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은 혜정과 함께 거점으로 삼았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에 진수는 없었다.
다만 돌아올 둘을 위한 쪽지는 남겨져있었다.
쪽지에는 이빨부대를 창설하고 거점을 옮겼다는 말과 함께 새 거점의 주소도 적혀있었다.
주소를 보고 찾아간 그곳에서 상혁과 혜정을 맞이 한것은 환영식이 아닌 총든 군인들이었다.
“이빨부대를 만든다고 하더니 진짜 군인들을 데려다 놨네.”
그들은 거점으로 들어가려는 상혁의 차를 막아서고는 말했다.
“지금은 임시본부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내부사정으로 현재 구조활동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또한 괴물들이 덤빌 가능성이 크니 차량 사용은 불가합니다.
차를 포기하시고 도보로 이동해 주십시오.
곧 구조활동이 재개될테니 그때까지만 버텨주시길 바랍니다.”
상혁은 병사에게 물었다.
“너희들 대장이 누구냐?”
그러자 병사는 흔히들 써먹는 레퍼토리라고 생각했는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최대위님을 거론하셔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지금은 들어가실 수 없으니 안전한곳에서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상혁은 의아해했다.
“최대위는 누구야? 그 진수란 놈이 너희들 대장 아니야?”
그 말에 병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한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얼마안가 건물안에서 진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대장님!! 돌아오셨습니까? 제가 대장님 명령으로 이빨부대를 창설해 놨습니다.
보십시오! 이들이 전부 대장님의 부하입니다.
역귀들 사냥도 순조롭고 전쟁 준비도 아주 순조롭게....”
들리지도 않을 거리에서부터 정신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달려온 진수는 큰절이라도 하듯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상혁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다른거보다 이놈들이 내 부하면 왜 날 못들어가게 막고 있는건데?”
진수는 벌떡 일어나 병사들에게 소리질렀다.
“너희들!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어? 감히 이분이 누구신줄 알고 말이야?
얼른 모시지 못해? 대체 최대위는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애새끼들이 하나같이 이리 띨띨해!!
뭐해? 얼른 모시라니까!”
하지만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희는 최대위님의 명령만 따릅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지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최대위 데려와! 지금 어딨어?”
진수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최대위님은 지금 중요한 일로 수색작전에 투입되어 계십니다.
현재 이곳의 지휘권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진수는 당황하며 상혁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상혁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위를 없앨 생각이었는데 너무 늦장을 부린 탓이었다.
상혁은 별다른 말없이 차에서 내려 그 병사에게 다가갔다.
“그럼 지금은 네가 여기서 제일 높은 사람이란거지?”
상혁은 병사의 코앞에서서 가만히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병사 역시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상혁을 마주하고 있었다.
“안전이네. 조정간.”
상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은칼이 뽑혀져 나왔고 병사의 목에선 피가 뿜어졌다.
다른 병사들 뿐 아니라 진수마저 놀란 그 순간 상혁은 쓰러지는 병사에게서 총을 빼앗아 다른 병사들을 겨누었다.
다른 이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 할 뿐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상혁은 총을 내려다보곤 탄창을 열어보았다.
“총알이 하나도 없네. 너희도 마찬가지일거고.
그럼 얘기가 빨라지지. 자 다음으로 높은 놈은 누구야?”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지원하는 놈 없으면 지휘권 포기하는걸로 알고 지금부터 내가 일괄 지휘한다.
우선 안으로 안내해.
시체는 바로 치워. 역귀들 액세서리 만들어주긴 싫으니까.”
진수는 감명받은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했고 병사들은 허둥지둥 상혁을 안으로 안내했다.
“저를 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뿐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밖에있던 마을 사람들이 대원들에 목에 칼을 들이대자 최대위는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제가 죽는다면 두억시니님께서 몹시 화를 내실겁니다.
아마 주변에 있는 역귀들을 모두 지휘해서 이곳을 공격하겠지요.
이빨만 믿고 까불었다간 전부 도륙이 나버릴 겁니다. 그러니 진정하시지요.
