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 119입니다.

침이 바싹 마르고, 입이 열었지만 담긴 말을 뱉지 못하고 닫힌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옳은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양심의 가책이 날 힐난한다.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라는 걸,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여보세요? 신고자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수화기 반대편의 구급대원의 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촉박했고, 실패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이.”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내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지치고 추레한 목소리였다.

“문이 열리지 않아요.”

-….

전화에는 잠시 침묵만이 남고, 곧 구급대원의 한 숨이 들렸다.

-119에 그런 일로 연락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끊도록 둘 수는 없다. 침착하고, 몇 번이나 연습한 대로 해야 한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지금 문을 사흘 째 못 열고 갇혀있어요!”

수화기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전화를 붙잡고 사정사정한다. 두려움과 조급함이 느껴지는 내 횡설수설이 불안정한 상태처럼 보였던 걸까.

내 주소를 한 번 물어보고는 한숨과 함께.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삐삐삐- 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귓가를 채운다.

나는 손에 불이라도 데인 듯 수화기를 던졌다. 달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수화기가 바닥에 부딪히며 유선이 충격에 흔들거렸다. 나는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미안 합니다…. 미안 합니다….”

죄악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을 초래할지 알면서도, 내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하려는 나의 이기적인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한다.

숨을 몰아쉬며 품 안에서 빛바랜 종이를 꺼낸다. 누렇고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치자 크레파스와 색연필이 몰아치는 엉성한 색깔과 도형의 뭉치.

이상한 색깔의 불가사리와 구겨진 바위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보자 숨이 점차 편해졌고, 마음은 더욱 단단하게 굳었다.

다시 그림을 접으면서도 한 쪽 귀퉁이에 쓰인 서툰 글씨에 눈길을 준다.

-우리 아빠.

우리 아들 호연이.

이 와중에도 순간 피식, 하고 미소가 나왔다. 죄책감을 누르는 부성애, 아버지로써의 의무가 나의 죄악감을 씻어내고, 결심을 더욱 단단히 굳힌다.

이 방을 나가기 위해서 방법은 단 하나.

낡아빠진 구식 수화기로,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대체할 상대를 찾아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반 바퀴를 돌아서자, 벽을 메운 빼곡한 바를 정자를 바라본다. 긁어 만든 흔적 위로 덧대고 덧대어 해질 때로 해져버린 벽지, 그리고 그나마 비어있는 벽에 적혀 있는 내 다짐이 보였다.

1. 다시 가족을 만날 것.

2.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

3. 날 이곳에 집어넣었던 그 새끼를 찾아내 반드시 죽여 버릴 것.

증오를 느끼자 순간 정신이 날카로워지고 두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아직도 뚜렷이 떠오르는 얼굴을 다시 되새기며 몸을 움직인다.

내가 문을 열자 보이는 환희에 찬 얼굴. 죄책감도, 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뻔뻔한 상판.

문을 열자 보인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모습. 넝마나 다름없던 거적을 입고 마치 짐승처럼 달려들며 날 넘어뜨린 뒤, 헐레벌떡 달려 나간 그 새끼의 모습을.

어느 날 실종되었던, 어린 시절 친구의 흔적을 가진 중년 남성의 모습을.

이가 빠드득 갈렸다. 모든 일은 전화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 오 년이 되던 해, 어느 날 내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혹시, 옛날에 ○○초등학교에 다녔던 정우현 씨 맞나요?

어떤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내 어린 시절을 알고 있자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그러자 남자는 목이 메이는 듯한 목소리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현우야…. 나 상호야….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 줄 알고 화를 냈었다. 지금 어릴 적에 실종된 내 친구 이름 가지고 무슨 장난을 치냐고, 당신은 인간된 도리도 없냐고 따졌지만.

상호는 그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상호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현우야,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여기 주소가….

이미 옛날에 소식이 끊겼던, 그것도 실종 처리가 되었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자 조금 꺼림칙한 면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나도 많았고, 내 아이를 키우며 알게 모르게 생긴 감정적인 면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새끼가 불러준 주소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외관은 평범한 구도심의 복도형 아파트였다. 십칠 층의 아파트의 끝 호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열려있다며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탁 쏘는 비릿하고 신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머리가 산발이 된 중년 남성이 달려들며 날 넘어뜨렸다. 충격에 숨을 헐떡이자 고통스러운 냄새에 헛구역질을 느끼며 남자를 돌아보자.

