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고 쓸데없이 길어 한줄요약 먼저 때리고 시작합니다

‘나는 귀신을 본 적은 없는데,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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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척 -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기색이나 소리

기색? 이건 또 무슨 뜻이지.

기색 – 어떤 행동이나 현상 등이 일어나는 것을 짐작케 해 주는 눈치나 분위기

아... ‘주말 오전 침대에서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을 때’ 정도의 뜻이구나.

갑자기 왜 이런 말이 궁금해졌냐 하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귀신이나 이상한 현상 같은 걸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느낀’ 적은 두 번 있었거든. 뭐 느꼈다고 생각하는 거지만. 그 중 하나가 지금 얘기하는 ‘인기척’에 대한 이야기야.


꽤나 오래 전, 군대에 가기 전 대학교 2학년 당시 난 친구 두 명과 좁은 원룸에서 한 학기를 같이 지냈어. 다른 두 친구는 나와 다른 학과였는데, 그 중 한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서 금방 친해졌지. 1학기에 하숙이 끝나고 모여서 ‘한 학기 정도는 원룸에서 살아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각자 알바도 하고 집에서 조금 보탬도 받아서 6개월 사글세 방을 얻었지.

대부분의 대학가 원룸이 그렇듯 방은 크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한 5평이나 됐을까? 문을 열면 곧장 신발장과 작은 싱크대가 있는 부엌이고, 미닫이 문을 열면 테라스도 없는 방 하나가 전부였지. 작은 밥솥과 냉장고, 비디오테이프 데크 일체형 TV 한 대가 가전제품의 전부여서 방 한 켠에 쌓여 있는 이불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어. 생각해보니 대학생이었는데도 방에 책 한 권이 없었네.

아마 중간고사를 한 주 앞둔 주말이었을 거야. 다른 두 친구는 집에 다녀온다며 각자 고향으로 갔고, 나는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시험 준비도 할 겸 방에 남아 있었어. 마침 술약속도 없었던지라 대강 공부를 마치고 PC방에서 당시 막 오픈했던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잠깐 즐기다 집에 들어왔어.

저녁은 밖에서 대강 때웠고, 12시가 좀 넘어 집에 오니 씻기도 전에 잠이 쏟아지더라고. 간단히 세수하고 손발만 닦고 이부자리를 폈지. 평소에는 세 명이 누워 자기 때문에 현관 쪽에 발을 두고 나란히 눕는데, 어차피 나 혼자였으니 현관을 왼쪽에 두고 가로로 누워 자려고 이불을 넓게 폈어. "아이고" 한 마디 하고 누워서 현관을 등지고 옆으로 누웠어.

밖에서 조근조근 소리가 들려오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두 명의 대화었어. 당시 내 방은 2층이었고, 3층에 여학생 두 명이 함께 지내는 방이 있었는데 아마 그 친구들이었겠지. 계단을 오르며 소리가 잦아들었고 난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있었어.

그 집 현관에는 눈높이에 바깥을 볼 수 있는 구멍이 좀 크게 있었는데, 문 밖의 센서등이 켜지면 그 빛이 조금 보일 정도였어. 직접 쳐다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여서 잘 때 방해가 되진 않았지.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보다는 간혹 옆집에 살던 형님이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들리는 ‘그’ 소리가 더 방해가 되곤 했어.

아무튼 현관 밖에서도 소리가 더 들리지 않고 고요해졌어. 한 10분쯤 지났나? 막 잠에 빠지려는데, 뭔가가 느껴지는 거야. ‘어, 누가 날 바라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무섭다기보다는 어색한 느낌? 고개를 살짝 돌려 현관을 바라봤는데, 이내 그 느낌은 사라졌어. 앞에서 얘기했던 인기척 말이야.

‘시험 때문에 좀 예민한가’ 싶어서 다시 돌아누워 잠을 청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 뭔가 느껴지더라고. 누가 날 쳐다보고 있는 느낌? 처음 그랬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두 번째 그러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하더라고. 그래서 ‘아 뭐야... 밖에 누가 있나?’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현관을 쳐다봤어. 역시 그 느낌은 눈 녹 듯 사라졌고, 현관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지. 당시 문의 구멍으로 센서등의 빛이 조금 보이다가 꺼졌던 것 같기는 한데, 이건 정확히 기억이 안 나. 아무 소리도 안 들렸으니 센서등이 켜질 일은 없었을 테지.

‘시험범위 맞추려면 내일도 도서관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얼른 자야지’ 생각하며 눈을 감았지. 알잖아. 계획이 있다 해도 주말 오전에 못 일어나면 뭐든 하기 싫어지는 거. 바로 누워서 컴컴한 천장을 잠시 보다가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어.

또, 그 느낌이 들데. 누가 나를 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이번에는 좀 짜증이 나는 거야. 예전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그때처럼 두 번 세 번 그런 적은 없었거든. 그래서 일부러 “아 뭔데...” 읊조리면서 고개를 돌려 현관 쪽을 다시 바라봤어. 당연히 사그러들 인기척을 예상하면서.

그 느낌이, 누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은 그 기분이, 돌아보면 으레 사라져야 할 인기척이,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더라. 현관 쪽을 바라본 순간, 지금도 기억나는 내가 한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어.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마주보고 있다.’

아무것도 없었던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와 눈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눈에서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더라. 분명히 그 느낌이었어. 사람의 눈을 보고 있을 때 드는 묘한 위화감. 방에는 아무도 없는데. 내 눈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난 누구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거지? 누가 날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난 현관문을 바라보던 그 자세 그대로 눈을 힘껏 감고,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썼어. 더위가 가시고 밤바람이 쌀쌀해지던 때였는데도 머리 꼭대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등이 축축해지더라. 눈이 아플 정도로 힘을 줘서 감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는데,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도 눈을 뜰 수가 없더라. 손바닥이 아릴 만큼 힘을 줘서 이불을 붙들고 나는 벌벌 떨었어.

난 그날 그대로 새벽녘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어. 움직일 수도 없었고 움직이기도 싫었어. 눈을 떠도 아무것도 안 보일 테고 보여봤자 이불 안감이었겠지만, 등 뒤로 약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걸 느끼기 전까지 난 몇 시간을 그대로 가만히 있었어.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그 뒤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침 나절에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 도망치듯 집을 나와 도서관에 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 그 때 집에 들어오고 나서 뭔가를 마주보기까지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린 것 같은데, 지금도 그때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기억이 선명해.

기억이 선명하니까, 당시에 느꼈던 그 ‘인기척’도 머리 속에서 지워진 적이 없어. 문득 누군가의 눈을 쳐다볼 때, 갑자기 그 인기척이 생각나기도 해. 아니, 느껴지는 건가? 잘 모르겠어 어떤 느낌인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남아 있는 그 기억이, 지금도 내가 사람들과 얘기할 때 눈을 잘 못 쳐다보는 이유일까?