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억시니 말이에요.”

진혁 일행이 남은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거주지로 이동하던 중 진아가 입을 열었다.

“아주 아주 옛날에 역귀가 된 사람이었어요.

정말 그 영감 말대로 생각이나 기억 같은 걸 다 읽을 수 있었거든요.”

진혁은 진아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길영마을 내에서도 역귀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 대부분이 소실된 데다가

역귀 자체가 옛날이야기처럼 취급됐으니 그리 진지하게 연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이 두억시니는 옛날에 마을을 지키던 경비대였어요.

그런데 처음의 역귀는 그렇게 불사의 모습은 아닌 거로 기억하고 있어요.

뭔가를 계기로 지금과 같은 역귀가 만들어진 거죠.

그 뭔가가 뭔지는 모르겠어요.

이 사람도 이유를 자세히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제가 읽어내지 못한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방법일 수 있다는 거죠.

두억시니들 중에는 옛날 마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 사람처럼 경비대나 좀 더 높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두억시니 들의 기억을 읽다 보면 뭔가 역귀들을 해치울 만한 방법 같은 걸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동굴 안에 있던 역귀들은 전부 과거 산골 마을 출신의 사람들이 뭔가 특별한 이유로 역귀가 되었고,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두억시니로 변했다고 알고 있었다.

이후 세상 밖으로 나온 두억시니 들은 사람들을 습격하여 시체를 얻었고

그 시체로 새로운 역귀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지금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것과 진아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니 두억시니가 답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뚜렷하게 답이 없는 상태에서 진아가 곧바로 방향을 잡아 준 것이다.

“그래. 아주 훌륭한 생각이야.

최우선 과제는 구조활동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두억시니랑 마주칠 일은 있을 테니

최대한 조심하면서 두억시니한테서 정보를 얻어보자.

진아가 고생을 좀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진혁의 말에 진아는 당당히 말했다.

“응! 당연히 해야지. 아무래도 이게 할머니 뜻인가 봐.

오빠 도와서 세상 구하는 거!”

예뻐 죽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옆에서 황반장은 늘 그렇듯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좋구만...”

“좋은..... 거겠죠?”

하지만 정상병은 영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약간의 애정 표현이 있고 난 뒤에 진혁은 황반장에게 말했다.

“이 인원이 거주지까지 무사히 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신경 쓸 게 많을 거예요.

우선은 최대한 안전하게 모두 이동하는 걸 목표로 해야겠어요.

반장님은 전동차로 전방 정찰을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거주지에 도착하면 구조대 관련해서 계획을 세워야겠죠.

앞으로도 부탁드릴 일이 많겠네요.”

황반장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구조대란 말에 정상병이 진혁에게 다가왔다.

“구조대라면 저도 지원할게요.

의무병이기도 하고 원래 사람 돕는 걸 낙으로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봉사라면 몸에 배어있거든요.

싸움에서야 큰 도움 안 되겠지만 구조에는 여기저기 쓸모가 많을 거예요.”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밝아진 정상병의 모습에 진혁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고급인력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니까 무조건 뽑아야지.

바빠질 거야. 아직 마음이 불편하긴 하겠지만 전부 떨쳐버리고 같이 한번 잘해보자.”

정상병은 줄에 묶인 채 이를 악물고 걷고 있는 최대위를 슬쩍 바라보았다.

상사를 잘못 만나 저지른 짓을 용서받으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가늠하긴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진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혁에게 의지하고 있는 사람. 진혁이 의지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두 가지 모두 해당하는 사람들까지.

그 사람들 모두가 진혁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미소를 지은 진혁은 오랜만에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저씨. 아직 멀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방향을 잡은 느낌이네요.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졌어요.

예전이라면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 했을 텐데 지금은 든든하기만 하네요.

어쩌면 기대해보셔도 좋겠어요.”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엄청 오랜만에 데이트하네. 아, 이거도 데이트라고 봐야 하나?”

전동차 옆자리에 앉은 진아의 말에 운전하던 진혁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나 죄책감 느끼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음... 반쯤?

구조대 꾸리느라 한 삼 개월 동안 예비 신부 내팽겨 쳐버린 나쁜 사람 때문에 서글프거든.”

진아의 투정 아닌 투정도 이해가 되었기에 진혁은 진아를 달래었다.

“반장님이 그러시는데 이제 여기만 마무리되면 여유 좀 생길 거래.

