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을로 들어선 건 논밭을 뜨겁게 달구던 해가 슬슬 힘을 잃어갈 즈음 이었다.

커다란 삿갓을 눌러쓴 채 흰 도포를 차려입고,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까지 척하니 짚은 꼴은

어디 이름있는 산의 산신령이 잠시 마실을 나왔나 싶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허나 그 면면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몇 날 며칠 밤이슬을 맞았는지 입은 옷은 꾀죄죄했고

어디 냇가에서 눈곱이나 간신히 뗐나 싶은 얼굴엔 피로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게다가 왼쪽 눈두덩이에 가죽안대를 턱하니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사연많은 나그네구나 싶어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땅바닥에 그림이나 그리며 놀던 아이들도 새로운 놀거리라도 생긴양 어른들의 뒤를 따랐다.

그는 머리에 쓴 삿갓을 벗어 이제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머리를 보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야기 찾아 전국 팔도 두루두루 헤집고 다니는 이야기꾼 박 아무개라 하오.

보다시피 눈이 한짝 뿐이니 외눈박이라 불러주시오.

외눈박이 말고 외눈 박.

내가 박가니 그게 맞지 않겠소?”

하면서 껄껄 웃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아이들도 키득거리며 따라 웃었다.

“내 뉘일 자리 한칸에 주린 배 채울 곡기를 좀 청하고 싶은데 괜찮겠소이까?”

마땅한 주막도, 묵을만한 숙소도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외지인 하나 먹여주고 재워줄 집이야 있었다.

얼핏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외눈박 이었지만

그의 능청스런 말솜씨 덕에 믿음이 갔는지 마당 넓은집 최가네가 나서주었다.

“마을이 좁은지라 돈받을 만한 대접은 못해드리오.

변변찮은 잠자리에다가 찬밥에 나물쪼가리 라도 괜찮으면

우리집에서 공으로 허기나 채우고 찬바람이나 피하시우.”

외눈박은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으나 거저 얻어먹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공이라니. 입으로 먹고사는 이야기꾼이 맨입은 안될 말이오.

정 그러하시면 내 재주가 있으니 그걸로라도 삯을 치르리다.

조선 팔도 다 뒤지고 다녀도 나 같은 이야기꾼은 없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닐거요."

최가가 외눈박을 안내하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무리지어 그 뒤를 따랐다.





가볍게 상을 차려준 최가 마누라가 다듬이질을 하는 동안,

최가는 마을 장정 몇이랑 마당 한켠에서 새끼를 꼬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서 주린 배를 채운 외눈박은

물까지 시원하게 들이킨 뒤 숨을 고르고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먼발치에 무리지어 앉아서 외눈박이 이야기를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실나온 어르신이 다리쉼 할겸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계신 것 까지 본 외눈박은

청중들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목을 가다듬고는 아이들을 평상으로 불러들였다.

“자, 이리들 가까이 와서 앉거라. 이제부터 이 외눈아재가 세상 듣도못한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마.”

우르르 몰려와 평상 앞에 자리잡은 아이들 뿐 아니라

새끼를 꼬던 최가와 청년들, 다듬이질을 하던 최가의 아내. 그리고 노인까지 외눈박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너희들 깜북이라고 들어는 봤을지 모르겠네.”

아이들은 처음듣는다는 말을 저마다 웅얼거렸다.

이야기 깨나 들었음 직한 노인마저 깜북이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게 아주아주 무시무시한 요괴라 이말이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에다 손발까지 숯검뎅이 마냥 거무튀튀 한 것이

해만 떨어지면 어디서 기어나와서는 쩔뚝거리면서 돌아다니거든.

장님인 주제에 귀가 어찌나 좋은지 침만 꼴깍 삼켜도 귀신같이 알아듣고 오도도독 달려오지.

그리고 사람을 확 잡아채서 눈알을 혹하고 뽑아먹는데 아주 세상 세상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지. 암.”

