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자꾸 꼬이네... 왜이렇게 갑자기 급하게 움직이는거야?”
황반장이 내어준 새 전동차를 몰던 진혁은 미안한 마음에 진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 거렸다.
진아는 장난스레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인 뒤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진혁을 다독였다.
“괜찮아. 중요한 일이니까! 게다가 아주 희망적인 발견까지 했으니 우리일은 천천히 생각하자!”
“고마워...”
진혁은 진심어린 말을 뱉어내고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전체 스케줄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가는곳은 그리 넓지 않으니까 오늘 중으로 생존자 수색 끝내고
늦어도 내일까지는 생존자 운송 시작할거에요.
이번에도 1팀은 신우가 책임지고 버스 운용 해주고
2팀은 두 개 조로 나눌건데 반장님은 드론팀 지휘해 주시고
다른 분들은 약사 아저씨랑 같이 필요한 것들 수색 해주세요.
저랑 진아는 이번에도 움직이면서 혹시 모를 사태 대비할게요.
이 근처에 역귀가 없는건 확인했는데 저번 같은 경우도 있고 하니 방심하면 안되겠어요.”
저번엔 역귀가 없어 방심하고 있다가 큰일 날뻔한 경험이 있어 이번엔 신중하기로 했다.
“규태 아저씨, 이근방에서 필요한걸 구할 수 있을까요?”
곧 무전기에서 팀과 함께있는 규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내 기억엔 여기도 방역센터가 있거든.
규모는 작지만 병원체라든가 이것저젓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운이 좋다면 전부 구할수도 있을거고.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지는 마.
나도 전문가는 아니니까.]
진혁은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당장 중요한 것은 생존자 구출이다.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반장님도 생존자 수색 시작해 주세요. 신우는 안전한 곳에 차량 대놓고 주변 탐색해주고.
나랑 진아도 움직이면서 생존자 찾아볼게.”
곧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나 한가지 걸리는게 있는데...”
“무슨일인데?”
진혁이 묻자 진아는 조금 석연치 않은지 주저하다가 말했다.
“저번에 제물마을 노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역귀들이란게 처음엔 인간이었다가 괴물로 변한거잖아?”
“그래. 뭐 나도 옛날엔 그랬다더라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
지금이야 역귀들이 몸을 찢어내서 새 역귀를 만들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건지 나도 몇 번 봤거든. 말도 못하게 끔찍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진혁은 진아의 다음말에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저번에 부대장 두억시니한테 읽은 기억 중에 그런게 있었거든.
주술이 폭주하면서 사람들이 역귀로 변한다고 말이야.
원래는 한 마리였던 역귀가 죽지 않고 돌아다니니까 가끔씩 사람들이 갑자기 역귀로 변했대.”
진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이런정런 생각을 해봤지만 당장 답을 내릴수도 대처를 할수 있는것도 없었다.
“아직 확실치는 않으니까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대신 역귀근처에 너무 오래 있거나 하지는 말아야겠어. 혹시 모르니까.”
진아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만약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갑자기 역귀로 변한다면
대략 조건은 살아있는 역귀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었지만 거주지는 역귀들과 상당히 떨어져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 괜한 걱정이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그렇게 주의는 하는걸로 하고, 지금은 우선 생존자 찾는거만 집중하자.”
진혁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집중해서 수색을 시작했다.
[생존자를 발견했네. 창문에 구조신호를 써놨어. 진혁이 자네가 있는곳에서 가까운곳이네.]
황반장의 무전에 진혁은 위치를 전달받고는 바로 전동차를 몰았다.
“SOS를 써놓은거면 도움이 필요하단 얘기겠지? 이번에도 별일 없이 구조할 수 있겠다.”
진아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라고 해서 늘 도움이 필요하고 구조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절실히 도움이 필요해서 구조대를 보자마자 반기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신뢰를 주기위해 한참동안 설득하고 또 안심시켜야 했다.
심지어 몇몇 경우는 구조대를 습격하려 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이렇게 구조신호를 보내오는 이들은 오히려 반가웠다.
“그러게. 일이 잘풀리려나보다.”
마침 시간이 부족해서 마음이 급한 상황이었으니 진혁은 서둘러 움직였다.
황반장이 말해준 장소에 도착하자 진혁은 늘 그래왔듯이 생존자가 숨어있는곳에서 조금 떨어진 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안에 계십니까? 저희는 구조대입니다. 도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안전한 거주지가 있으니 그곳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걱정마시고 문을 열어주세요. 안전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진혁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이렇게 단번에 열린적은 없었기에 오히려 문을 열어달라 말한 진혁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식량도 없고 물도 떨어져서 힘든 상황이었어요.”
“걱정마세요. 식량도 물도 충분하고 안전한 곳으로 모셔드릴게요.”
