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제압해. 죽이는건 우리쪽 피해가 커질 위험이 있을 때 만.

인질을 잡을 수 있으면 잡고.

겁줘서 될 것 같으면 그렇게 해서 최대한 손실없이 우리편으로 끌어넣어.

진수는 대가리 먼저 잡아.

난 진혁이 찾으러 간다.”

역귀로 인해 본부를 버리고 도망쳐 온 이빨부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때문에 곧바로 병력들을 통솔하여 태영마을로 쳐들어 온 것이다.

예고도 없이 태영마을에 들이친 이빨부대는 큰 어려움 없이 마을 내부로 침입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역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겨진 마을인 태영마을은

이런 대규모 병력을 막는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인과 어린이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 했기에 즉각 대응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진수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닥치는 대로 집을 뒤져대고 있었다.

“여기 대가리가 누구야?!!!!”

크게 소리치며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던 중 진수는 익숙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 뭐야 이게 누구야? 죽은줄 알았더니 살아있었네?”

갇혀있던 최대위는 의외라는 얼굴로 진수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쳐들어오다니 부대를 제법 쓸만하게 키웠나봐?”

진수는 웃었다.

“그럼. 네 그 허접한 실력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대단하신 분이 대장이니 당연하지.

뭐 됐네. 원래는 그냥 죽여버리고 네자리 뺏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부대장 자리도 땄겠다, 대장님도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셨으니 특별히 부하로 받아주지.

어때? 보아하니 여기서 취급은 아주 개차반이었던 것 같은데.”

최대위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건 여기서 빼줘.

그 빌어먹을 역귀 새끼들만 잡아죽일 수 있으면 난 뭐든 상관 안해.”

진수는 주저없이 최대위를 풀어주었다.

대충 보니 지금 이빨부대 규모가 커진 듯 처음보는 얼굴이 많았지만 예전 자신의 부하도 몇몇 보이는 것 같았다.

“일단 하나 물어보자. 여기 대가리가 누구야?

대장님이 그 대가리를 잡아오라고 하시는데.”

최대위는 그나마 마을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총 책임자는 김갑수 이장이야.

진혁이란 놈은 행동대장 내지 영웅 정도 위치인 것 같고.

진혁이는 지금 밖에 있으니 이장있는곳으로 안내하지.

그다지 돌아다녀보진 못했지만 그정도는 할 수 있어.”

진수는 크게 만족스러워하며 최대위를 앞세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물을게. 진혁이 어디있어?”

진아는 수지와 시현이를 안아들고는 물러났다.

그 사이를 진혁의 정글도를 꺼내든 상우가 가로막았다.

“안돼. 상우야. 위험하니까 이리와!”

상혁은 의외라는 듯 상우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진혁이 쓰던 칼에 진혁과 똑같은 중단 자세.

“재미있네. 그놈한테 배웠나 본데 하필 고른게 그런 덜떨어진 놈이야?”

상혁은 장난스레 칼을 휘둘렀다.

“뭐하는거에요! 애잖아요!!”

진아가 소리쳤지만 상혁은 즐거운 얼굴로 상우를 공격할 뿐이었다.

최선을 다해 방어하긴 했지만

상우는 상혁이 가볍게 휘두르는 칼 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절대 이길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닥은 잡았나보네. 한두번이나마 막아내는걸 보니.

좋아. 적당히 재미 봤으니 이제 꺼져.”

상혁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상우의 칼을 멀리 쳐내 버렸다.

“자 이제 마지막이야. 진혁이...”

다시 말하려던 상혁의 질문은 이를 악문채 목검을 휘두른 진아에 의해 가로막혔다.

어렵지 않게 목검을 잡아 챘지만 그 틈을 타 상우가 다시 달려들고 있었다.

상혁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차갑게 말했다.

“좋아. 이제 말로 하는건 끝이야.”

상혁은 그대로 진아의 손을 뒤틀어 목검을 뺏어서는 진아에게 발길질을 하고

옆에서 달려들려는 상우의 몸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수지와 시현은 그저 쓰러진 진아와 상우를 끌어안고 울 뿐이었다.

“대답해. 안하면 너희들 다 죽어.”

진아에게 다가가던 상혁은 걸음을 멈추었다.

윤성이가 날아간 정글도를 집어들고는 진아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상혁은 윤성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 너 기억난다. 내 이빨이었지.