아이들은 침한번 꼴깍 삼키지 못하고 겁먹은 채 외눈박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끼꼬던 손이 느려진 것을 보니 최가와 청년들 역시 제법 깊이있게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가의 아내는 내심 무서운지 다듬이질 소리가 조금 빨라진 듯 했다.

주변을 쓱하고 둘러본 외눈박은 만족스럴만치 뜸을 들이더니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이 이야기는 저~~ 산넘고 들질러 멀고먼 마을에서 가져온 눈알빼먹는 요괴. 깜북이에 대한 이야기야.”

어느새 아이들은 외눈박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깜북이는 원래 어릴적부터 절름발이 장님이었는데

자기 눈 낫는 약이랍시고 아직 흙도 채 마르지 않은 무덤을 파헤쳐서는 사람 눈알을 뽑아 먹었다더구만.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그걸 알고는 그이가 사는집에 불을 놔버렸지.

사흘간 활활 타고 꺼진 그네 집에 가보니 글쎄 까맣게 타죽었어야할 그이 시체가 없는거야.

요상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냥 뼛가루 하나 안남기고 모조리 타버렸나 하고 말았지.

근데 얼마안가서 마을에 소문 하나가 점점히 번져나갔어.

밤만 되면 온몸이 새까맣게 탄 무언가가 돌아다닌다고 말이야.

요사스런 소리를 내면서 절뚝절뚝 따라와서는 눈알을 확 하고 뽑아먹는 괴물...

사람들은 저마다 불타죽은 장님이 원한을 품고 요괴가 돼서 돌아왔다고 수근거렸지.

어둠 깔린곳에 조용히 숨어있다가 발소리만 들리면 절뚝 절뚝 �i아가서는 눈알을 싹 뽑아먹는

깜북이가 됐다고 말이야.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해만 떨어지면 빗장을 걸어잠그고 밖으로 나가질 않았어.

그런데 그 마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장난끼 많은 꼬맹이 하나가

겁도 없이 깜북이를 보겠다고 나선거지.

해가 지길 기다렸다가 가족들 전부 잠든걸 본 후에.

슬쩍 빠져나와서는 불빛 하나 없는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지.

그렇게 한참동안 밤길을 빨빨거리고 있는데도 그놈의 깜북이란 건 보일 생각을 안하는거야.

‘그럼 그렇지. 또 어른들이 겁주려고 없는걸 만들어 냈구나.’

그렇게 툴툴 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거야.

쩔뚝. 쩔뚝. 쩔뚝.

흙길을 비틀거리면서 밟아 오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오금이 저려오고 가슴이 죄어와서

본능적으로 딱 알아채버린거야.

‘아 깜북이가 나타났구나.’

깜북이는 눈이 안보이니까 소리만 안내면 된다!

어른들이 그리 말씀하셨으니 그 자리에 딱 멈춰서는 숨도 참고 꼼짝도 하지 않았지.

그러니까 뒤에서 발소리랑 같이 비릿내가 묻어나올 것 같은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거야.

‘여 어디 있는 것 같은데... 어디있나? 어디로 숨었나?

다 안다. 눈알 두짝 다 여기 있는거 안다...’

절뚝. 절뚝. 절뚝..

흐흐흐.....

소리는 가까워지는데 한발짝이라도 움직이면 깜북이 귀에 들어가니 도망도 못가고

그냥 제발 지나가 주십사... 아부지 부처님 어르신 누구든 도와주십사.

그렇게 눈을 딱감고 속으로 애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딱 하고 안나는거라.

‘아 가버렸구나.’

그렇게 안심했지.

마침 참았던 숨도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 치는 통에 크게 숨을 내쉬면서 눈을 딱 떴는데..

눈앞이 새까만거야.

이게 뭔가 싶어서 멍청하게 보고있자니....

‘여기있었네. 눈깔 두짝 다 여기 있었네.’

머리는 타다만 것이 사방으로 뻗쳐서 산발이 되어있고

눈꺼풀은 녹아 없어졌는지 뻥 뚤린 구멍 두 개만 �� 하고 나있는 모양세에

손톱은 어찌나 긴지 주먹을 쥐면 제 손을 찌를 지경이었어.

