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결심하고 난간위에 섰지만, 사실은 그다지 죽고싶지 않았다.

때문에 내심 누군가 말려주길 바랬고, 곧 들려오는 인기척에 안도하던 차였다.

“잠시 저랑 얘기좀 하시죠.”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의 차림새가 지나치게 이상했다.

멀끔한 검은 정장이야 그리 놀라울게 없지만 하얗다 못해 푸른끼가 도는 피부에

눈동자는 붉은색이었고 이마에는 작은 뿔 두 개가 가지런히 돋혀있었다.

검은 서류가방까지 들고 있는 그 모습에 연상되는 것은 한가지 뿐이었다.

“네. 압니다. 너무 전형적인 악마 모습이죠?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야 고객님들이 곧바로 이해하시니 효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유니폼이죠.”

난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럼... 네가 진짜 악마란 얘기야?”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라니. 터무니 없었지만 녀석은 내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뭐 제 차림새라던가 등장 타이밍을 보고 대충 예상하셨을테니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고객님께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 왔습니다.”

“거래?”

멍청하게 되물었지만 악마는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네. 거래. 뭐 많이들 아시지 않습니까? 인생의 위기가 닥친 이에게는 악마가 나타나 거래를 제안한다는걸요.

물론 생각 하신는것과는 조금 다를겁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합리적이고 정당한. 그러니까 고객님과 저희 모두 만족할만한 거래를 제안하거든요.

불공정거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악마는 서류가방을 뒤적여 파일철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제 막 삼십대 중반을 넘기셨는데... 이십대때 호기롭게 사업을 벌이셨다가 크게 망하셨고,

그 다음해에는 사기를 또 당하셨고.

몇 년전엔 여자를 잘못만나서 고생도 하시고.

이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다 사업 시작하셨는데 이게 또 휘청거리시네요.”

악마는 파일철을 도로 집어 넣고는 호기롭게 말했다.

“파란만장 하죠? 이게 다 고객님이 운이 없어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운?”

“그럼요. 보시면 고객님은 항상 완벽한 판단을 하시는데 이게 묘하게 운이 안따라 줘서 일이 틀어지는 거거든요.”

“운이라... 그렇지 운이 없었지.”

뭔가 시원한 곳을 긁어준 느낌이었다.

“그래. 난 그냥 운이 없었던거지. 내가 누군데.

항상 완벽하게 준비하거든. 근데 빌어먹게 재수가 없으려니까 자꾸 이러는거야.

누구는 가만히만 있어도 복이 훅훅 굴러들어와서 돈도 벌고 여자도 후리는데

난 재수가 없어서 그런거야. 하 참. 조상이 죄가 많은건지 이게 내가 억울해서...”

악마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럼요. 세상 참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운좋은 몇놈들은 편하게 돈버는데 우리 고객님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운이 없어서 이렇게 힘드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판매하는 이게 필요한겁니다.”

악마는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유리병 속에는 불길해 보이는 빨간색 약물 하나가 담겨있었다.

“이게 뭐야?”

“물약이죠. 정확히는 고객님의 인생을 새롭게 바꿔줄 획기적인 물약입니다.

이걸 마시기만 하면 정확히 10년 동안 고객님께 악마적인 행운이 찾아옵니다.”

왠지 분위기가 약장수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은근히 솔깃한 이야기였다.

행운.

저놈이 악마라면 효능은 분명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가였다.

악마와의 거래에서는 언제나 큰 대가가 필요할테니까.

“뭐 좋아. 내가 그걸 산다 치고. 원하는게 뭐야?”

긴장된 표정으로 악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가 필요할까?

피? 제물? 수명? 그것도 아니라면 영혼?

온갖 생각을 하는 사이 악마는 품에서 계산기를 꺼내 몇 번 두드려 본 뒤 대답했다.

“보자... 정확하게... 325만원입니다.

부가세는 없고 대신 현금으로만 결제하셔야 합니다.

저희가 카드를 받을 입장은 아닌지라... 이해하시죠?”

전혀 예상한 대답이 아니라 당황했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돈을 받는다는건 그렇다치고 금액이 너무 싼게 아닐까?