왜? 복수라도 하게? 이제는 내가 안무서운가 보지?”

상혁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앞에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윤성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극복했다고 생각한 트라우마가 다시 윤성의 몸을 지배했다.

그 증거로 칼을 부여잡은 손은 덜덜 떨려오고 있었고 고개조차 제대로 들어올릴 수 없었다.

“이제 장난칠 시간 없어.

당장 안비키면 이번엔 주저없이 목을 쳐버릴테니까 살고싶으면 조용히 비켜.”

윤성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떨림도 심해져 제대로 서있기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베어나올 정도 였지만 끝내 비키지는 않았다.

“지킬거야... 다 지킬거야...”

작게 중얼거리는 그 말은 상혁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윤성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윤성이 옆에 시현과 수지가 나란히 섰다.

윤성이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듯. 뒤에있는 진아와 상우를 지키려는 듯.

겁먹었지만 당당한 얼굴로 나란히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세명의 아이들을 보고

상혁은 인정 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용기하난 가상하네. 근데 그것만으론 아무것도 못해.

이제 경고는 없어. 진짜 다 베어버릴 테니까. 셋 셀 때까지 비켜.

하나. 둘!!! 컥.”

아이들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후에 들려온 것은 상혁의 짧은 신음이었다.

상혁은 화살이 스치고 지나간 옆구리를 내려다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만! 움직이지마! 이번엔 머릴 쏠테니.”

밖에서 석궁을 든 황반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물러나. 그리고 병사들 전부 물려!”

상혁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상처를 어루만졌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황반장에 말에 상혁은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쏠거야? 당신 사람 죽여본적 있어?”

황반장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없지. 하지만 못할 것도 없어.

네놈이 애들을 건드려준 덕에 화가 단단히 났거든.

지금이라면 주저없이 머리에 구멍을 내줄 수 있어.”

얼굴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그래. 그런 것 같네. 확실히 사람 하나 정도는 그냥 죽여버릴 만큼 살벌한 얼굴이야.

근데 그럴려면 좀더 빨라야지.”

상혁은 순식간에 들고있던 칼 하나를 황반장에게 던졌다.

반사적으로 석궁을 발사 했지만 칼을 피하려다 보니 조준이 정확하지 않았고

상혁은 어렵지 않게 화살을 피해 황반장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황반장을 제압해 목에 칼을 들이민 상혁은 다시 물었다.

“똑같은 소리 또 하게 했다간 저놈들 다 죽일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진혁이 어디있어?”

황반장은 슬쩍 진아와 아이들 쪽을 보았다.

도망칠수도 숨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상혁은 황반장에게 빼앗아든 석궁을 아이들에게 겨누었다.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말고 빨리 말해.”

황반장은 고민 끝에 상혁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이빨없이 역귀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진혁이는 그걸 시험하러 갔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오래지 않아 돌아올거야.

만약 성공적이라면 네 숙원도 이룰 수 있어.

아무런 희생 없이 역귀들을 잡아 낼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럴 필요 없어.”

상혁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듯 했다.

“당장 살기위해서 그 정도 거짓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들어볼 가치는 있겠어.

좋아. 시간을 끌기위해 아무말이나 지껄인거든 뭐든 한번 속아보는걸로 하지.

어쨋건 진혁이가 곧 온다면 그 녀석을 잡아놓고 이야기 해봐야겠네.

전부 따라와. 너희들은 진혁이가 올때까지 인질이야.”





“자 영감. 이제 다 끝났으니까.

딱 항복 선언 하고 우리 대장 밑으로 들어와.

괜히 반항하고 있는 놈들 다치기 전에 나가서 투항하자고.

좋은게 좋은거잖아?”

진수에 말에 김갑수 이장은 눈을 감은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뿐이었다.

“어이 영감. 불쌍한 사람들 다 죽일거야?

아니 뭐 우리가 악당도 아니고 도적떼도 아니고 좋은일 한다는건데

왜이렇게 비협조 적이야.

세상을 구해야지. 안그래? 우리 대장님은 아주 뜻이 깊은 분이니까 얌전히 항복해.

사실 내 성질 대로였음 당신은 예전에 죽었어.

대장님이 자상하게 대하라 해서 당신이 살아있는거라고.”

김갑수 이장은 여전히 단호하게 눈을 감은채 말했다.

“상혁이 말이로구만.

그래. 정말 훌륭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지.

