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혁과 정상병은 실험을 위해 전동차를 끌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저게 효과가 있으면 이제 역귀들 잡을 수 있는거죠?”

정상병의 질문에 진혁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이빨따위 없어도 잡을 수 있지.

지금 우리가 하러가는 테스트만 잘 되면 바로 토벌대를 꾸릴거야.

준비할게 많겠지. 싸울 사람들도 모아야 될거고 무기도 구해야 하고.

물자들도 제법 많이 들어갈거야.”

정상병은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짜 방법을 찾은거네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처음 최대위님이 이빨을 사용할때만 해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인간 나름대로 말을 그럴싸하게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저도 역귀가 무서워서 그랬는지.

아무튼 좀 불편해도 다 필요한 일이다.. 하고 말았는데

이게 진짜 못할짓이더라구요. 애들을 칼로 찔러서 내 목숨 부지한다는게.

제물마을에서 노인네가 하는 짓거리랑 크게 다를바 없기도 하고.

게다가 최대위란 인간은 마지막 양심까지 팔아먹었는지 화가 나서는 애한테 총질까지 했어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죠 뭐.

솔직히 제가 이쪽에 붙은게 진혁이형이 믿음직스러워서 라기 보다는

그 상혁이라는 사람이 최대위나 노인네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런거였는데.

이걸 진짜 해내시네요.”

진혁은 조금 머쓱해 했지만 이내 다른 이에게 공을 돌렸다.

“내가 뭐 한게 있나? 다들 도와줘서 그런거지.

황반장님이나 우리 진아도 힘써줬고.

약국 규태 아저씨나 너는 특히나 고생했지.

매일같이 그 징그러운 살덩이 붙잡고 연구했으니.

날 추켜세울거 없어.

다 크게 한건씩 해서 이렇게 만든거지.

그러니까 공치사는 서로서로 실컷 해주자고.”

진혁이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도움을 주었다.

역귀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이들이 직 간접적으로 힘을 빌려준 것이다.

그 사실이 진혁에게 자긍심을 주었다.

혼자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힘으로 이루어 내는 것.

고민 끝에 자신이 내린 답이자 새로이 찾은 돌파구였다.

“이제 이빨 부대만 어떻게 하면 되겠네요.

뭔가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진혁 역시 동의했다.

언제까지고 상혁의 눈을 피해 사람들을 빼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들키게 될것이고 어쩌면 싸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진혁은 전동차 뒤에 실린 상자를 바라보았다.

저걸로 상혁을 설득 시킬 수 있을까?

물론 설득을 시킨다 해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적어도 상혁이 아군이 되는 순간, 말도 못할 정도로 도움이 될거란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빨부대가 그간 벌여온 짓들을 용서할 수 있냐 없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다만 만에 하나 같은편이 된다해도 진혁은 상혁을 쉽게 용서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이빨부대와는 싸울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았다.

“우리도 좀 더 구체적으로 대비를 해야겠지.

토벌대가 만들어지면 이빨부대를 상대해야 할수도 있으니까.

우선 이 실험이나 제대로 끝내자.

적어도 2~3주는 걸리겠지만 확실하게 알아내서 돌아가야지.”

정상병은 잘 알아들었다는 듯 강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마찬가지로 상자를 돌아보았다.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 진짜 희망이 되길 기도하면서.







이빨부대의 훈련을 시작한 상혁은 생각보다 부대 전투 수준이 형편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간 이빨의 힘에 너무 의지했는지 기본적인 체력과 움직임이 엉망이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혁이 적극적으로 훈련을 시키자

며칠 후에는 그나마 그럭저럭 체계가 잡혀가고 있었다.

1주일 안에 습격하는 걸 목표로 부대 훈련을 강화하는 한편

진수는 뒤쪽에서 은근한 유혹을 통해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상혁의 예상대로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은근한 기대를 품었고

몇몇은 눈에 띌 정도로 반기기도 했다.

진수 역시 매우 반가운 일이었기에 진정으로 즐기며 훈련에 참여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전부 정리하고 충분히 휴식해.

쉬는것도 훈련의 일부다.

어줍잖게 연습한답시고 지친 몸 혹사시키지 말고 훈련시간에나 열심히해.

대신 머리는 계속 굴려.

자세 하나 하나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해.

머리에 완전히 박히면 결국 몸은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어있어.

그걸 명심해. 자 그럼 해산.”

상혁의 명령에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진수 역시 기분좋게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보자. 우리 공주님은 뭐하고 계신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여자가 겁먹은 얼굴로 떨고 있었다.

저번 수색에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진수의 아내가 된 이미영이었다.

“어허! 서방님이 왔으면 공손하게 인사부터 하고 수발을 들것이지 매번 그러고 멍하니 있으면 어떻게 해?”