왠 거렁뱅이가 그곳에 있었다. 거지와 다름없는 몰골, 이리저리 엉키고 군데군데 비어있는 머리칼, 물어뜯거나 억지로 뜯어낸 것처럼 거칠고 더러운 손발톱.

녀석은 귀까지 걸린 미소로 섬뜩하게 웃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덮치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몸을 감싸는 순간,

그 새끼는 날 뛰어넘어 다급히 문틈을 벌리고 있었고, 문을 닫으며 그 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는데, 낮고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음에도 선명하게 귓가를 때리는 말소리였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열렸다!”

어안이 벙벙해져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그 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문고리를 잡고 비틀어보았지만 절대 열리지 않았다. 문을 쾅쾅 두드려도, 아랫집에서 분명히 들렸을 소음공해를 일으켜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들려오는 건 연결음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방 안을 둘러보고 나서야 무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런 가구도, 창문도 없는 방.

바깥에서 분명히 들렸어야 할 도시의 소음이 음소거를 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체감했지만 배가 고프지도, 목이 마르지도, 화장실을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곳이 평범한 과학의 법칙을 벗어난 무언가라는 걸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런 백열등은 시간과 관계없이 켜져 있었고,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방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고 일어날 때마다 벽에 흔적을 새겼다.

그것 말고는 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자고 일어나 흔적을 새긴 후,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지내다 다시 잠드는 일의 반복이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가끔 환각, 환청을 들으며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만약 내가 한 아이의 아빠라는 걸 상기시켜준, 내 아이가 그려준 그림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상호처럼 광인이 되지 않았을까.

벽에 새긴 흔적이 팔십 개가 넘어갈 때 쯤.

처음으로 이 방에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오래되고 낡은 유선전화기 하나.

그 전화를 보자 본능적인 직감이 엄습했다.

저 전화로 날 이곳에 부른 거구나.

그렇다면 나 역시 누군가를 이곳으로 부르면, 날 대신 여기에 집어넣으면 나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전화를 들었다. 누군가, 아무나에게 전화를 걸면 난 이 지옥을 나갈 수 있었다. 다시 아내를 껴안고 호연이를 품 안에서 쓰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쪽 벽에 걸어놓았던 그림이, 한 아이의 부모라는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자부심이 나에게 질문을 건졌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부모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날 대신해 이 지옥에 던져 넣을 수 있을까?

일곱 개의 흔적 후 전화기는 사라졌다.

전화기는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되었다. 전화가 나타나는 데는 규칙성이 없는 듯 보였다. 아니면 수면 패턴이 망가져 내가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거거나.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다. 벽은 긁어 만든 흔적으로 빼곡해지기 시작했고, 점차 이성적이고 떳떳하게 살고자했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날 이곳에 집어넣었던 새끼를 저주하는 날이 늘었고, 가끔 벽을 보고 중얼거리는 나날들이 늘어났다.

벽에 걸린 흔적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어느 새 숫자를 세보니 약 팔 년의 햇수가 지나 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재혼을 했으려나? 잘 모르겠다. 워낙 젊었을 적에 아름다웠던 여자라 다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햇수로 오 년이 더 지났다.

아이는 이제 어른에 가까울 것이고, 부인은 이제 마흔 언저리에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었다. 뱀처럼 날 칭칭 감고 놔주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곧 사회로 발돋움을 할 것이고, 아내는 좋은 남편을 새로 만났다면 새로운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그들을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는 다시 전화기가 나타났다.

전화기는 그 후 다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꼬박 일 년을 고민했다. 양심적으로 옳은 선택과, 내 스스로 채우고 싶은 처절한 인간적인 욕구에 매달려 살 것인지.

결국 나는 욕구에 져버리고 말았다.

인간적인 이기심이라며, 나는 햇빛이 보고 싶을 뿐이라며 합리화 하며 전화를 걸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긴장과 흥분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급히 현관문 옆에 몸을 숨겼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문 지금 안 열린다고 하셨죠!

왔다.

목 끝에서까지 느껴지는 박동을 억지로 눌러 삼키며, 나는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철컥-

무슨 일을 해도 열리지 않던 문이, 출동한 구급대원이 문고리를 돌리자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잠시 정적, 그리고 한숨과 함께 구급대원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신고자 분, 이렇게 잘 열리는 데 지금-”

그가 현관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손에 쥐고 있던 전화기로 남자의 뒤통수를 내려찍었다,

콰직-

무언가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끔찍한 소리였다. 분명 낡은 플라스틱 전화기로 날 수 없는 소리.