어차피 두 번째 거주지도 준비가 다 되어가니까 조만간 시간은 생길 거야.”

“그럼 그때 시간 좀 내줘! 또 달빛 양이랑만 꽁냥 대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달빛 양 이란 건 진혁의 칼을 말하는 것이었다.

월광신녀님이 주신 칼이라는 이유로 진아가 멋대로 달빛이란 별명을 지어버렸다.

사실 칼에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냐 싶어 진혁은 그렇게 부르지 않으려 했지만

상우가 월광검이라고 부르겠다며 나선 덕에 차라리 달빛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 구조만 잘 마치면 며칠 정도는 쉴 수 있을 테니 둘은 결혼식 올릴 준비나 하게.

그보다 주변은 어떤가?]

인이어에서 들려오는 황반장의 목소리에 진아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동안 그렇게 조용히 있던 진아는 눈을 뜨고는 대답했다.

“이 근처에 역귀는 없어요. 대신 남쪽에 한두 마리쯤 있네요.

소란스러워지면 이쪽으로 넘어올지 모르니 대비는 해놓는 게 좋겠어요.”

진혁은 곧바로 무전기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1팀은 예정 구역 도착했지? 다른 것보다 생존자 찾는 거에 열중해줘.”

곧 정상병의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네.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여긴 걱정하지 말고 역귀들만 잘 막아주세요.]

진혁은 황반장에게도 전달했다.

“들으셨죠? 2팀은 역귀들 쪽 대비만 해주세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드론만으로도 충분 할 거예요.”

황반장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이미 출발시켰어. 멀리 유인해 버릴 테니까 찬찬히 해.]

이미 몇 번이나 호흡을 맞춰봤기에 모두는 일사불란하게 구조활동을 할 수 있었다.

얼마 안 가 정상병에게서 연락이 왔다.

[찾았습니다. 총 7명. 식량이 떨어져서 영양부족 상태긴 한데 큰 문제는 없어요.

곧바로 인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혁은 안도했다.

생존자 그룹이 언제나 구조대를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해서 쫓아내려 하는 경우도 있고

이미 강도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일도 흔했다.

하지만 이번 생존자 그룹은 그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고생했어. 버스 있는 곳까지 잘 안내해 드려. 별다른 문제 없으면 나도 곧 합류할 테니.”

무전을 마치자 진아가 말했다.

“오늘은 일찍 끝날 수도 있겠는데?

마침 역귀도 거의 없어서 버스도 바로 탈 수 있겠고.”

그간은 소리를 듣고 덤벼들 역귀들 때문에 차량 운행이 쉽지 않았지만

진아가 역귀들을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 구조활동에 차량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역귀가 지나치게 많은 곳에서는 제약이 많겠지만 오늘은 근처에 역귀들이 없었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었다.

“다행이네. 오늘 일 길어지면 이빨 부대랑 마주칠지도 모르거든.

그동안 안 들키고 잘했으니 마지막까지 조심해야지.”

[이게 다 우리 스파이군의 덕 아니겠나. 무전기를 넣어놓길 잘했지.

그래. 역시 착한 친구였어. 정보도 미리미리 다 알려주고.

두 번째 거주지로 삼기 좋은 장소까지 말해주고 말이야. 정말 딱 좋은 곳이더구먼.]

황반장의 말이었다.

스파이란 것은 당연히 이빨부대로 들어간 박일병을 말하는 것이었다.

3개월 전, 박일병이 이빨부대와 함께 떠난 그날 밤.

정상병은 박일병과 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배신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던 박일병은 흔쾌히 스파이 역할을 맡아 주었다.

그 덕에 진혁의 구조대는 이빨부대의 근처에서 움직임을 파악하며 한발 앞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인원이 늘어 두 번째 거주지로 만들 장소를 찾던 중 박일병은 자신의 고향 마을을 이야기해 주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그곳이 두 번째 거주지로 정해졌다.

[네. 전부 잘 돼 가고 있어요. 앞으로 5분 안에 버스 탑승 예정입니다.]

정상병의 무전에 진혁은 이동 준비를 했다.

“저희도 1팀이랑 합류 하겠습니다. 2팀은 역귀랑 거리 충분히 벌려놓고 빠져나오시면 됩니다.”

그 순간 황반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 한 놈 빠져나갔어. 멀쩡하게 드론 쫓아가던 놈이 갑자기 목표를 바꿨네.]

