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야! 진짜 미안, 너무 늦었지?

다들 오랜만이네, 진짜 반갑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어? 군대 얘기?

와, 나 어렸을 때는 커서 군대 얘기하는 아저씨는 절대 안 되려 했는데, 우리도 진짜 아저씨다 이제.

뭐?

아, 군대에서 겪었던 무서운 일 없었냐고?

크리스마스 이브 땐가? 북한이 도발해서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군장차고 실제 상황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 들은 거.

아 진짜라니깐? 아! 아! 아파 이 새끼야.

알았어. 그럼 말고 다른 얘기 하나 해줄게.

근데 무섭다…기 보다는 조금 이상한 얘기야. 별로 무서운 얘기도 아니야 사실.

그래도 해줘? 듣고 욕하지 마라?

나 강원도 전방에서 근무한 거 알고 있지?

워낙 산골이기도 하고, 실제 6.25때 맨날 뺏고 빼앗기고 했던 곳이라 훈련이 엄청 많았어.

내가 이병…아니, 일병 초였다. 초여름. 완전 짬찌일 때 있었던 대규모 훈련에서 생긴 일인데.

그 지역이 분지 지형이어서, 날씨가 워낙 지랄 맞은 동네란 말이야? 응. 낮에는 덥고 밤에는 또 춥고.

근데 그때 야외에서 철야하는 일정이 포함된 훈련이 잡혔어.

첫 날에는 부대에서, 둘째 날에는 우리 부대 애들이 다 장비랑 군장 챙기고 뒷산으로 뛰어 올라가서 우리 쪽 침투하는 다른 부대랑 모의전하는 합동훈련이었어.

이제 며칠 동안 훈련준비를 계속하다가 편성표가 나왔는데 이게 웬걸?

부대에 주둔하면서 대기하는 소규모 조가 있고 그 중 하나가 나였어.

내 보직이 통신이었거든?

맞선임한테 물어보니까 통신병은 기본적으로 하나씩 있어야 하는데, 막내인 내가 기본적인 장비사용이랑 간단한 조치 밖에 못하니까 내가 받은 거라 하더라고.

맞아. 개꿀이었어. 나중에 다른 선임들이 짬찌 새끼가 벌써부터 꿀 빤다면서 개같이 갈굼당했는데, 그게 고까우면 지가 통신하든가.

하여간에 그래서 훈련은 진짜 편했어. 담당 간부도 엄청 유한 사람이었고, 같이 있는 최고선임도 별명이 천사인 사람이었고, 나보다 빨리 전입 했던, 에이스 소리 듣는 동기 둘까지.

선임이 가져온 잡지, 그 스파크랑 숨겨둔 맥심 같은 거 동기들이랑 나눠보면서 추진해 놓은 과자 같은 거도 까먹고.

나중에 저녁에는 그냥 판초랑 모포 깔고 잤어. 그래서 나랑 동기들은 진짜 땡잡았다. 훈련 꽁으로 끝낼 생각에 싱글벙글하는데.

근데 다 자는 새벽에 간부가 와서 우릴 깨우데?

그리고 상황설명을 하는데 타부대가 우리 부대로 침투조를 보냈다는 무전이 왔다는 거야.

그래서 날씨 추우니까 야상입고, 장구류도 차고, 총 들고 수색하러 뒷산으로 올라갔지.

와 근데, 나 한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가? 진짜 빛 하나 없는 어둠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진짜 아무것도 안보여. 진짜. 암순응이라고 하나? 시야 적응되면 앞에 희미하게 형체랑 별, 별 보이면 하늘, 별 안 보이는 곳부터 나무나 산 능선, 이 정도만 구분되는 거야.

여하튼, 간부 지시로 이제 나뭇잎 방탄에 꽂아 넣고 나름 위장하고, 일렬로 천천히 숨죽이고 산을 타는데.

저 멀리서 뭔가 빛나는 거야.

다들 기도비닉하면서 있는데 조용히 간부가 물었어.

“…야, 저거 뭐냐? 라이트 빛인가?”

우리도 처음에는 침투조가 하도 안보여서 LED를 켰나 생각하는데,

일단 뚜렷하고 센 전등 빛도 아닌 잔잔한 불빛이었고.

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야간 침투 작전조가 무슨 작전 중에 불을 켜는 빡대가리 같은 짓을 해.

그래서 내가 계속 지켜보다 갑자기 들었던 생각이었는데, 손전등을 비추는 곳을 바꿀 때, 일직선으로 된 빛이 휙휙 움직여야 하잖아? 무슨 말인 줄 알지?

응, 그렇지. 근데 그 빛이… 뭐라 그러냐. 나비 나는 것처럼 위아래로 펄럭인다고 하는 게 맞겠다.

둥실둥실, 스멀스멀 움직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간부한테 말했어.

“…저, 혹시 반딧불이 아니겠습니까?”

워낙 산중에 있던 동네라 도시랑 다르게 엄청 깨끗했거든? 그치, 강원도니까. 그래서 내 얘기를 들으니까 선임이랑 간부도 그런가, 하면서 수긍하는 분위기였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숨어서 계속 빛나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 근데 그 훈련소에서 하는 교육 있잖아.

