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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대체 뭐야?”
진혁과 일행은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한 일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중세시대 마녀사냥처럼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있었고
그 가운데는 한남자가 기둥에 묶여있었다.
“죄지은 자에게 합당한 벌을 내린다.
제물로서 영혼이 해방되는건 이자에게 사치일 뿐이니
고통속에서 몸부림쳐라. 괴로워하고 두려워해라!”
기둥 옆에서는 노인 한명이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진혁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노인 길영마을 사람이에요.
무슨 역귀를 섬긴다거나 신격화 시키는 집안 사람이라고 했는데 마을에서도 괴짜 취급 받았었어요.
아무래도 보통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박기태. 마을사람들은 박씨영감이라고 불렀었다.
진혁과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오며가며 마주칠 일이 있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역귀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저 특이한 집안 정도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위험한 방향으로 틀어진 듯했다.
“그 더러운 인두겁을 벗겨내어 추악한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끔찍한 꼴을 지켜봐라!!!”
박노인이 칼을 꺼내들자 진혁이 예고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잠깐만요 영감님! 저 기억하세요? 진혁이에요. 태영 아저씨 제자.”
칼로 최대위의 피부를 벗겨내려던 박노인은 진혁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놀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기억이 난다. 태영이가 데려온 그 형제. 용케 살아남았구나. 게다가 여기까지 살아오다니...”
그렇게 말한 박노인은 문득 진혁 허리에 채워진 칼을 바라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칼.... 혹시 이놈에게 이빨 사용법을 가르친게 네놈이냐?”
분노하는 박노인을 보며 진혁은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네? 아뇨. 전 이빨 절대 안써요.
아저씨가 절대 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하셔서.
이 군인아저씨도 처음보는 사람이에요.”
그러자 박노인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보다 영감님 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왜 이사람이 묶여있는지.
이빨을 썼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죠.”
박노인은 칼을 거두고는 진혁에게 돌아섰다.
“너도 마을사람이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이빨은 인간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끔찍한 짓이야.
이녀석은 누구에게서 이빨사용법을 배웠다.
그리고 역귀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오만하고 허무맹랑한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끌어모았지.
게다가 얕은 지식을 과신하여 총으로 이빨을 만들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진혁은 아까 들었던 총성을 기억해 냈다.
고속으로 회전하며 고열을 내는 총알에 피가 묻어 있을리 없으니 통하지 않은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아무래도 이빨 사용법은 상혁이 가르친 것 같았기에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요. 이사람이 잘못한건 알겠어요. 그래도 그런식으로 하면 안되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 말거라. 이자의 죄가 얼마나 막중한지 네놈은 이해 못할게야.
이 마을엔 이 마을의 법도가 있다.
수십명의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마을 책임자로서 단호한 처벌을 내려야해!”
진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광기가 없었다.
그저 두려움만 가득 차있을 뿐.
저들이 두려워하는건 무엇일까?
알아내야 했지만, 지금은 노인을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다른 방법이 있을거에요. 마을사람 모두가 이해할 만한 방법.
지금 이런건 너무 과격해서 모두가 거부감을 느낄거에요.
그건 영감님도 곤란하잖아요.”
진혁의 말에도 노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광기로 물든 그 얼굴에 서린 단호함이 똑똑히 보였지만 진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방법이 있을거에요.
제가 도와 드릴테니, 일단은 그 칼 내려놓으시고 저랑 얘기좀 해요.”
“물러나게. 자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자네와의 이야기는 형벌을 집행하고 천천히 할테니 지금은 비키게.
그러기 싫다면 다칠지도 몰라.”
진혁의 주변으로 청년 몇 명이 다가왔다.
“잠깐만요. 제말좀 들어보세요.”
“이미 늦었네. 우선 자중하고 있게.”
박노인의 명령에 청년들이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진혁은 물러서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만. 진혁이 승리.”
태영의 말에 진혁은 숨을 헐떡이며 상혁의 팔을 풀어주었다.
“이걸로 3대 3 동점. 잘했다. 무조건 힘으로 부딪히려고 하면 상혁이 상대하긴 힘들거야.
그렇게 적당히 흘리면서 기회를 봐야지.