곧 진아가 소리쳤다.

“이리로 오고 있어. 아무래도 버스 소리를 들었나 봐.”

진혁은 당황했다. 전동차와는 달리 버스의 소음은 큰 편이지만 그 정도 거리에서 들려올 정도는 아니다.

보통 역귀의 청각은 사람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좋은 수준이었기에 보통이라면 절대 들을 수 없었다.

“1팀은 생존자 호위하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버스 탑승하고, 바로 이동해.

2팀은 남은 역귀들 멀리 떨어트려 놓고 드론 회수해주세요.

제가 먼저 가서 막을 테니 지원 부탁드릴게요.”

진혁은 곧바로 전동차를 몰았다.

얼마간 달리다 보니 진아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올 거야. 아주 빨리 다가오고 있어!”

전동차에서 내린 진혁은 진아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내려섰다.

“근처에 잘 숨어있어. 반장님이 지원해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진혁이 달빛을 꺼내 들며 말하자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동차를 몰아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진아가 사라지고 얼마 안 가 지독한 냄새가 서서히 풍겨오기 시작했다.

“얘는 냄새가 또 다르네...”

역귀들의 냄새가 지독한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지금 이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비 온 다음 날의 시골 축사와 같은 느낌이랄까?

잠시 냄새가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던 진혁은 눈앞에 나타난 역귀의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납득 할 수 있었다.

“으으으학. 크르릉, 크르르르.....”

짐승이 사람 소리를 낸다면 저러할까?

역귀의 몸에는 사람의 시체와 함께 짐승들의 시체가 섞여 있었다.

돼지의 뒷다리와 몸. 개의 주둥이와 귀.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역귀가 돼지농장을 습격하여 그곳의 돼지와 개들을 재료로 쓴 것 같았다.

“왜 그렇게 귀가 밝은가 했더니만 저래서였네.”

진혁은 역귀의 끔찍한 모습을 노려보며 달빛을 들어 올렸다.







“쉽지 않겠어요. 짐승들 시체가 섞여 있어서 보통 역귀들보다 더 뛰어난 것 같네요.

소리도 잘 듣고 냄새도 더 잘 맡고.

드론 대신 이쪽으로 달려온 걸 보니 어쩌면 지능도 높겠어요.”

[그럼 두억시니란 말인가?]

황반장의 질문에는 진아가 대답했다.

[아니요. 두억시니 느낌이 아니에요. 그냥 두억시니가 돼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요.]

두억시니가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척 보기에도 거대하고 흉측한 것이

보통 역귀들 상대하기보다는 훨씬 까다로울 것 같았다.

“지원은 얼마나 걸릴까요?”

[5분 안에 가겠네.]

“구조는?”

[5분 이상은 걸려요.]

“최소한 시간은 벌어야 되겠네...”

진혁은 역귀를 주시하며 상황을 살폈다.

역귀는 진혁을 마주하고는 함부로 덤비지 않고 그릉거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 달빛이 위험하다는걸 알아챈 것인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지원이 올 때까지는 버텨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역귀가 몸뚱이에 붙어있는 개의 주둥이들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오오오!!!!”

마치 늑대의 하울링과 같은 그것은 보통의 역귀 울음소리보다는 두억시니의 포효에 가까웠다.

“뭐야? 딴 놈들 부르려고? 근처에 역귀 같은 건 없을 텐데?”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듯 잠시 후 진아의 무전이 들려왔다.

[역귀들이에요. 엄청 멀리 있던 녀석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에요. 엄청 빨라요!]

그 정도 거리에 있던 녀석들이 달려오고 있다면 이 녀석처럼 짐승의 시체로 만들어진 녀석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저런 녀석이 세 마리가 달려든다면 진혁으로서도 크게 방법이 없었다.

진혁은 별수 없이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연막 준비해줘. 오기 전에 처리해야 해!”

진혁이 진아에게 무전하자 얼마 안 가 어디선가 연막탄이 날아왔다.

황반장이 만들어준 연막 발사기가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기에 진아는 몇 번의 연습만으로

먼 곳에서 정확하게 연막탄을 던져 지원할 수 있었다.

연막이 역귀와 진혁의 사이를 가르자 진혁은 몸을 움직였다.