밤에는 한 곳을 계속해서 바라보지 말라고. 헛것 본다고.

응? 아니 아니, 헛것은 못 봤는데,

홀린다는 기분 알아?

진짜 잠도 못자고 피곤한 상태인데, 일은 해야 해서 컴퓨터 화면을 보는데 제대로 눈에 안 읽히는 느낌 알지? 근데 또 눈은 안감기고.

딱 그런 느낌이었어.

시선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어서 계속 빛을 바라보는데. 빛이 계속해서 커지는 느낌? 설명만으론 조금 공감이 안 될 거 같은데.

그니까… 눈에 들어오는 빛은 딱 작은 빛인데, 서서히 커진 것처럼 세세히 보이더라. 푸르스름한 둥그런 불빛에 중심은 새하얀 백색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있었거든.

그러다 한 오 분 지났나? 불이 갑자기 사라지더라고.

그때서야 다들 퍼뜩 정신을 차렸어. 그래서 우리가 다들 쑥덕거렸지. 방금 그게 뭘까. 근데 그냥 군바리 넷이랑 간부 한 명이 머리를 열심히 굴려봤자 뭐가 나오겠냐.

혹시 모르니까 그 자리에서 십 분 정도 더 주시하다가, 이제 다시 움직였지.

그래서 예상 경로에서 기도비닉 하면서 침투조를 기다리는데.

주변 설명을 좀 해주자면 중앙에 길이 있고, 왼쪽에는 산으로 이어지는 풀숲, 그리고 오른쪽에는 좀 깊은 물줄기로 이어지는 비탈이었어.

나랑 동기 둘은 비탈 쪽에 몸 눕히고 몸을 숨고, 간부랑 선임은 맞은 편 숲에서 숨었어.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침투조가 안 오는 거야. 그래서 간부가 무전 좀 하다가 철수하자고 해서 속으로 투덜투덜 거리다가도, 그래도 좀 재밌긴 했다- 이런 생각하면서 올라가는데.

동기가 발을 헛디뎠는지, 비탈을 올라오다가 주르륵 미끄러지더라고.

다행히 비탈 중간에 나온 완만한 흙더미에 걸려서 물에 빠지는 큰 사고는 없었어. 비탈도 막 가파르거나 높은 경사도 아니고, 아래 물만 좀 깊은 곳이라.

그냥 다시 올라와서 잠깐 발목 몇 번 돌리더니, 다행히 군화가 잡아줘서 괜찮다고 하더라.

그래서 뭐, 그냥 철수하고, 선임이 꿍쳐온 뽀글이 몰래 끓여서 간부랑 동기랑 한 수저 씩 나눠 먹고, 그러고 훈련 끝났어.

어? 야, 아직 얘기는 안 끝났어. 좀 더 들어봐.

아무튼, 다들 새벽에 긴장한 상태로 야간산행도 했겠다, 피곤해서 다들 다시 뽀글이 먹고 일찍 곯아 떨어졌어.

그리고 그 날 낮 열두 시에 이제 훈련이 끝나고, 이제 우리가 훈련 물자를 정리하잖아.

장비랑 전날 가져온 모포들을 치우는데,

군장이랑 모포, 판초 같은 게 하나씩 남는 거야.

그래서 선임이 저거 누구 거냐고 물어보는데, 우린 이미 장비랑 장구류 다 차고 생활관으로 올라갈 준비 다 한 상태였거든.

그래서 서로 눈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동기 하나가 이야길 하나 하더라고. 주기된 이름 한 번 보면 알지 않겠냐고.

그래서 봤지.

근데 처음 보는 이름인거야. 무슨 이름인지는 지금 기억이 안 나지만.

선임이 모포에 덕지덕지 적힌 이름들 중 몇 개는 전역한 사람들 이름인데, 얘는 누군지 모르겠다는 거.

근데 뭐, 사실상 아무도 모르는 거 보면 지금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주인이 주기를 제대로 했다는 보장도 없고. 가끔은 간부가 병사한테 빌리기도 하니까.

그냥 간부가 잠시 들려서 여기다 냅뒀나 보지, 하고 끝났어.

근데 며칠 뒤 중대장이 우릴 불러서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거야.

대대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누가 군장을 거기다 방치를 하냐고, 저거 주인 누구냐고.

우린 억울해서 항변했지. 저희는 장구류랑 군장 다 있다, 검사해보셔도 괜찮다,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고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있어서 간부나 타 중대 병사가 잠시 그곳에 둔 줄 알았다.

중대장이 그 말 듣더니 너희 말이 사실이라면 징계는 주지는 않을 거지만, 일단 우리가 그 곳에 있었으니 우리보고 치우라 하더라고.

그래서 뭐 어떡해, 다들 몰래 씨발씨발 하면서 군장을 가지고 올라와서 남는 생활관에 정리해뒀지.

참, 그러고 잊고 살다가 휴가 나와서 다른 얘들이랑 썰 풀다 생각나서 반딧불을 찾아봤는데, 반딧불은 노란색에서 연두색이더라?

이게 끝이야. 별 거 없어. 귀신 얘기도 아니고.

야, 근데 나 늦었다고 오자마자 얘기 시키면서 술 한 잔 안 따라주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