안에는 다섯명의 생존자가 있었다.
대표격 되는 남자의 말에 진혁은 모두를 안심시켜주었지만 이상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다들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
콕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정상병이 도착했고 생존자들은 별탈없이 버스에 올랐다.
그때 규태의 무전이 들려왔다.
[아. 아. 들리나? 지금 목적지 와서 뒤지고 있는데. 일단 나쁘지 않아.
병원체 몇 개 있으니까 그대로 가져가면 될거 같고 쓸만한 장비도 있어.
완벽은 아니긴 한데 당장 시작은 가능하겠는데?]
“와. 솔직히 기대 안해야지 안해야지 하면서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진짜 뭐가 되려나 본데?”
진아의 기분좋은 말에 진혁 역시 찜찜한 기분은 지워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답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희도 생존자 찾았으니까 필요한거 챙기셔서 합류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랑 2팀은 추가적으로 수색할테니까 생존자 분들이랑 안전한 곳에서 대기해 주세요”
[알겠어. 뭐가 되는 느낌이라 기분은 좋네. 이따봐.]
“우리도 움직이자. 조금 빨리 움직이는게 좋겠어.”
생존자들을 태운 버스가 외곽으로 이동하는동안 멀지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몇몇의 사람들은 발신기가 제대로 작동 하는 것을 확인 한 뒤,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어뒀던 놈들이 잘 구조되었습니다. 추격대도잘 따라붙었구요.
귀한 장비를 붙여줬으니 아마 오래지 않아 정확한 위치 알아내서 돌아올겁니다.”
진수의 보고에 상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우리도 바로 움직여야지.
진혁이 녀석이 뭘 얼마나 준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병력을 최대한 늘려야돼.
미리 얘기한대로 원정을 간다.
이번엔 그 구조대란 놈들이 휩쓸고 가지 않은 여기로.
큰 도시니 생존자들도 많이 찾을수 있겠지.”
상혁은 지도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최소 병력만 남기고 움직인다.
빨리 준비시켜. 준비 끝나는대로 바로 이동할테니까.
이빨들은 상태는 어때? ”
진수는 더듬대며 대답했다.
“그게.. 숫자가 좀 부족하긴 합니다.
이게 애들 자체가 귀한데다 한동안 충원이 안된지라...
막 당장 부족하거나 그러진 않는데 문신 때문이지 좀 빌빌거리는 애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이대로 가면 언젠가 아이들이 크게 부족할지도 모른다.
역귀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이빨의 부족은 상혁에게 치명적이었다.
“이빨공장은? 예정일이 아직 많이 남았나?”
진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두달 안에 첫 아이들이 태어날겁니다.
시간은 조금 남았는데 그때 이후부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올겁니다.
문신사 들에게는 미리 언질 해 놨으니 신생아 나오자 마자 테스트 해볼수 있을겁니다.
첫아이만 나온다면 이빨공장은 바로 가동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첫아이. 사실 첫아이는 혜정의 아이가 될 것이다.
다만 약속한 것이 있어 혜정의 아이에게 문신이 새겨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문득 상혁은 혜정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혜정이는 요새 조용하던데. 문신일도 빼줬더니 뭘하고 있는거야?”
진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몸조리 한답시고 방에 틀어박혀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습니다.
시덥잖은 그림같은거 잔뜩 그리면서 툭하면 물감이니 뭐니 가져다달라는데
뭐 그래도 우리 대장님 아이를 가지신 귀한 몸이니 제가 특별히 챙기고 있지요.”
상혁은 가만히 진수를 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 아이가 아니야.”
“예? 하지만..”
“다시 말하지. 내 아이가 아니니까 그렇게 알아.”
진수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뭔가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상혁은 곧 다시 고개를 내리고는 말했다.
“계속 부족한거 없게 챙겨줘. 뭔가 특별한 일 있으면 보고 하고.
당장은 병력이나 제대로 준비시켜. 준비 다 되면 바로 와서 얘기해.”
진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혜정에 대해 생각하던 상혁은 이내 머릿속에서 완전이 치워버리곤 지도에 열중했다.
거주지로 돌아온 진혁은 정상병에게 생존자 관리를 부탁하고는 곧바로 규태를 찾았다.
규태는 방 하나를 통째로 비워놓고는 이런저런 장비들로 채워넣고 있었다.
“필요한건 대충 구했어.
뭐 결국 두어번 더 나가서 이것저것 뒤져보고 또 챙겨와야겠지만
지금 당장 확인해 볼만한 것들은 다 찾은 셈이야.”
규태의 말에 진혁은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너무 기대하지는 마. 어디까지나 가능성인거고 그것도 될지 안될지는 모르는거니까.
오늘부터 빡씨게 연구해볼테니까 약국은 신우한테 일임할거야.
