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화를 녹음해도 괜찮을까요?”

교도관은 녹음은 물론 녹화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고 이야기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온다. 두 손은 수갑이 채워져 있고, 다른 한명의 교도관과 동행한 채.

“앉아.”

교도관의 말에 남자는 별 말없이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두 손을 탁상 위에 올린 채, 편안히 이완된 모습으로.

두 손을 묶은 수갑이 옅은 빛을 받아 번쩍이고, 투명한 유리막에 옅게 비친 내모습 너머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정돈하게 정리된 수염, 짧게 친 머리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남자는 마치 일상적인 약속에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의 표정에는 긴장도, 분노도, 피로도 없었다.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목사님.”

“네. 저도 반갑습니다.”

꽤나 보기 드문 유형의 수감자였다. 보통 이런 필수적으로 만나야 하는 면담이 잡히면 보통은 분을 삭히거나, 나를 고깝게 보며 욕설을 뱉는 수감자들이 많은데.

“면담에 오게 되셔서 많이 귀찮으시죠?”

나는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할 겸 말을 걸자, 반대편의 남자는 환히 웃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전 목사님을 만나게 돼서 무척 기뻐요.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그래요?”

의아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잘 없는데, 혹시나 그가 이 장소에서 신께 닿은 것일까.

“애기하고 싶다고 하심이?”

내 질문에 남자는 조금 더 탁상 위로 몸을 담겨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린 날 여름학교에 갔던 것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여름학교라 하면, 교회에서 하는 여름 수련회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여름학교에서 목사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들었어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의 이야기요.”

아브라함과 이삭.

하느님의 천사가 어느 날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드리는 번제로 삼으라 했던 이야기.

“네. 그 이야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던 기억이 나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아들을 번제로 삼으려 했을까, 아비로써 슬픔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럴 리가요.”

내 부정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질문을 드린 집사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껄껄 웃으시면서, 아브라함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냐고. 아비 된 자로써 자식을 산 제물 삼는 건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픔을 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야훼를 향한 온전한 신뢰와 강한 믿음. 그가 자신에게 내린 이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그의 자녀로써 보여야할 순종을 보인 것이라고.”

“훌륭한 분이셨군요.”

“그럼요. 그리고 이어서 집사님이 말씀하시길, 그리고 결국 나무를 쌓고 이삭을 장작 위에 올리자 하늘에서 천사가 당장 제사를 멈추고, 근처 가시덤불에 걸려 몸부림치는 양을 바친 뒤, 아브라함과 이삭, 둘의 후손에게 번영과 풍요를 약속하셨다고.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억이 나네요.”

“좋은 말씀을 해주셨군요.”

내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때부터 저는…경외심이라 할까요? 종교인들에게 그런 걸 가지게 되었어요. 확고한 믿음, 자신은 물론 또 자식을 당연하게 바칠 수 있는 결연한 의지. 그런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나중에 머리가 조금 굵어진 뒤에는 여러 종교를 나름 공부하면서, 저 나름의… 철학? 종교관도 조금 생겼죠.”

그는 자신의 발언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조금 내 눈치를 보았다. 보면 볼수록 보기 드문 유형의 수감자였다.

“괜찮아요.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네, 그럼… 제 나름 여러 종교를 살펴보면서 깨달은 건, 어쨌든 종교는 긍정적이고,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와 선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거죠. 비록 저 위에 있는 게 야훼인지, 먼저 깨달음을 얻은 부처인지, 아니면 알라일지는 몰라도, 선을 중시하고 사람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들었어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씀도 있잖아요, ‘나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은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칠 장 이십 일 절이죠.”

“네, 그래서 전 나름의 선을 간직하고 남을 도우며 살았어요. 항상 남들을 선의로 대하려 노력했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베풀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여기 들어온 이유를 아시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오 톤에 달하는 냉장트럭을 인도로 몰아 수십의 부상자와 일곱의 사상자를 낸, 묻지 마 테러범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죄수.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어떤 광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재 현장 복구를 돕고 수재민들에게 기부 물품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날이었어요.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마음만큼은 가볍고 편안했죠.”

“….”

나는 침묵을 지켰다. 무어라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거, 계시였어요.”

계시?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스피커를 통해 교도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나는 카메라를 향해 괜찮다고 사인을 보냈다. 남자는 내 행동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운전을 하고 번화가로 들어서는데,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어느 나라 언어였는지는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뜻은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목소리는 뭐라고 말했던가요?”

속이 불편한 긴장으로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 걸 참으면서 물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라.”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라고요?”

“네.”

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눈에서는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걸 할 수가 있냐, 당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게 이런 시련을 내리지 말아라.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 같은 걸 요구하더라고요.”

남자는 이전과 한 치도 다름없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어요. 부디, 이 또한 아브라함이 겪은 시험과 같은 일이기를. 내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신의 기적이 나를 부디 감싸기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남자는 그 어떤 기적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없더라고요.”

신문에 보도 된 사고는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이었으니까.

“덜컥, 드드드득-, 비명, 그리고 펑.”

충격으로 즉사한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할 만큼 끔찍했던 사고.

“에어백에 머리를 박고,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가슴 속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성령이 들면 이런 느낌일까요?”

긴장으로 손이 떨리고, 그의 시선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전 느낄 수 있었어요. 이것이 신이 내게 안배한 큰 뜻이구나.”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나는 할 말을 찾느라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그랬…군요.”

겨우 짜낸 내 말에, 남자는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봐요. 이해 못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건 분명 신이 보낸 음성이었으니까.”

“오늘, 오늘은 여기서 면담을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나는 교도관에게 급히 신호를 보냈고, 곧 두 명의 교도관이 들어와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전신이 덜덜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교도관은 안타까움과 난처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게 위로를 건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목사님.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다리가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을 참으며 겨우겨우 질문을 짜냈다.

“…저분,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은 있나요?”

내 질문에 교도관은 조금 망설이다 실토했다.

“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믿음은 별로 가지 않네요.”

그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어떤 정상적인 심리상태를 가진 사람이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죄수의 믿음과 확신에 찬 표정은 마치 신실한 종을 연상케 하는 그것이었다.

나는 피곤에 절은 몸을 억지로 이끌고, 차를 몰아 최대한 빨리 교도소를 빠져나왔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조금씩 호흡은 안정되었고, 나는 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부터 울리는 듯한 쩌렁쩌렁한 굉음이었다.

-억압당하는 너희의 메시아를 구해라.

핸들을 잡은 손이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 어떤 종교를 모독할 생각도 없습니다. 소설은 그냥 소설이니 보고 즐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