“이게 이런 상황에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네만... 그렇게 장사해서 남긴 하는건가?”

악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수익구조나 수익률 같은걸 자세히 말씀드리는 장사꾼은 없겠죠.

그냥 고객님도 저희도 득이 되는 구조다 생각해주심 됩니다.

아주아주 합리적인 방법으로 계산된 금액이니 걱정마세요.”

고민하던 난 불안감에 재차 되물었다.

“효과는 확실한 거겠지?”

“그럼요. 아주아주 악마적인 행운입니다. 그야말로 미친 행운이죠.

네. 악마의 행운이니까요.

아마 금세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어떠세요? 괜히 여기서 떨어져서 다 끝낼게 아니라, 속는셈 치고 한번 구매해 보시는게.”

악마라면 분명 뭔가 속셈이 있을게 분명했다.

내가 모르는 속임수라던가 내가 모르는 대가가 있겠지.

하지만 이제와서 그건 상관이 없었다.

악마 말대로 어차피 죽으려 했던 몸.

그냥 죽은셈 치고 도박을 해보면 그만이다.

잘하면 정말 대박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좋아. 하나 사지. 내 사업자금 남은게 마침 딱 그정도 될테니 전부 털어서 지불하겠어.”

악마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워 했다.

“역시 좋은 선택을 하실줄 알았습니다.

자 여기 드릴테니 곧장 쭉 들이키세요. 마시는 순간부터 10년간 악마의 행운이 고객님께 스며듭니다.

이제부터 모든일이 다 잘풀릴겁니다.

돈, 사업, 여자 전부요.

사기당하는 일도 없고 심지어는 고객님이 사기를 치셔도 잡히는 일은 없을겁니다.

그런 물약이니까요.

그러니 부디 인생을 즐겨주시길.

전 약효가 떨어지는 정확히 10년 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악마는 약을 건네고는 지극히 평범하게 걸어서 퇴장했다.

난 잠시간 멍하니 있다가 손에들고 있던 약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약은 애들 감기약 같은 싸구려 딸기시럽 맛이 났다.



“악마의 행운이라...”

악마의 행운이란건 무엇일까?

일종의 원숭이 손 같은 거라면? 결국 날 불행하게만드는 것일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까짓거 죽기밖에 더하겠어? 이미 한번 죽은 목숨 그냥 버렸다 생각하면...”

그 순간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함께 거친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빵빵!!! 끼이이이익’

당황한 난 피할 생각도 못한채 몸을 웅크렸다.

곧 끔찍한 고통이 닥쳐올거라 생각했지만 극적으로 멈춘 자동차는 내 다리를 툭 하고 건드렸을 뿐이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는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괜찮으세요?”

차에서 나온 남자는 당황하며 내게 다가왔다.

내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 말하곤 차량으로 돌아가더니 곧 다시 돌아와 봉투를 건네었다.

“저희 사장님이 지금 굉장히 중요한 회의 때문에 가보셔야 합니다.

일단 이거 받으시고 혹여나 다치셨으면 연락주세요.”

아무래도 이 사람은 운전기사이고 저 차에는 사장이란 사람이 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봉투는 제법 두꺼웠다. 게다가 동봉된 명함은 누구라도 알만한 중견 기업이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게 늦으면 안되는거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사의 인사를 받고는 떠나는 차량을 멍하니 바라봤다.

악마의 행운.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난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나다. 너 동생이 그 한의원 같은거 한다고 하지 않았냐?”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본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친구 동생 한의원에서 얼마간 뻗대다가 전화를 걸어 치료비 및 합의금을 요구했다.

당당하게 큰거 한 장 보내주면 깔끔하게 끝내겠다 이야기 했더니 그쪽에서는 주저없이 그 두배를 입금했다.

욕심이 나서 조금더 뜯어볼까 했지만 금세 관두었다.

굳이 두배나 되는 돈을 준건 이거먹고 떨어지란 의미겠지.

괜히 질척하게 달라붙었다간 본전도 못건질 수 있다.

게다가 이제 돈따위는 아쉽지 않게 될것이 뻔했다.