다행히 진혁이도 맨손싸움은 제법이니까 상혁이랑 적당히 주고받을 정도는 될거다.”
상혁이는 저리는 팔을 휙휙 돌려 풀어주며 태영에게 물었다.
“아저씨, 근데 칼질이며 몸싸움 같은건 왜가르치는 거에요?
어차피 역귀랑은 못 붙는다면서요.”
그 말에 태영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역귀랑은 못싸우지. 근데 일단 몸쓰는법 배워놓으면 어디든 다 써먹을 수 있거든.
뭐 역귀가 나타난다 치면 이게 싸울상대가 역귀만은 아닐거란 말이지.
그리고 역귀가 볼일이 영영 없다 하면 그냥 괜찮은 호신술이 되는거고.”
진혁이 물었다.
“뭐 격투라든가 그런건 그렇다치고 칼은요? 솔직히 요새 누가 칼같은걸 써요.
아저씨 무협영화 너무 많이 보신거 아니에요?”
진혁의 말에 태영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야 임마 너희들 남자 맞아?
로망이 있잖아. 로망이! 남자라면 검 앞에 심기일전해서 무예를 갈고 닦는게 마땅한거지.
하 이놈들은 하여간 머리만 커가지고 쓸데없는데서 어른흉내를 내네.”
상혁은 그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쉴 뿐이었지만 진혁은 진심으로 억울했다.
그나마 어찌해볼 수 있는 몸싸움과는 달리 칼은 말그대로 상혁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매번 대련을 명목으로 죽도록 맞기만 할뿐.
“뭐 그건 반쯤은 농담이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몸싸움이야 사람 상대로도 가능하지. 하지만 역귀가 나타난다면 대응 할 수 있는건 날붙이 뿐이야.
물론 귀에 딱지 앉도록 말했듯이 역귀와는 싸우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싸워야 할때는 분명 올거야.
그걸 대비해야지.
시간 끄는 용도로만 생각해도 역귀 상대로는 칼이 총보다 월등히 효율적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죽는걸 지켜보기 싫다면 죽어라 연습해.
적어도 진혁이는 상혁이 상대로 한판 정도는 가져올 정도는 만들란 말이야.”
진혁은 그때 결심했다. 그런 이유라면 칼보다는 차라리 발차기 연습을 한번이라도 더하겠다고.
역귀가 나타날거란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는 데다가
그렇게 노력해서 상혁이를 칼로 한번 이기느니 격투로 두어번 더 이기는게 나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질문?”
진혁은 손을 들고 말했다.
“혹시 여러명이 달려들면 어떻게 대응하는게 좋을까요?
그러니까 칼말고 맨손으로요.”
태영은 곧바로 대답했다.
“한놈씩 상대하는게 제일 적절하지.
아무리 뛰어나도 한번에 확 덮쳐오는 사람들을 상대하긴 힘들거야.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각개격파해.
한놈만 집요하게 공격을 해서 무너트리든 아니면 벽을 등지고 차례로 쓰러트리든.
뭐 너희들이라면 별다른 기교 없이도 비슷한 덩치 남자 셋정도는 싸워볼만 할거다.”
이번엔 상혁이 물었다.
“그럼 네명 이상이 탁트인 공간에서 덤벼들면요?”
태영은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건 좀 답이 없다. 그냥 미인계 쓰자. 피부관리 잘 해서.....”
‘시작하자마자 두명. 좋아, 이제 할만해.’
기술도 없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청년 둘의 명치에 각각 발차기를 먹여준 진혁은
그들이 쓰러지자 빠른 곁눈질로 남은 인원을 파악했다.
당장 보이는건 세명.
여러인원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면 힘들어졌을 싸움이었지만 사람들이 진혁을 너무 얕본탓에
유리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
진혁은 세명을 모두 시야에 담기위해 뒤로 끝없이 몸을 움직였다.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 빨리 이들을 제압하고 박노인을 말릴 생각이었다.
“뒤에요!!”
진아의 소리침을 들은 진혁은 재빨리 뒤로 돌아서는 달려오는 한명을 바닥에 메다꽂았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가 기회를 노린 모양이었다.