안타까운 일이야.

아마 역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태영이 뒤를 이어 마을의 수호자로서 훌륭한 일을 했을거야.

좋은 아버지에 좋은 남편이 되었겠지.

하지만 역귀가 나타나면서 상혁이는 마음을 잃었어.

지금의 상혁이는 영혼없는 괴물과 다름없네.

그래. 역귀보다 더한 괴물이야.

미안한 말이네만 그런 괴물의 말을 들을 수는 없네.”

진수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아이고 또 이양반도 무게잡고 헛소리 하네.

거 영감. 우리 대장님이 늘상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대책없는 정의는 위선만도 못하다고 하셨어.

거기서 혼자 가오 잡고 있으면 뭐가 되는줄 아시나 본데 당신이 시간 끌수록 사람들만 죽어나가는거야.”

김갑수 이장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진수를 바라보았다.

“대책없는 정의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네.

정의란 것은 대책이 있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이 옳기 때문에 선택하는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자는건 아니라네.

대책이 왜 없겠나?

세상사 무엇이든 방법은 생기기 마련이네.

비록 시간이 걸리고 어려울지언정 언제나 길은 있지.

상혁이도 자네들도 그걸 찾을 생각 하지 않고, 쉽고 빠른길만 찾으려 해서 그렇다네.

진혁이를 보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은 해내고 말지.

그 신념과 강인한 마음을 본받아야해.”

진수는 이장의 말을 귀담아 듣지는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야 이 노인에게서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었다.

고문을 하자니 별로 재미도 없고 또 우두머리는 가급적 건들지 말라는 상혁의 언급도 있어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그때 이빨부대 몇명이 진수에게 찾아왔다.

“부대장님. 어느정도 정리는 되었는데 남은 마을 놈들이 회관에 자리잡고 바리케이트를 치는 바람에 공략이 쉽지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싸울수 있는 사람들이 다급히 사람들을 끌어모아 방어선을 구축한 모양이었다.

마음먹고 제압하면 뚫어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적아불문하고 피해가 커질테니

싸움자체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역시 이장이 항복 선언을 해주는게 제일 간편했기에 고민하던 진수는 문득 병사들을 죽 둘러보았다.

“일단 싸움은 중지하는걸로 하고. 제압한 사람들이나 일반인 인질들은 어떻게 했어?”

“일단 광장 한가운데 모아놨습니다.”

진수는 웃으며 이장을 흘끗 돌아본 뒤, 그에게 살짝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조절하여 은밀하게 병사들에게 말했다.

“내가 약속했던거 기억하지?

어차피 여유가 좀 생겼으니까 이틈에 너희도 포상좀 받아야지.

적당히 하나씩 골라서 재미좀 봐.

금품이니 먹을거니 귀한 물건들도 알아서 챙기고.

때되면 부를테니 눈치껏 즐기고 있어.”

병사들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갔다.

진수는 만족스럽게 웃은 뒤 이장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영감. 시간 끌어봐야 좋을게 하나도 없어. 당신 하나 때문에 그런게 아니야.

당신만 믿고 있는 불쌍한 마을 사람들 생각을 해야지.

어? 괜히 버티고 있다간 그네들이 무슨 험한꼴을 당할지 알고.

알겠어? 착한 사람들 인생 망치지 말고 얼른 결정 합시다. 서로 좋게 좋게.”

이장의 눈빛이 조금은 흔들렸다.

“자, 딱 5분 주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나도 더 안물어봐.

그냥 힘으로다가 다 밀어버릴테니 딱 5분만 생각하고 말해주셔.”

이장은 탄식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진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빨부대는 각자 포상을 즐기기 위해 흩어졌다.

식량창고에서 음식이나 술을 꺼내는 이도 있었고 주거지에서 물건을 헤집어 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질들이 모여있는곳으로 향했다.

그간 힘이 있음에도 휘두르지 못했던 것을 설욕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의 눈에는 독기마저 서려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어긋난 기대감은 먼곳에서 들려온 소리에 의해 무참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크어어어엉!!!”

바닥이 떨려올 것처럼 깊은 울음소리.

마을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진수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망칠 때 짐승 역귀가 따라붙었었던 것일까?

그때 이장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역귀란 샅한 존재네. 인간의 대한 미움을 가지고 생기를 찾아 다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살기에 이끌린다네.