대신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신만 얌전히 있어준다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죄를 회계하고 두억시니님을 숭배하겠다 약속하면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에게는 그렇게 나쁜 조건이 아닙니다.”
최대위는 고민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무조건 몰아붙여서는 힘들 것 같았다.
“부하들 먼저 풀어줘. 그러면 네 제안도 생각해보지.”
노인은 웃었다.
“지금 제게 뭔가를 요구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최대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앞뒤 생각 안하고 네 대가리 날려버리면?
내가 그러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나?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목숨 가지고 도박을 걸 필요는 없겠지.
너처럼 가진게 많은 놈이라면 더욱더.
그러니 내말 들어. 애들 풀어줘 어서!”
노인은 조금 고민했다.
“그렇군요. 뭐 그건 알겠습니다. 그렇다해도 다 풀어주는건 너무 터무니 없군요.
정작 풀어주고 나면 그때 방아쇠를 당길수도 있으니 그런 멍청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대신 절반만 딱 풀어드리지요.
절반은 즉시 이곳을 떠나실 수 있습니다.
그 뒤엔 당신이 총을 탁자에 내려놓으세요. 이야기는 그 다음입니다.
당신이 총을 다시 집으려 하면 남은 병사들이 죽고 제가 병사를 해하려 하면 당신은 총을 집어 절 쏠 수 있지요.
이 정도면 제가 많이 양보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최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병의 병사중 5명이 풀려나자 최대위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본부로 돌아가. 내가 돌아올때까지 본부를 지켜라.”
그 말에도 노인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설마 나 몰래 저녀석들을 다시 잡아두거나 공격하지 않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거래는 언제나 확실히 합니다.”
최대위는 천천히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한걸음 물러섰다.
“내 목표는 역귀를 이세상에서 전부 몰아내는거야. 나라면 할 수 있어.”
“불가능 합니다. 두억시니님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하시겠지요.
두억시니님은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아니 이미 신이라 할수 있지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얌전히 절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놈들은 그냥 괴물이야! 죽여 없애야할 괴물!”
“아뇨. 그분은 신입니다. 증명할수 있어요.
당신도 두억시니님과 대면한다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어떠십니까?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존재를 뵐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 순간 가까운곳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크아아악!!!”
역귀의 울음소리. 하지만 그 깊이가 차원이 달랐다.
마치 거대한 산같은 울림.
최대위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사이, 아이들을 데리고온 마을 주민이 최대위에게 달려들었다.
뒤늦게 몸을 날려 총을 집으려 했지만 조금 늦은건지 총을 집어드는 대신 바닥에 쓰러진채 제압당하고 말았다.
노인은 느긋한 걸음으로 탁자에 있던 총을 집어들고 최대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서로간의 대화는 이걸로 충분한 것 같군요.
이제 당신이 할 일은 하나입니다.
경배하세요. 그 위대함을 직접 느껴보시란 말입니다.
직접 두억시니님의 일부가 되는 영광을 누리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도망친 병사들 말인데, 제발 많은 지원병력을 끌고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제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노인은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두억시니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황 보고해.”
최대위가 지휘실로 쓰고있는 방에 앉은 상혁이 진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최대위와 다른 녀석들을 만나서 대장님의 위대한 의지를 전했습니다.
모두 이빨부대가 되기로 했지요.
대신 견장 욕심이 있는 친구인지라 제 부하가 되는게 아니라 절 동료로 받아준게 되어서...
하지만 그건 제가 곧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상혁은 진수의 말을 끊었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지금 부대 돌아가는 상황 전부 보고해.
인원, 식량상태, 그리고 구금된 인원들. 그 수색작전이란 것 까지 전부.”
사실 진수역시 부대 돌아가는건 잘 몰랐기에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병사들을 불러왔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상관을 죽인 상혁에게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모든걸 실토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대 총 인원 18명. 그중 최대위 포함 11명이 외부 작전 중.
목적은 식량수급과 거주지역 확보. 현재 거점 잔류 인원은 7명.
그중 하나는 내가 죽였으니 지금 여기 6명 있는거고....
역귀사냥은 주기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속도가 너무 느려. 효율이 너무 안나와.