잘못했다간 잡힐 뻔했지만, 다행히 진아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박노인은 인상을 쓰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진아를 발견한 그 순간 노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기습을 피한 진혁이 안도하는 찰나, 마을 사람들 틈에서 청년들 몇 명이 더 걸어나왔다.
‘셋, 넷, 다섯.... 앞에 있는 놈들까지 하면 일곱. 이건 답 없는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그때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자 이번엔 내가 양보하겠네.
자네 말대로 우선 처벌은 미루는걸로 하고 자네와 이야기해 보겠네.
아무래도 일행이 있는 것 같은데 우선 다 같이 집으로 가세나.”
노인의 말에 진혁음 물론 청년들까지 의아해했다.
물론 진혁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에 우선 노인의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노인의 집에 자리잡은 진혁이 무슨이야기부터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은 진혁이 아니라 진아였다.
“거기 아가씨. 이름이 뭔가?”
모두는 당황했지만 진아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네? 어.. 권진아요.”
“그렇구만. 권씨라... 올해로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나이요? 26살인데요?”
“한창 좋을 나이구만. 그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무슨일 하시고?”
왠지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진혁은 잠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다행히 얼마안가 정신을 차린 진혁이 노인의 질문 공세를 끊어 내었다.
“영감님. 지금은 그런 말 할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노인은 웃으며 진혁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아 미안하네. 이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어.
내가 원래 이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닌데 저 아가씨를 보자마자 들떠서 그만.”
진혁은 불쾌하다기 보단 황당했다.
저 늙은이가 대체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다행히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는 마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대위에게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역귀사태 이후 길영마을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두억시니를 만난 것.
그를 섬기며 사람들을 모으고 또 제물을 바친 것까지.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안정을 가질 수 있지.
저 군인녀석은 그런 날 이해하지 못해서 크나큰 죄를 저질렀지만.
아 그에 대한 처벌은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있으니.”
두억시니를 모시며 제물을 바친다는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서
이미 진혁을 납득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역시나 진혁은 크게 분개하며 일어났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아니면 다른 누구이건 타인의 희생을 통해 억지로 만들어진 평화는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없습니다.”
노인은 비웃었다.
“그럼 자네에게는 생각이 있나?
내가 틀렸다 말하고 싶으면 대안을 내야지.
무턱대고 반대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자네에게 설교를 듣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네.
난 저 아가씨가 필요하거든. 첫눈에 딱 알아봤지.”
이번엔 황반장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거 내 아까부터 거슬려도 꾹 참았더니만 이거 너무한거 아니요.
다 늙어서는 주책 맞게 손녀뻘이나 될법한 애한테 무슨 추태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내말은 그런뜻이 아니오.
저 아가씨는 그릇이 아주 훌륭하거든.
영감이 좋고 영혼이 맑아서 두억시니님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을거요.
배움이 짧아 아직은 미천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주 훌륭하게 성장할테지.
두억시니님을 보필할 무녀에 가장 적합하다 이거요.”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말에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노인이 이어서 말했다.
“쉽게 말해 두억시니님의 색시감이란 얘기야.”
너무도 터무니없는 말에 진혁을 포함한 모두는 어떻게 반응하지 못했다.
박노인은 느긋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위대하신 존재는 그에 어울리는 무녀가 필요한 법이야.
두억시니님께서도 그걸 원하시네.
마땅한 인물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이리 제발로 와주다니 감사할 노릇이야.
그러니 제안하겠네.
아가씨가 두억시니님을 모실 무녀가 되어준다면 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악행을 저지른 저 군인의 죄 역시 용서할 의향도 있네.
또 진혁이 자네는 이 마을에서 머물면서 내 보좌로 키워주지.
보니 몸깨나 쓰는 것 같은데 내 오른팔이 되어봄이 어떤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진혁은 더 고민할 필요 없다는 듯 노인에게 다가갔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한 말들 중 이해가 되는건 단한개도 없었어요.
두억시니를 신격화 하는것도, 제물을 바치는것도, 두억시니 색시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것도.”
슬쩍 진아와 황반장을 돌아보니 진혁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은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터무니없는 믿음 따위는 전부 버리고 옳은 일을 하십시오.
역귀를 숭배하다니 안될 말입니다.”
노인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자네의 눈을 보니 그리 말할 줄 알았네.