미영은 황급히 일어나 손을 모으고는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얼마나 이뻐.

오늘도 땀 많이 흘렸으니까 바로 씻을거야.

몸도 구석구석 결리니까 따라 들어와서 시중들어.

그리고 또 우리 미래사회 일원을 늘리기 위해 힘써봐야지.

하 참 나도 너무 열심히 사는거 아닌가 싶다.”

진수가 욕실로 향하자 미영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자신이 선택했다지만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한편 혜정은 성아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성아의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돌아왔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다가 역귀에게 죽음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살릴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혜정을 더욱 괴롭게 했다.

지켜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했건만 결국 일은 이렇게 되었고

성아와 함께 방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미안할거 없어. 혜정씨 잘못 아닌거 다 알아. 죄책감 가지지 마.

혜정씨는 최선을 다했어.

우리 그이는 대장이란 작자가 죽인거야.

그 나쁜인간.

역귀들 전부 없애겠답시고 사람들 데려다 짐승만도 못한 취급 하는 그 괴물같은 인간 때문에 그런거야.

혜정씨는 좋은 사람인거 내가 다 알아. 그러니까 죄책감 가지지 마.”

슬퍼하며 힘없이 내뱉은 성아의 말이 혜정의 마음을 후벼팠다.

상혁은 확실히 나쁜사람이었다.

필요 하기만 하다면 사람정도는 우습게 죽이는 인간.

하지만 혜정은 자신 역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를 무서워하고 증오하기도 했지만,

문신을 배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혁에게 빠져들어갔다.

살기위해 몸부림 치다가 스톡홀롬 증후군에 빠진 건지

아니면 그때에는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상혁이 필요악이라고 느껴서였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명백하게 악인인 상혁에게 마음을 주었고 스스로 그의 침실로 찾아갔다.

그를 의지했고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시키는 모든걸 했다.

아이들에게 문신을 새겨 이빨을 만들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활용해 편한 생활을 즐겼다.

결국 그의 아이까지 가진채 버려지고 나서야 자신이 그간 무슨짓을 한지 깨달은 것이다.

이빨을 만들고 상혁을 도와 이빨부대를 만드는걸 도왔으니

병사들의 죽음, 그리고 성아 남편의 죽음과 무관하다 말할 수 없다.

그간 마음 한구석에 계속 숨겨놓은 죄책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터져나온 듯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어떻게든 빠져나가요.

이 지옥같은 곳을 빠져나가서 다른곳에서 새출발 하는걸로 해요.

분명 우릴 받아주는데가 있을거에요.”

혜정은 진혁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갇혀있는 박일병을 탈출시킨다면 그와 함께 거주지로 갈 수 있을것이고

거기라면 성아가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혜정은 아이를 키우며 그간의 죄값을 치를 생각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장 실현은 불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것이 목표였다.

“기회가 올거에요. 분명히.”

그리고 그 기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다음주까지 전부 준비해. 지금까지랑은 또 다른 싸움이 될거야.

괴물한테 달려드는것보다 사람을 베는게 더 어려울수 있어.

진혁이 녀석이 어떻게 대비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쉽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철저하게 준비시켜.”

상혁이 진수에게 한 명령이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진수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분명 사람을 찌르고 죽이는데 거부감이 있을것이고

그 잠깐의 망설임 때문에 승패가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인간 사이의 전쟁이었다.

때문에 상혁은 전투기술을 가르쳐 주는 한편, 병사들의 정신무장도 함께 했다.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병사들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진수는 상혁의 지시를 받고 병사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훈련장으로 가던 중이었다.

슬쩍 창밖을 보니 짐승 역귀들 몇 마리가 근처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짐승놈의 새끼들. 나중에 사람 싹다 모아와서 조져놔야지. 징글징글해서 원.”

이전 패배에서 느꼈던 공포를 다시금 떠올린 진수는 가볍게 몸을 떨어주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때 진수의 눈에 복도를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미영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우리 공주님이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서방님이 보고파서 마중나왔나?”

진수가 웃으며 다가갔지만, 미영은 대답이 없었다.

그냥 힘없이 비틀거리며 걸어갈 뿐이었다.

“뭐야? 낮술이라도 했어? 뭘 그리 속상한 일이 있다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셨대 그래?

마실거면 나랑 같이 마시지 그게 뭐여.”

진수가 미영의 어깨를 잡아채자 미영은 그제야 진수를 알아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너.... 얼굴이 왜그래? 어디 잘못됐어?”

미영의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일 정도였다.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선 것이 꼭 큰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괴로워 보였다.