그리고 구조 인원들은 뭐야? 이 사람들 다 먹여살리려니 식량이 이따위지.”
상혁은 현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곧장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우선 잠정 중단이라는 구조활동은 부대 인원 추가확보를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실시.
다음으로 지금 격리 해놓은 어린애들 7명. 혜정이한테 다 보내.
알아서 작업할테니. 그 여자가 새 이빨관리자야.
나머지 구조된 인원들은 내가 직접 내려가서 새로 편제 할거고.
진수는 총괄 책임. 내부 상황 봐가면서 사람 관리해.
대드는 놈 있으면 칼을 휘둘러서라도 조용히 만들란 말이야.
나머지 병사들은 내 지휘하에 전투조로 편성할거고.
혹시라도 내 명령 듣기싫다. 혹은 목에 칼이들어와도 최대위님을 따르겠다 하는놈들.
지금당장 여기서 나가면 잡지는 않을거니 맘대로해.
대신 나가는 순간 너희는 전부 적이니까 다음에 보면 주저없이 다 죽일거야.
반대로 날 믿고 따르겠다 하면 입이 떡벌어질 만한 걸 전부 주지.
원하는거 말만해. 여자한테 둘러쌓이고 싶다던지 먹을거 배터지게 먹고 싶다던지
다시 세울 나라에서 엄청난 명예를 가지고 싶다던지.
필요한건 다 가져다줄 능력이 되니까.”
그 말을 모두 믿는 병사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대위의 충성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간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만 했을 뿐 부족한 식량 탓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기에 상혁의 말이 달콤하게 들려왔을 것이다.
“좋아.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각자 정비하고 휴식.
그리고 내일은 내가 말한대로 애들 혜정이한테 보내고 구조인원들 대기 시켜.
본격적으로 역귀사냥 시작할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9년전.
“거기서 혼자 뭐하고 있어?”
진혁은 우울한 얼굴로 혼자 앉아있는 예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냥... 군대간 상혁 오빠 보고싶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래서...”
진혁은 웃었다.
“너 열 살때부터 매일매일 지겹게 본 얼굴인데 잠깐 못보는거 가지고 뭘또 보고싶어 보고싶기는 오글거리게...”
“원래 그런거거든! 오빠는 연애 안하니까 모르는거야.
남자친구가 군대간다하면 원래 막 울고 매달리고 그러는건데 난 씩씩하게 보내줬단 말이야.
그래두 보고싶은데 어떻게 해?”
예지는 뾰루퉁하게 말했지만 여전히 진혁은 장난스러웠다.
“너 그래놓고 나 군대갈때는 신경도 안쓸거지?
나 갈 때 쯤 되면 이제 형 나오니까 둘이서 룰루랄라 놀러만 다닐거지?”
예지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가 면회가자고 해도 안갈거야. 상혁오빠가 가자고 하면.... 그땐 생각해 볼게.”
“형은 나한테 면회 안올거 같은데? 군생활 내내 아저씨 얼굴만 보게 생겼네. 서러워라.”
예지의 표정이 조금은 좋아졌기에 진혁의 얼굴에도 미소가 더해졌다.
늘 밝고 명량한 모습만 보여주던 예지 였지만 최근에는 얼굴에 그늘이 자주 드리워졌다.
“군대 그 까짓거 금방이야. 몇 번 자고 일어나면 언제 갔냐는 듯이 멀쩡히 올거라고.
솔직히 난 지금을 좀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
날봐. 얼마나 행복해? 그인간 없으니까 스트레스 주는 사람도 없고 잔소리꾼도 없고.
뭣보다 목검에 쳐맞지를 않으니까 진짜 세상이 다 아름다운데. 얼마나 자유롭고 좋냐고.”
“그건 그냥 오빠가 약해서 그런거잖아. 상혁오빠가 맨날 그랬어.
비리비리한 놈이니까 줘패서라도 사람만들어야 된다고.”
진혁은 약하다는 말에 발끈하며 외쳤다.
“그래도 격투는 내가 더 잘하거든? 아저씨도 인정했어.”
“더 잘하는건 아니지. 칼로 싸우면 10대0이고 격투로 싸우면 5대5니까 그나마 몸쓰는게 낫다라고 한거지.”
