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휴양지, 그곳에서 오래 전부터 영업해 온 칵테일 바.

위스키 온 더 락을 시켜 마시며 현상할 사진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던 도중,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안녕.”

황혼처럼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취기에 살짝 붉어진 피부와 얼굴에 옅게 뿌려진 주근깨, 감람석을 떠올리게 만드는 초록색 눈동자.

붉게 칠한 입술이 벌어지고 새하얗게 반짝이는 이가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외모보다는 퇴폐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무슨 일이시죠?”

“그냥, 다들 신나서 술 마시는데 혼자 우울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 이길래.”

“자살할 생각은 없어요. 지갑도 비어있어서 오늘은 사양하고 싶네요.”

퍽이나 무례한 이유에 나 역시 무례하게 대답하자 여자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놀리는 의미로.

“내가 싸구려 창녀처럼 보여?”

“조금은?”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뭐하는 사람이야? 쓰레기?”

“사진작가요. 실례는 그쪽이 먼저 저질렀는걸요.”

“보기보다 속이 좁네, 생긴 건 딴판인데. 무슨 사진을 찍는데?”

잔잔히 내려앉는 어둠과 이제는 희미해지는 볕의 사이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아름다움.

짙게 깔리는 남색과 이제는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태양의 분홍빛이 만드는 가장 다채로운 팔레트.

그 황홀한 색감, 하루가 주는 찰나의 몽환을.

나는 그곳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었다.

“매직 아워.”

“그게 뭔데?”

“일몰이나 일출 때 예쁜 풍경이요.”

“재미없네.”

그녀는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리를 꼬며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내는 각선미에는 의도성이 다분했다.

그녀는 살짝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턱을 괴며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더 아름다운 걸 찍어봐.”

“예를 들면?”

“나?”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태도에 삐져나오려는 헛웃음을 삼키며 위스키를 마셨다. 오히려 저 뻔뻔한 태도가 오히려 흥미를 돋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문득, 빈약한 지갑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생기는 걸 느꼈다.

“에반. 제 이름이에요 그 쪽은?”

“메가라.”

특이한 이름이 잘 어울리는 외모라 생각했다. 우리는 술과 분위기가 만드는 그 순간에서 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주로 메가라가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지만 나중에는 메가라의 이야기를 듣는 방향으로 변했다.

메가라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홀로 여행을 떠난 젊은 여자. 의지와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각자 비운 칵테일이 두 잔 반을 넘어갔을 때 쯤, 메가라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더 가까이 앉았다.

“그래서, 오늘 밤은 어때 에반?”

칵테일 근처에 놓은 내 손을 겹쳐 잡은 뒤 그 위로 살살 긁는 그녀의 행동의 의미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그녀를 쳐다보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날 보는 메가라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얼마나 내야 하는데?”

짓궂은 농담에 메가라는 씨익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마신 칵테일, 콘돔, 그리고 끝내주는 섹스.”

나는 끓기 시작한 욕구를 억누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칵테일 바의 드문드문 비추는 조명.

그 조명의 역광으로 태양처럼 빛나는 그녀의 머리칼.

힘 있게 비취색 눈동자.

앞으로 이런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단 한번 볼 수 있을 찰나의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나는 찰나를 영원으로 남기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운이 좋게도 언제 카메라 셔터를 내려야 할지를 너무도 잘 알았다.

값을 지불하고, 바를 나서서 호텔로 향했다.

샤워부스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몸을 섞었다. 먼저 몸을 닦은 후 나와 미니 냉장고를 연 뒤 맥주 두 캔을 꺼냈다.

시원한 알루미늄 캔의 감촉을 즐기며 기분 좋게 내 것을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과 휴식을 즐기는 동안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캔을 따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 아니지 않아? 침대에서 뒹굴다가 실례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

내가 웃으며 그녀의 손에 맥주를 쥐어주자, 그녀의 얼굴에 의외라는 듯 미소가 걸린다.

“그런 취향이야?”

“아직 놀라기엔 이를 걸?”

그렇게 말하며 맥주를 반쯤 비운 그녀를 끌어안으며 강제로 눕혔다. 맥주가 바닥을 구르며 카펫을 축축이 적셨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몸을 밀착시킨 뒤 천천히 샤워가운의 허리띠를 풀자, 그녀의 손 역시 내 샤워가운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슴을 만졌다.

아직 물기가 남은 메가라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이마, 콧잔등, 입술을 지나.

가슴과 늑골, 그리고 잠시 배 위에서 멈춘 뒤,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격정적으로 두 번째 사랑을 나눴다.

다시 휴식을 가졌다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옷장으로 향했다.

그 안에서 밧줄을 꺼내 돌아서자, 메가라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놀라움, 흥미, 그리고 욕정.

“사실 싸구려를 원했던 거 아니야?”

“변변찮은 지갑이 버틸 정도로만.”

내가 받아치자 그녀의 시선이 밧줄에서 나에게로 향한다.

“꽤 지저분한 취향이 있는 남자였네.”

“싫어? 싫다면 하지는 않을게.”

내 말에 짐짓 고민하던 메가라는.

“…세이프 워드는 ‘매직 아워’야.”

그렇게 말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말에, 나 역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매력 있고, 재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의자에 앉혀 목과, 팔, 의자 뒤로 향하게 한 손목과 다리를 꼼꼼히 묶은 뒤 주변을 정돈한 뒤, 그녀의 눈을 가리고 마지막 준비를 좀 더 마친다.

가만히, 무력하게 묶여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뒤로 다가가,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리고 한 손으론 그녀의 귀를 매만졌다.

귓바퀴와 홈을 따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그녀의 체온과 숨결, 맥박을 즐긴다.

“…있잖아 메가라.”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 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질척이는 타액과 뜨거운 체온이 손가락 너머로 느껴지고, 혀의 까끌거리는 감촉이 여실히 느껴졌다.

“내가 왜 매직 아워를 찍는 줄 알아?”

목소리를 낮게 해 이야기하자 그녀의 전신이 떨리며, 고개가 미약하게 좌우로 움직인다.

손가락을 감싸던 혀가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매직 아워가 미치도록 아름답거든. 너도 한 번쯤은 봐서 알거야.”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지도, 해가 완전히 잠기지도 뜨지도 않은 시각.

그 황홀한 분홍빛과 남색의 자연스런 그라데이션을 보고 매혹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다 녹아내려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발악.”

턱을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내려 그녀의 부드럽고 곧은 목덜미를 따라 내렸다.

“그 발악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의 흐름 사이.”

음과 양.

죽음과 삶.

젊음과 노화.

그 경계의 중간이 만드는 상극의 조화가.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

목덜미를 지나, 그녀의 가슴을 움켜쥔다.

평범한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느려진 심장박동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뺨을 따라 손을 쓰다듬으며 안대에 손을 얹는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안대를 벗긴 뒤 그녀의 턱을 잡고 조금 들어올린다.

“잘 보여?”

다정한 목소리로 메가라에게 속삭인다.

렌즈에 투상된, 나와 메가라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부터 너의 황홀한 순간을 녹화할 거야.”

죽음과 생명력이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그 순간을.

너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나는 지금을.

“원래 너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는데, 지금껏 너만큼 찍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손가에 느껴졌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울어. 아까처럼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줘.”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돌아서서 옷장을 연다.

곱게 접힌 방수포와, 쇠톱, 넓은 양동이.

“네 생명과 죽음이 겹치는 그 절경을 네 미소로 빛내줘.”

잡동사니를 꺼내 돌아서자,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다급히 흔들린다.

자.

“최고의 피사체가 될 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