게 된다면, 모순을 일으켜 옐레나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제레미는 끝나지 않는 승부를 한다.

 네 번째 기적의 결과로, 세상은 늘 달콤한 것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달콤한 것의 비율이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간다면,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달콤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큰 건물은 과자집으로, 가로등은 거대한 막대사탕으로, 보도블록은 초콜릿 조각으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네 번째 소원을 빈 루퍼트 베리는 지독한 편식쟁이였다. 루퍼트의 어머니는 루퍼트의 건강을 위해 건강한 식사를 주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루퍼트의 할머니와 루퍼트의 아버지가 방해했다. 그들은 루퍼트가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할수록 기뻐했고, 몰래 먹을 것을 사줘서 루퍼트가 좋아하는 것에 단순하게 기뻐했다. 의사선생님이 루퍼트의 당뇨가 위험하니 강력하게 권고했지만, 그럼에도 루퍼트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루퍼트가 먹고 싶어 하는 대로 전부 사주었다. 

 그리고 몸이 나빠진 루퍼트가 쓰러졌다. 루퍼트의 어머니는 거의 죽을 뻔한 루퍼트를 보고 화가 끝까지 났다. 루퍼트의 어머니는 철저하게 건강한 음식만을 먹였다. 조금이라도 루퍼트가 좋아할 수 있게 달고 맛있게 만드려고 노력했지만 설탕 가득, 첨가물 가득한 맛은 나지 않았다.

 루퍼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 동안 먹었던 베리타르트도, 초콜릿 무스케이크도, 바움쿠헨도, 하나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전부 엄마 탓이다. 엄마가 밉다. 루퍼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엄마의 시금치를 먹으며 소원을 빌었다.

 “이런 쓰레기 음식 말고, 달콤한 것으로만 세상이 가득 차게 해줘.”

 루퍼트의 소원은 정말 이루어졌다. 세상은 달콤한 것으로 가득 찼다. 루퍼트는 가장 먼저 제일 가까이에 있던 엄마 크기의 딸기잼 쿠키를 뜯어먹으면서 히죽였다.

다섯 번째 기적의 결과로, 소원을 함부로 빌면 뒤틀려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지니는 소원을 왜곡하고 비꼬아 이루어준다.

한 번 빈 소원은 되돌릴 수 없다.

소원을 취소하는 소원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틀린 지니는 자신이 만든 악몽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

 다섯 번째 소원을 빈 트리샤 지니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소녀였다. 알라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왜 소원을 세 가지 밖에 못 빌지? 첫 번째 소원에서 무한하게 소원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지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고, 악한 존재였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주인의 조건을 충족한 모두에게 소원을 이루어 주는 벌을 받은 것도 그런 지니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런 강대하고, 악한 지니의 앞에, 

 “소원이 무한대로 이뤄지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을 빈 트리샤가 나타났다.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 것 같은가?

 지니는 적극적으로 소원을 뒤틀고 왜곡했다. 

 트리샤의 소원에는 주어가 없었다. 누가 소원을 무한대로 이룰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면, 트리샤가 빈 소원이 ‘누군가의 소원을 무한하게 이뤄주는 지니가 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트리샤는 지니가 되었다.

 지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래서 트리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되었다.

 잘못된 소원을 빌어 재앙을 가져올 아이들의 앞에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었다.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며, 기적을 이뤄주었다.

 기적은 누구나 바라는 소원의 종착점이다.

 하지만 소원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소원을 위해 발생한 기적은 재앙이 되어버린다.

 이미 인류는 5개의 재앙을 겪었다.

 17살이 된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당신이 자랄 때 당신을 키우고 이끌어준 언니/오빠들 아니면 형/누나들의 존재를.

 당신이 17살이 될 때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돕고, 매번 위험한 지역을 피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주고, 이빨이 상하지 않도록 당신에게 양치를 가르쳐왔을 그들은, 17살이 되는 순간에 한 가지 선택을 했다.

18살이 되어 이 세상에서 지워지기 전에 뭘 할 것인지.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하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이어 내려져 온 의지를 이어 나가거나.

 하나는 쉬운 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때로는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 자신을 위한다면 당신은 지금 떠날 수 있다. 

 자유롭고,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누려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뤄보고 싶었던 것을 이룰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당신이 그 행복을 포기한다면,

남은 1년 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기꺼이 돌봐 줄 어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겠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잘못된 소원으로 잘못된 기적을 불러오지 않게 이끌어주는 희망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죽기 전에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당신을 돌보기로 선택한 당신의 보호자였던 아이들처럼,

소원이나 기적 따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의 낙원의 토대를 건설해 나가겠다고 결심했다면,

이 글을 쓰는 우리의 의지가 끊어지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우리가 짊어진 책임을 의미 있게 만든 당신의 선한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이 기적으로 가득 찬 멸망한 세상에서, 결국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20xx년 x월 x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