그렇게 알고. 혹시 나중에 필요한거 있음 네가 구해다 줘야 할수도 있어.”
“네. 걱정마세요. 제가 무슨짓을 해서든 다 구해올 테니까 아저씨는 연구에만 집중해주세요.”
진혁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 이거 보여줘야되는데.”
진혁은 고이 간직해 두고 있던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한참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간신히 고른 진아의 반지였다.
상황이 상황이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냥 들고다닌 것이다.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결혼식날 보여주지 뭐. 열심히 골랐으니 괜찮겠지.”
일이 복잡해져서 계속 미뤄왔지만 이제 정말 식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둘의 결혼은 단순히 진혁과 진아의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거주지 사람들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행사가 될것이었다.
비록 많은 고난이 있었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이렇게 생존자 마을을 일구어 냈고
그리고 마침내 젋은 남녀가 만나 결혼식까지 올리면서 미래는 밝을거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상징적인 일인 것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니 이제 날잡아서 진행만 하면 될터였다.
대략적인 계획을 짜며 집으로 들어서자 나무 막대기를 들고 열심히 자세를 연습하던 상우와 윤성이가 반갑게 진혁을 맞았다.
“삼촌! 왜이렇게 늦었어요. 삼촌이랑 누나가 마을 오자마자 바로 나갔다 해서 수지 엄청 서운해했어요.”
“바빠서 어쩔수 없었어. 수지랑 시현이는?”
이번엔 윤성이가 대답했다.
“주방에요. 형이랑 제가 연습하는거 보고 간식으로 감자 샐러드 해준대요.”
진혁은 둘이 들고있는 막대기를 보며 웃었다.
그간 시간 날 때마다 둘에게 운동과 함께 몸쓰는법, 칼쓰는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언젠간 필요할거라 싶어 알려주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은 열정적으로 배우고 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둘다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는 폼이 제법 그럴싸했기에 차차 본격적으로 가르칠 예정이었다.
곧 그릇에 감자 샐러드를 잔뜩 만들어 온 수지와 하은이가 주방에서 밖으로 달려왔다.
“삼촌!!! 이거봐요 나랑 시현이가 만들었어요!
민옥이모가 알려줬는데 맛있어요! 같이 나눠먹어요!”
“뭐야? 나 빼고 맛있는거 먹어?”
곧 진아가 황반장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수지와 시현은 진혁에게 그릇을 통째로 떠넘기고는 진아에게 가서 안겼다.
활발하게 떠드는 아이들을 보자 진짜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였구만.”
황반장의 말에 진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너무 아름다운 단어 였다.
진수는 밖에 도열해 있는 이빨부대에게 크게 소리쳤다.
“30분 뒤에 출발한다!
잠깐 시간 줄테니까 다들 편히 바람이나 쐬고 있어.
아 그리고 목적지가 변했다. 북쪽이 아니라 남쪽이다.
뭐 너희야 어딜가든 알바 없겠지만 그래도 들어둬.
엄청 큰 도시니까 전부 이 앙다물고 싸울 준비 해.”
진수의 말을 들은 박일병은 당황했다.
평소 철저히 계획하에 움직이는 상혁의 성향 덕에 지금껏 이렇게 갑작스레 계획이 바뀐적은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큰도시로 돌입 한다니 예상외의 일이었다.
박일병은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쉬는시간 안에 눈에 띄지 않고 진혁 일행에게 무전을 보내 이 상황을 알려야 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한 박일병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정상병니...”
그리고 무전기에 대고 말하는 그순간 벼락같이 진수가 튀어나와 박일병에게 칼을 휘둘렀다.
“컥!”
팔에 상처를 입은 박일병은 무전기를 놓쳤고 진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집어들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너일 것 같았다. 이새끼야.
배신자 새끼. 살겠다고 기어들어온 새끼가 배신을 때려?
너 그 진혁이 놈이랑 같이 있었지?
노인네한테 선물도 받고 울고 불고 난리 브루스 추던거 다 봤다 이새끼야.”
사실 박일병을 지목한 것은 상혁이었다.
제물마을에서의 선택 시간때 진혁 일행과 한참 같이 있던 것을 봤으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보를 흘리고 적당히 판을 만들면 분명 어떻게든 외부에 연락을 하려 할테니 그 순간을 노리라고 일러주었고
결과는 이렇게 깔끔하게 맞아 떨어졌다.
“뭐 나같으면 당장에 오체분시를 해서 길가에 걸어놨겠지만
우리 대장님이 또 좀 자애로우시냐?
한동안은 묶어서 가둬둘테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혼자 반성이나 해.”
상혁에게 배신자 하나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인질은 언제나 일을 편하게 만들어주니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은 그저 진혁이 계속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빨부대가 대도시에서 충분한 인원과 물자를 확보하는 시간 동안.