기괴한 그 모습에 진수가 당황하는 사이 미영은 갑자기 구역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먹은 것을 게워내는 대신 무서울 정도로 많은 양의 피를 토해내었다.

“야이씨! 의사! 의무병 어디있어? 얘 왜이래?”

당황한 진수가 외치자 곧 근처에 있던 병사들과 거주 인원들이 찾아왔다.

그들 모두 미영의 기이한 모습에 당황한 상태였다.

“뭣들하고 있어? 치료실로 옮겨 얼른.”

진수의 명령에 병사 몇 명이 움직이려는 그 순간.

미영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하듯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뼈가 꺽이고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미영의 몸이 찢어지며 기괴한 살덩이가 마구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공간을 고약한 냄새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여... 역귀다!!!!”

누군가의 외침에 복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진수를 포함한 모두는 지금 이빨을 들고있지 않았다.

때문에 갑자기 역귀가 되어버린 미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빨 어딨어? 이빨 가져와!”

그 자리에서 도망친 진수는 주변 병사들에게 소리질렀지만

이빨은 무기보관 창고에 따로 보관해놓았기에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무기를 꺼내겠다고 달려가는 병사는 없었다.

지금껏 수많은 역귀를 토벌해온 이빨부대였지만 무기가 없는 지금

역귀 한 마리에 말도 못할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다.

역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해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몇몇은 다른 층으로 넘어가거나 아예 건물 밖으로 도망쳐 나가기도 했다.

“무슨 상황이야?”

그때 도망치던 진수를 소란을 듣고 나온 상혁이 막아섰다.

“역귀입니다.

당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역귀로 변해서...”

상혁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지금은 움직이는게 먼저였다.

상혁은 늘상 가지고 다니는 칼을 뽑아들고는 곧장 역귀에게 달려들었다.

한순간에 사람들을 죽이고 혼돈으로 몰고갔던 역귀는 상혁의 칼 휘두름 몇 번만으로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

“제대로 설명해. 대체 무슨 상황이야. 역귀가 되다니 어떻게?”

칼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며 상혁이 다시 물었지만, 진수라고 해서 아는건 없었다.

횡설수설하는 진수의 말에 상혁은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우선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일단 정리부터 해. 피해 상황 파악하고 시체 정리하고.

어떻게 되먹은 일인지는 그다음에 알아봐.”

상혁은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자꾸 일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부분에서 갑작스러운 일들이 생긴다.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던 그때,

또다시 다급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장님!! 역귀입니다. 짐승역귀들이 달려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진수는 가까운 창문에 달라붙어 밖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도망나간 사람들이 짐승역귀떼에 학살당하는 모습.

그리고 보란 듯이 열린 입구 쪽으로 역귀들이 들이치고 있었다.

그 숫자는 지금의 이빨부대가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혁은 선택을 해야했다.

“전투부대원 전부 끌어모아서 무장시켜.

무기, 물자. 당장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겨서 차량 탑승해.

여길 버리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구조는 문신 새겨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해.

나머지 일반인들은... 전부 포기한다.

시간없어. 움직여!!”

상혁의 명령에 따라 진수와 병사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일 난거 아니야?”

성아의 말에 혜정 역시 불안한 얼굴로 문쪽을 바라보았다.

역귀임에 틀림없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다급한 발소리가 쉴틈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혜정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방문앞에서 감시를 해야할 병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나가봐야 될 것 같아요. 조금 이상해요.”

둘은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보통일은 아닌 듯 보였다. 역귀가 쳐들어온 것일까?

그때 한무리의 사람들이 둘 쪽으로 달려왔다.

모두 임산부와 잡일을 하는 일반인 들이었다.

“뭐에요 무슨일이에요?”

성아의 질문에 맨앞에 서있던 여자가 대답해 주었다.

“역귀들이 쳐들어왔대요.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에요.

저희도 빨리 도망쳐야 되요. 이빨부대가 저희를 버리고 이미 빠져나갔대요.”

혜정은 당혹스러웠다.

싸울 수 있는 부대원이 전부 사라진 지금 역귀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수 있을까?

“우선 지하로 가자. 차가 남아있으면 그걸로 빠져나가 보자.

어디로 갈지는.. 그때가서 생각해보고.”

성아의 말에 모두 동의했지만 혜정은 문득 박일병을 떠올렸다.

“데려가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사람이 우릴 도와줄수 있을지 몰라요.”

모두는 혜정의 말에 따라 박일병이 갇혀있는 방으로 향했다.

바로 아래층인지 아니면 조금더 거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역귀의 울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진혁과 정상병은 건물위에서 아래에 있는 역귀 한 마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해볼래?”

진혁의 말에 정상병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의무병이라 사격 같은건 별로 자신 없어서 ....”