뭐 나도 할말이야 있지만 그전에 자네에게 묻지.
그럼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두억시니님의 도움없이 이 많은 인원들을 살릴수 있다고 믿는가?”
진혁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방법은 찾을 수 있습니다. 어렵다 하더라도 해야하지요.
그게 옳은 일이니 무슨 수를 써서든 그렇게 해야합니다.”
노인은 흡족한 얼굴을 했다.
“그래. 그래도 자네는 아까 그 위선자 양반보다는 좀 낫구만.
하지만 말이야 너무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안드는가?
마음만 가지고서는 대의를 이룰 수 없네.
물론 난 자네 신념을 높게 평가 하네만 남들은 분명 비웃을게야.
정의 하나만 내세운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지.
지금 자네가 가진 신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네.”
진혁이 노인에게 달려들려 하자 노인은 총을 꺼내들었다.
“나 역시 내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키웠지.
인간의 힘이란건 근력만을 말하는게 아니네.
무력, 세력. 그것이 뒷받침 되어야 신념도 힘을 쓰는게야.”
곧 밖에서 마을 청년들이 들어와 진혁과 황반장을 제압했다.
“자네와의 대화는 충분히 즐거웠네.
좋은 시간이었어. 하지만 내 말을 따를 생각이 없는 것 같구만.
이제 머리 좀 식히게.
난 이 아가씨와 조금더 이야기를 나눌테니.”
곧 청년들이 진혁과 황반장을 결박해서는 밖으로 나갔다.
“놔주세요!”
진아가 소리치며 일어났지만 금세 다른 이들에게 억지로 앉혀졌다.
“조심히들 대하시게.
아주 귀하신 몸이니 행여나 생채기라도 나면 곤란해.
아가씨가 얌전히만 있어준다면 우리도 최대한의 예우를 해주겠네.
자네를 매우 아끼는 저 둘의 안전도 보장하고 말이야.
하지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역시 저들을 인질 삼을 수밖에 없네.”
그제야 진아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만 노인을 죽일 듯 쏘아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훌륭하고 당찬 아가씨로구만. 권씨 집안에 저런 인재가 있었을 줄이야.
혹시 집안에 무속인분 계신가?”
진아는 날이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할머니가 아주 대단한 만신이셨거든요?
당신 같은 늙다리랑은 비교도 안되게 대단하신 분이라구요!”
노인은 그 정도 도발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역시 그랬구만. 혹시 조모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가?
만신이라 불릴 정도였다면 나역시 이름석자 정도는 들어봤을 터인데.”
진아는 여전히 노인을 쏘아보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안 혜자 옥자 쓰세요.”
“보자... 안혜옥... 그렇구만. 도화선녀 안혜옥 선생님.
과연 그 피를 이어받았으니 그리 훌륭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겠지.
아주 좋아. 아직은 부족하지만 내가 잘 가르쳐 주겠네.
내가 비록 반토막짜리 박수지만 자네 가르칠 정도의 능력은 되니 말이야.
신부수업이라 생각하고 잘 따라오게.
우선 오늘은 푹 쉬도록 하게.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하고 더불어 두억시님께 인사를 드릴테니.
알겠지만 도망칠 생각은 안하는게 좋을거야.”
진아는 깊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지 할머니?”
정상병은 줄에 묶인채 창고에 삐딱하게 기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자신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갇혀있다가 역귀에게 바쳐지는 최후라면 그냥 벌을 받는거라 생각하는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은 그리 편해지지 않았다.
“정신우 상병님...”
같이 묶여있던 후임병사 박일병이 정상병을 불렀다.
부대는 달랐지만 역귀사태 이후 최대위의 명령을 듣게 되면서 선후임 관계가 된 사이였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정상병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최후의 희망이라 생각하고 숨겨놨던 칼은 최대위에게 넘겼고
최대위는 그걸로 줄을 끊어낸뒤 어린아이를 쐈다.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해 보려 해봐도,
정상병의 눈에 비친 최대위의 표정은 그저 역귀에 대한 분노 뿐이었다.
그간 아이들과 구조자들을 위한 모든 것들은 위선이었을까?
“그래도 저희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박일병의 말에도 정상병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마을 청년들이 창고 안으로 두명의 사람을 집어넣었다.
