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한 시간만.."

여고인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생님을 투표하라면 30대 초반에 피부가 백옥처럼 뽀얗고 큰 기럭지를 소유한 과학 선생님일 것이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으로 잘생긴 과학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초점을 잃어 마치 썩은 동태 눈깔을 연상시키던 학생들의 눈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분란하게 손거울을 꺼내 앞머리와 옷매무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방학이 코앞인데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지 않겠냐? "


" 아! 선생님! "


가을의 낙엽이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고 대지의 휴식기를 알리는 혹한의 겨울이 찾아오기 직전의 교실은 어수선했고 마침 겨울을 알리는 비는 하늘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허락해 줄 리 없던 선생님은 학생들의 탄식에 창문을 한번 바라보곤 생각에 심취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럼 이번 시간만 쉬도록 하자 "



" 선생님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



" 무서운 이야기라.. 듣고 집에 못 가겠다고 하면 안 된다? 알겠냐? "


반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탁의 조명만 남겨둔 채 교실의 불을 껐고 마치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선생님은 생수를 벌컥 들이키며 말문을 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같이 한 동네에서 크고 자란 동갑내기인 남자와 여자가 있었어.

초,중,고 같은 학교를 나와 심지어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둘은 자연스럽게 그 누구보다 가까운 연인 사이로 발전했어. 둘은 어느 날 한 약속을 하게 돼.

약속의 내용은 둘 중 누군가 하나 죽으면 따라 죽기로 말이지 흔히 서로 죽고 못사는 남녀 사이에 하는 말장난이라 생각했던 남자는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약속을 했지만 여자는 달랐지.


정말 진짜로 남자를 사랑했기에 남자가 죽으면 진짜 자신도 따라 죽겠다는 생각으로 약속을 했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둘의 행복은 사실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간 여자는 갑작스럽게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되었고 둘의 세상도 마치 끝날 것만 같았지.

밤 낮을 지세우며 남자는 여자를 간호했지만 여자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했기에 둘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음을 알 수 있었어.

시간이 점점 지나자 여자의 몰골은 해골을 연상시키듯 삐쩍 말라있었고 몸은 온기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어.

여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남자는 일말의 희망을 위해 더욱더 열심히 간호했어.

그리고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말했어.

" 내..가 주..죽으면.. 너도.. 따라 주..죽을꺼지?.. "

여자는 남자의 두 어깨를 꽉 잡으며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고 남자 또한 말했어.

" 그럼.. 너 죽으면 나도 죽을꺼야.. "

서로 한참을 부둥켜안으며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마침 여자는 온몸의 기력을 다하여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어.

남자는 슬픔의 고통 속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정도로 남자의 삶 또한 피폐해져 갔고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살시도를 했어.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참 질겼어.

남자는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할 때마다 죽기 직전에 살았고 마지막 자살시도를 할 때는 죽음의 공포가 슬픔의 고통을 이겨내고야 말았어.

무슨 말이냐고? 남자는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죽음의 공포는 그 어떠한 것을 이겨낼 정도로 무서웠거든.

남자 지인들 또한 남자를 격려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남자는 자기 삶을 되찾아 가고 있었어.


시간은 남자의 빈 마음을 점점 채워갔고 마음이 채워질수록 슬픔 또한 잊혀지고 있었지.

슬픔이 다 지워져 갈 무렵 남자에겐 좋은 인연이 나타났고 남자는 여자를 망각하기 시작했어.

점점 여자의 그림자로부터 해방되고 있었고 기억 속 어딘가에 추억의 파편이 될 때 쯤

추억이 다시 일상과 고통으로 남자에게 다가왔어.

남자는 약속을 어긴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어.

매일 밤 꿈에 여자가 나타나 남자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여자의 환청과 여자가 보였고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

이대로 있으면 정말 미쳐서 죽을 것만 같았기에 남자는 수소문 끝에 용한 무당을 찾아가게 되었어.

무당은 남자가 들어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했어.

" 쯧쯧.. 지키지 못할 약속을 왜 했어 이 어리석은 놈.. "

"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여자의 원한이 너무 강해서 부적이나 굿으론 턱도 없어 "


무당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문을 열었어.


" 방법은 하나뿐이야 1년에 한번 그믐달이 뜰 때 젊은 여자의 피로 그녀의 원혼을 위로해 줄 방법 만이 니가 살길이야 "

무당의 말을 듣고 남자는 문뜩 창문을 바라보았고 그믐달이 밤하늘을 아련히 빛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

두 손가락을 다 펴 남자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무당을 말했어.

" 그리고 딱 10번 10년이 되는 해에 넌 그 여자로부터 해방될 것이야 "


남자는 살인을 해야 했어 즉 지금 살인을 해야 1년이 편했고 앞으로 매년 마다 살인을 저질러 10명의 피로 여자의 원혼을 달래면 해방될 것이라는 말이었지.


고통 속에 몸 부릴 칠 바엔 살인을 하자고 결심했어.



살인은 명백한 범법행위이고 평소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자신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에겐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어.



살인을 하지 않으면 여자에게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거든.


남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잔인하게 여자를 죽였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환각과 환청이 들리지 않았고 꿈에도 여자가 나오지 않았어.


기뻐했어 남자는 여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말이지.


그렇게 매년 그믐달이 뜨던 11월에 살인을 저질렀고 남자는 마지막 10번째 살인을 남겨두고 있었어.


마지막 살인과 여자와의 질긴 인연이 끝이라는 생각에 남자는 그 어느 살인보다 신중했어.


살인 대상으로 지목된 여자는 남자를 피해 폐교가 된 학교로 들어오게 되었고 교무실에 숨었지.


"터벅..터벅.."


남자의 발걸음이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내 교무실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어.


여자는 가쁜 숨소리가 세어나가지 않게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 막았어.

"터벅.. 터벅.."

한참 후에야 다시 발걸음이 들렸다.


점점 교무실과 멀어지고 있었고 여자는 깊은숨을 몰아쉬었어.


그때였어.


" 다!다!다!다! "


과학 선생님은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을 때 손바닥으로 교탁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쳤고 교실엔 학생들의 고함 소리로 가득했다.


" 꺄아아아!! 선생님!! "



학생들의 원망 섞인 탄식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학생들에게 강렬하고 인상 깊은 무서운 이야기가 끝났다.



" 무서운 이야기 끝~ "


" 반장 교실 문단속하고 복도 불 끄고 집에 가라~ "


짧고 간결한 무서운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긴 야간자율학습도 끝났고 교실 밖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무서운이야기가 재밌었다며 낄낄거렸다.



반장이었던 난 학생들이 다 나가고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잠그고 복도 불을 끄고 뒤돌아서 가려던 찰나였다.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 느껴지던 방향으로 말했다.


" 누구세요? "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시 뒤돌아 가려던 순간 전등 하나가 고장 났던 탓인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고 잠깐이지만 인기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조차 없이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선생님? "


복도에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빠르게 반복했고 창문에 비치는 그믐달의 모습이 핏빛을 띄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 손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고 복도 바닥에서는 바닥이 부서질 것만 같은 굉음이 났다.


" 쿵!쿵!쿵! "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내 얼굴 바로 앞에 멈춰선 선생님은 씨익 웃었다.



무서운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나로 인해 이야기가 오늘 끝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