하지만 솟구치는 아드레날린과 흥분, 그리고 남자가 반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어 올렸고, 다시금 내려쳤다.

쾅-

쾅-

쾅-!

마치 터널처럼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고, 남자의 말소리가 신음으로, 신음이 미약한 부들거림으로 변하면서 멈췄던 숨을 몰아쉬었다.

달그락-

힘이 빠진 손에서 전화기가 빠져나갔고, 전화기는 바닥을 구르며 빨간 발자국을 남겼다.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으며 손가락을 쓰러진 이의 코밑으로 가져간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공포와 두려움, 솟구치는 구역질.

하지만 돌아서서 입구를 바라보는 순간.

쏟아지는 햇빛, 들리는 자동차 소리, 새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지저귐에.

나는 비틀거리며, 넘어지며, 일어나 네 발로 달리듯 방을 빠져나갔다. 미친 듯이 복도를 달렸다. 분명 난 문을 닫지 않았음에도, 마치 강한 바람이 일기라도 한 듯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난 꼬박 십 칠층을 달려 내려가, 공동 현관을 나서서 밖으로 나오고 나자.

십 몇 년이 지나도록 느껴보지 못한 자연과 소음, 너무나도 그리운 이질감과 피로에 정신을 잃었다.

다시 의식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다. 흐릿한 눈으로 가장 먼저 찾은 건 달력에는 내가 사라진 해에서 이십 이 년이나 지난 해였다.

간호사가 깨어난 날 보고는 의사를 불러왔고, 나는 꿈에서나 그리던 두 이름을 불렀다.

아내와 아이의 이름을.

그들은 경찰과 연락을 취했고, 곧 미심쩍은 눈을 한 아내가 날 찾아왔다.

나는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보았지만, 아내는 날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옛날이야기와 함께, 품안에 가지고 있던 아이의 그림을 꺼냈다.

아내는 그림을 받고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았고, 나는 오랜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내가 없었던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스물일곱의 장성한 어른이 되었고, 아내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재혼을 한사코 거부했다고 했다.

그 말에 비열하면서도 짙은 기쁨을 느끼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호연이는 지금 일하는 중이라 전화를 못 받은 듯 보인다고, 하지만 예비 며느리는 다행히 전화가 돼서 이야기를 해놓았다고.

호연이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정말 큰 놀라움과 기쁨을 느꼈다. 좋은 소식에 그동안의 고통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고 싶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진실을 이야기 하면 날 정신병원에 집어넣을까 두려워서.

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척 이야기를 회피했고, 다행히 아내는 넘어가는 듯 했다.

그 후 나는 다시 되찾은 가족과 삶을 실감하며, 아파트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그 날 야심한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내가 간병을 해주다 잠시 화장실에 간 동안 울리기 시작한 휴대전화 화면에는 ‘며늘아가’라고 적혀있었다.

물론 잘한 짓은 아니란 건 알지만, 난 기쁨과 흥분을 못 이겨 목을 몇 번 푼 뒤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여, 여기 혹시 한수연 씨 전화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워서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한수연 씨 남편인 박현우라고 합니다.”

-아, 아버님?

그녀는 약 이십 년간 실종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시아버지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듯 했다. 나는 껄껄 웃으며 괜찮다고, 네 심정을 나도 이해한다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자 조금 진정하는 듯 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전화 주신 거죠?”

내 질문에 그제야 그녀는 전화를 한 이유를 떠올린 듯 했다.

-아, 저, 그 호연 씨가….

“호연이가요? 호연이가 왜요?”

-호연 씨가… 지금 돌아오지 않아요.

“네?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그, 그게, 방금 연락이 왔는데….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호연이는 현재 소방대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오늘 낮에 잠시 다른 소방대원과 둘이서 출동을 갔는데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소방서에서 전해들었다고.

기분 나쁜, 마치 벌레가 온 몸을 기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소방서의 연락처를 달라 다그쳤고, 곧 연락처로 전화를 하며 수화기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연락을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설마.

설마.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쉬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될 것 같아서.

“혹시. 박호연 소방대원이 갔다는 곳이.”

내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나의 것 같지 않았다. 늙고, 추레하고, 병든 자의 목소리였다.

“○○동, 복도식 아파트 십칠 층인가요.”

앞 뒤 없는, 대뜸 지껄이는 주소.

미친 놈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대화였다.

제발.

제발 아니라고 말해.

-…그걸 어떻게….

한참의 침묵 끝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난 무어라 말을 시작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두 명.

두 명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호연이가 아니어야 했다.

아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