“머리 아프게 사업할 필요가 있나? 눈먼돈이야 얼마든지 긁어모을 수 있는데.”

악마는 분명 사기를 쳐도 잡히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안전하기만 하다면 못할게 없다.

“그래도 시험은 해봐야지.”

우선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무전취식. 가게 주인은 고작 이런 일로 범인을 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도둑질. 마트에서는 물건이 사라진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폭행. 술에 잔뜩 취해있던 남자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테스트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선 제일 약한것부터 시작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이 많은 노인네 번호를 알아내서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네. 병원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자녀분이 크게 다치셨어요.

당장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을 입금하셔야 진행이 됩니다.”

내가 생각해도 엉성했지만 악마의 행운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좀더 큰 판을 벌여보기로 했다.

“자고로 돈좀 만지려면 노름판 벌리는 것 만한게 없지.”

물론 이걸로 도박을 하려는건 아니었다.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멍청이들 돋을 뜯어내는 것이 맞다.

어차피 자금은 충분했고 어려울 것도 하나 없다.

적당한 곳에 건물을 구해서 도박장을 만들고 덩치들 몇놈 고용한 다음 인생 패배자들을 몰아넣으면 끝난다.

뭣보다 내게는 운도 기세도 넘쳐났다.

예상대로 일은 척척 진행되었고 역시나 돈따위는 썩어넘칠정도로 들어왔다.

물론 돈보다 더 즐거운 일도 있다.



“아이고 우리 이쁜 학생이 말을 못알아 먹네.

학생 아빠가 우리한테 빚진돈이 몇천이야. 몇천.

응? 이거 어떻게 할거야? 알바해서 갚을 수 있어? 못하잖아.

그러니까. 이 오빠가 기회를 준다는거 아니야.

오빠한테 착 안겨서 술 몇 번 따라주고 애교좀 부려주면 또 내가 깍아준다니까?

어? 아빠 죽일거야? 그럼 안되잖아 그치?”


“요새 우리 사업장 잡겠다고 들쑤시고 다니는 경찰놈 있지.

잡아서 내앞에 데려와.

뭐? 왜 못건드려? 경찰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못건드려.

나 누군지 몰라?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그 빌어먹을 새끼 잡아서 데려와.

내가 아주 반토막을 낼테니까. 아주 묵사발을 만든 다음 물고기밥으로 만들어 줘야지.

어딜 시건방지게 날 건드려.”


“그러니까. 내가 돈 빌려줬잖아. 당신은 가족을 담보로 걸었고.

당신이 직접 싸인한거 아니야 그치?

협박은 누가 협박을 해. 그냥 단호하게 말한거지.

어찌 되었건 돈 못갚았잖아. 그러니까 당신 가족 내거라고.

내놓긴 뭘 내놔 벌써 진작에 분해해 가지고 팔았다니까?

제때 갚았어야지 그러니까.

아, 됐고 너도 장기 뚝 떼여서 팔려가기 싫으면 꺼져. 나 바뻐!”



10년은 금세 지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인생을 즐기는 동안 악마의 속임수라던가 하는 일말의 걱정따위는 치워둔지 오래였다.

막말로 이정도 인생이라면 영혼이든 수명이든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악마가 다시 찾아오자 조금은 긴장 할 수 밖에 없었다.

“10년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냐는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모르셨겠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너무 잘지내시는거 똑똑히 봤습니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긴 했지만

눈앞에 닥치자 욕심이 생겼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 행운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었다.

“뭐. 아시겠지만 저도 시간 끄는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10년간 효과를 충분히 보셨을테니 설명은 필요 없으시죠?

그간 쓰신것과 똑같은 악마의 행운. 이 물약을 판매하겠습니다.”

땀까지 삐질거리며 기다렸지만 악마는 곧바로 거래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럼 이전 거래는 진짜 끝난건가? 더 뺏어가는 것도 없고?

바로 똑같은 조건으로 다음 거래를 한다고?”

악마는 즐겁다는 듯 설명했다.

“네. 이전거래는 이제 끝입니다. 저희가 더 받을 것도 없고 주셔야 할 것도 없죠.

