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현재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상황에서 저의 과거 이야기가 아내에게 들어간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의 20여 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에만 숨기려니 병이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기억이 흐릿해져가고 있기도 하고 , 그때 겪은 일이 진짜 사실이었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기억을 더듬어 여기에 기록을 남깁니다.

1. 말년휴가

이야기는 2004년 군대에서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저는 경기도 산본에 살고 있었습니다.
광명시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까지 한 곳에서 자란 저는 광명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산본에서 광명시로 가는 12번 버스는 ‘장터말’이라는 시골 동네를 지나갑니다.
이제 막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는 시골마을 장터말을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오랜만에 마셔보는 사회공기를 느끼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한적한 시골길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는 겁니다.
12번 버스를 자주 타고 광명시를 다녀봤지만 이 길에서 누가 타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무심코 버스를 타는 사람을 쳐다봤는데 아직도 그때의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짙은 검은 긴 생머리에 하얀 원피스 그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여성분이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다 혹시 눈이 마주칠까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당시 전 우측 후문 바로 앞에 앉아있었는데 여성분이 제가 앉은 대각선 앞자리에 앉으셔서 가는 도중 힐긋힐긋 계속 그 여성분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꿈에서만 그리던 이상형이었으니까요. 고운 선을 가지신 마른 체형의 여성분이었습니다.
여성분에게 시선을 뗄 수 없어 몰래 계속 쳐다보는데 특이 점이 있었습니다.
하늘하늘한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계신 여성분의 손엔 어울리지 않은 피크닉가방이 들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 있는 동안 피크닉가방 들고 다니는게 유행이 됐나? 라는 생각도 잠시 여성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전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습니다.
혹시 왜 쳐다보냐 따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버스에서 내리면 저 여성분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걱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얼마 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말이라도 걸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평소 전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아직 군인의 신분이라 그런가 아니면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 커서 그런지
왠지 그날은 용기가 났습니다. 말이라도 걸어보고 차이면 맘은 편하겠다. 여자분 옆으로 가서 용기내 말을 걸었습니다.
근데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커피한잔 하실래요?”
말을 꺼내놓고 속으로 ‘병신’ 하면서 스스로를 욕했지만 표정은 애써 태연한 척을 유지했습니다.
잠시 정적 후
“그래요”
뜻밖에 대답이 그 여자분에게서 들려왔습니다. 믿기지가 않아
“네? 정말요?”라는 또다시 병신 같은 말을 꺼낸 후 우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좀있다 이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