투닥투닥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둘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진혁도 예지도 상혁이 보고싶단 생각이 간절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빨리도 좋지만 안전하게만 오면 좋겠다.
나 요새 티브이를 못보겠어. 막 군대에서 누가 죽었단 얘기만 들으면 심장이 덜컹덜컹 내려앉아.”
예지의 말에 진혁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 괴물같은 인간이 군대에서 무슨일을 당하겠어?
누가 갈궈도 또 그 표독스런 표정으로 버티겠지.
그러다 선임이라도 되면 진짜 무서운 인간이 될걸?
와 입대 딱 했는데 선임이 형이면 진짜 지옥이겠다.
난 진짜 무조건 형 전역하면 군대갈거야. 진짜 혹시라도 안마주치게.
누굴 죽이면 죽였지 죽을 인간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말고 맘편히 기다려.
가만히 보면 군인이 체질이야 체질. 나중가면 말뚝 박는다 할수도 있어.”
예지는 뭔가 생각난게 있는지 고민을 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안되겠어.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야겠어.
바로 애기도 낳아서 완전히 내걸로 만들어야지 안심이 될거 같아.”
진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예지를 바라보았다.
“뭐야. 얘기가 왜 그렇게 돼. 걱정 말라니까 결혼부터 하겠다는 의식의 흐름은 뭔데.”
“원래 사랑이란게 그런거거든? 기승전 러브러브야.
아무튼 난 최대한 빨리 상혁오빠랑 결혼할거니까 지금부터 형수님이라고 불러.”
“와. 진짜 행여나 너랑 형이 결혼해도 내가 절대 형수님 소리는 안한다.”
둘이서 그렇게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안잘 거야?”
“가요 아저씨.”
“네. 아빠!”
둘은 느릿하게 대답하고는 함께 집으로 향했다.
“무슨생각을 그렇게 해?”
진아의 물음에 진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냥 옛날 생각. 역귀들 나타나기 전에 가족들이랑 세상 걱정없이 살던 그때.”
“아저씨랑 살던 그때? 그때는 형이랑도 사이 좋았고 그랬다고 그랬지?”
“그래... 친했지. 엄청 친했어.”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한테 딸이 하나 있었거든? 예지라고. 나랑은 진짜 친남매처럼 지냈는데, 얘가 형을 좋아하더라고.
철들기 전부터 짝사랑하면서 쫒아다니더니 기어이 꼬셔내서는 결혼까지 성공해냈어.
결혼식날 예지 얼굴이 진짜 행복해 보였거든?
근데 그 빌어먹을 인간 때문에 예지가 죽었어.
난 지금도 예지랑 예지딸 하영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 인간은 아무렇지 않은가봐.
그래서 형이 용서가 안되는거야.
정말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거야.”
진아는 진혁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너무 큰 아픔이 있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무언가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다만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이렇게 함께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진혁의 손을 잡아주려던 그순간, 진아는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곧바로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보이는건 없었지만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
그때 그게 무엇인지 설명이라도 해주듯 마을 쪽에서 역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크아아악!!!”
진아의 반응에 의아해 하던 진혁 역시 마을을 돌아보았다.
“안되겠다. 일단 바로 내려가 볼테니까 반장님이랑 여기있어. 금방올게.”
곧장 마을로 뛰어내려가는 진혁을 보며 진아는 반장님에게 향했다.
느낌이 그리 좋지 않지만 지금 당장은 진혁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보십시오. 위대한 존재이시자 스스로 신이되신 분.
오랜 세월을 기다려 마침내 현세에 강림하신 진정한 왕.
우리를 굽어살피고 보살피시는 만물의 근원.
두억시니 님이십니다.”
노인의 거창한 소개에 보답이라도 하듯
마을 광장에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3미터에 달하는 큰 덩치에 수십명분의 시체로 덕지덕지 몸을 치장한 두억시니.
두억시니는 다른 역귀들처럼 무작정 달려들지도 그저 본능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엄청난 중압감을 주며 병사들이 묶여있는 광장 중앙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억시니에게 길을 열어주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건 숭배 보다는 공포에 가까웠지만 노인만은 진심어린 목소리로 찬양하고 있었다.