완벽하게 윈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고객님과 거래 덕에 승진도 하고 월급도 많이 올랐거든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다만 다음 거래가 똑같은 조건은 아닙니다.

이 물약값이란게 고객님 인생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다보니까 변동이 있거든요.”

악마가 계산기를 두드리자 크게 안도했다.

다른 조건이 없다면 걱정할게 없다.

지금은 10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니 가격이 제법 뛰었겠지만

어차피 지금 내게 돈은 많아서 문제가 될지언정 부족할리는 없다.

“보자... 역시 변동이 좀 있었네요.

자 이번 10년 짜리 물약 값은....

78만원입니다.”

“뭐?”

50억이라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고작 78만원? 이상했다. 오히려 10년전 가격보다 훨씬 저렴해진 것이다.

“뭐가 잘못된거 아니야? 78만원이라니. 고작 그따위 가격이라니!

날 놀리는거야?”

하지만 악마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아니요. 가격은 정확하게 책정되었습니다.

사실 이게 기업비밀이긴 한데 우리 고객님은 또 제게 엄청난 VVIP고객이시니까 슬쩍 언급해드리겠습니다.

이 물약 가격이 뭐로 책정되냐면 고객님 죽으셨을 때 조의금 총액입니다.”

“조의금..”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10년전 내게 말한 금액 325만원은 그때 내가 죽었으면 받게될 조의금이었단 말일까?

“이게 돈은 어디까지나 명목적인거고 저희가 뭘로 수익을 내냐하면 딱 악마들이 먹고살법한 그런 감정들 있지 않습니까?

불행이라던가 고통이라던가 슬픔이라던가. 그런 감정들을 먹고 사는거죠.

보세요. 고객님이 살면서 겪는 고통은 별거 아닙니다.

자살할 때 고통도 변변치 않죠. 하지만 고객님 같은 분들에게 행운을 붙여드리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거든요.

그러니까 주변에게 고통을 많이 준 사람일수록 조의금은 줄어드니

물약값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는겁니다.

전혀 손해 볼게 없습니다. 저희로서는 수지맞는 장사죠.

아 물론 고객님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입니다.

이 정도로 큰 수익을 내준 고객님은 드물거든요.

물약값이 이렇게 싼 것도 이상할게 없습니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래. 거지 같이 살았으니 내 관 앞에서 울어줄 사람은 별로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78만원이라니...”

“뭐 그런걸 신경쓰십니까? 그보다 거래얘기로 넘어와서.

어떠십니까? 당연히 구매시겠죠?”

문득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몰려왔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있었다.

“거래하지.”

악마는 만족스러웠는지 기분좋게 웃으며 물약을 건네었다.

“역시 주저없이 거래하실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재거래율 자체는 그리 높지 않거든요.

보통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살하시거나 폐인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악마의 행운이라는게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라서요.

양심의 가책, 뭐 인간의 존엄성. 이런거에 상처를 많이 입는다고 하더라구요.”

조금은 불편한 말이었다.

“날 악마 새끼라고 욕하는것처럼 들리는구만.”

하지만 악마는 펄쩍뛰며 부정했다.

“아뇨 욕하다니요. 칭찬입니다.

게다가 다른 존재면 몰라도 악마가 악마라고 말하는게 칭찬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아니 악마보다 더하죠. 고객님께서 저를 포함한 악마 몇을 먹여 살리시는데요.”

여전히 불편했지만 더 신경쓰지는 않기로 하고는 돈뭉치를 건네었다.

“네. 이번에도 좋은 거래 감사했습니다. 그럼 10년 뒤에 뵙겠습니다.

당연히 그때도 재거래겠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번에도 악마는 평범하게 걸어서 퇴장했다.

허탈감과 불쾌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자신이 착한 인물은 못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 자체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악마보다 더하다니 참.... 에이 됐다. 칭찬이래잖아. 칭찬한거면 됐지뭐.”

투덜거리듯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물약을 집어들었다.

“이왕 이리된거 악마놈 실적이나 챙겨줘야지. 보자 무슨 짓을 해야 그 놈이 좋아할까?”

물약을 그대로 입에 털어넣었다.

역시 싸구려 딸기시럽 맛이났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