진혁과 황반장이었다.
그들 역시 손발이 꽁꽁 묶인채였다.
“괜찮으세요? 다치신데는 없나요?”
정상병은 버릇처럼 물어왔다.
“글쎄.... 다행히 다친곳은 없는 것 같네만...
그보다 자네들은 누구인가? 군복차림을 보니 광장에 묶여있던 군인이랑 같은 소속인 듯 한데.”
황반장의 말에 박일병이 대답했다.
“네. 밖에서 보신분은 아마 저희 대장님이실 겁니다.
저희는 최대위님의 이빨부대 소속입니다.”
“이빨부대?”
진혁은 심상치 않은 부대이름에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빨부대라니? 자세히좀 얘기해 주겠어?”
박일병은 진수와의 만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거참 산넘어 산이라더니. 자네 형이 생각보다 일을 크게 벌인 모양이구만.
게다가 지금 당장 꼼짝도 못하는 신세라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진혁은 고심해 봤지만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진혁은 즉시 줄을 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줄은 어떻게 푼건가?”
“아저씨한테 배운 것 중 하나에요. 묶일 때 손목 각도만 잘 유지하면 아무리 쎄게 묶어도 빼낼 공간은 나오거든요.”
진혁은 발에 묶인 끈을 손으로 풀어버리고는 황반장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제가 나가서 어떻게든 진아 구해올게요.”
진혁이 나가려 하나 황반장은 그를 말렸다.
“자네 또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지금 맨손으로 나가서 어쩌려고?
하다못해 작전이라도 짜게. 나도 도울 수 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일병도 말했다.
“잘 모르겠지만 저희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풀어만 주신다면 무슨일이든 돕겠습니다.”
진혁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했다.
황반장의 말이 맞다. 지금은 흥분해서 뛰어나간다고 일이 되는게 아니었다.
“저 보게. 이들도 돕는다지 않나?
자네는 가끔 너무 마음에 쫒기는 경향이 있어.
급한 마음은 알겠지만 내가 이전에도 모두를 믿고 도움을 청하라 하지 않았나?”
진혁은 황반장의 말에 따라 모두를 풀어준 뒤 머리를 맞대었다.
“역시 당장은 몰래 빠져나가서 진아만 빼가지고 도망치는게 최선이라고 보네.
지금은 역귀 포위망도 없을테니 가능하지 않겠나?”
분명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게 맞겠죠. 우선 모두의 안전을 확보해서 빠져나간다면 이후에 뭐라도 해 볼 수.....”
말을 하던 진혁은 문득 말끝을 흐렸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나면... 내가 뭘할 수 있지?’
상혁은 이미 많은 인원들을 모아 놓고 역귀를 토벌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박노인의 마을은 두억시니를 제외하고도 적지 않은 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혁에겐 몇 번 휘두르지도 못할 칼 한자루뿐.
게다가 그나마도 지금은 빼앗긴 상태였기에
확실히 형을 막을 힘도 박노인을 막을 힘도 가지고 있지않았다.
황반장은 진혁의 낌새를 눈치챘지만 더 무어라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문지기 같은건 없는데 문을 자물쇠로 잠가놓은 것 같아요. 어떻게 빠져나갈까요?”
말을 멈춘 진혁대신 박일병이 말했다.
최상병은 아직 마음이 복잡한 듯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상황을 보러 올거네. 늦어도 아침에는 분명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올거야.
굶기진 않을테니 확실하네.
그때 재빨리 제압하고 마을 외곽을 빙 돌아서 접근 하는게 맞지 않겠나?”
진혁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밤에 움직이는게 제일 좋겠지만 괜히 문을 연다고 소란을 피울 수 없으니
열릴때까지 기다리는게 좋겠네요.
마냥 기다릴수는 없으니 교대로 문뒤에서 대기해야겠어요.
다른 둘은 잠시라도 눈붙이고...
반장님은 그쪽 상병친구랑 같은조 해주세요. 전 이친구랑 움직일게요.
대략적인 준비가 끝나자 정상병과 진혁은 문뒤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복잡한 생각하지 말자. 진아를 구한다. 그것 하나만 생각해.’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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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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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구토 |
졸잼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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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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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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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4 [1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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