달빛의 부작용 때문에 가급적 역귀와의 싸움은 피해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가 되면 진혁은 예전처럼 무작정 달려드는 대신 보다 안정적인 방법을 찾았다.

드론이나 연막 등 부가적인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전투로 역귀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었다.

다행히 시골에서는 연무제나 훈증 약제 따위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황반장이 잃어버린 장비들을 회수하여 유도용 드론들까지 운용할 수 있어 그간 큰 위협은 없었다.

게다가 진혁 역시 달빛사용에 익숙해져서 어느 정도 싸움이 길어져도 기절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역귀의 시야에서 벗어난 진혁은 연기에 몸을 숨기고는 역귀의 측면으로 돌아 들어갔다.

가장 먼저 다리 역할을 하는 부속지들을 잘라 기동성을 빼앗아야 한다.

워낙에 오만 것들이 제멋대로 달린 통에 역귀마다 부속지의 형태나 숫자가 달랐지만

경험상 한두 개 정도만 제거해도 움직임이 크게 줄어든다.

이 역귀는 총 세 개의 부속지를 다리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왼쪽에 두 개 그리고 오른쪽에 하나였다.

때문에 진혁은 미리 눈여겨보았던 역귀의 오른쪽 부속지를 노렸다.

사람의 대퇴부 부분에 개의 하체, 그리고 돼지의 허리 부분과 뒤섞여 있는 듯한 부속지였다.

연기를 뚫고 순식간에 역귀에게 다가가 달빛을 휘두른 그 순간,

역귀는 순식간에 진혁을 발견해 내고는 몸을 비틀었다.

다행히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덕에 진혁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내지 못했지만

부속지는 잘려나가는 대신 상처를 입는 것에 그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고통에 몸부림 치던 역귀는 생각이상의 빠른 속도로 몸을 휘둘러 진혁을 잡아채려 했다.

피할여력이 없었던 진혁은 속절없이 진혁에게 다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돼!”

어디선가 진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반응이라도 하듯 역귀는 아주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덕에 진혁은 몸을 빼서 다시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뭐였어? 네가 한거야?”

진혁이 물었지만 진아 역시 확신은 없는지 자신 없이 말했다.

[모르겠어... 내가 했는지 그냥 우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뭐든 시도해보자. 다른역귀들은?”

[곧 도착할거야.]

그동안 피워졌던 연막이 끝났다.

“최소한 부속지 한 개 정도는 잘라 놨어야 하는데, 큰일이네.

반장님! 지원은요?”

진혁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머리 위에서 윙윙거리는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막 도착했네. 근처에 자리 잡았어. 이제 어떻게 하면 좋나?]

“드론 한대는 절 지원해주시고 나머지 두 대는 여기로 오고 있는 역귀들 조금 귀찮게 해주세요.”

[알겠네. 조심하게.]

곧 진혁의 머리 위를 맴돌던 드론 세대중 두대가 다른 역귀들 쪽으로 날아갔다.

“바로 공격할거야. 이번엔 죽일 생각으로. 진아는 아까처럼 해줘.

우연인지 아닌지 한번 보자고.

반장님은 드론으로 역귀 신경좀 거슬리게 해주세요.”

진혁은 역귀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진아는 먼발치에서 역귀를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멈춰.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속삭이듯 계속 소리쳐 봤지만, 역귀는 크게 영향이 없어 보였다.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역귀에게 달려들어 갔다.

역귀는 다친 다리를 의식한 것인지 몸을 비틀어 오른쪽 다리를 뒤로 숨겼다.

하지만 애초에 진혁의 목표는 오른쪽 다리가 아니었다.

진혁을 잡아채려 역귀가 몸을 움직이자 역귀의 뒤로 날아간 드론에게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부착한 스피커에서 역귀를 유인하기 위해 낸 소리였다.

좋은 청력 때문인지 다른 역귀들보다 격하게 반응해준 덕에

진혁은 역귀의 손을 피해서는 그대로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

왼편에 위치한 다리 두 개를 동시에 베어낸 뒤 빠져나왔다.

이제 역귀의 몸을 지탱하는 거라고는 반쯤 달려나간 다리 한쪽뿐이었다.

쓰러졌던 역귀는 손 역할을 하는 부속지로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그 덕에 싸울 수 있는 부속지는 줄어들었다.

[다른 역귀들이 곧 올걸세. 이 녀석들 드론은 뒷전이야.]