그 모습이 말도못하게 끔찍해서 나살려!! 하고 크게 소리내려 입을 열어도 오물오물 거리기만 하지

무슨 소리가 튀어나오질 않았지.

그 와중에 깜북이는 웃으면서 그 긴 손톱을 들어 올리는거야.

‘가져가야지. 생으로 뽑아먹어야 약이되지. 두 개 다 뽑아서 한입에 꿀떡 삼켜야지.’

그제야 막혀있던 소리가 터져나와가지고 새끼돼지 마냥 소리지르면서 달음질쳤는데

그 깜북이란 놈이 좀 빨라야지.

절뚝거리면서도 채 열걸음도 안가서 애를 잡아다 바닥에 매다 꽂아버렸어.

‘흐흐흐.... 눈깔.... 싱싱한 눈깔....’

그러고는 그 긴 손톱을 애 눈에 순식간에 훅 하고 쑤셔넣어서는 피가 절절 흐르는 눈깔을 뽑아내버린 거야.

그리고 꼭 개암이라도 먹는거마냥 입안에 넣고 굴리는데,

꼬맹이는 아프고 무서워서 죽어라 소리를 질러댔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배꼽부터 시작해서 온 힘을 다 끌어올려 소리를 지르니까 이제 마을 사람들 귀에 닿은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횃불이며 낫이며 곡괭이며 집어 들고는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왔지.

눈알을 신나게 굴려 먹던 깜부기는 그제야 아이를 놓아주고는 어두운 구석으로 사라져갔어.

다만 곱게 가지는 않았지.

피가 철철 흐르는 한쪽눈을 부여잡고 엉엉 우는 아이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지.

‘남은 한짝. 내 가지러 간다. 꼭 내가 뽑아먹는다. 기다려라’

그날 이후로 꼬맹이는 저녁놀이 슬쩍 비치기만 해도 후다닥 들어와서는 방에 틀어박혔지.

해가 뜰때까지 절대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수백번 곱씹으면서 말이야.

그렇치만 가끔씩 밖에서 절뚝이는 발소리와 축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하지.

‘남은 한짝. 내 뽑아먹는다. 기필코 내 뽑아먹는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저마다 옆에 동생 뒤에 형아를 끌어안고는 덜덜 거리면서 외눈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최가와 청년들. 그리고 최가의 아내까지 손이 완전히 멎어있었다.

조용한 마당을 한동안 풀벌레 우는 소리로 채운 후에야 외눈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어째야 겠어? 해 떨어지면 뒤도 보지말고 집에 들어가야 겠지?

혹여나 어물쩡 거리면.....”

외눈박은 아이들을 쭉 둘러보며 하나하나 전부 눈을 마주친 뒤

별안간 안대를 걷어 뻥 뚫린 눈두덩이를 보여주며 ‘왁’ 하고 놀램질을 쳤다.

아이들이 제각기 다채로운 비명을 질러대며 집으로 쏟아져 나가자

썩 만족스러운지 껄껄 웃어보이고는 치워놓았던 물그릇을 들어 입을 헹구었다.

“거 참... 애들 경기하것소.”

다시 새끼꼬는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최가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걱정마시오. 가벼운 장난이니.

그보다 이제부터 말 안듣고 빨빨 거리며 돌아다니는 애들이 밥때만 되면 알아서 집에 들어올 터이니 수고가 좀 덜할것이외다.”

최가와 청년들은 과연 그렇군... 하면서 외눈박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었다.

“애들 때되면 집 찾아 가려고 만든 이야기인가보오. 기가막히구만.”

외눈박은 다소 착잡한 표정으로 안대를 쓰다듬으며 작게 대답했다.

“내 농은 잘 쳐도 없는 걸 만드는 이야기꾼은 아니오.”

최가는 듣지 못했는지 다시금 새끼꼬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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