인간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고통스러워 한다면 반드시 찾아오게끔 되어있네.

이곳은 그래도 안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녀석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나 보군.”

진수는 다급히 뛰어나가 병사들을 불러들였다.

“전부 전투준비! 역귀가 온다! 어쩌면 두억시니. 아니 짐승역귀일수도 있다.

전부 이빨 챙겨서 집결해! 그리고 대장님 어디계셔?”

진수는 서둘러 상혁을 찾아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최대위는 은밀하게 병사들을 모았다.

예전에 자신의 부하였던 사람들과 자신을 따를 만한 사람들.

“내 목표는 역귀 씨를 말리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신세계니 더 좋은 세상이니 이딴 헛소리 해가면서 고생만 시키는 놈들과 다르게

난 역귀를 죽이기 위해선 무엇이든 다 하기로 했다.

명예, 정의. 이따위것들 전부다 버리고 너희가 원하는걸 주겠다.

필요하다면 누구든 죽이고 빼앗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뭐든 내키는대로 해도 좋다.

알아듣겠나? 이제 너희들 세상이다.

그러니 내 명령을 들어라. 우리가 진짜 이빨부대다.

뭐든 물어뜯고 박살내는 이빨부대다.”

그저 필요에 의해 명령을 받을뿐 진심으로 상혁과 진수를 모시는 이는 없었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최대위의 편에 들 수 있었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최대위를 따랐다.





“대장님!!!! 역귀입니다. 잘모르지만 어마무시한 역귀가 이쪽으로 오고있습니다.

아마 두억시니나 짐승역귀같은 아무튼 엄청난 놈이 분명합니다!!”

진수의 다급한 말에 상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평범한 역귀라면야 걱정 없겠지만 두억시니급이나 그 이상이라면 단 한 마리 만있어도 위험하다.

게다가 기지를 잃었던 그 사건.

역귀가 근처에 있으면 전염될 수 있다.. 라는 가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조건이나 확률 따위는 모르지만 사람이 역귀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역귀가 근처에 있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칠 상황도 안되니 어떻게 해서든 처치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그냥 평소처럼 싸운다면 이길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피해가 극심할게 분명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상혁은 문득 진아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물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너. 만신의 손녀라고 했지? 재주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진아는 상혁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까지 흘리며 덜덜 떨고있을 뿐이었다.

옆에서 진아의 상태를 살피던 황반장이 물었다.

“왜 그러는가? 역귀? 역귀 때문에? 몇 마리나 되는데?”

진아는 덜덜 거리면서 대답했다.

“하나. 한 마리에요.”

의외였다. 그간 수없이 많을 정도로 역귀들과 마주쳤지만 당황한적 없던 진아가

고작 한 마리 때문에 이런 반응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마리라면 가능성 있네. 너. 날 따라와. 전부 죽게 내버려 둘게 아니라면 좋든 싫든 도와야겠어.”

진아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상혁은 진아를 억지로 일으키고는 진수를 돌아보았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을 보니 전투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번의 패배가 진수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 같았다.

“넌 여기서 꼼짝 말고 애들이나 지키고 있어. 처리가 끝나면 부를테니.”

진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안도하며 상혁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진아를 끌고 광장으로 내려간 상혁은 빠르게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전투준비. 정면으로 들이치지 말고 시간 끌면서 착실하게 피해 입힌다.

어설프게 가까이 덤비지 말고 차라리 멀리서 창을 던져.

그리고 인질들을 미끼로 활용한다.

한명 내주고 그 이상으로 베어내면 결국 쓰러지게 되어있어.

정신 바짝 차려. 여기서 밀리면 전부다 죽는다.”

인질들을 미끼로 쓴다는 말에 진아의 정신이 돌아왔다.

“안되요. 미끼로 쓴다니 말도 안되요.

저건... 차원이 달라요. 도망가야되요.”

상혁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치면 전부 다 죽어.

다만 한명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똑바로 얘기해.

어디서 오고있어? 어떤 놈이야?”

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어라 더 다그치려던 상혁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병사 수가 상당히 적었다.

“뭐야 왜 이거밖에 없어. 나머지는?”

병사하나가 쭈뼛거리면서 대답했다.

“최대위란 사람이 병사들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갔습니다.

분명 이쪽으로 오는 역귀를 먼저 친다고 얘기했습니다”

상혁은 이를 악물었다.