마음이 급해진 진혁은 곧바로 역귀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을 제외하면 부속지라고는 하나뿐이다.

그것만 피하면 역귀의 몸을 반 토막 낼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 정면으로 달려들어 하나뿐인 부속지를 피해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상황은 그리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역귀 몸에 통째로 박혀 축 늘어져 있던 강아지 머리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진혁에게 달려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진혁은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팔을 물려버리고 말았다.

이빨이 깊숙이 박혀 떨쳐낼 수 없었기에 다급히 달빛을 휘둘러 개의 머리를 베어냈지만

이미 몸을 빼긴 늦은 상황이었다.

곧 역귀가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진아가 소리쳤다.

“그만해!!”

이번엔 확실히 역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혁이 달빛을 휘둘러 역귀를 반 토막 내기에는 충분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져 숨을 고르는 동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원 탑승. 출발합니다.]

1조의 무전에 진혁 역시 소리쳤다.

“저희도 빠지죠. 2팀 먼저 드론 회수하면서 도망치세요. 저랑 진아도 따라갑니다.”

금세 진아가 전동차를 몰고 왔기에 둘은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따라오고는 있는데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요. 충분히 따돌릴 수 있어요.

근처에 다른 녀석들은 없으니 괜찮아요.”

진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보다 그건 뭐였어? 역귀 조종도 할 수 있는 건가 이제?”

진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몰라.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은게 아닐까?

두억시니로 변하는 과정이라면 내 목소리를 조금은 알아들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놀라서 멈췄다던가...”

확실한 건 없었기에 조금은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큰 피해가 없었단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

“부상자 없죠?”

[1팀 전원 무사합니다.]

[이쪽도 문제없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역귀랑 정면으로 싸운 게 누군데.”

진아는 투덜거리며 진혁의 상처를 가리켰다.

“신우씨. 우리 오빠 좀 치료해줘요. 혼자 까불다가 개한테 물렸어요.”

곧 정상병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잘 치료해 드릴게요. 광견병 주사도 한 대 놔드리고.]

“부탁 좀 할게. 자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집에 가죠.”

전동차는 마지막 역귀까지 전부 따돌리고 신나게 달려 나갔다.







“상황은?”

상혁의 말에 진수는 대답했다.

“예정된 구역 청소는 전부 끝냈습니다.

역귀는 총 7마리. 부상자는 없고 사망자만 1명입니다.

수색 과정에서 기름을 충분히 확보 했고 작은 물류창고도 발견해서 보급도 충분합니다.”

상혁이 왠지 불편한 기색이기에 진수는 서둘러 덧붙였다.

“부대 시설 운영 역시 순조롭습니다.

건물 자체 발전도 충분해서 앞으로도 전기 걱정은 없을 겁니다.

수도도 다시 연결했고요.

식량 비축분은 충분해서 당장 보급이 끊겨도 몇 주는 너끈합니다.

임산부도 순조롭게 늘고 있어서 부대 운영에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혁은 짧게 되물었다.

“부대 전투원은?”

“아... 어제 사망자가 한 명 나와서 3소대 증원이 좀 필요합니다.

원래 3소대 인원이 조금 적은 편이었어서...”

상혁은 진수에게 물었다.

“좀 이상하지 않나?”

“예?”

“왜 식량과 물자는 넘쳐나는데 사람은 부족하지?

어딜 가든 생존자는 있어야 하는데 왜 이리 찾기 힘드냐 이거야.

이 도시는 상당히 큰 편이야.

역귀놈들이 아무리 독하다 해도 각지에 숨어있는 인간들을 이렇게 씨를 말린 거라 생각하긴 힘들어.

최근 들어 우리가 찾은 생존자가 몇 명인 줄 알아?

적어도 너무 적다고. 이상하단 생각 안 들어?”

진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역귀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사람 없는 게 그리 대수랴 싶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지?”

“내일까지 확보구역 정리하면서 정비하고, 다음날부터는 새로운 구역 탐색입니다.

역귀 사냥, 그리고 생존자 탐색 포함해서요.”

“좋아. 그럼 다음 구역 탐색은 나도 같이 움직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인해야겠어.

그리고 이제부터 임산부들은 한곳에서 같이 생활하도록 조치해.

관리하기는 그게 편하겠지.

수발드는 사람들도 그게 수월할 거고. 당사자들한테도 그게 나아.”