“두억시니님. 오늘도 신을 믿지 못하고 죄를 지은 이들을 잡아왔습니다.
부디 엄하게 심판하시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손이 묶인채 다른 병사들과 함께 광장에 무릎이 꿇려져 있던 최대위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쥐어짜 냈다.
총을 빼앗긴채 부하들과 묶여있는 상황에서 두억시니라는 놈이 나타났고
처음엔 그 압도적인 위용앞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금세 정신을 차렸지만 지금 상황을 타개할 만한 계책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대위님 제 발목에 나이프 있습니다.”
돌아보니 관리병 정신우 상병이었다.
즉시 몸을 돌린 최대위는 뒤에 묶인 손을 움직여 정신우 상병 발목에 수납되어있던 접이식칼을 꺼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두억시니를 신경쓰느라 최대위가 나이프로 줄을 끊어내는걸 알아채지 못했다.
손을 풀며 주변을살펴본 최대위는 상황이 크게 좋아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마을사람들이 둥글게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나마 총알이 남아있던 총은 물론 이빨로 쓸 대검까지 전부 뺏겼다.
이빨도 없는 상태에서 두억시니를 피해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 최대위의 눈에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노인은 주머니에 최대위 권총을 대충 찔러 넣고는 광기어린 말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 이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최대위는 서둘러 다른 이들이 묶인 줄도 잘라냈다.
마음은 급했지만 칼이 작아서 그리 간단치 않았다.
두명째 줄을 끊어주며 최대위는 작게 지시했다.
“내가 신호하면 사방으로 도망쳐.
저 괴물놈도 마을 놈들도 목표를 못잡고 잠시동안 정신없을 정도로.
난 곧바로 저 노인제압해서 인질로 잡을거야.
저놈말이 맞다면 괴물놈도 마을놈들도 함부로 못움직이겠지.
그 틈에 탈출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살피고 있던 그순간, 두억시니가 깊은 울음을 내뱉고는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최대위는 줄을 푸는걸 포기하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뛰어!”
줄이 풀려있던 둘은 곧바로 양 방향으로 뛰어갔고, 그 혼란을 틈타 최대위는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노인을 넘어트려서는 총을 꺼내든 그순간, 노인옆에서 이빨이 될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청년이 몸을 날려 최대위를 공격했다.
간신히 되찾은 총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그사이 청년이 노인을 부축해서 마을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겨 버렸다.
“대위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려보니 두억시니가 묶여있던 세사람중 한사람을 막 집어들고 있는 참이었다.
두억시니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본양 몸에 달린 손들로 병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그대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생으로 몸을 찢어내는 고통에 죽어라 비명을 질렀지만 두억시니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뜯어낸 팔을 자신에게 붙였다.
다음으로 다리를 뜯어내고 다른 부분들 역시 남김없이 끌어다가 몸에 붙이기 시작했다.
줄이 풀린 두명의 병사들은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마을 밖으로 나갈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간신히 도망친 그들이 마주한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역귀들이었다.
역귀는 두억시니의 명령을 받는 듯 가만히 서있었지만 병사들은 감히 가까이 다다갈수 없었다.
최대위는 두 번째 병사를 집어드는 두억시니를 보고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든 막아야한다는 생각 하나로 미친 듯이 두리번 거리던 최대위의 눈에
노인을 챙기기 위해 자리를 피한 청년 덕에 방치된 아이 둘이 보였다.
최대위는 다급히 아이에게 뛰어가 멱살을 잡아 끌고는 두억시니에게 소리쳤다.
“야이 괴물새끼야!!!”
최대위가 어린애를 잡고있는걸 본 두억시니는 이빨이란게 무엇인지 아는것인지
들고있던 병사를 집어던져 버리고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최대위에게 달려들었다.
최대위는 자신과 역귀 사이에 아이를 밀어 넣고는 총을 겨누었다.
아이를 겨냥한 총구가 두억시니와 정확히 일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그순간
최대위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은 아이의 몸을 뚫고는 그대로 두억시니에게 날아갔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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