그렇게 확보한 인원들을 바탕으로 진혁이 있는 곳을 찾아가 전부 빼앗아 버린다.
이게 상혁의 계획이었다.
박일병은 곧바로 몸을돌려 반대쪽으로 달렸다.
하지만 이미 다른 병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늦었어.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묶여 계셔.”
제대로 반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잡힌 박일병에게 진수는 말했다.
“그 진혁이란 놈. 그리고 그때 같이 있던 잡것들.
그리고 오순도순 모여서 우리일 방해한 새끼들 전부 잡아 족칠거야.
너도 그때 같이 조져놓을테니까 덜덜떨면서 기도나 해.”
“후..”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던 진혁은 너무도 오랜만에 입어보는 정장에 어색해함과 동시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상자를 체크했다가
다시 소맷단을 만지작 거리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길 반복했다.
“단신으로 역귀도 상대하시는 분이 너무 긴장하시는거 아니에요?”
장난스런 신우의 말에도 진혁은 웃음짓지 못했다.
“뭐, 결혼식도 결혼식인데. 사실 반지 아직 안보여줬거든.
서프라이즈로 결혼식때 딱 보여주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람 많은데서 처음보여줄 생각하니까 떨리네.
마음에 안들어 하면 어떻게 하지?”
신우는 웃으며 진혁을 다독여 주었다.
“설마요. 진아씨 취향 확고한건 저도 아는데
그런 진아씨가 확신을 가지고 고른 남편감 이시잖아요..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고르신 반지니까 뭐 당연히 마음에 들어 하시겠죠.”
그럼에도 진혁은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아무튼 너무 걱정마시고 당당하게 나오세요. 곧 시작이에요”
신우가 나가자 진혁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마을 광장. 바쁜 와중에도 한사람도 빠짐없이 와주었다.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이야기 하니,
마을 사람 모두가 열심히 도와주었다.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고 꽃을 장식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그 덕에 이런 상황에서도 부족하지 않은 결혼식이 준비된 것이다.
수지와 시현은 깨끗하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꽃을 단채 들러리 역을 맡고 있었고
사회는 신우, 주례는 김갑수 이장이었다.
황반장은 진혁과 진아 둘 모두의 부모님 역할을 대신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저희 태영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첫 번째 마을 행사이자 첫 번째 결혼식.
저희 모두를 구해준 마을의 영웅 최진혁 군과 그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버팀목
최진아 양의 결혼식을 지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우의 매끄러운 멘트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태영마을.”
진혁은 그렇게 되뇌었다.
여러 가지 후보가 있었지만, 이장 김갑수의 의견과 진혁의 적극적인 지지로 인해 이 마을 이름은 태영마을로 정해졌다.
‘아저씨의 숙원이었고 아저씨가 시작하신 일이잖아요.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저씨 이름정도는 붙여줘야죠.’
진혁은 긴장이 풀어짐을 느꼈다.
태영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 그럼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진혁은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언제 긴장했냐는 듯 기세 등등한 모습이었다.
조금은 걱정하던 신우는 그 모습을 보고는 기분좋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마을의 영웅답게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럼 이 잘난 남자와 함께할 아름다운 여성.
오늘의 진정한 주인공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신부 입장.”
어렵게 구해온 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창한 드레스 대신 수수하고 예쁜 하얀 원피스를 입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부케를 손에 쥔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수지와 시현은 그런 진아의 곁에서 꽃잎을 뿌리며 함께 걷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진혁은 머리가 하얘졌다.
다시금 긴장감이 몰려와 반지를 꺼낼 차례에서 절정에 달했다.
“예쁜걸로 골랐지?”
진혁에게만 들릴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장난스런 진아의 말에 진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최선을 다했어...”
자신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안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는 반지 한쌍을 보자 진아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진짜 예쁜걸로 골랐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
그제야 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진아는 눈앞에 있는 반지가 몹시도 마음에 들었다.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줘고 혼인 서약을 하자 김갑수 이장의 주례가 시작되었다.
“정말 경사스러운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는 터전을 잃고 가족을 잃은채 희망이 꺽였습니다만
저희는 살아남았고 이렇게 새 터전을 가꾸었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었고
먹을 것을 나누었고 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부부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마을을 일궈낸 두사람.
이 두사람이 새로운 가족이 됨으로서 서로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 부부의 미래에는 밝은 미래만이 있을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례가 계속되는 가운데 진혁은 진아를 바라보았다.
희망.
진혁에게 진아는 희망이었다.
진아에게도 진혁은 희망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고 또 미래이고 행복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인간다움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진혁은 더 나은 미래가 올거라 믿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을 사람들의 축복 아래 성대한 결혼식이 마무리 되고 있었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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