그동안 생존자들은 각자 방을 배정받아 생활했다.

몇몇 마찰은 있었지만, 그들은 이빨부대가 내건 조건을 수락했고

대부분의 남자는 이빨부대.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임산부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제법 숫자가 되기에 이제 별도 관리를 하려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 그럼 혜정이는 어떻게 할까요?”

진수의 질문에 상혁은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직접 물어보고 결정하게 해. 지금처럼 혼자 있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지낼지.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정서에 안 좋지만 혼자 있고 싶다는 걸 굳이 빼내 올 필요는 없겠지.

좋아. 그만 나가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밖으로 나가지는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뭐 더 할 말 남았나?”

진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뭐 사실 저야 우리 대장님 모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또 미래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이 한 몸 바치고 있기는 한데...

이게 또 제가 내심 욕심이 나는 게 이제 저도 미래사회 일원으로서

제 위치에 걸맞은 그런 배우자를 찾고 또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뭐 그런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근데 이게 제가 또 나이도 나이다 보니 생존자들한테 지목받기도 힘들고

또 그렇다고 제가 완장질 하면서 강제로 데려다 앉히자니 모양이 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이죠...”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는 예상 가능했다.

사실 진수가 지금껏 불만 없이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심 여러 욕심이 생겼긴 하지만 처음엔 최대위 눈치 때문에.

이후엔 상혁의 눈 밖에 날까 싶어 고민만 하던 차였다.

그런데 시간도 지나고 남들 다 짝이랍시고 찾아서 끼고 있는 꼴을 보자니 영 불편했기에 조심스레 말을 꺼낸 것이었다.

상혁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그럼 다음 수색 때 생존자 발견하면 네가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 한명 골라.

선택권을 주란 말이야.

네 짝이 될지 아니면 역귀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남겨질지.

이해했지?”

진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에 제가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이 은혜잊지않고 앞으로도 분골쇄신하여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반응에 상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어 보였다.

진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하.. 이거이거 만에 하나 연예인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아예 아이돌 그룹 같은 게 딱 있다 그러면 진짜 고민될 거 같은데...

씁.. 하나만 골라야겠지? 둘 골라도 되냐도 물어볼 걸 그랬나?

아냐 아냐 일단 본처로 하고 나중에 나라 건설하면 그때 이제 첩으로 좀 들이고 해야지.

오늘은 발 쭉 뻗고 자겠구만...”

진수는 그대로 혜정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에요?”

조금씩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혜정은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진수를 맞았다.

“대장 명령 전달.”

진수가 짧게 얘기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혜정은 문을 닫으려 했다.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하세요.”

진수는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으며 말했다.

“대장님 바쁘셔. 짧으니까 그냥 들어.

이제부터 임산부들은 전부 같이 생활할 거래.

넌 문신사니까 특별대우로 선택권을 줄 거야.

여기서 혼자 쭈그리고 그림이나 그리던가.

나가서 다른 애 엄마들이랑 호호거리면서 시간 보내던가.”

혜정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강하게 끌어당겨 닫았다.

“야이씨... 손 낄 뻔했네.

하여간 저 성질머리 저거.

근데 참 이상하네. 대장님이 안 오시는 건 그렇다 치고

얘는 또 왜 대장님 찾아가질 않는거여.

그전엔 자주 들락거리는 거 같더니만 요샌 통 만나는 꼴을 못 봤네.

애 가졌다고 각방인 건가....

첩은 서자 가지는 순간 가치가 없는 거라고 하드마 진짜 인가보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첩이 몇 명이건 하나하나 잘 챙겨줘야겠어.

자식새끼들 하나하나 기억해주고. 맛난 거라도 하나 더 멕여주고.

그러려면 집도 무진장 커야겠네.

나중에 집 같은 거 하사하신다고 하면 진짜 어디 대저택이라도 받아야지.”

진수가 멀어지자 혜정의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손재주 좋은 사람 세 명에게 문신 세기는 법을 알려주고 나자

혜정은 사실상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요양을 핑계로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신과 같은 게 아닌 말 그대로 그림.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고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그리기도 했다.

원래 그림에는 재주가 있었던 터라 금세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리도 정리되는 것 같았고

뭣보다 아이 태교에 좋았다.

“누구보다 착한 아이로 키울 거야. 언제나 행복할 수 있게.”

혜정의 얼굴에 옅게나마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