진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사냥용 석궁이었다.

“효과가 있다면 이것도 제구실을 하겠지. 잘 관찰해 봐. 반응이 어떤지.”

진혁은 석궁에 화살을 장전하고 역귀를 겨누었다.

평범한 역귀였지만 어쩐지 조금은 기운빠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흐느적 거리며 움직이는 것 마저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기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잠시간의 기다림이 있은 후, 진혁이 쏜 화살은 정확히 역귀의 몸에 박혔다.

“키에에에에엑!!!!”

비명소리와 함께 역귀가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다.

총알 수십발에도 멀쩡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 확실히 있어요.

지금껏 저정도로 격하게 반응한적은 없거든요.”

정상병의 말에 진혁은 다시금 화살을 장전하고 석궁을 겨냥했다.

이번엔 머리쪽이었다.

두 번째 화살역시 시원하게 역귀에게 박혀들어갔다.

“그리 완벽하진 않은데 이런걸로도 충분히 피해를 줄수 있어.

이거라면 이빨 없어도, 달빛이 아니어도 베어낼 수 있을거야.”

정상병 역시 동의했다.

확실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역귀 살덩이는 병원체가 될 수 있고.

역귀는 특성상 사체를 수집하기 때문에 감염된 살덩이를 사방에 뿌리는 것 만으로도 감염시킬수 있어요.

살덩이를 취해서 감염된 역귀는 약 7일간의 잠복기를 가진 후 병이 발현되어

점점 약해지다가 2주일이 경과한 시점에서는 석궁만으로도 피해를 입을 정도가 된다....

이거 대박인데요?”

진혁 역시 흥분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좋아.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어차피 규태아저씨도 정작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지려면 적어도 한달은 넘게 시름시름 앓아야 한댔어.

지금은 저렇게 약해진 것 확인한걸로도 충분하니 슬슬 마무리 하고 돌아가자.

저 살덩이들 효과는 충분히 봤어.”

“마마.”

“뭐?”

“매번 살덩이라고 부르기 좀 그렇다고 규태아저씨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어요.

마마.

역귀 병원체 이름이 마마래요.”

익숙한 듯 어색한 이름이었다.

진혁은 약간의 의문을 느끼며 되물었다.

“마마? 천연두가 마마 아니야?”

정상병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도 그런줄 알고 물어봤는데... 그냥 퀸 팬이라고 그렇게 부르고 싶대요.”

진혁은 왠지 규태 답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 지었다.

“그래. 마마인지 보헤미안인지 뭐든 좋으니까 이제 마무리 짓고 정리하자.

드디어 복귀네. 고생 많았다.”

둘은 기쁜마음으로 태영마을로 향했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한무리의 무장한 병력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진아는 수지, 시현이와 함께 차 한잔을 타서는 평상에 걸터앉아 상우와 윤성이가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힘들텐데 지치지도 않나봐.”

그 말대로 둘은 매일같이 질리지도 않는지 열심히 나무 막대를 휘두르고 몸을 움직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상우는 수지나 다른 애들을 지키고 싶다는 책임감에서 일것이고

윤성이는 과거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던 때를 잊기위해 힘을 기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 둘이 기특하기도 하고 또 하는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최근 진아는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지켜보곤했다.

“언니! 삼촌은 언제와요?”

수지의 질문에 진아는 날짜를 계산해 보고는 대답해주었다.

“글쎄. 이제 슬슬 올 때 된거같은데...”

진혁이 워낙 바빠서 그간 수지나 시현이와는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매번 아이들은 주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손가락으로 날을 세어가며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진아가 곁에있어 괜찮지만

구조활동 때문에 진아와 황반장 마저 집을 비우면 상우가 둘을 달래기 위해 꽤나 진땀을 빼야했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삼촌이랑 진아언니랑 다같이 놀러가고 싶어요.”

진아는 웃으며 수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서 아이들은 예전의 순수함을 찾아가고 있는 듯 했다.

예전 스스로 이빨이 되겠다며 주저없이 팔을 내밀었던 수지.

그리고 온몸을 난도질 당한채 악몽을 꾸던 윤성.

예전에 진혁이 바래왔던 대로 아이들은 아이들이 누릴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진아의 마음을 한없이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이게 다 진혁과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한 덕이었다.

‘내가 시집은 참 잘갔지. 그렇죠 할머니?’

슬슬 저녁시간이 되었기에 진아는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일어났다.

“밥먹으러 가자 얘들아. 그런데 왜이렇게 시끄러워? 무슨일 있나?”

멀리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진아는 무슨일인가 싶어 먼곳을 보았지만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진아가 아이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려는 그때.

“진혁이 어디있어?”

눈앞에 칼을 든 상혁이 나타났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