전력으로 맞붙어야 할 상황에서 이렇게 어이없이 병사들이 쪼개지다니.

제대로 싸워준다면야 좋겠지만 최대위가 어느정도로 해줄지 확신할 수 없으니

마냥 좋을리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 박살내고 싶었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좋아. 적어도 시간은 벌었다 생각하고. 당장 할수 있는걸 한다.

인질들 전부 끌고와.

그리고 이빨 전부 꺼내와서 손에 들려.

똑똑히 들어. 방법은 하나 뿐이야. 살려면 역귀랑 싸워.

빌어먹을 소리 하지 말고 이빨을 들란 말이야.

신념이니 정의니 이딴 소리 지껄이는 놈들은 두 번도 안물어보고

미끼로 써버릴테니 죽고 싶으면 좋을대로 해.”

병사들이 슬금슬금 움직이자 상혁은 다시금 진아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시간없으니 나도 이제 적당히 안해. 그러니 대답해. 어디있어?”

진아가 여전히 입을 닫고 있자 상혁은 주저없이 진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진아의 뺨을 후려치려는 그 순간,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 못놔!!”

진혁이 전에 없이 화난 얼굴로 매섭게 상혁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 뒤를 정상병과 무장한 장정들이 따르고 있었다.

어디서 저 정도의 병력을 끌고 온 것일까?

의문을 가진 사이 진아는 재빨리 상혁의 손을 물어버리고는 진혁에게 뛰어갔다.

“잡아!”

병사들에게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누구하나 뛰어나가지 못했다.

진혁의 등장을 확인한 마을 사람들이 몸으로 병사들을 막아선 것이었다.

싸울 의지를 잃은 사람들이 진혁을 본 것 만으로도 다시 희망을 찾고 이빨부대에 맞서기 시작했다.

상혁은 진혁 뒤에 있는 사람들이 면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아는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스파이 노릇을 하던 박일병.

그리고 문신사였던 혜정.

분명 본부 역귀사태 때 버려두고 왔는데 어떻게든 탈출 한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났어?”





이빨부대 본부에 역귀가 들이친 그날.

혜정과 성아는 남은 이들과 함께 박일병을 빼내주었고

박일병은 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했다.

사방에서 짐승 역귀들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모두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전부 무사 할 수는 없었다.

적지않은 희생을 치른 끝에 기적적으로 남겨져 있는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고,

힘겹게 역귀들을 따돌려 살아남았다.

처음 인원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반절 정도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죠? 그 진혁이란 분 마을로 가나요?”

혜정의 물음에 박일병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거기가 어딘지는 정확히 몰라요. 전 가본적 없거든요.

대신 다른 마을은 잘 알죠. 새 마을을 꾸리신다기에 제 고향 마을을 추천해 드렸었거든요.

우선 그리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거기서 도움을 청하면 다들 안전할 거에요.

전 사람들을 모아서 태영마을을 구하러 갈겁니다.

이빨부대를 막아야 되요.”

혜정은 상혁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다가 박일병에게 말했다.

“혹시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될까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건.. 아니 짐이 된다는건 알지만...

글쎄요 모르겠어요. 제가 꼭 가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그이를 설득할 수 있는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있는일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어렵겠지만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절대 방해 안되게 할게요.”

“혜정씨 왜그래? 만삭을 해가지고 어딜 싸움터에 따라간다고 해.

우리 거기서 살아나온것만 해도 기적이야.

그러니까 다 잊어버리고 그냥 안전한데 있자.

그 상혁이란 인간 때문에 그래?

애아빠 자격도 없는 사람이잖아.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고 잊어버리자.”

성아의 설득에도 혜정은 고집을 부렸다.

무어라 말하기 힘들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박일병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용감하시네요. 전 그럴 용기가 없었거든요.

그냥 살려고 이빨부대로 들어왔던거죠.

양심의 가책도 많이 느끼고 후회도 많이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잖아요?

스파이 노릇도 하고. 사람들도 구하고.

비겁한 변명에 결국 자기 위안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전 그때 그 선택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반드시 그래야 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을테니까요.”

혜정이 기뻐하자 성아는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더 말리지 않았다.

“그래. 혜정씨가 꼭 가야겠다면 뭐...

대신 간김에 그 망할 대장놈 얼굴 쎄게 한 대 갈기고와!

그렇게라도 해야지 속이 풀리지.”

혜정은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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